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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24화 (2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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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힘겨운 부탁을 한 서재하는 얼굴이 가려질 만큼 머리카락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아직이야. 조금 더 확인해야 해.』

『너무…… 힘들어요.』

서재하는 헐벗은 몸으로 침대에 축 늘어진 채 힘겹게 입술만 달싹여 부탁할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와 반대로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이영우는 미소까지 머금은 채 상냥한 말투로 가볍게 거절했다.

『조금 더 실험해 볼게. 어차피 가이딩은 해야 하잖니.』

『제발…….』

『자꾸 게으름 피우면 다른 에스퍼를 부를 거야. 한 번에 둘을 가이딩 할 때의 효율이 궁금했으니까.』

『시…… 싫…….』

『그건 내가 허락 안 할 건데.』

화면 바깥에서 나타난 손이 서재하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정작 손이 닿은 서재하의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아직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대의 목소리는 서재윤에게도 익숙했다. 서재하를 찾아갈 때마다 형의 부재를 알리던 주도준의 목소리였다.

덜덜 떠는 서재하를 느긋한 손길로 쓰다듬는 주도준을 향해 이영우의 한숨 섞인 불만이 이어졌다.

『협조하는 김에 제대로 좀 하지?』

『하고 있잖아. 종일 가이딩 하는 걸 보여 줬으면 됐지.』

『흐음, 가이드 하나가 에스퍼 둘을 가이딩 하면 어떤 식으로 에너지가 이동하는지 투시로 확인하고 싶은데.』

『그런 건 다른 가이드로 해.』

주도준은 서재하를 다른 에스퍼와 공유하면서도 이런 경우는 또 구분 지었다. 다양한 상황에서의 가이딩 효율을 파악하고 싶었던 이영우는 한발 물러섰다.

『그럼 이번엔 강도를 좀 높여 줄래? 접촉 빈도와 깊이에 따라 가이딩 효율이 어떻게 바뀌는지 볼 수 있게.』

『그 정도라면야.』

『그, 그만…….』

주도준이 순순히 몸을 일으키자 서재하가 고개를 느릿하게 흔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식은땀이 뚝뚝 흐를 만큼 힘겨워 보이는데도 이영우는 태연하게 재하의 목을 쥐며 웃어 보였다.

『참, 저번처럼 비명 지르면 성대를 다치게 될 거야.』

이영우의 경고에 서재하의 지친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윽…….』

축 늘어져 스스로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이던 재하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부들거리는 팔로 침대 시트를 끌어 스스로 입을 막듯 쑤셔 넣었다.

영상으로 보는데도 서재윤은 이가 갈릴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그와 달리 조금도 감정의 동요가 없는 이영우는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심장에서부터 흐름이 시작되니 사실상 이 부위에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편이 더 효율이 좋을 텐데.』

『아, 진짜. 매드 사이언티스트냐고. 그런 건 진짜 과학자들에게 맡겨.』

『과학자보다 내가 눈으로 보는 게 더 나아.』

『하긴. 들었지, 재하야. 이영우 에스퍼가 국가를 위해 노력하잖아. 너도 협조해야지. 허리 들고 잘 보이게 해 봐.』

『윽…….』

이영우의 실험에 협력한다는 핑계로 주도준은 타인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는 서재하를 농락했다. 실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이영우의 앞에서 밀접 가이딩을 하는 내내 서재하는 치욕스러워했다. 지금도 이영우의 요구에 주도준이 달라붙자 침대에 얼굴을 묻으며 시선을 피했다.

서재하를 괴롭히며 즐거워하던 주도준은 선을 넘는 이영우에게 핀잔을 주었다. 에스퍼에게 있어 중요한 실험 중인 이영우는 주도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넌 궁금하지 않니? 고작 손을 잡는 걸로 불순한 에너지를 정제할 수 있어. 직접적인 관계 시의 효율은 말할 것도 없지. 가이딩의 근원인 심장을 건드리면 더 좋지 않을까?』

『아니. 심장만으로 뭐 하게. 지금도 충분히 즐기고 있는데.』

비명을 참는 서재하의 입술을 손으로 쓸어 만지며 입맛을 다시는 주도준에게 이영우는 경고했다.

『천박한 말은 삼갔으면 하는데. 실험에 협력해 주는 후배가 다 듣고 있잖니.』

『후배 정신 상태 따지기보다 그 눈이나 좀 치우지 그래? 그쪽 그러는 거 진짜 변태 같거든.』

주도준이 질색하면서도 태연히 관계를 이어 가는 내내 서재하는 비명을 삼키느라 필사적이었다. 종일 이어진 가이딩에 속이 진탕으로 뒤집히는 감각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기는커녕 끔찍하기만 했다.

