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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25화 (2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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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반인 보호 중입니다. 에스퍼 가드 소속도 아니니 그 지침과 관계없습니다.”

군기가 바싹 든 신참 가드의 FM적 태도에 김병태는 기가 막혔다. 낯선 얼굴이다 했더니, 에스퍼 가드 팀도 아닌 게 대거리를 걸어왔다.

“허. 누가 가드로 일반인을 붙였냐? 말로 할 때 저쪽으로 빠져라.”

파리 치우듯 손짓하는 김병태의 태도에도 신참은 물러서지 않았다.

“좀 비켜 주시죠. 저러다 문제라도 생기면 책임지실 겁니까?”

“문제는 무슨. 능력도 없는 게 어디서 설치려고. 막내 취급해 줄 때 알아서 찌그러져 있어.”

“막내 아닙니다. 이천오입니다.”

“이천 원이고 뭐고, 가라. 일반인이면 곧 뒈질 놈, 안 궁금하니 나대지 좀 말라고.”

김병태가 손을 뻗어 툭 치자 단단하게 서 있던 이천오의 몸이 휘청였다.

F급이라도 일반인과 각성자의 차이가 분명했다. 겉으로 보기엔 비등비등해 보였던 이천오가 휘청이자 저열한 기쁨에 김병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얀마, 너희도 눈이 달렸으면 알겠지?”

김병태의 턱짓에 모든 가드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들의 시선은 피범벅이 돼서 투명막을 이리저리 문지르는 영우에게 꽂혔다.

“이영우 에스퍼. 균열 크기를 보아 추정 등급 최소 B 이상. 게다가 막 각성한 직후인데도 균열을 없앴다. 아마 제대로 측정하면 A는 가뿐할걸.”

고작 쫓아다닌 게 전부일 뿐인데도 김병태의 자부심이 드러났다. 그 에스퍼 손에 일반인이 희생당한 것엔 관심도 없었다. 수습조차 하지 않고 곧장 영우의 뒤만 쫓아 여기까지 왔다.

“주도준 에스퍼도 굉장해. 방어 막을 저렇게나 펼쳤잖아.”

“그래 봤자 방패지. 우리 손에 방패가 있어 봐. 저 정도는 다 막아.”

김병태의 말에 몇몇 가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에 더욱 기가 산 김병태의 말이 길어졌다.

“우리 쪽 에스퍼가 균열을 없앤 거라고.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지. 그게 뭘 뜻하는지 알지?”

“네, 팀장님. 이영우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다소 희생이 있더라도 A급 에스퍼의 탄생을 막아서는 안 되지.”

같이 움직이던 가드의 답에 만족한 김병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누가 희생되든 상관없다는 그들의 태도에 밀쳐졌던 이천오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이천오는 재윤의 요구로 재하에게 붙여진 개인 가드였다. 김병태의 비틀린 우월감 따위에 동조하거나 불이익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개입해야 할 때입니다. 보내만 주십시오. 전 제 보호 대상을 빼 오기만 하면 됩니다.”

“쯧, 에스퍼끼리 힘 쓰는데 어디 감히 일반인 새끼가 끼어들어? 초 치면 뒤진다, 진짜.”

저열한 비웃음이 낀 김병태의 비꼬는 말투에서 에스퍼 우월주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 제 임무를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 새끼가 처맞아야 정신 차리지.”

어차피 김병태의 주장대로라면 일반인 이천오가 끼어들어 봤자 에스퍼들에게 비빌 수준이 못 됐다.

김병태가 이렇게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새로운 에스퍼의 존재가 가드들에게 희망이 돼 버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영우를 지켜봐 온 이들은 오늘 하루 그의 폭력적인 힘에 자신들이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들떴다. 어쩌면 특별한 능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예비 각성자를 향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시는 겁니까? 이게 무슨 가드입니까?”

“어휴, 천오 군은 좀 진정해야 하겠어. 이리 좀 와서 열 좀 식히지.”

“잠시만, 윽!”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 이천오를 완력으로 찍어 누른 주도준 측 가드로 인해 김병태의 험악한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눈치 빠른 다른 가드가 팀장인 그를 달랬다.

“팀장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영우 에스퍼에게 집중하셔야죠.”

“그렇지. 언제 또 힘을 쓸지 모르니 잘 봐 둬야지.”

가드들끼리의 알량한 다툼은 그렇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렇다 해서 딱히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길 건너에 숨어 영우와 도준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의 견제나 감시는 세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흐음.”

도준의 방어 막에 폭탄을 터트릴 것처럼 굴던 영우는 몇 번이고 주변을 둘러본 후에야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틈이 더는 없나 봐.”

영우의 혼잣말은 막에 가려지기는 했어도 충분히 들렸기에 재하는 조금 안심했다.

“농담한 거야. 폭탄 같은 걸 후배들한테 쓸 리가 없잖니.”

사르르 웃는 영우에게 재하가 반응하려 하자 등을 받치고 있던 도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작은 힘이었으나 긴장하고 있던 재하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재하와 도준을 눈만 움직여 확인한 영우가 양손을 펼쳐 방어 막 위에 얹었다.

“얘들아, 내 손 좀 봐.”

처음에는 깨끗했지만, 팔에 묻은 피가 흘러내린 탓에 붉은 손도장을 만들었다.

