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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30화 (3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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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가 파괴자로 변하지 않게 하려면 이 시기에 건들지 마라.

몇 년째 주도준을 봐 왔던 고등급 에스퍼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에스퍼를 통솔하는 센터장은 평소 성실한 주도준의 유일한 일탈을 눈감아 주었다. 그의 기록에 있는 유일한 오점이자 주의 사항인 동생 주도림의 기일이 가까워진 때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아…….”

단단한 외벽으로 둘러싼 공간에 틀어박힌 주도준은 짓눌리는 고통 속에 몇 날 며칠을 홀로 보냈다. 누구도 그를 찾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서재하만이 주도준의 주변을 맴돌았다.

사설 센터에서 상품과 다름없는 서재하의 외출을 허용해 줄 리 없었기에 감시인인 가드의 재촉에 되돌아가고는 했다. 서재하가 안절부절못한다면 주도준에게는 즐거운 일이었으나 이때만큼은 저열한 희열조차 느껴지지 않고 끝없이 가라앉기만 했다.

1년 내내 주도준은 단 하루도 동생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고사리손으로 통통 두드리던 피아노 소리가 선명했다. 매번 같은 곳을 틀리게 치던 소리는 주도준에게서 허밍으로 흘러나왔다. 에스퍼 숙소에서 지내느라 자주 돌아가지 않더라도 동생의 방은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작은 옷장을 가득 채운 분홍 드레스나 반짝이는 장신구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생생했다.

예쁜 디저트를 봐도, 작은 키의 여자아이가 지나가는 걸 봐도, 봄바람이 살랑여도 동생이 떠올랐다. 어딘가에서 아이의 목소리로 오빠를 부를 때면 분명 동생이 아님에도 주도준의 심장은 몇 번이고 무너져 내렸다.

기일이 다가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간 함부로 대해 온 서재하를 밀어내고 틀어박혔다. 홀로 어둠 속에 숨어들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반복됐다.

아웃렛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하다못해 서재하와 함께 가지 말았어야 했다.

동생의 옷은 제 손으로 골라도 충분했다.

주변의 상황을 신경 써야 했다.

위태롭게 쌓인 구조물을 눈여겨봐야 했다.

트럭의 기울임을 의심해야 했다.

허공에 생겨난 일렁임을 경계해야 했다.

너무도 맑았던 새파란 하늘과 몽글몽글 흰 구름이 그림 같았던 대격변의 날.

주도준은 동생 주도림의 새 옷을 사기 위해 친구 서재하와 아웃렛으로 향했다. 북적이는 인파와 다양한 볼거리들이 마치 축제에라도 온 것처럼 사람을 들뜨게 했다. 서재하와 주도준의 가운데에서 양손을 잡은 주도림의 즐거움도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던 중 먼저 허공의 일렁임을 본 주도준은 불길함을 느끼고 멈췄다.

[저게 뭐지? 재하 너도 보여?]

[뭔데? 아, 풍선? 도림이 하나 가져다주면 좋겠네.]

서재하는 주도준이 말한 것과 조금 다른 방향에 있는 풍선 판매대를 보고 달려갔다. 서재하의 측면으로 일렁임이 커지는 걸 본 주도준의 심장이 욱신거렸다.

그때, 동생의 손을 놓아서는 안 됐다. 서재하가 어딜 향하든 쳐다보지 말았어야 했다.

풍선을 가지고 돌아오는 서재하의 뒤로 일렁임이 심해지는 걸 보았더라도 무시했어야 했다.

[도준이 너, 표정이 왜 그래? 멀미한 거 아냐? 약 사다 줘?]

허공의 일렁임이 순식간에 붉은 구체를 만들어 내고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목격했더라도 자신이 지켜야 할 건 동생 주도림이어야 했다.

펑!

[뭐, 뭐야?]

설령 공기가 폭발하며 위태롭던 구조물이 쏟아져 내리더라도 주도준은 동생의 손을 잡았어야 했다.

[야, 도준…… 윽!]

쿠당탕.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도준은 알 수 없는 위협을 인지하자마자 온 힘을 다해 서재하를 지켜 냈다. 인파 속에서 혹여나 동생을 놓칠까 꼭 잡고 있던 작은 손을 언제 놓았는지 기억에 없었다.

[뭐야, 너. 설마 폭죽에 놀란 거냐?]

피식 웃는 서재하의 반응에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주도준은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이 서재하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귀신도 안 무서워하면서 이런 거에 쫄기는. 비켜, 인마.]

태연하기만 한 서재하의 반응에도 주도준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곱씹느라 혼란스러웠다.

서재하가 위험해지려는 순간, 주도준은 그 무엇보다도 그의 안위를 우선시했다. 한쪽 팔로 그를 밀어도 됐을 텐데 굳이 달려가 서재하를 품으로 끌어안아 보호했다. 그 탓에 갑자기 손을 놓친 동생은 엉덩방아를 찧고 깜짝 놀란 얼굴로 주도준과 눈이 마주쳤다. 주도준은 다시 동생에게로 향하려 했다.

[가서 도림이…… 으윽.]

품에 안은 서재하가 어딘가를 다친 건지 앓는 소리를 내는 순간, 주도준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켜야 한다. 다치게 해선 안 돼.

그 생각이 주도준의 팔과 다리를 묶어 버린 듯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것은 단 몇 초였다.