『너, 너무 힘들어…… 정말 못…… 하겠어요.』

『그러니? 실험이 빨리 끝나야 동생한테 갈 수 있을 텐데.』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흠뻑 젖은 얼굴로 애원하던 서재하의 낯빛이 바뀌었다. 의지가 흐려진 젖은 눈이 선명해지며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서재윤 에스퍼가 너랑은 이제 가이딩 안 한다고 했다며. 하지만 가이드는 부족하고. 강제로 가이딩 하더라도 널 보내 줄까 했지.』

정작 영상을 보고 있는 서재윤은 모르는 이야기였다. 서재하와 가이딩을 안 한다? 한 적도 없는데 거부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기회가 있다면 서재윤 쪽에서는 당연히 서재하의 가이딩을 받고 싶었다. 고통에 잠식돼 의식이 날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모를 가이딩보다 평소 신체 접촉만으로도 관리할 수 있는 일상 가이딩을 바랐다. 그래서 더욱 서재하의 외면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사실 가이딩은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서재하와 함께했던 일상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재윤……이.』

『그래. 서재윤 에스퍼 생각해서라도 협조해야지. 또 저번처럼 동생 팔다리 썩기 직전에 가이딩 하러 갈 거 아니면.』

『아, 재하 동생 가이딩 하러 갈 거면 내가 데려다줄게. 걔랑 할 때 재하 우는 얼굴이 진짜 볼만하거든.』

그들의 대화에 서재윤은 뇌가 정지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A등급을 받기 전까지 서재윤은 몇 달에 한 번, 의식이 없는 상태로 가이딩을 받았다. 가이딩 과정은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마다 몸이 씻기고 새 옷을 입은 채 가벼워진 몸으로 눈을 떴다. 서재윤은 항상 최악의 상태에서만 가이딩을 받아 왔기에 가장 깊은 접촉을 했으리라 짐작만 했다.

그걸 서재하와 해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고등급 에스퍼만 만나고 자신을 외면했던 서재하가 아니었던가.

『아, 그러고 보니 재하 동생 슬슬 폭주할 때 되지 않았나?』

『폭주…… 안 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금방 에너지가 쌓인다니까.』

주도준이 서재윤을 언급하자 흐릿하던 서재하의 눈빛이 돌아왔다.

『재하야, 동생 보러 갈래? 내가 힘 좀 써 줘?』

『으응. 도준이 네가…… 힘 좀 써 줘.』

『오, 눈빛 돌아온 거 봐. 그렇게 동생이랑 하고 싶어?』

명백히 비꼬는 주도준의 말에도 서재하는 구명줄이라도 되는 양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주도준은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제대로 말해야 알지. 시간도 없는데 그냥 나갈까?』

『하, 하고 싶……어.』

『얼마나 하고 싶은데? 또 누굴 먹어 치우려고?』

입만 달싹이며 말을 내뱉지 못하는 서재하의 모습에 주도준은 딴청을 피웠다. 서재하의 간절함을 빈정거리며 놀리는 주도준의 반응에도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매달렸다.

『도, 도준아. 제발. 재윤이한테 데려가 줘.』

『얼마나 간절한데?』

『많이. 정말…… 정말 많이 간절해.』

『그럼 성의를 보여 봐.』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주도준의 눈빛이 끔찍했다. 체념을 배운 서재하는 거리낌 없이 주도준을 향해 움직였다.

질척이는 소리에 이어 이 상황이 불쾌하다는 듯 이영우가 핀잔을 주자 주도준의 파렴치한 재촉이 뒤섞였다.

영상을 보던 서재윤은 자신을 이용해 형을 협박하는 주도준과 이영우를 찢어 죽이고 싶은 분노에 휩싸이는 한편, 형과 밀접 접촉 가이딩을 한 사실에 충격으로 혼란스러웠다. 이 영상이 언제 찍힌 건지는 몰라도 서재윤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형과 자신의 가이딩은 속임수 아래 이루어진 일이었다. 아무리 형제가 아니게 되었다고 해도 가이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한때는 형이었던 이를 동생의 가이드로 보낸단 말인가.

주도준이 하는 행동만 봐도 S급 에스퍼인 그의 입김이 적용된 게 분명했다. 영상만 봐서는 그저 재미로 저러는 것 같았으나 자신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진실이었다.

‘형,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형이. 왜.’

