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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40화 (4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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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인 해일과 재윤만큼은 아니어도 도준 역시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도준의 의사를 물었고, 재윤의 열성적인 에스퍼 홍보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차에 들어온 제안이었기에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해일과 재윤처럼 외부로 나서지는 않았다.

안전이 보장된 장소에서 시현하고 인터뷰를 하는 정도에도 상당한 심력이 소모됐다. 그 외의 시간은 연구소에 붙잡혀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다른 에스퍼와 달리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거의 원상태로 돌아와 있는 마나의 흐름에 원인을 파악하고자 연구원들 대부분이 매달렸다.

다른 에스퍼와 달리 도준의 마나는 하룻밤이면 거의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런 도준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실험을 던전 안에서 해야 했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곧바로 이루어지는 실험 덕에 유의미한 데이터가 빠르게 쌓여 갔다.

“와, 진짜로 하루 사이 원상태로 돌아갔어? 회복 속도가 말도 안 되는데.”

“주도준 에스퍼의 마나 양이 다른 에스퍼보다 월등히 많아서가 아닐까?”

“수면 중 회복 능력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깨끗해질 순 없습니다.”

“다른 점이 분명 있을 겁니다. 식습관이라든가, 아니면 주변 환경이라든가.”

모두 누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도준이 매일 늦더라도 숙소로 돌아가 함께 지내는 인물을 떠올렸다.

동생 주도림과 친구 서재하. 어쩌면 두 사람 중 한 명이 이와 관련된 각성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시됐다. 다만 이걸 공식화하지 않는 건 서재하에 대해 주의시킨 권해일과 서재윤의 강경한 태도 때문이었다. 거기에 당사자인 주도준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S등급의 기준이 될 주도준의 심기를 굳이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지칠 때도 선한 웃음을 짓는 도준에게 도림과 재윤을 테스트해 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가 냉기 능력자가 아닌가 싶을 만큼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도준을 직접 대해야 하는 연구원의 입장일 뿐, 돈 냄새를 맡은 협회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협회장인 권해성은 주도준에 대한 보고를 받자마자 서재하가 유력한 원인임을 알아챘다.

“마나 정화? 미쳤군. 당장 데려다가 등급 테스트부터 받게 해.”

“여러 에스퍼들이 주시하고 있는 일반인입니다. 대외적으로 나서 주고 있는 서재윤 에스퍼와 형제였던 데다 권해일 에스퍼 역시 신경 쓰고 있는 대상입니다.”

“사생아 새끼가 관심을 둔 게 뭐 문제라고. 거기에 서재윤 에스퍼?”

이제 막 주름지기 시작한 입가를 문지르는 권해성의 비틀린 미소가 짙어졌다.

“그거, 얼굴만 좀 그럴싸하지 마나 양은 고작 C급 수준이라며. 대외적 이미지 때문에 B급으로 발표한 거지.”

“등급은 그렇지만, 능력 활용도는 A급 이상이라고 합니다.”

재윤은 스스로 본인의 입지를 빠르게 높여 놨다. 그런 재윤이 협회에 요구한 건 재하에 대해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말 것이었다. 해일 역시 이를 강력하게 어필해 두었음에도 협회장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고작 B급의 에스퍼들이 이를 드러내 봤자 권해성이 가진 권력에는 티끌만 한 상처조차 입힐 수 없었다.

“쯧, 실제 A급은 주도준 아닌가. 게다가 마나 양은 최고치라 S급으로 발표해도 될 판이라던데.”

보고서를 책상에 던지듯 내려놓은 권해성의 입꼬리가 한없이 치켜 올라갔다.

“그런 존재가 현실에서 마음껏 힘을 발휘한다? 그 원인이 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게 우선 아닌가.”

B급 얼굴마담 따위보다 당장 A급 이상이 될 에스퍼를 지속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다. 무엇보다 던전이 아닌 장소에서의 마나 사용을 현실화시킬 방법이 존재하다니. 무형의 권력을 손에 넣을 기회에 권해성의 눈이 돌아가고도 남았다.

