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20화 (2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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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과거에 두고 온 미래 Ver.1

외전 1. 서재윤

사설 가이드 센터의 건물은 한눈에 입구를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밋밋했다. 특정 인물만 오가는 장소인 데다 불법에 가까운 일이다 보니 폐쇄적인 편이었다.

건물에 낯선 이가 들어서는 순간 안쪽을 지켜 선 가드의 이목이 쏠렸다.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단단한 몸을 가진 장신의 방문객은 망설임 없이 긴 복도를 걸어갔다.

방문객이 움직이자 이능 감별기를 비롯해 몇몇 경보 장치가 스캔을 시작했다. 경고음 없이 통과한 방문객을 향한 가드들의 경계가 사그라들었다.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온 방문객은 딴청을 피우는 접수원을 향해 본론부터 꺼냈다.

“가이드를 찾고 있는데.”

“어머, 처음 보는 에스퍼네?”

사설 가이드 센터에 새로운 에스퍼가 찾아오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최근 강화된 가이드 보호법 때문에 매칭 상대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늘어난 탓이었다. 가이드의 인권이 땅에 떨어질 만큼 함부로 대해 온 에스퍼였기에 참을성 역시 바닥이었다. 그 덕에 사설 가이드 센터는 연일 호황이었다.

접수원의 시선이 장신의 에스퍼를 천천히 훑었다.

“흐음. 대여 가이드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데. 즐기러 온 거면 나는 어때?”

“서재하 가이드.”

강한 마력을 풍기는 에스퍼를 향해 본능적인 친근감을 드러내던 가이드 접수원의 인상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걘 무리야. 오늘 가이딩 횟수 초과했어.”

“어디 있지?”

에스퍼의 재촉에 가이드 현황표를 확인하던 접수원은 짜증을 숨기지 않고 턱짓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하여간 에스퍼는 다 변태 새끼라니까. 3번 방에서 기다려. 좀 걸릴 거니까.”

제법 아껴 주는 에스퍼가 뒤에 있는지 접수원의 태도가 도도했다. 그렇다면 이 가이드는 정말 운이 좋은 거였다. 저 안에서 죽도록 구르고 있을 다른 가이드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일 테니.

3번 방을 지나 곧장 안으로 향하는 장신의 에스퍼를 접수원이 다급히 불러 세웠으나 소용없었다. 안쪽으로 향하는 에스퍼의 걸음은 거침없었다. 보안 직원인 가드들이 달려오는 속도보다 에스퍼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알고 싶지 않아도 에스퍼는 경험한 적 있는 가이딩의 파장을 기억했다. 가장 깊은 곳에서 끊어질 듯 힘겹게 퍼져 오는 가이딩의 잔재. 바닥을 드러낸 채 쥐어짜 내지는 고문 같은 가이딩을 찾아낸 에스퍼의 인내심은 길지 않았다.

“시발.”

참다못한 에스퍼의 손이 벽을 향해 휘둘러졌다.

펑! 퍼펑!

정확하게 방 하나만이 금조차 가지 않고 버텨 냈다. 되레 양옆의 벽은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갔다.

서재하를 찾아 이곳까지 달려온 에스퍼, 서재윤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서재윤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방어 막은 드물었다. 짐작 가는 이가 있었기에 이번 일이 쉽지 않음을 예상했다.

각오를 다지며 다시 힘을 사용하려던 서재윤은 문이 열리며 흘러나온 역겨운 냄새에 숨을 참았다. 느긋하게 열린 문으로 나온 또 다른 에스퍼는 서재윤과 눈이 마주치자 손까지 흔들며 아는 체를 했다.

“오?”

호감형 미남이란 말이 어울리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은 남자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서재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재하를 찾으러 왔다.”

감정을 배제한 서재윤과 달리 상대 에스퍼는 친근한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또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이네, 재하 동생.”

“……그렇게 부르지 마.”

“이런. 그럼 뭐라고 부를까? 처남?”

“씹새끼가!”