진실을 알기 전, 고등급이 되어도 만날 수 없는 서재하로 인해 서재윤은 목표를 잃었다. 반쯤 자포자기한 서재윤의 행보는 거칠기 짝이 없었다. 협회 측에서도 서재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던 차였다.

‘그게 전부 오해에서 비롯된 거라고?’

형이 자신에게 오는 걸 저들이 막고 있었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억울함, 분노, 미안함, 안타까움, 온갖 감정이 뒤섞여 서재윤은 눈앞이 흐려졌다. 그의 귀로 상냥한 사디스트의 목소리가 영상을 통해 들려왔다.

『재하 네가 이렇게나 열심히 애쓰고 있다고 보고한다면 서재윤 에스퍼의 처분도 늦어질 거야.』

『그래, 재하야. 네 동생 가이딩 횟수도 늘릴 수 있을 거고.』

서재하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원하는 답을 얻자 이영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재하에게서 천천히 손을 떼어 냈다.

『흐윽……!』

『그럼 이번엔 동시에 해 볼게. 16번 영상…….』

동영상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그날 서재윤은 이영우의 자택을 찾아갔으나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을 뒤져 찾아낸 건 수많은 파일과 자료들뿐이었다.

대부분이 손상되었으나 그중 몇몇 파일에서 서재하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점차 강도를 더해 가는 실험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추잡하고 잔인해졌다. 이 모든 걸 견뎌 내며 빛을 잃어 가는 서재하의 눈을 본 서재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9. 균열 폭탄 2

주도준과 이영우.

이제 막 각성한 에스퍼들이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을 은밀히 따라붙던 보호자 겸 감시자인 가드들 역시 서로 대치 중이었다.

“미친. 폭탄이라도 터트렸나?”

“와우, 화력 보소.”

“주도준 쪽을 보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에이, 방어 막 쓰는 거 같은데 괜찮겠지.”

온도 차가 나는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권해일이 급조한 ‘예비 각성자 전담 팀’이었다. 그동안은 통상적인 감시였다면 이들은 나름 전문적인 인원이었다.

재윤에게 고등급 에스퍼가 몇 달 내로 각성할 거라는 정보를 듣자마자 곧바로 F급 에스퍼를 모았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일반인보다 튼튼하거나 힘이 센 장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에스퍼였기에 마나의 흐름과 균열을 볼 수 있었다. 언제 각성할지 모르는 에스퍼를 지켜보기에 적절했다.

그중 가장 덩치가 좋고 힘이 센 남자에게 팀장 자리를 주었다. 그에게 재윤이 가장 경계했던 영우의 가드를 명령했다. 그 결과 일부에게 특권 의식이 생겨 버렸다.

“보호하긴 누굴 보호해? 우린 지켜보면 돼.”

가드가 하는 일은 미각성 에스퍼를 지켜보는 일이 전부였다. 이름만 그럴싸한 전담 팀 감투에도 팀장이 된 남자는 기고만장했다.

“다들 이영우한테서 눈 떼지 마.”

“팀장님, 그래도 일반인이 끼어 있는 거 같은데요.”

“이미 몇 명이나 죽어 나갔는데 일반인 하나가 대수냐?”

팀장은 마치 본인이 이영우라도 되는 양 으스댔다. 지난 일주일간 지켜봐 온 영우는 인기 많은 대학생일 뿐이었다. 평범하기만 했던 일반인이 각성하자마자 균열을 없애고 폭탄처럼 사용했다. 현장을 목격한 이후 그는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차올랐다.

“김 팀장, 그래도…….”

“어허, 다들 물러나.”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팀장은 그의 커다란 덩치로 가드들의 앞을 막아섰다. 덩치로 막아 버리자 다들 그 너머로 시선을 준 채 한마디씩 보탰다.

“김병태, 저거 위험한 거 같은데.”

“맞아요, 팀장님.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위에서 엄청 까일 텐데요.”

“문제없다니까. 에스퍼끼리 충돌하는데 뭘 끼어들어? 우리 고작 F급이다, 새끼들아.”

팀장, 김병태는 과하게 으스댈지언정 위험 앞에 꼬리를 마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가 작정하고 길을 막자 다들 적당히 거리를 두었으나 한 명의 가드가 앞으로 나섰다.

“저게 어떻게 문제가 안 생긴 겁니까?”

훤칠한 키에 까까머리. 누가 봐도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었다. 다른 때라면 손부터 나갔을 김병태가 대답이라도 해 준 이유였다.

“얀마, 에스퍼 신변에 문제 생긴 거 아니면 접촉하지 말란 지침도 까먹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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