* * *

쾅 쾅.

종일 자리를 비우는 도준을 대신해 도림을 돌보던 재하는 거친 노크 소리에 당황했다. 얼핏 제복 차림을 확인한 재하가 문고리를 잡았다.

“누구세요?”

“서재하 씨, 주도림과 함께 몇 가지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문을 열자마자 자기소개도 없이 곧바로 용건부터 말해 온 거구의 남자는 일전에 재하에게 시비조로 건들대던 가드였다. 지금 역시 말투만 정중할 뿐 귀찮은 티가 역력했다. 제복 차림의 가드와 달리 뒤쪽에 선 검은 정장의 이천오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재하는 이 일이 어딘지 모르게 수상함을 느꼈다.

“당분간 방에만 있으랬는데요.”

“방이 아니라 숙소에 머물라고 했죠. 검사실이 센터 내부에 있으니, 숙소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CCTV를 상시 체크하고 있음을 대놓고 알리는 김병태의 비꼼에 재하는 소름이 끼쳤다. 도림이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CCTV 카메라를 가리긴 했지만, 필요한 때가 아니면 보지 않는다던 게 거짓말이었나 싶어 불쾌감이 치솟았다.

“위험 요소가 있을 때만 보는 거 아니었나요? 길마 형한테 그렇게 들었는데요.”

해일을 언급하자 김병태가 움찔했지만, 그뿐이었다.

“테스트 기계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되는 건데 빨리 가시죠.”

“그렇게 쉬우면 아무 때나 해도 되겠네요. 도림이 보호자에게 물어보고 결정할 테니 지금은 돌아가시죠.”

“거참,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에스퍼를 위한 일인데 되게 깐깐하게 구네.”

에스퍼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에 재하는 곧바로 재윤을 떠올렸다. 최근 재윤을 만났을 때 무언가 참아 내며 힘들어 보였던 모습을 떠올렸다. 직접 만져 보았을 때는 크게 아파하거나 하지 않아 따져 묻지는 않았지만, 그 뒤로 계속 신경 쓰였었다.

재하는 김병태 뒤에 있는 고개 숙인 이천오를 향해 물었다.

“뭐, 아프거나 그런 검사는 아니죠? 잠깐이면 되는 거 맞아요?”

“5분도 안 걸린다니까 되게 의심 많으시네.”

투덜대는 김병태의 말에도 재하는 해일이 패드를 통해 보여 준 재윤의 검사 장면을 떠올렸다. 저들의 말처럼 검사 시간이 빠르다면 재윤의 검사 때 재하에게 숙소를 따로 내줄 이유가 없었다. 그런 재하의 의심에 이천오 쪽에서 고개를 끄덕여 왔다.

“마나 검사는 5분이면 됩니다.”

“정말이에요?”

“신형 각성 검사는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도록 개량되어 얼마 걸리지 않으실 겁니다.”

“알았어요. 전 그렇다 쳐도, 도림이는 도준이 허락받고 할 거예요.”

“네네, 그러십쇼. 그럼 모시겠습니다.”

설렁거리는 김병태가 앞서고, 재하는 도림을 꼭 끌어안고 뒤를 따랐다.

다행히 불안해하며 도착한 검사실에 도준이 있었다. 도준은 재하와 도림을 보자마자 다정한 웃음으로 반겨 주었다.

“왔어? 도림인 자고 있었나 봐.”

“오는 동안 잠들었어. 그보다 너 있는 거 알려 줬으면 더 빨리 왔을 텐데.”

애초에 도준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면 위에서 실랑이할 필요가 없었다. 불만을 담아 김병태를 째려보려 했으나 이미 사라진 후였다. 이천오만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모습에 표정을 풀고 몸에 전극 패치를 붙인 도준의 곁으로 다가갔다.

