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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36화 (36/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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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의 숨소리가 느릿하게 변하자 등을 쓰다듬던 도준의 손이 천천히 허리 쪽으로 내려갔다. 침대에 엎어지며 올라간 후드 티로 인해 맨살이 드러난 허리에 도준의 손이 얹어졌다. 손바닥을 펼쳐 등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곤 조금 전처럼 다시 방어 막을 만들어 냈다.

몇 초 정도 집중해야만 만들어졌던 방어 막이 눈 깜박할 사이에 도준과 재하를 감쌌다.

쥐어짜 내듯 마나를 퍼부어야만 간신히 가능했던 능력이 부드럽게 발현됐다. 로비에서처럼 자유자재로 쓸 만큼은 아니어도 사람 한둘 지킬 만큼은 가능했다.

재하에게서는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비 각성자였고, 에스퍼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에스퍼가 된 자신이 힘을 마음껏 사용하는 걸 가능케 하는 게 재하였다. 끌어안고 있을 때도 그러했지만, 지금처럼 맨살에 직접 닿거나 하면 더 극명해졌다.

“착각이 아니었어…….”

도준은 재하 집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소파에서 재하를 끌어안고 시간을 끌었을 때, 드러난 목선에 입술이 스치자 두통이 빠르게 해소되는 걸 느꼈다. 좀 더 닿고 싶다는 감각에 생각할 틈도 없이 피부를 입에 머금는 순간 깊은 갈증이 일었다. 지금까지는 몸이 가벼워지고 두통이 사라지는 긍정적인 효과만을 재하를 통해 느꼈으나 그것보다 더한 감각이었다.

한입에 삼켜 버리고 싶은 욕망, 저만 보게 하고 싶은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단 한 번도 친우에게 느낀 적 없던 감정이었다.

접촉은 목이 아닌 등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손보다 얼굴이 닿았을 때, 얼굴보다 입술이, 입술보다 혀가. 접촉이 긴밀해질수록 도준이 느끼는 감각은 해소와 치료를 넘어서 쾌락에 가까워졌다. 그러면서도 몸을 무겁게 만들던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가벼워짐을 느꼈다.

좀 더 닿고 싶다. 좀 더 안고 싶다. 좀 더 깊은 접촉을 원했다.

재하가 깨어나기 전 조금만 더 깊어지고 싶었다.

“당장 형한테서 떨어져.”

도준은 재하에게 집중한 탓에 문이 열리는 것도 알지 못했다.

재하와 자신에게 두른 방어 막을 믿은 탓도 있었다. 어떤 위협이든 닿지 않게 할 자신이 있었지만, 등 뒤에서 들려온 재윤의 목소리에는 조금 당황해 버렸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돌아본 도준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팽팽하게 긴장한 재윤을 볼 수 있었다. 일전에 갑자기 쳐들어와 자신의 멱살을 잡았을 때와 비슷한 경계심이었으나 에스퍼가 된 지금은 요동치는 마나까지 느껴졌다.

제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데도 여차하면 선을 넘을 기세였다.

“일단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는데.”

침대에서 가까이 달라붙은 두 사람의 모습이 재윤에게 어떻게 보일지 도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형제에게 위협을 가하는 상황으로 오해했을 터. 재윤이 보이는 명백한 적의를 이해하기에 웃어 보였다.

“진정해, 재하 동생.”

“시발…….”

진정하라는 말에도 재윤은 그나마 붙잡고 있던 이성을 날려 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재윤이 도준의 멱살을 붙잡고 난리를 쳤던 다음 날, 재윤이 도준의 집에 찾아왔었다.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내민 반찬통에 재하의 심부름임을 단번에 눈치챘다.

영문 모를 재윤의 경계심에도 도준은 그를 보고 친근감을 담아 ‘재하 동생이 고생 많다’라며 말을 걸었다가 경멸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다시는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말라는 경고 후 반찬통을 내려놓던 손은 또 조심스러워서 재윤에 대한 이미지가 사춘기 동생 정도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아, 미안. 그새 입에 붙었는지 자꾸 실수하네.”

회귀 전 최악이었던 관계는 여전히 일방적인 영향을 끼쳤다. 재윤이 도준에게 보이는 적의는 고작 이런 사과로 누그러질 게 아니었다.

“형에게서 떨어져.”

“아, 네가 오해할 만한 분위기기는 했어. 하지만 재하를 지킨 게 나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하는데. 지금도 지켜 주고 있었다고.”

“지켜? 형 몸에서 손이나 떼고 말해!”

