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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22화 (2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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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균열 폭탄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도준은 재하를 끌어당겨 최대한 팔로 감싼 채 구체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옷 가게 입구의 검붉은 구체는 한계에 달한 듯 보였다.

짧은 순간, 도준은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도림을 느끼고 당황했다. 한순간이었지만 재하의 머리와 목을 감싸 보호하며 도림이 아닌 친구에게 집중한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재하와 무척이나 친하게 지내기는 했어도 가족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재하를 감싸느라 도준의 목과 머리는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그걸 알아채고도 도준은 재하를 감싼 팔을 풀고 싶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재하를 향한 보호 본능이 생겨난 상황에 도준은 제 감정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주도준은 평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나 그건 일상에서였다. 위험한 상황에서 저보다 타인을 챙길 만큼 호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재하의 목을 끌어당긴 손에 느껴지는 체온이나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 주는 온기가 생생했다.

이 감정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정체 모를 구체에 대한 공포보다 재하를 향한 감정에 정신이 팔린 도준의 시야 밖으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제대로 고개를 들어 구체를 확인했을 때 분명 허공에 떠 있던 검붉은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찾을 수 없었다.

“어?”

“왜? 터져? 지금? 으아!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문자 보낼걸!”

“아니, 없어졌어.”

얼떨떨한 도준의 말에 재하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어? 진짜네?”

“오빠, 더워.”

“잠깐만, 도림아. 금방 보고 올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구체를 찾아 가게 입구 쪽으로 걸어가던 재하의 눈에 유리문이 서서히 기우는 게 보였다. 그것도 사선으로 베인 것처럼 반으로 잘린 채.

파삭.

“으악! 뭐, 뭐야?”

유리문의 절반 정도가 안으로 넘어지며 깨어졌으나 다행히 폭탄처럼 생긴 구체에 비하면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재하는 겁도 없이 가게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리저리 살피더니 도준을 향해 손짓했다.

“진짜 없어졌어. 나와도 돼.”

도준은 재하의 말에 군말 없이 옷가지를 치우고 도림을 안아 들었다. 칭얼대려던 도림은 엉망이 된 가게 안을 보고 놀라 도준을 꼭 끌어안았다.

“사장님, 이제 괜찮은 거 같으니 나오셔도 돼요!”

이 난장판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재하는 안쪽을 향해 말을 걸었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 난리 통에 내다볼 것 같지 않아 재하는 일단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일단 집에 갔다가 다시 오자. 문은 몰라도 옷 상하게 한 건 물어 줘야 할 거 같으니까.”

“힝, 도림이 옷인데…….”

“그래, 이번 기회에 도림이 옷 왕창 샀다 치자.”

“정말? 재하 오빠 최고!”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가 곡소리를 내는 환청을 들으며 재하는 도준과 함께 골목을 빠져나갔다. 은근히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면서도 재하는 재윤에게 톡을 보냈다.

골목길 담벼락 위쪽. 사각지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재하만을 주시하던 재윤은 연신 날아드는 톡을 확인하는 대신 해일에게 통신기를 통해 연락했다.

“당신네 연구 팀이 한 건 했네요. 예상이 맞았어요. 예측 기준이 당일이라는 게 아쉽지만, 덕분에 빚 하나 졌습니다.”

― 빚이라니. 사전에 정보를 주지 않았다면 이만큼도 알아낼 수 없었겠지. 다 서재윤 씨 덕이야.

대격변의 날이 올 것을 추측만 할 뿐, 실질적인 근거가 미약했던 대성의 연구 팀이었다. 이 시기에는 모를 정보를 재윤이 몇 가지 푼 덕에 게이트와 균열 발생에 대한 힌트를 얻은 연구 팀은 밤낮없이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각성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활성화되기 쉬운 마나와 균열이 만나면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실제로는 가설이 아닌, 미래에 밝혀진 사실이었다.

“전에 말한 가이딩실은 준비됐나요?”

각성 테스트 후 재윤은 해일을 만나 다양한 준비를 해 왔다. 대성의 연구진들과도 만났고, 아이템과 포션을 이용한 임시 가이딩실도 구축해 두었다. 덕분에 마나 과잉 사용으로 폐급이라 불리던 에스퍼에게 작게나마 희망이 생겼다.

― 물론이지. 무슨 일이 있었나?

“조금 늦을 뻔해서 힘을 과하게 썼네요.”

재윤은 검게 물든 손을 무심히 내려다본 후 말을 이었다. 최대 출력으로 힘을 쓰는 게 가능하다 해도 몸은 아직 적응하지 못해 과부하가 걸렸다.

“아이템을 이용하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소한 사람 꼴은 돼야 형한테 보이죠.”

재윤의 시선은 점점 멀어지는 재하와 도준의 뒤를 따르는 가드들에게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집까지 쫓아가고 싶었지만, 재하에게 충격 무효화 아이템을 건네준 기억을 떠올리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귀에 하는 건 싫다고 해서 급하게 준비한 건데. 다행이었어.’

도준을 감싸느라 팔을 뻗은 재하의 손목에 있는 팔찌를 보지 못했다면 이성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균열을 없애는 일은 재윤에게 어렵지 않았으나 재하가 관련돼 있는 상황에 냉정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움직여야지.”

오늘 하루, 재윤은 무척 바쁠 수밖에 없었다.

대격변의 날은 동시에 많은 에스퍼가 각성하는 날이었다.

고등급 에스퍼가 다수 각성하는 날. 마나가 마나를 불러오고, 위기가 각성을 부추겼다. 매년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했던 에스퍼가 고등급 에스퍼 몇 명의 각성으로 인해 수백 명이나 영향을 받는 날이 ‘대격변의 날’이었다.

