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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놈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영우를 데려간 게 경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가정만으로도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영우에 대한 걱정인지, 그를 데려간 이들을 향한 걱정인지 명확하지 않은 공포였다.
“재하 넌 도림이랑 먼저 올라가 있어.”
하얗게 질린 재하를 대신해 도준이 앞으로 나섰다.
“어? 하지만…….”
“힘드시더라도 사안이 시급해서 그러니 진술 부탁드립니다.”
경찰이 재하에게 말을 걸자 도준이 슬쩍 몸으로 막아섰다.
“저도 같이 목격했으니 제가 할게요.”
경찰의 시야가 가려진 사이, 지호는 재빨리 재하에게 다가와 집이 몇 층인지 물었다. 얼결에 호수를 답한 재하는 도림을 끌어안은 그대로 순식간에 집에 도착했다.
“어어?”
“괜찮아요, 선배?”
갑자기 바뀐 시야에 휘청이는 재하를 지호가 재빨리 끌어당겼다. 어리둥절하던 재하가 감탄하며 지호를 돌아봤다.
“너, 능력 진짜 장난 아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거야?”
“그건 잘 모르겠어요. 선배가 말해 준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제대로 왔나요?”
“어, 우리 집 맞아.”
익숙한 공간에 들어온 재하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신발을 벗었다. 그걸 본 지호도 아차 싶었는지 거실 한가운데에 선 채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다.
재하가 잠든 도림을 눕히기 위해 방으로 간 사이, 지호는 물티슈를 뽑아 바닥의 신발 자국을 닦아 냈다. 타인의 집에서 행동하는 게 익숙한 지호의 빠른 정리에 도림의 신발을 들고나온 재하가 감탄했다.
“역시 괜히 문어 다리가 아니네. 섬세해.”
“선배, 질투하시는 거 귀엽…….”
“고마움을 날려 버리고 싶은 거면 더 말해 보고.”
징그럽다는 듯 인상을 쓰던 재하는 식은땀을 흘리는 지호를 보며 의아해했다.
“너, 갑자기 상태가 왜 이러냐?”
“아, 제가 경찰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바람피운다고 경찰이 잡아가진 않을걸?”
“여친이 많다 보니 경찰 오빠를 둔 일도 있어서요.”
지은 죄가 없는 건 아니다 보니 지레 찔리는 경우인가 싶어 수긍하려다가도 지나치게 힘들어 보이는 지호의 모습이 왠지 수상했다.
“너, 진짜 괜찮냐?”
“음…… 제가 여친 앞에선 허세를 부리는데 동성 앞에선 딱히 그러지 않거든요. 하지만 선배는 아직 사귀기 전이기도 하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하는 표정의 재하에게 지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웃는 얼굴을 보였다.
“딱…… 죽을 거 같아요. 낯선 장소로 두 사람을 한꺼번에 옮기는 게 다른 때보다 훨씬 힘드네요.”
원인이 자신의 집으로 이동한 탓이라는 말에 재하는 뜨끔해져 소파를 가리켰다.
“좀 앉았다가 가. 그러다 쓰러지겠어.”
“그보다 선배.”
재하가 내민 손을 붙잡은 지호가 그대로 끌어안았다. 지호의 예상대로 재하를 끌어안자 중력을 배로 받은 양 무겁던 몸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다.
“아오, 자꾸 달라붙을래?”
“하아……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징그러워. 닭살 돋아. 소름 끼치려고 해.”
“에이, 그런 거 말고요.”
지호는 불쾌할 수 있는 표현에도 재하가 느끼는 감정이 틀렸다고 하지는 않았다. 재하는 허리를 끌어안으며 등에 달라붙는 지호의 행동에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거부감 외에 다른 게 있나 머리를 굴렸다.
오늘 겪은 일이 워낙 험해 지쳤다는 것 외에 딱히 느껴지는 감각은 없었다. 다만 끌어안은 지호가 무게를 실어 오는 것도 아닌데 상당히 피곤했다.
“피곤해.”
“전 선배랑 달라붙어 있으니 피로가 날아가는 것 같아요.”
“오늘 정말 고맙긴 한데, 그런 말은 여친들한테 가서 해 주라.”
한숨을 푹푹 쉬며 몸을 반대로 기울이는 재하의 행동에서 명백한 거부감을 느낀 지호는 아쉬워하면서도 손을 풀었다. 다만, 지호는 손을 풀면서도 신기해했다.
“선배.”
“왜.”
“저요, 선배가 정말 좋은가 봐요.”
“갑자기 또 왜.”
“D컵 누님한테 유혹당했을 때보다 더 손을 놓기가 힘들었거든요. 어느 정도냐면 선배를 강제로…….”
“스톱.”
재하의 한마디에 가볍기만 하던 지호의 입이 다물렸다. 재깍 말을 듣는 지호의 태도에 오히려 미안함을 느낀 재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제발 너한테 고마움을 느끼는 동안 돌아가 주라. 오늘은 진짜 피곤해서 감당이 안 되거든.”
지호가 무슨 소릴 하든 개소리로 치부하기엔 멘탈이 탈탈 털려 힘들었다.
한숨을 쉬며 멀찌감치 떨어져 서는 재하의 태도에 장난조차 통하지 않음을 알아챈 지호가 일어섰다. 이번에도 지호가 쉽게 물러서자 재하는 더욱 미안해졌다. 자신을 구해 준 이를 좀 달라붙었다고 무작정 밀어내기만 한 게 마음이 쓰였다.
“오늘 구해 줘서 고마워. 조만간 보답할게.”
“그럼 밥이나 한번 먹어요, 선배.”