지금까지 잠든 재하를 생각해 목소리를 낮췄던 재윤이 이성을 잃고 힘을 끌어 올렸다. 일렁이던 마나가 터져 나와 도준이 펼친 방어 막을 흔들었다. 폭탄에도 끄떡없던 방어 막에 부딪쳐 비켜 나간 힘에 벽에 깊은 흠집이 생겨났다. 일반 자재보다 튼튼한 자재로 만들어진 협회 숙소인데도 힘을 사용하는 게 능숙한 재윤의 능력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마저도 제어 장치가 작동 중이라 약해진 힘이었다. 살의를 감추지 않은 재윤의 공격에 도준의 호의적이던 웃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재하가 깨겠어.”

형을 착취하는 주제에 걱정하는 척하는 도준의 모습은 재윤에게 가증스럽게만 보였다.

“게걸스럽게 가이딩을 빨아내면서 할 소린 아닐 텐데.”

“가이딩? 그게 뭔데?”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혐오의 감정을 받은 도준은 재윤이 꺼낸 말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부당한 분노다. 알고 있으면서도 재윤은 형에게 손을 댄 도준을 앞에 두고 이성을 붙잡기 힘들었다.

“으응…….”

그런 재윤이 한풀 꺾인 건 재하가 답답한 듯 뒤척거릴 때였다. 한순간에 눈매가 부드러워진 재윤이 목소리마저 조심스럽게 낮췄다.

“배리어 풀어.”

이곳에서 재하를 데리고 나가려 손을 뻗던 재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새로운 방어 막의 존재에 이를 갈았다.

“뭐 하는 짓이지?”

“있잖아, 그간 아무리 생각해도 재하 동생이 왜 날 싫어하는지 몰랐거든.”

모르는 게 당연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까.

“그런데 이 힘이 생기고 나서 알게 된 건데.”

멈춰 있던 도준의 손이 다시 재하의 허리 안쪽으로 움직였다.

“너…….”

“나나 이영우가 이렇게 변할 걸 알고 있었던 거야, 넌.”

달려들 것 같던 재윤이 당황하며 굳었다. 그에 반해 재하에게 바싹 달라붙은 도준은 여유롭기만 했다.

“재하랑 함께 있으면 힘을 쓰는 게 되게 편하더라. 이게 재하 동생이 말한 그 가이딩이란 거지?”

부러 재윤이 싫어하는 호칭을 사용하면서도 도준의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도준이 알아서는 안 될 걸 알았다는 듯 재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준은 이번에야말로 진심이 담긴 웃음을 보였다.

“재하 동생은 독차지하고 싶었던 거지, 자기 형을.”

도준이 자신을 비꼬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상황은 최악이었다.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던 대상 중 하나인 도준이 형의 비밀을 이미 눈치채다니.

재윤의 계획대로라면 재하가 해일이나 지호의 가이드가 된 후 그의 능력이 드러나야 했다. 그들보다 먼저 재하의 필요성을 알아챈 도준은 재윤 역시 같은 마음일 거라 짐작하고 그를 자극했다.

“형을 소유하고 싶어서 그렇게 날뛴 거였어.”

재하에게 완전히 달라붙은 도준의 행동에도 재윤은 꼼짝할 수 없었다. 이미 한 차례 도준의 방어 막을 뚫으려던 시도는 먹히지 않았다. 여기서 아무리 그를 경계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한들 회귀 전에도 뚫지 못한 방어 막이 열릴 리 없었다. 도준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의 앞에서 제 형을 취할 수도 있었다.

각성을 한 번 막았다 해서 방심한 대가가 뼈아팠다. 그러나 재윤은 여기서 흥분하는 대신 감정을 가라앉혔다.

이미 해일을 통해 도준이 각성했음을 전해 듣고 올라온 터였다.

‘그렇게 최악은 아냐. 회귀 전 주도준이었다면 이미 형을 벗겨 모욕하고도 남았어. 지금은 날 경쟁자로 보고 도발하는 것뿐이야.’

형의 효용성을 알아챈 도준이 자신을 앞에 두고 에스퍼 간의 경쟁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회귀 전과 달리 도준이 형을 온전히 지켜 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노려봐도 재하에게서 떨어지지 않아. 오히려 지금은 재하 동생 쪽이 더 위험해 보이고.”

현재의 도준이 보이는 감정은 우정에 소유욕이 더해진 형태로, 미래와는 달랐다. 가이드를 향한 과도한 집착과 동생을 잃은 죄책감이 뒤섞여 한 사람을 나락에 빠트렸던 비틀린 감정이 아니었다.

“주도준.”

재윤은 다시금 현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의 부재에 형을 지켜 내고, 지금도 자신을 경계하며 그를 지켜 내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봐야 했다.

“주도준 에스퍼.”

분노를 감추지 못했던 재윤의 목소리가 한결 낮아진 것에 도준은 의아했다. 역린을 들켜 난리 칠 줄 알았던 재윤이 갑자기 침착해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형을 지켜 줘서 고마워요.”

