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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더 실랑이가 이어졌으나 재하는 단호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호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손을 든 건 격리 팀장이었다. 제 목숨 버리겠다고 뛰어드는 일반인보다 죽음을 앞둔 에스퍼를 구할 확률 쪽에 더 신경이 쏠렸다.
“아주 벌벌 떠는 게 모니터 너머로 다 보일 지경인데.”
격리실로 향하는 재하의 모습이 모니터를 통해 전해졌다. 지켜보던 격리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연신 내쉬었다.
“정말이지, 다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모르는군.”
“격리 팀의 매뉴얼이 너무 구식인 겁니다. 최근 데이터가 반영되지 않았어요.”
보고서를 흔들어 보이는 연구원을 향해 격리 팀장이 혀를 찼다.
“연구소에만 있다 보니 폐쇄의 뜻을 가볍게 여기나 보군.”
“아뇨. 차라리 지금이라도 시도해 봐야 합니다. 저대로 두면 점점 더 상태가 나빠져 내일이 되기 전 폭주하게 될 테니까요.”
이전에 폭주로 인해 사망한 에스퍼의 데이터가 존재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폭주를 대비한 격리실까지 마련해 둔 터였다.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공간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끝내 죽어 갈 에스퍼의 무덤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마나 연구 팀은 매일 소속 에스퍼의 상태를 확인하고 관리해 왔다.
반면에 격리 팀장은 폭주한 에스퍼가 격리실에서 어떻게 죽어 가는지 목격해 온 이였다. 저리 파동이 엉망이 돼 버린 에스퍼의 폭주를 막을 방법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하아…… 위에서는 일단 해 보라고 하는데, 이 데이터 믿어도 되나?”
“그럼요. 바로 저기 있는 서재하 씨가 지금까지 해 온 테스트의 결과를 보세요. 데이터는 거짓말 안 합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더는 젊은 에스퍼가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
착잡한 팀장의 말에 열성적으로 어필하던 연구원 역시 침착해졌다. 지금까지 재하는 안정적인 상황에서만 가이딩을 해 왔다. 폭주 직전의 에스퍼라면 그 역시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모두가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는 사이, 재하는 두꺼운 철문을 지나 홀로 격리실 앞까지 걸어왔다. 재하가 신호를 주면 문이 열릴 터. 심호흡하며 재하는 긴장을 가라앉혔다.
폭주라는 단어와 격리실이 주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지호에게 목숨이 구해진 경험이 없었다면 피하고 싶을 만큼 긴장됐다.
‘괜찮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고작 며칠이었지만, 일정하게 나왔던 데이터와 연구원에게 받은 교육을 떠올리며 지금 상황이 최악은 아님을 확신했다.
격리실 문 옆에도 모니터가 있어 내부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전 봤을 때와 똑같이 몸을 비틀며 덜덜 떠는 지호의 모습이 비쳤다.
딱 죽을 거 같다며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웃어 보이던 지호였기에 그가 느낄 고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들어갈게요.”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자 격리실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또 문이 있었고, 등 뒤의 문이 닫히고 나서야 안쪽 문이 열렸다.
통제실 모니터로 볼 때와 달리 매우 넓은 방 한가운데에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 주변에 각종 장비가 놓여 있었으나 지켜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방 안으로 재하가 들어서자 등 뒤로 문이 닫혔다. 기계음마저 사라지자 들려오는 건 힘겨움에 헐떡이는 지호의 숨소리였다.
“크윽!”
모니터로 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땀으로 흠뻑 젖은 지호가 발작하듯 몸을 뒤틀었다. 족쇄에 걸린 팔다리가 새빨갛게 달아오를 정도였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 비명조차 없었다.
홀로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지호의 모습에 재하는 도림을 떠올려 버렸다.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었지만, 종일 자리를 비우는 도준을 부르지도 못하고 혼자 울먹이던 도림은 자신이 부르자 울음을 터트렸었다. 그러곤 금세 방긋 웃으며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했었다.
그 모습과 겹쳐 보니 지호는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 힘겨우리라 추측할 수 있었다.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후우…….”
고통이 잠시나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는지 한숨을 내쉬는 지호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재하가 들어온 것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는지 손이 잡히자마자 흠칫 놀라며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시선을 맞춰 왔다.
“읏…… 재……하 선배?”
흐릿하던 지호의 눈이 느릿하게 깜박이더니 이내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
“어라…… 선배가 왜 여기에 있어요?”
“왜일 거 같아?”
멍한 지호의 반응에 재하는 평소처럼 태연하게 굴었다.
“혹시…… 저 보러 온 거예요?”
자신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하나씩 파고들며 얽혀 든 지호의 손가락은 덜덜 떨려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와 달리 목소리만큼은 느린 탓에 여유롭게 들릴 정도였다.
“정말…… 그런 거면 기쁠 텐데.”
힘겨운지 느릿하게 말을 이으면서도 지호는 재하를 걱정했다.
“하지만, 여기 위험해질 거예요. 선배도 어서 피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힘없이 얽힌 손가락은 필사적으로 붙잡아 왔다. 지호를 내려다보던 재하는 손가락이 얽힌 손을 가볍게 힘주어 잡아 주었다. 털어 내고 도망치리라 예상했었는지 반쯤 뜨였던 지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읏…… 선배? 저 유혹하시는 거예요?”
“넌 이 상황에서도 입만 살았냐?”
