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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23화 (2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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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준이 품에 안은 덕에 도림이 아무것도 보지 못해 다행이었다.

사람이 터지는 현장을 목격한 재하와 도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등을 보이고 있던 영우가 이쪽으로 돌아섰을 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피투성이인 손을 내리자 말끔한 얼굴이 드러났다. 재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익숙한 단아한 웃음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섬뜩한 건 그의 옷에 묻은 피와 살점들 때문이었다.

사람이 코앞에서 터졌는데도 영우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현실이 맞나 의심스러운 상황에 영우가 다가온 만큼 재하는 뒤로 물러서려 했다.

퉁.

“어? 이거 뭐니?”

다가오던 영우가 허공에 부딪치며 멈추어 섰다. 반 발자국 물러선 그의 앞에 투명한 벽이라도 있는 듯 피와 살점이 옮겨 붙어 흘러내렸다.

그걸 빤히 바라보던 영우가 조금 전 균열에 손을 집어넣을 때처럼 천천히 팔을 내밀었다. 피 묻은 손등과 달리 손바닥은 하얗고 깨끗했다. 그 손이 투명한 막에 닿더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영우의 고개가 기울어지며 그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퉁. 퉁.

“이상하네? 왜 안 뚫리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영우가 굳어 있는 재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었다.

“재하야, 이거 없애 줄 수 있니? 가까이 가고 싶어.”

“네?”

뭘 없애 달라는 건지 몰라 당황한 재하와 달리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노려보던 도준의 시선을 영우가 뒤늦게 알아챘다.

“아, 너니? 이런 걸 만든 게.”

영우의 손이 가볍게 투명한 막을 퉁퉁 두드렸다. 도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영우는 아쉬운 얼굴로 계속해서 벽을 두드렸다.

“재하를 만나러 온 건데 왜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걸까?”

도준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영우의 모습에 재하가 불길함을 느끼고 끼어들었다.

“서, 선배. 방금 어떻게 한 거예요?”

“응? 뭘 말이니?”

“허공의 균열. 그거 선배가 막 손 집어넣고…… 그거 위험하잖아요.”

“날 걱정하는 거야? 역시 재하 넌 달라.”

동그랗던 눈매가 휘며 진한 미소를 짓는 영우의 턱을 따라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얼굴을 가려 깨끗하다고 해도 머리나 목에 튄 끔찍한 흔적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거, 그냥 하니까 되던데.”

무슨 수능 만점자가 교과서로 공부했다는 소리냐 싶어 재하가 벙쪄 있자 영우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널 보러 오고 싶은데 자꾸 귀찮게 하잖니. 어쩔 수 없이 모임에 참석했더니 허공에 방금 본 게 생기더라. 다들 못 보던데 재하도 보인다니, 역시 넌 특별해.”

영우는 균열이 신기해 계속 들여다보았고, 그 속의 새빨간 구슬이 선명해졌다고 했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균열 안으로 손을 넣고 쥐었는데 어쩐지 불안해졌다고.

어딘가에 숨겨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손에 쥔 구슬을 맥주잔에 넣었고, 누군가 그걸 마셨다고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폭탄이 터진 듯 현장이 아수라장이었다고 말하는 영우는 평소와 같았다. 이 건에 대한 죄책감이나 불안감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걸 봤더니 재하 네가 걱정돼서 참을 수가 없었단다. 만나고 싶어서 찾아오는데 귀찮은 애가 달라붙어서 어찌나 졸라 대는지. 마침 여기에도 이게 보이길래 내 손으로 구슬을 잡았고, 보다시피…… 짠~”

영우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사람인 줄 몰랐다.

게다가 그 내용은 재하를 자꾸 뒤로 물러서게 했다.

“재하야, 나 여기 다쳤어.”

갑자기 손등을 보여 주는 영우의 행동에 재하는 당황했다. 손등을 벽에 붙이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인 영우가 끔찍한 말을 이어 갔다.

“치아 파편에 긁혔나 봐. 구슬마다 터지는 시간이 다른가. 주의했어야 했는데.”

영우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재하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까지 등을 받쳐 주고 있는 도준의 팔이 아니었다면 주저앉고 싶을 만큼 긴장했다. 빤히 재하를 쳐다보던 영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하야, 나 아프다니까?”

본인이 터트려 죽인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계속해서 재하에게 다친 곳을 조목조목 알려 주었다.

“어깨도 아픈 거 같아. 묵직한 게 부딪힌 거 같은데.”

영우의 호소에도 재하는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다행인 건 졸음이 온 도림이 도준의 품에서 졸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와중에도 도림의 존재가 재하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억눌러 주었다.

정신 차려야 했다.

갑자기 폭탄 살인마가 된 영우를 상대하려면.

“영우 선배, 다치셨는데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응, 쉬어야지. 재하랑 쉬면 금방 나을 거 같아.”

“전문가가 봐야죠. 선배, 병원 가세요. 많이 다치신 거 같은데요.”

“아, 우리 재하. 너무 순진한 거 아니니? 이거 내 피 아냐. 여기 널려 있는 사람 거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아니지. 걱정해 줘, 재하야. 좀 더.”

영우가 미친놈이란 걸 몰랐던 죄로 재하는 일단 수긍해 주었다.

“선배, 먼저 씻으셔야 어딜 다쳤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생각이야. 재하 집이 가까우니까 욕실 좀 빌릴 수 있겠니?”

재하는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에도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죄송한데 그건 힘들 거 같아요.”