“너도 검사해?”

“응. 너랑 있을 때 내 변화가 중요하다고 해서.”

“뭐야, 그럼 도림인 방에서 편하게 재워도 됐잖아.”

재하가 자신의 품에서 꼬물거리는 도림을 도닥이자 도준이 괜찮다며 그를 달랬다.

“옆방에 쉴 수 있는 공간 있어. 저 가드분에게 도림이 부탁드리고 넌 이쪽으로 와.”

“그래도 돼?”

“응. 여기선 힘 써도 되니까.”

도준의 대답과 동시에 도림을 안고 있던 재하의 손이 벌어졌다. 동그랗고 투명한 달걀을 안은 모양새가 된 재하가 그대로 도림을 이천오에게 넘기자 그가 결의를 다진 듯 진지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그런데 저러면 답답하지 않을까?”

“방에 들어가면 방 자체를 방어 막으로 둘러 버릴 거니까 괜찮아.”

“크, 몇 번을 봐도 진짜 네 능력은 최고야.”

“다 재하 네 덕분이야.”

예상치 못한 도준의 발언에 재하가 당황한 사이, 연구원이 다가와 패치를 붙이기 시작했다. 기계에 들어가 검사할 거라더니, 예전에 봤던 동생의 검사 방법과 비슷했다.

이 방법은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 묻고 싶었지만, 진지한 연구원들의 표정을 보니 말을 걸 틈이 없었다. 그 상태로 도준이 손을 잡아 오자 평소라면 징그럽다며 털어 냈을 재하가 얌전히 손을 내주었다.

여러 대의 모니터에 나타난 그래프가 움직이고, 연구원이 몇 가지를 빠르게 조작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손을 잡는 것부터가 실험의 일환인 것 같아 가만있자 연구원이 밖으로 나갔다. 단둘만 남겨 두고 나가는 게 이상했지만, 여전히 평소와 같은 선한 표정의 도준을 보고 마주 웃어 버렸다.

“야, 이거, 되게 어색하지 않냐?”

“그런가. 난 되게 고맙고 좋은데.”

“어우, 민망하게 그건 뭔 소리래.”

어색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재하를 보며 도준은 이번 일에 대해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도준은 재하의 존재를 당분간 감추고 싶었다. 그러나 협회장까지 나서서 개입해 왔다. 자신의 마나 효율이 좋은 이유가 재하 덕분이라는 걸 확신한 협회장의 관심은 지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살펴보고 실험할 기세인 욕심 그득한 협회장의 태도에 도준은 직접 협조하겠노라 나섰다. 도준이 나서자 협회장도 한발 물러섰다.

아직까진 에스퍼 중에 도준이 가장 강하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재하의 안전 역시 책임질 수 있다고 여겼다.

“재하야, 오면서 들었겠지만…….”

“응? 뭘?”

― 주도준 에스퍼, 서재하 님, 감사합니다. 협조해 주신 덕분에 접촉을 통한 접촉 데이터는 나왔습니다.

역시 어색한 손깍지엔 이유가 있었다. 데이터가 나왔단 말에 재하는 재빨리 손을 뗐다.

이제 다 된 건가 싶어 일어서려던 재하는 이어지는 목소리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 오늘 두 분의 협조는 국가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다시 접촉 테스트 진행하겠습니다.

국가의 미래까지 언급하는 연구원의 말에도 도준은 반응이 없었다. 재하는 나름 호응하자 싶어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그럼요. 나라를 위하는 일이잖아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 이번에는 피부가 얇은 부위를 테스트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제가 곱게 자라서 손바닥이 얇거든요.”

재하가 애써 손을 다시 언급했지만, 연구원은 가차 없었다.

― 인간의 몸에서 가장 피부가 얇은 곳은 입술입니다. 바로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뭔 술이요?”

국가를 위해서라도 뽀뽀는 못 하겠는데요.

눈으로 답하는 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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