서재윤을 자극하는 상대의 말에 이성은 쉽게 날아가 버렸다. 적절한 에너지를 사용한 유효한 공격이 아닌, 감정이 실린 폭격 같은 힘이 쏟아져 내렸다.

가이딩 중이던 에스퍼와 가이드 들이 놀라 뛰어나올 만큼 사방이 터져 나갔다.

“으악, 미친 에스퍼 새끼!”

“안전지대로 피해!”

“누가 저런 위험한 새끼를 받은 거야?!”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만큼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이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은 벽이 부서져 내릴지언정 제법 버텨 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 에스퍼가 펼친 방어 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 건물 무너지겠어, 재하 동생. 요즘 유망하다고 해도 이러다 협회 눈 밖에 나면 가이딩 못 받는다? 아, 설마 네 형을 믿고 막 나가는 거?”

“닥쳐!”

지금까지 국내에서 깨진 적 없는 방어 막 앞에 서재윤의 공격은 무의미하게 소멸했다. 흥분한 서재윤의 힘이 이리저리 튕기며 반파되는 주변과 달리 상대의 주변은 바람 한 점 없이 평온했다.

그건 방어 막이라 부르기에 과했다.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절대 방어라니. 게다가 이렇게 힘을 계속 써 대면 힘들어지는 건 서재윤 쪽이었다.

“하아, 하…….”

감정적으로 힘을 쏟아 낸 서재윤의 파장이 엉망으로 날뛰었다. 빠르게 힘을 갈무리했으나 이미 날뛰기 시작한 파장을 잡기는 어려웠다. 이때 필요한 게 가이드였다.

처음 목적이었던 형을 데려가겠다는 의지보다 당장 날뛰는 파동을 가라앉히고 싶은 욕구가 순식간에 앞서 버렸다.

그걸 알아챈 남자는 어깨까지 으쓱해 보이며 여유를 부렸다.

“저런. 재하 동생은 아직 어려서 그런가. 최대 출력으로 힘을 써 대면 불안정해지는 게 당연하잖아. 그러다 가이드에게 휘둘리게 될 테고.”

“하아…… 서재하를, 내놔.”

“여전히 재하를 형이라고는 안 부르네? 그래 봤자 네 형인 거 다 들켰어.”

“서재하 내놓으라고!”

“놓아주면? 그 몸으로 데려가서 결국 또 제 형한테 매달리게 될 텐데. 구하러 온 거야, 갈취하러 온 거야?”

상대방의 말이 서재윤의 모순을 찔러 댔다.

파장이 뒤엉킨 에스퍼가 가이드를 데려가서 할 일은 뻔했다. 설령 처음 의도는 구출이었을지 몰라도 상대의 도발에 응한 탓에 상황이 달라졌다.

“흐음…….”

이를 악물며 날뛰는 파장을 가라앉히려 애쓰는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던 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온 남자의 손에 팔을 잡힌 서재하가 질질 끌려 나왔다.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흔적으로 엉망진창인 서재하를 확인한 서재윤의 시선이 더욱 사납게 변했다.

“건드리지 마.”

“그래 가지고 데려갈 수 있겠어? 아니면 난 다 썼으니 네가 안으로 들어오든가.”

“헛소리 마.”

“아니면, 더 간절하게 만들어 줘?”

남자의 입꼬리에 걸린 유순한 웃음이 비틀림과 동시에 서재윤은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주저앉았다.

“크윽!”

“재하 동생은 참 어리석단 말이지.”

방어 막은 부르기 편하라고 붙인 이름일 뿐, 그 막이 어디에 펼쳐지는지에 따라 유효한 공격으로 인식됐다.

“본인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되지도 않는 정의감을 앞세우고, 이미 끝나 버린 형제애를 되찾으려 헛된 희망을 품지.”

“큭…… 끝……나지 않았어.”

“재윤아, 세상이 변했어. 우리가 이럴 필요가 뭐 있냐? 사이좋게 나눠 가지면 되는 걸.”

짙어진 미소는 호의에서 비웃음으로 쉽사리 변했다.

“네 형은 아무 에스퍼나 상대하는 밑바닥 가이드야.”