“왜?”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섭섭해하는 영우의 얼굴에 재하는 고민했다. 잠시의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지만,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고, 영우는 계속해서 자신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기에 재하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선배가 좀 무섭거든요.”

실은 조금이 아닌 엄청나게 많이 무섭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다. 정작 그 말을 들은 영우는 생긋 웃을 뿐이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재하야.”

“네?”

“구슬은 내 힘이 아니잖니. 검은 틈이 가진 힘이지.”

“그게 무슨…….”

혼란스러워하는 재하를 위해 영우는 좀 더 쉽게 설명하고자 상냥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무서운 건 아까 그 까만 틈이지. 그 안에 든 구슬이 무서운 거고. 그 구슬이 그냥 터졌으면 나는 물론 재하 너도 다쳤을걸? 그걸 여기, 이 귀찮은 남자 하나로 해결한 거잖니.”

조곤조곤한 영우의 설명에 재하는 그가 가진 상식과 기준이 자신과 다름을 깨달았다.

여전히 파랗게 질린 재하의 얼굴에 영우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해 왔다.

“아, 미안 미안. 재하가 피를 무서워하나 보다. 내가 배려했어야 했는데. 놀라게 해서 미안해.”

영우의 한참 잘못 짚은 사과 탓에 재하는 여전히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긴장한 재하의 얼굴을 본 영우는 벽을 퉁퉁 두드리며 재차 사과했다.

“재하야, 미안해. 그런데 나 많이 아파. 재하가 무서워하니까 마음도 아픈 거 같아.”

재하는 답이 없었고, 영우와 둘 사이를 갈라놓은 막도 견고했다. 사과가 먹히지 않자 영우의 손이 천천히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영우의 시선이 투명한 벽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벽 주변을 빙글 돌며 손으로 툭툭 건드릴 때마다 붉은 손도장이 찍혔다. 한 바퀴 돌고 다시 정면으로 돌아온 영우가 다시 웃는 낯으로 말을 걸어왔다.

“아까 그 구슬, 여기 벽에다 쓰면 어떻게 될 거 같니?”

생글 웃는 영우의 손이 재하와 도준의 어깨 너머로 향했다.

뒤가 궁금했음에도 영우에게서 느껴지는 기이함에 둘 다 꼼짝도 못 했다.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비명과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도 영우는 해맑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8. 과거에 두고 온 미래 Ver.2

외전 2. 이영우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 된 형제 관계는 서재하 때문이라고 여겼었다.

약해 빠진 저등급 동생 따위 외면한 채 고등급 에스퍼에게만 가이딩을 하는 형을 원망했다. 이제 B급이 됐으니 형이 돌아봐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전히 연락 두절인 서재하로 인해 무너졌다. 서재하는 고등급 에스퍼와 뒹구는 데 정신이 팔려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을 외면했다.

그 후로도 몇 년간 죽도록 노력해 A등급을 받기 전까지 서재윤은 가이딩에 목말라했다. 가이드의 숫자는 현저히 적었고, 그마저도 A급 이상의 에스퍼가 독식했다. B급 이하인 서재윤이 가이딩을 받을 기회는 의식을 잃고 죽기 직전에서야 협회에서 가이드를 붙여 풀어 주는 정도였다.

그건 희망이고 저주였다. 새 삶을 찾은 것처럼 가벼워진 몸과 넘쳐 나는 힘은 서재윤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자신을 배신한 형에 대한 원망까지 더해져 서재윤은 죽을 만큼 고통받으며 노력했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서재윤은 몇 년 만에 A등급으로 올라섰다.

고등급이 된 서재윤은 그제야 진실을 알 수 있었다. S, A급인 고등급 에스퍼가 가이드를 어떻게 대하는지. 에스퍼가 아닌 가이드 서재하가 어떻게 망가져 가고 있는지를. 귀를 닫고 목표만을 향해 달리느라 다른 에스퍼는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서재윤은 그 자리에 올라서고 나서야 알았다.

가이드 샘플 15

서재윤이 A급 에스퍼가 되면서 배정된 가이드가 심각한 얼굴로 영상 하나를 넘겨주었다.

파일명만 봤을 땐 가이드 시현 영상인가 싶었다. 파일을 열어 보자 커다란 침대에 헐벗은 남자 여럿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무슨 포르노 시작 장면쯤 되는 줄 알았다. 가이드에게 받은 영상이 아니었다면 질 나쁜 장난으로 여기고 버렸을지도 모른다.

영상 안에 등장한 인물들은 서재윤이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하나하나가 꽤 높은 급의 에스퍼였다. 그들 중 단 한 사람만이 완벽하게 옷을 입은 채 자애롭기까지 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애롭게 웃고 있는 인물은 현장에선 보기 드물었지만, 고등급 에스퍼였기에 서재윤 역시 이름을 알았다.

이영우. 투시와 투과 능력자 에스퍼.

『어디 보자. 열네 번째 영상은 다 찍었으니까 열다섯 번째 영상 찍을게.』

이영우는 자상한 표정만큼 목소리조차 상냥했다. 그에 비해 이어진 다른 이의 목소리는 엉망으로 갈라져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만.』

『흐음, 아직 끝내기는 이른데. 횟수를 늘리는 게 힘들면 강도를 높여 볼까? 재하가 선택해 보겠니?』

익숙한 이름이 들리지 않았다면 서재윤은 끝까지 침대 위에 널브러진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선……배, 이제 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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