“그래. 그 정도라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선배는 먼저 연락 안 할 거 같으니까.”
“알았다, 알았어.”
대화를 이어 가기도 지쳐 적당히 대꾸하고 손에 얼굴을 묻었다. 피로함에 잠시나마 눈을 쉴 생각이었던 재하는 이어질 지호의 반응을 기다렸으나 조용했다. 양심이 쿡쿡 찔린 재하가 피곤함을 털어 내고자 텐션을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냥 지금 밥 먹…… 어라?”
텅 빈 거실을 본 재하는 당황했으나 이내 지호가 공간 이동이 가능함을 떠올렸다. 머쓱해진 재하는 목덜미를 긁다 지나치게 고요한 거실에 괜스레 불안해졌다.
집에 도착하자 안도감이 들었던 것도 무색하게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오슬오슬 몸이 떨려 오기까지 해 재하는 크게 당황했다.
“뭐야, 왜 떨고 난린데.”
혼잣말하며 너스레를 떨어 보려 했지만, 그 목소리마저 벌벌 떨려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지호가 있었기에 언제든 도망칠 수 있어 안심했던 거라는 걸.
아까처럼 영우나 다른 초능력자가 나타나 위협한다면 재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깨닫자마자 불안감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도림을 데리고 어디로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딩동.
갑자기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재하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버티는 게 전부였다. 현관문과 도림을 눕혀 둔 방을 번갈아 보는 재하의 귀로 심장이 펄떡거리며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재하야, 나야.”
익숙한 도준의 다정한 목소리에 재하는 몸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쿵쾅거리며 뛰던 심장의 동요도 가라앉는 것 같아 재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현관으로 향했다. 여전히 떨림이 남은 다리가 서두르느라 휘청이는데도 빠르게 현관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익숙한 친우의 얼굴이 있었다. 다정함이 밴 선한 미소를 띤 도준의 얼굴에 재하는 안도했다. 그와 반대로 도준은 단번에 표정을 굳히며 심각해졌다.
“재하 너, 얼굴이 왜 이래?”
“와, 씨. 너 빨리 들어와.”
“응, 그럴게.”
도준이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근 재하는 그를 붙잡고 안으로 들어가다 다리가 꼬였다. 휘청이는 재하를 도준이 붙잡아 소파에 앉히자 그는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하아…….”
“괜찮아? 개호가 너한테 뭘 한 거야?”
도준이 견지호의 별명을 부르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 재하는 떠는 와중에도 웃음이 났다.
“집까지 한 방에 옮겨 주고 갔어. 진짜 편하더라.”
“그런데 안색이 왜 이래? 하얗게 질려서.”
도준의 손이 조심스럽게 재하의 이마며 뺨에 닿았다. 가볍게 식은땀까지 난 터라 피부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괜찮아.”
“괜찮기는. 손까지 떨고.”
“그야 폭탄이 터지고 사람이 날아가는 걸 눈앞에서 봤으니까. 넌 괜찮냐?”
재하는 최대한 노력했으나 떨리는 목소리를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그런 재하를 도준이 끌어안았다.
“야야, 징그러워. 떨어져.”
“너 안 떨면.”
“괜찮다니까, 자식이…….”
도준이 오기 전까지는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는 걸 차마 말할 수 없어 재하는 얌전히 있었다. 맞닿은 몸은 어색했지만, 등을 쓰다듬고 허리를 감싼 손이 주는 온기와 안정감은 상당했다.
“괜찮아, 재하야. 내가 지킬 수 있어.”
다정한 도준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듬직했다.
폭발에서 끄떡없던 도준의 방어 막은 재하에게 완전한 신뢰를 주었다. 도망칠 수 없어도 안전할 수 있다는 확신에 재하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언제 불안했냐는 양 편안해진 재하는 슬쩍 도준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자 도준 쪽에서 어깨에 얼굴을 묻어 오며 더욱 깊게 끌어당겨 안았다. 마치 조금 전의 지호처럼 온몸을 밀착시켜 오는 도준의 행동에 재하가 질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야, 야. 이제 하나도 안 떨리니까 떨어져.”
재하의 거부에도 도준은 맞닿은 곳에서부터 가벼워지는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도준은 경찰을 혼자 상대하는 동안 재하와 도림이 있을 공간에 넓게 방어 막을 쳐 두었다. 거리가 제법 떨어진 장소에 방어 막을 만드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자신의 주변 공기가 묵직하게 변하는 감각이 불쾌했다. 가볍게 두통마저 일었다. 재하를 안고 있을 때는 힘을 쓰는 동안 아무런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내일 경찰서로 증언하러 가겠노라 경찰과 약속을 한 후 재하의 집으로 향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방어 막을 사용하는 데 힘이 덜 드는 게 느껴졌다. 빠르게 무거워지던 공기가 조금 느리게 무게를 더했다.
그리고 재하를 만나 휘청이는 그를 붙잡는 순간부터 힘을 쓰는 게 아무렇지 않아졌다. 거기에 묵직하게 주변을 눌러 오던 공기조차 가벼워졌다. 작은 변화였지만, 전부와도 같았다. 힘을 사용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재하와 닿는 순간 해소되기 시작했다.
“야, 주도준. 징그럽다고.”
정색하는 재하의 태도에 떨어져야 함을 알면서도 아직 묵직하게 몸을 눌러 오는 공기와 은은하게 남아 있는 두통 탓에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재하야…….”
도준은 재하를 잘 알았다.
부러 목소리를 억눌러 겁먹은 티를 냈다. 항상 도림의 앞에서 상냥하고 온화하며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였던 도준이 여간해선 보인 적 없는 태도였다.
예상대로 도준을 밀어내던 재하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