재윤은 이날이 반년 뒤에나 올 거라 예상했다. 미리 해일을 통해 연구 팀에 마나와 균열 폭발의 연관성을 알리고 마나 감지 시설을 설치하기는 했어도 미래를 대비한 일이었다.

설마 이렇게나 빨리, 그것도 당일 오전에서야 예측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슬아슬했지만, 주도준은 각성하지 않았어.’

지켜본 결과 주도준은 각성하지 않았다.

재윤이 필사적으로 달려온 이유는 재하의 안전이 일 순위였으나 주도준의 각성을 막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지만.’

미래에는 폭발에 휩쓸려 주도림이 사망하고 주도준이 배리어를 사용한 채 발견되었다. 주도림의 죽음, 혹은 직접적인 위기가 있어야만 각성할 확률이 높았다.

‘이왕이면 최대한 늦게 각성하는 게 나아. 주도준 새끼가 각성하기 전에 형의 위치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니까.’

모든 각성이 항상 이런 위험을 동반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관리하기에 따라 운전면허 따는 수준으로 안전해질 수도 있었다.

당장은 중요 인물을 제외한 각성자들은 균열 폭발에 휩쓸리고 있을 터.

“서둘러야지. 대격변의 날은 이제 시작이니까.”

재윤은 자꾸만 재하에게로 향하고 싶은 발을 억지로 떼어 냈다. 눈앞의 작은 걱정을 없애는 것보다 끔찍한 미래를 피하고자 움직여야 할 때였다.

재윤은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있었기에 믿었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를. 해일이 재하에게 붙여 준 가드의 유능함을. 미래와 현재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면서도 간과하고 만 것이다.

블랙 피그가 각성자는 물론 예비 각성자의 마나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 또한. 재하의 주변에 있는 미각성 에스퍼에게 전해졌다는 것 역시.

갑작스럽게 당겨진 대격변의 날의 원인을 미처 깨닫지 못한 재윤이 그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을 때 재하에게는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뭐 한 것도 없는데 되게 지친다.”

“한 건 없어도 긴장했으니까.”

허공이 찢어지고 검붉은 구체가 폭탄이 될 뻔한 현장을 벗어나 집 근처에 도착한 재하와 도준은 안도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도림은 양손에 하나씩 오빠들의 손을 잡고 발을 구르며 즐거워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평화로운 분위기로 돌아온 세 사람은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멈추어 섰다. 도림은 여전히 제자리 뛰기를 하며 즐거워했지만, 재하와 도준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보여?”

“어. 저게 왜 또 여기 있냐?”

찢어진 균열이었다.

다행히 갈라진 틈으로 숨 쉬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에 아직 괜찮다는 걸 파악했다. 이번엔 망설일 것도 없이 뒤로 물러설 생각이었다. 아까처럼 불발탄이 아니라면 다칠 수 있었다.

“재하야, 안녕.”

물러서던 재하의 눈에 익숙한 사람이 균열 뒤에서 고개를 내미는 게 비쳤다.

“영우 선배?”

해사하게 웃는 영우의 얼굴 옆으로 균열의 꿈틀거림이 빨라졌다. 왜 또 영우가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것보다 위험을 알리는 게 급했다.

“서, 선배. 이쪽으로 와요.”

“응? 왜 그렇게 급하게 부를까?”

“선배 옆의 그, 그거. 안 보이세요?”

“이 까만 틈 말하는 거니?”

태연한 영우의 대답에 재하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배. 그거 위험한 거래요. 피해야 해요.”

“아.”

재하의 다급함에 영우는 감탄하더니 사르르 녹을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날 걱정하는 거니?”

“당연하잖아요. 빨리 오세요.”

“응, 그럴게.”

영우는 가벼운 걸음으로 재하에게 향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균열 뒤쪽에 서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안경 쓴 남자가 인상을 쓰며 영우를 붙잡았다.

“이영우. 교수님한테 소개해 준다며.”

재하에게 가려다 저지당한 영우의 웃음이 흐려졌다. 영우는 남자를 빤히 보더니 허공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꿀렁이는 균열을. 남자는 눈을 찡그리더니 짜증 섞인 목소릴 냈다.

“아까부터 까만 틈이니 뭐니 무슨 소릴 하는 건데? 니들 게임 동아리 같은 걸 하니까 이상해지는 거 아냐?”

남자의 손이 균열 위를 휙휙 지나는 걸 보며 재하는 경악했다. 도준은 도림을 끌어안고 언제든 뒤로 물러날 기세로 재하의 팔을 붙잡았다.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영우가 익숙한 대외적 미소를 보이며 균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영우 선배!”

재하의 외침과 동시에 도준이 그를 붙잡고 뒤로 물러섰다. 영우는 재하의 부름에 형식적인 미소가 진심으로 바뀌며 균열 안에 넣은 손을 살며시 쥐었다. 그의 손이 밖으로 나오자 균열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벌어졌던 틈이 닫히며 일렁임조차 사그라드는 게 믿기지 않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영우는 지금까지 툴툴대는 남자를 향해 주먹 쥔 손을 내밀었다.

이미 멀찌감치 떨어진 후라 두 사람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영우의 손이 남자의 입으로 향했고, 남자는 어이없어하면서도 입을 벌려 삼키는 시늉을 했다.

“소꿉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어이없네. 먹는 척해 줬으니 교수님께…….”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모습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대신 사방으로 흩어진 흔적들이 방금 있었던 일이 현실임을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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