쾅. 콰쾅.

[으악!]

[뭐, 뭐야?]

[꺄악! 여, 여기 아이가 깔렸어요!]

고작 몇 초의 시간.

장식용 구조물 몇 개가 흔들렸고, 그중 하나가 결코 닿아서는 안 될 곳으로 추락했다.

고작 그것만으로 주도준의 눈앞에서 그가 누구보다 지켜 내야 했던 존재가 순식간에 생명의 빛을 잃어버렸다.

[아악!]

현실을 인지하기 위해 몇 초의 시간이 흐른 후 비명을 지른 건 서재하였다. 보호하듯 끌어안은 주도준의 품에서 발작하듯 빠져나간 서재하가 비명을 지르며 기어 나갔다.

[아, 안 돼, 안 돼! 도림아!]

명백한 주도준의 실수였다.

어째서 자신이 서재하를 더 우선시하고 지켰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동생의 손을 놓았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커다란 눈이 마지막이었다.

아무 반응도 못 한 채 굳어 있는 주도준의 심장이 뜯겨 나갈 것같이 격하게 펄떡였다.

[어떡해, 도림이. 도림이가. 어떡해. 도림아. 도림…….]

주도림의 죽음 앞에 서재하는 이성을 잃고 아이의 훼손된 몸을 끌어안았다. 같은 말만 반복하며 눈물을 쏟아 내는 서재하를 본 주도준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폭음이 들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멀어지는데도 주도준의 눈과 귀는 서재하와 동생에게만 열려 있었다.

이상했던 건 피를 그렇게 흘려 내는데도 주도림의 안색이 뽀얗고 발그스름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죽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나 피를 흘렸는데 어째서.

역시 이건 현실이 아닌 걸까.

침묵하는 자신 대신 미친 사람처럼 오열하는 서재하의 울음소리를 듣는 게 괴로웠다. 어째서 갑자기 모든 감각이 서재하에게 향하는지 주도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콩콩.

작게 두드리는 소리에 주도준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소리가 난 건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마임이라도 하듯 허공에 손을 올린 정장 차림의 나이 든 남자와 무장을 한 사람들이 5미터 바깥에서 둘러싸고 있었다. 장년의 남자가 호의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주도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딱히 반응하지 않자 남자의 손이 다시 허공을 두드렸다.

콩콩.

그의 손이 허공을 칠 때마다 단단한 막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주도준 군, 주변에 벽이 쳐져 있습니다. 힘을 사용하는 걸 멈출 수 있나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 오던 남자의 웃음 속에 걱정이 깃들었다.

[각성하자마자 힘을 남용하면 좋지 않아요. 영영 힘을 못 쓰게 될 수 있으니 아껴야지요.]

그제야 주도준은 자신이 이 주변을 막아 낸 무언가를 만들어 냈음을 알아챘다.

지켜야 한다. 그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 보이지 않는 막이었다.

지키려 만든 힘이 늦었다. 동생이 저렇게 피를 흘리고 있는데 보호막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거워지는 공기가 주도준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힘을 멈춰 주세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에 주도준은 숨을 삼켰다. 그 순간 소음이 쏟아져 내렸다. 막으로 막혀 있던 주변이 개방됨을 느꼈다.

사람들이 달려와 숨넘어가게 울고 있는 서재하의 품에서 동생을 데려갔다. 서재하의 손이 완전히 동생에게서 떨어지는 순간, 발그레하던 도림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새파랗게 변했다. 마치 마지막 생명 자락을 그가 지켜 준 것처럼.

그 사실을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림…… 도림아.]

몇 분 사이 쉬어 버릴 정도로 울어 댄 서재하가 비틀거리며 동생을 안은 사람을 쫓아가려 했다. 발밑도 보지 못하고 부서진 파편에 걸려 넘어지려는 걸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붙잡았다.

팔과 허리를 잡아 품으로 끌어당기자 닿은 곳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라기엔 질감이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주도준의 주변에 묵직하게 가라앉던 공기가 서재하와 닿은 곳에서부터 가벼워졌다.

[도림이 어떡해…….]

서재하는 주도준의 품에 안긴 채 계속해서 주도림을 찾았다.

슬픔에 빠진 서재하의 울음에도 주도준은 계속해서 무거워진 공기를 밀어내는 감각에 취해 있었다. 서재하의 몸이 흔들리며 유달리 힘이 없고 지친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날카로워진 신경을 감싸 주며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만드는 감각이 기꺼워 서재하를 안은 주도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미안해. 내가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내가 괜히 풍선 가지러 가서.]

서재하의 잘못은 없었다. 곁에 있었던 건 주도준이었다. 동생의 손을 뿌리치고 서재하를 향해 내달린 건 주도준이었다.

서재하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멀어지는 내내 자신의 잘못을 몇 번이고 사과했다.

[도림이가 솜사탕 먹고 싶다고 했는데. 그거 사 줄걸. 그랬으면 여기서 안 다쳤을 텐데.]

주도준의 시선이 입구 쪽의 솜사탕 기계로 향했다. 그쪽도 구조물이 무너져 내려 반파가 돼 있었다.

서재하의 주장은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도준은 제 품에 안긴 서재하가 주는 안정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 수긍했다.

[그러게.]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서재하가 무너지고 주도준이 그를 가지는 일은 그렇게나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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