“잘 보렴. 폭탄 같은 건 없잖니.”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상냥한 말투와 웃음은 오히려 두려움만 불러왔다.

“재하야?”

“네, 넵?”

“재하 넌 대답하지 마.”

도준의 개입에 영우의 웃음이 지워졌다. 재하를 끌어안고 선 도준은 지속해서 방어 막을 사용함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흐음.”

영우는 균열 속을 들여다보고 핵을 꺼내 쥐는 별거 아닌 행동을 하면서도 몸의 기운이 쑥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여러 번 사용하니 역시나 매번 같은 느낌을 받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꽤 지친 상태였다.

재하를 안고 있는 도준 역시 방어 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상황이라 추측해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영우의 손에 닿는 방어 막은 여전히 단단했다.

“너, 이거 진짜 치워 줄 생각 없니?”

“네.”

“넌 뭘까? 재하는 대답하지 말라며 넌 잘도 하네? 재하야, 쟤 이상해.”

“되지도 않는 트집에 재하 끼워 넣지 마세요.”

“그러고 보니 너 낯익어. 재하랑 자주 붙어 다니지 않았니?”

“친한 척 말 걸지 마시죠. 제가 대답하는 건 재하가 자꾸 그쪽한테 반응해서 어쩔 수 없이 상대하는 것뿐이니까.”

필터 없는 도준의 말에 재하는 민망해져 고개를 숙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재하는 영우와의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스로가 말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어설픈 시도는 도준의 보호에 가로막혔다.

“와, 내가 선배인데 그렇게 막 대해도 되니?”

“상식적인 척하지 마세요. 재하는 애가 착해서 고민할지 몰라도 저한텐 안 먹혀요.”

두 사람의 대화 속 중심인 재하는 정작 도준의 팔이 주는 압박감에 눈만 굴려야 했다.

재하를 바싹 안은 도준의 손을 빤히 쳐다보던 영우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까칠해라. 착한 애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아, 설마 너도 가면을 써 왔니? 그런 거라면 약간 동질감 느낄지도.”

“영우 선배?”

그간의 착한 선배 모습이 가면이었다는 영우의 고백에 놀라는 재하와 달리 도준의 얼굴은 불쾌감으로 일그러졌다.

“짜증 나네…….”

“도, 도준아?”

갑작스러운 도준의 거친 모습에 재하의 동공이 흔들렸다. 재하가 놀라는 모습에 영우는 기회를 잡고 편승했다.

“무서워라. 이게 본모습이구나. 선배가 후배에게 친근감 느끼면 좋은 거 아니니?”

“선배 취급해 줄 생각 없으니 꺼져.”

“야, 주도준.”

도준의 거친 모습을 본 적 없는 재하는 당황했다. 안 그래도 영우의 돌변에 두려움이 컸던 재하는 도준마저 변하는 게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재하의 불안을 읽은 도준은 영우에게 보이던 딱딱한 표정에 옅은 미소를 얹었다.

“재하, 넌 마음이 너무 약해. 지금은 나한테 맡겨.”

여유롭기까지 한 도준의 모습을 보고도 재하는 여전히 놀란 얼굴이었다. 재하가 보기에는 도준이야말로 툭하면 양보하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호구였다. 법 없이도 살아갈 만큼 선한 친구가 누구를 걱정하는 건가 싶었다.

정작 아까부터 재하를 향한 보호 본능이 강해진 도준은 망설임 없이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재하의 얼굴조차 영우에게 보이지 않게 하려는 행동이었다.

“뭐, 뭐 하는 건데?”

“볼 필요도 없고, 보여 주지도 마.”

“아오, 뭔 소리냐고.”

막상 도준에게 얼굴까지 끌어안긴 재하는 민망해 밀어내려 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제 오빠의 품에서 곤히 잠든 도림의 얼굴을 보자 재하의 복잡했던 머리가 차분해졌다.

머리를 끌어안은 도준의 손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자 흔들림 없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머리를 놓아주었을 뿐 다시 허리로 내려가 끌어안은 도준의 손은 절대 놓치지 않을 것처럼 단단했다. 다른 때면 징그러웠겠지만, 멘탈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꽤 든든했다. 덕분에 재하는 최대한 평소처럼 영우를 부를 수 있었다.

“영우 선배.”

“응, 재하야.”

재하의 부름에 영우는 투명한 방어 막 위로 양손을 올리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사람들이 도망친 이후 주변은 더없이 조용했다. 멀리서 들려오던 사이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자 날아간 영우의 상식이 돌아왔는지 다소 초조한 표정이 드러나던 차였다.

조금만 버티면 영우가 도망치든 경찰이 오든 할 것 같아 재하는 그의 주의를 돌리려 말을 걸었다.

“선배가 저한테 보이는 친근감은 감사해요.”

재하의 말에 그를 붙잡은 도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재하는 지금까지와 달리 떨림이 잦아든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지금의 선배가 무서운 것도 사실이에요. 선배는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 실제로 지금 보이는 상황만 봐도 웬만한 공포 영화보다 무섭거든요.”

“어째서? 다 설명했잖니.”

하얗고 선한 이미지의 영우가 갸우뚱거리며 바스스 웃었다. 그의 손까지 흘러 내려온 핏물이 아니었다면 속아 주고 싶을 만큼 유순한 얼굴이었다.

‘왜 코믹 일상물이던 내 일상이 하드코어 고어물로 바뀌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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