재윤이 고개까지 숙이며 해 온 감사 인사에 도준은 그제야 상대의 바뀐 태도를 이해했다. 경계심을 드러낸 이유도 형 때문이었고, 감사를 표하는 것도 형 때문이었다.

“전 형을 지켜 낼 겁니다. 이번에는 당신의 도움을 받았지만…… 아니, 당분간 당신에게 형을 부탁해야 할 거 같네요.”

“내가 싫지 않아?”

“싫습니다.”

단호한 재윤의 말은 도준이 듣기에도 진심이었다. 그만큼 재윤은 도준의 능력을 인정했다.

게다가 상황은 재윤이 알던 때와 확실히 달라졌다.

원래대로라면 투시와 투과 능력자로 각성해야 했을 이영우의 폭탄 능력만 해도 재윤이 대응하기 힘들었다. 도준 또한 이전과 달리 동생인 주도림이 무사했고, 재하를 대하는 태도 역시 강압적이라기엔 조심스러움이 보였다.

“하지만 당신의 능력은 믿고 있어요. 마나 제어기가 작동 중인데도 방어 막을 펼칠 정도니까요.”

“와, 형을 위해서라면 싫어도 참겠다는 거구나. 정말…… 착한 동생이야.”

지금까지 도준은 부러 재하와 손을 겹쳐 잡거나 피부를 접촉하며 재윤을 자극해 왔다. 그랬던 도준이 예전과 같은 다정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재하에게서 손을 뗐다. 물론 아쉽다는 듯 느릿하긴 했지만, 평소에도 유독 형제자매에게 약했던 도준은 훈훈한 형제애에 감동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옆으로 비켜서기까지 한 도준은 재윤을 향해 호의마저 비쳤다.

“네 형은 안전해. 확인해 봐, 재윤아.”

상냥한 도준의 권유에 재윤이 손을 뻗자 방어 막이 느껴지지 않았다.

“형, 다행이야. 정말 괜찮아 보여.”

곤히 잠든 재하의 얼굴을 가까이서 본 재윤의 굳은 얼굴이 풀어졌다. 엎어져 잠든 재하를 바로 눕히려 장갑 낀 손을 내밀던 재윤은 잠시 망설였다. 재하가 입은 도톰한 후드 티와 자신의 장갑 낀 손이라면 미약한 가이딩조차 이뤄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도 손을 뻗지 못하고 망설인 건 회귀 전 기억 탓이었다.

늘 가이딩이 부족해 허덕였던 삶은 짧은 기회조차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때의 감각이 욕심을 불러올까 싶어 재윤은 더 꼼꼼히 장갑을 확인하고 손목까지 확실하게 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도준은 경계심을 보이기는커녕 감동한 눈빛을 보냈다.

재하와 닿으면 편해진다는 걸 아는 에스퍼가 욕심을 부리기는커녕 철저하게 보호하려 드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형제의 우애에 재윤을 향한 도준의 호감도가 급속도로 올라갔다.

재하를 바로 눕힌 후 눈으로 꼼꼼히 살핀 재윤이 도준을 돌아봤다.

“빠른 시일 안에 제어 장치가 강화될 겁니다. 그럼 빌런이 침입하더라도 힘을 쓰지 못할 테니 그때까지만 부탁드릴게요.”

“나만 믿어. 그리고 말 편하게 해. 재하 동생이면 나한테도 동생이랑 다름없으니까.”

이미 긍정적인 감정만이 넘쳐 나는 도준은 흐뭇한 눈으로 재윤에게 호감을 드러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더니, 어찌 보면 도준도 형만큼 순수한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도준을 멀리하라고 해도 믿지 못한 형이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준이 보이는 여유는 가이딩 부족 현상을 겪지 않아 나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에스퍼란 힘을 사용함에 따라 본능만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재윤은 경험을 통해 기억했다.

“별로 당신하고 친해지고 싶은 건 아니에요.”

“고집은. 그래, 동생은 형 걱정하지 말고 힘내.”

재윤은 대답 대신 재하에게서 천천히 떨어졌다. 재윤이 어느 정도 떨어지자 도준은 곧장 방어 막을 사용했다. 도준은 재윤을 자극하지 않도록 재하와의 접촉도 최소한만 하려는지 손가락 몇 개만 살짝 얽었다.

아직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도준이라면 당분간 이용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재윤은 확신했다.

해일과 자신이 안에서 힘을 키우고 외부에 모습을 내보이며 입지를 키워 내는 동안 형의 안전을 확실하게 지킬 수단이 있다면 써먹어야 했다.

‘가이드 인식만 제대로 만들어지면 그땐 형을 숨겨서라도 떨어트려 놓을 테니까.’

재윤의 본심도 모른 채 도준은 잘 가라며 손까지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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