아무렇지 않게 핀잔을 주면서도 재하는 제 손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에 당황하고 있었다.
지호의 파동이 엉망으로 날뛰고 있다. 손을 통해 따끔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젠장, 내가 가이드인지 뭔지가 된 게 맞구나.’
도준과 가이딩을 하면서는 실감하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닿은 곳을 통해 체온이 옮겨 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감각이 마나의 흐름이고 가이딩이라면 너무도 쉬웠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지호의 날뛰는 그래프를 잠재우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이거, 신기하네.”
“흐으…… 재하 선배?”
도준과의 가이딩 때와 달리 맞닿은 지호의 손은 마치 피를 뽑아 가듯 게걸스럽게 빨아들여 갔다. 부러 힘주어 손을 잡지 않았다면 놓고 싶을 만큼 불쾌한 감각이었다.
재하가 느끼는데 지호가 모를 리 없었다. 놀란 지호는 재하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입만 달싹였다. 지호의 당황한 모습에 재하는 자신이 여유를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많이 아프냐?”
지금까지 느른한 웃음을 보이던 지호의 얼굴이 굳었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붙든 지호의 손을 더욱더 강하게 마주 잡아 주자 그제야 지호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네. 아파요, 선배.”
“조금만 참아 봐.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괜찮아질 거야.”
붙잡은 손을 통해 느껴지는 파동이 아팠다. 이대로는 너무 느리기에 구속된 다른 손에 제 손을 겹치고자 몸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상체가 맞닿았다. 자세가 불편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중에 손을 놓으려 하자 지호 쪽에서 필사적으로 붙잡아 왔다.
그 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보니 재하 역시 손을 잡고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았다. 침대 주변에 설치된 기계 탓에 동선이 나오지 않아 이리저리 움직이길 여러 번. 결국, 양손을 붙잡은 채 위에 올라탄 민망한 자세가 돼 버렸다. 허리가 부러지더라도 다른 자세를 찾아야 하나 고민하는 재하와 달리 지호는 만족감이 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선배, 이거 좋아요.”
“야야,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노력할게요. 가지 마세요, 선배.”
“안 가.”
혹시나 재하가 제 손을 놓고 도망칠까 두려웠는지 지호는 필사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양손을 꽉 붙잡은 채 재하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아까는 뾰족뾰족하게 모니터를 뚫고 나갈 기세였던 그래프가 여전히 요동치기는 했어도 조금은 곡선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도준이 가장 상태가 안 좋았을 때보다 격렬했다. 훨씬 더 빠르고 급격한 흐름을 보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양손을 잡고 있는데 그래프의 곡선이 격하게 요동쳤다.
“흐읏…… 윽…… 선배, 재하 선배.”
차라리 혼자였다면 고통에 잠식돼 버렸을 지호가 양손을 붙잡은 채 몸을 비틀며 헐떡였다. 그때마다 흐트러진 옷차림이 더 엉망이 되며 피부가 드러나자 재하는 고민했다.
아무리 지호가 다 죽어 간다 해도 손을 잡고 있으면 언젠가 괜찮아질 것이다. 다만 그간 배워 온 지식으론 24시간 이 자세를 유지해도 될까 말까 하다는 거였다. 게다가 간헐적으로 고통이 심해지는 지호를 코앞에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어차피 언젠가 해야 할 거라면 지금 해야 하나?’
도준은 워낙 친해서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지호는 친하지 않으니 차라리 낫지 않을까.
‘아니, 그건 아니지.’
“선배, 닿고 싶어요.”
어딘지 모르게 또렷해진 지호의 목소리에 재하는 그래프를 확인했다. 그 잠깐 사이에 꽤 파동이 안정됐다. 하지만 그래 봤자 여전히 날카롭게 튀고 있고, 손을 통해 빼앗기는 감각도 여전했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재하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피커를 통해 익숙한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처럼 가이딩 하시면 24시간 후에 절반 정도 회복될 겁니다.
“고작 절반이요?”
경악하는 재하와 달리 지호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좀 더 접촉 범위를 늘려 주시면 가이딩 시간이 줄어들 겁니다.
“아, 뽀뽀는 안 한다고요!”
― 접촉 범위라고 했지, 입술을 사용하라고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만.
상냥하지만 사무적이던 연구원의 목소리에 작은 웃음이 깃들었다. 그 목소리에서 여유로움을 느낀 재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심각한 상황은 지나갔다는 확신이 생겼다.
“아, 됐어요. 문제 있는 거 아니면 말 걸지 마세요.”
혹여나 지호에게 위험한 정보가 전해질까 싶어 급히 외쳤지만, 이미 들어 버린 후였다.
“선배, 지금 이게 가이딩 하는 거예요?”
“어? 어어. 너도 아는구나?”
애써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지호는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방금 스피커로 들은 게 처음이에요.”
“이거, 아직 테스트 중이라서. 확실한 게 아니거든.”
“선배, 필사적으로 말 돌리시는 거 귀여워요.”
“어우 씨. 느끼한 소리 하면 손 놓고 튄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재하의 손이 풀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 재하를 빤히 쳐다보던 지호는 보조개가 팰 만큼 짙은 미소를 보였다.
“재하 선배님은 이런 거 어려워하시죠.”
“내가 뭘 어려워해?”
“괜찮아요. 저한테 맡기세요.”
방금까지 다 죽어 가던 지호가 손이 잡힌 채로 상체를 들더니 재하의 목에 얼굴을 비벼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