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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42화 (4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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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만 보면 꽤 한가한데도 재하는 이상하리만치 시간이 부족했다.

갖가지 테스트와 도림과 놀기. 이 두 가지뿐인데도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재하가 나름 노력했으나 도림을 돌보는 데 한계가 올 때쯤, 다행히 숙소 내부에 어린이 시설이 마련됐다.

<대성 에스퍼 센터 부대시설 안내>

가독성이 좋지 않은 안내지를 받은 재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에스퍼 센터에 어린이집이 있어요?”

“예, 어제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각성자 가족 다수가 숙소에 머물고 있다 보니 편의 시설이 계속해서 추가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생긴 시설에 도림을 데려가자니 재하는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런 재하의 불안을 알아챈 이천오가 설명해 주었다.

“보육 교사 자격증 보유자에, 평이 좋은 분들을 스카우트했다고 들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으니 주도림 양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하긴, 요즘 저랑만 노는 건 질려 하긴 했죠.”

도림에게는 다양한 경험과 놀이가 필요했다.

재하는 도준과 재윤에게 묻고 답을 받은 후에야 도림을 데리고 센터 안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특정 카드 키까지 사용한 후에야 해당 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짜 어린이집이네…….”

시설은 입구부터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어린이집처럼 보였다. 마당에 속하는 공간은 바깥에서도 보였지만, 투명한 벽으로 가로막혀 있어 아무나 드나들 수는 없었다. 이미 안에서 몇몇 어린이들이 놀이터로 꾸며진 공간에서 함께 놀고 있었다.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방금까지 재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도림이 냉큼 손을 놓고 문으로 달려갔다.

“나도 저기서 놀래.”

“도림아, 힘들거나 방에 오고 싶으면 바로 선생님께 말해. 오빠가 바로 올게.”

“응!”

도림은 힘차게 대답하고 안에서 반겨 주는 보육 교사에게 낯가림도 없이 달려갔다.

섭섭하기는 했지만, 갈수록 검사실에서 자주 자신을 찾아 도림이 걱정되던 차였다. 주변을 살피니 안과 밖에 가드로 보이는 이들도 배치되어 있었다. 센터에서 에스퍼의 가족에게 얼마나 신경을 써 주는지 알 수 있었다.

도림을 두고 돌아서는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벌써 무리에 합류해 또래 친구와 손을 잡고 뛰어노는 걸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이제 도림에 대한 걱정은 접어 두고 그놈의 가이딩에 대해 각오를 다져야 했다.

첫날 이후 딱히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도준이 없을 때 테스트를 받으러 방문하니 은근히 압박을 해 왔다. 오늘도 예정대로 검사실에 들어서자 연구원이 또 설득해 왔다.

“이 정도면 주도준 에스퍼와의 일반 가이딩 데이터는 충분합니다.”

“그럼 이제 테스트는 안 해도 되나요?”

“아니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상황에서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연구원의 목소리는 상냥했지만, 재하가 불편해하는 말을 거침없이 해 왔다.

“설명해 드렸다시피 가이딩에는 단계가 있을 걸로 예상합니다. 일반 가이딩보다 더 긴밀한 접촉인 밀접 가이딩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뽀뽀는 안 해요. 손잡는 걸로 부족하대서 손등 쪽에 포옹까지 했잖아요.”

“아, 네. 약간은 더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 주셨죠. 그래서 더 빠른 방법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흔드는 재하의 확고한 모습에 연구원은 태연하게 표시해 둔 테스트 내용을 휙휙 넘겼다.

“질을 높일 수 없다면 샘플을 여럿 늘리는 수밖에 없겠네요. 주도준 에스퍼는 반대했지만, 가이딩은 서재하 가이드…… 아니, 서재하 씨의 능력이잖아요.”

연구원은 재하를 가이드라 부르다 곧바로 정정했다. 아직 공식화되지 않은 분류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호칭 차이이지만, 보고서를 받자마자 직접 달려와 주의시킨 권해일과 그의 뒤에서 서슬 퍼런 기색을 숨기지 않던 서재윤의 모습이 생생했기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며칠 사이 숙소에 에스퍼의 숫자가 꽤 늘었습니다. 서재하 씨가 동의해 주신다면 다른 에스퍼와 일반 가이딩 테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연구원이 봐 온 재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에스퍼가 된 친구를 여전히 동네 친구 정도로 여기며 손을 잡는 걸 어색해하고, 그 이상의 접촉은 극구 거절했다. 갑자기 바뀐 세상에 변하지 않는 일반인은 연구원이 보기에 번거롭기만 했다.

대격변으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연일 매체를 통해 알리는데도 에스퍼의 중요성을 아직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랑 손을 잡으라고요? 그것도 두세 시간씩?”

“아뇨. 이번엔 다양성 데이터를 위함이니 30분씩 최대한 많은 에스퍼와 진행할 겁니다.”

“윽, 30분이나…….”

두세 시간도 아니고 30분이라는데도 망설이는 재하의 모습은 지극히 그 나이 또래 남자가 보일 만한 반응이었다. 연구원이 미리 준비해 둔 에스퍼 명단을 넘기려는데 재하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아, 저랑 아는 사람도 있잖아요.”

“일반인 말고 에스퍼 말하는 겁니다.”

“있어요. 동생이랑 길마 형 아니, 재윤이랑 해일 형이요.”

재하와 친분이 있는 에스퍼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주도준까지 포함해 고등급 에스퍼들의 비호를 받는 재하는 그들을 언급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과시하는 기색도 없이 평범하게 튀어나온 이름에 연구원도 평정을 가장해 답했다.

“두 분은 바빠서 센터에 들를 시간도 부족합니다.”

“그건 그렇죠. 으으…… 모르는 사람이랑 손잡기라니. 진짜 싫은데.”

정작 본인이 어떤 보호를 받는지 모르는 재하는 연구원의 꼬드김에 고민했다. 연구원도 유의미한 데이터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당사자가 이렇게나 불편해하는데 에둘러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협회장이 직접적으로 압박해 오는 상황에서 자신이 결과를 내지 못하면 그다음엔 강제할 다른 연구원이 투입될 수 있었다.

에스퍼 연구 팀의 막내 연구원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에스퍼의 무서움도 모르고 협회장의 눈에만 들 생각인 다른 연구원이 재하를 어떻게 대할지 불 보듯 뻔했다. 자신의 연구 결과를 뺏기는 것도 속 터질 일이지만, 에스퍼의 심기를 건드리는 게 더 무서웠다.

“서재하 씨, 그럼 10분씩…….”

삐빅. 삐빅. 삐빅.

동시에 여기저기서 알람이 울렸다. 센터 경보가 아닌 연구원들에게서만 울리는 알람에 누군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폭주 위험 에스퍼가 센터로 실려 왔다고 합니다.”

“뭐? 오전에 체크할 때까지만 해도 위험 수치인 에스퍼가 없었는데?”

에스퍼의 능력 사용으로 인한 상태는 등급별로 위험도를 나누고 있었다. 에스퍼에 대한 긍정적인 홍보를 위해 권해일과 서재윤이 매일 능력을 발휘하는 중이지만, 결코 위험 등급까지 다다를 일은 없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에스퍼의 마나 현황은 안정적이었다. 갑작스럽게 한계치를 넘어 버린 능력 사용자가 나올 리 없었다. 연구원은 이 점에 대해 무척 조심해 왔기에 매일 하는 일이더라도 꼼꼼히 체크해 둔 터였다.

“A급 에스퍼인데 마나 양은 B급이라 능력 사용량을 잘못 파악해 남용한 것 같습니다.”

“B급이 어떻게 A급 에스퍼로 기재가 돼?”

“아무래도 공간 이동 능력자라 능력치만 보면 A급 이상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요.”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얌전히 지켜보던 재하는 지나칠 수 없는 말을 듣고 말았다.

“잠깐만요. 공간 이동 능력자라고 하셨어요?”

“그쪽이 참견할 일이…… 아, 같은 대학 출신이니 아는 사이일 수도 있겠네요.”

“견지호 맞아요?”

“네. A급 공간 이동 능력자, 견지호 맞습니다.”

“아, 이런. C구역 폐쇄한답니다. 아까운 인재를 잃게 생겼네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연구원의 태도에 재하는 그간 배워 온 에스퍼 상식에 대해 떠올렸다.

폭주 위험. 능력 남용으로 인한 마나 부족. 혹은 불순물로 인한 쇼크. 어느 쪽이든 폭주라는 건 에스퍼를 지옥 같은 고통에 빠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라는 의미였다.

모두가 애도라도 하듯 침묵하는 사이, 재하는 저를 보고 있는 연구원과 눈이 마주쳤다. 다른 이들과 달리 연구원은 손에 든 데이터를 품에 끌어안고 뛰어나갈 기세였다.

“연구원님, 뭔가 방법이 있는 거죠?”

“네, 서재하 씨가 도와주신다면 설득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으, 위험한 거면 재윤이가 엄청 화낼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연구원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재하였다. 정이 많고 순수한 재하의 행동에 연구원 쪽에서 먼저 다짐했다.

“구역 폐쇄는 예방 조치 차원에서 진행됐을 겁니다. 실제로 위험 수치라면 제가 먼저 서재하 씨를 데리고 멀리 도망칠 겁니다.”

그간 자신을 꾸준히 설득해서 조금이라도 데이터를 뽑고 싶어 하던 연구원이었다. 그랬던 연구원이 자신의 안전을 우선시하자 지금까지 어떻게든 피하려고만 했던 재하는 조금 민망해졌다. 그와 동시에 그렇게나 위험한 상태에 처한 견지호가 걱정스러웠다.

* * *

C구역은 숙소와 다른 건물이었다.

연구원과 재하는 일반인인 재하의 출입 문제로 입구에서 잠시 실랑이하다 간신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설치된 통제실에 들어서자 각종 그래프와 함께 견지호를 비추는 화면도 볼 수 있었다. 그는 팔다리를 구속당한 채 몸을 뒤틀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충격받은 재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각자 제 할 일로 바삐 움직였다.

연구원이 통제실 책임자에게 가져온 보고서를 보이며 무언가를 말하자 듣고 있던 상대가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재하는 모니터로 가까이 다가가 고통에 떨고 있는 지호의 모습과 날뛰는 그래프를 번갈아 봤다. 도준과 가이딩 테스트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을 만큼 격하게 요동치는 그래프가 뭘 의미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저 안의 지호가 도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제가 가 볼게요.”

충동적이라면 충동적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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