“개새끼가…….”

“이런, 말 곱게 해야지. 아니면 다물게 해 줄까?”

“크, 윽! 읍!”

온몸을 짓누르는 방어 막과 별개로 목을 압박해 오는 감각에 서재윤의 손이 바닥을 긁었다. 그와 동시에 바닥이 파괴되며 서재윤의 몸이 추락했다. 방어 막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윤의 빠른 선택이었으나 그로 인해 남아 있던 에스퍼 에너지의 상당량이 소모됐다. 당장이라도 가이딩을 받아야 하는 상태로 접어들었다.

“크으…… 윽…….”

“아, 자멸했네?”

상대가 방어 막을 회수했음에도 꼼짝하지 못하고 헐떡이는 서재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정말 멍청해서 안타까울 지경이야. 재하 동생이 쓸데없는 짓을 한 탓에 내 파장도 불안정해졌잖냐. 별수 없지. 네 형한테 다시 가이딩을 받아 내는 수밖에.”

“시발, 주도준!”

“오. 그래도 형 친구라고 이름은 안 까먹었나 보네?”

서재윤의 분노에도 주도준은 다시금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방어 막까지 회수한 후 장난스러운 윙크까지 해 대는 주도준의 천연덕스러움이 역겨웠다.

“이게 다 재하 동생 때문인 거다? 난 이제 슬슬 끝내 주려고 했었거든.”

천장 구멍을 통해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주도준의 천연덕스러운 미소가 서재윤의 눈에 박혀 들었다. 이어진 허밍 역시 지긋지긋할 정도로 익숙해질 만큼 반복된 패배였다.

주도준이 서재하를 데리고 멀어지는 동안에도 서재윤은 시커멓게 변해 가는 팔을 붙잡고 인내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자신만은 형을 탐해서는 안 되었다.

서재하가 자신을 위해 희생한 일을 알아 버렸기에 서재윤은 사막에서 만난 물 한 컵의 유혹을 이겨 내려 바닥을 긁었다.

“재하…… 형.”

필사적으로 부르지 않았던 호칭을 입에 담으며 서재윤은 이렇게까지 일이 틀어진 이유를 떠올렸다.

대격변 이후.

각성자의 등장으로 세상이 달라졌다. 게이트와 마수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야기된 혼란은 대성 그룹의 에스퍼 협회 설립 선언과 함께 빠르게 정리됐다. 이렇듯 새로운 계급이 생겨나며 많은 게 달라졌다.

서재하는 서재윤보다 먼저 각성했다. 그의 능력은 정신계가 아닐까 싶을 만큼 강한 에스퍼들의 안정제 역할을 했다. 각성 후 얼마 지나지 않아 A급 이상의 에스퍼들과 함께 살기 위해 서재하가 집을 나가 버렸을 때까지만 해도 서재윤은 형과 연락 두절이 될 줄은 몰랐다.

뒤늦게 각성해 D급 에스퍼로 훈련받게 된 서재윤을 내버려 둔 채 서재하는 강한 에스퍼들과만 함께했다. 서재윤은 힘의 논리에 따르는 서재하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저주했다.

조금이라도 강해지기 위해 힘을 남발했고, 비슷한 시기에 각성한 이들과 달리 신체에 변화가 일었다. 과도한 힘의 사용은 서재윤을 잠정적 B급으로 이끌었으나 대가는 처참했다. 남용한 힘은 그의 팔다리를 태웠고, 날뛰는 마나 때문에 밤마다 잠들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서재윤을 더욱 괴롭게 했던 건 그의 이런 상태를 알면서도 찾아오지 않는 서재하였다.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게 아닌가 했던 어느 날. 고통에 매몰돼 꼼짝도 하지 못하던 서재윤은 협회의 도움으로 가이딩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었다.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경험한 가이딩은 구원이었다. 타들어 가는 작열통이 사라지고 물에 빠진 양 괴롭던 숨통이 트였다.

에스퍼의 힘은 무한대가 아니었다. 힘의 사용에는 대가가 따랐고, 부작용이 필수로 따라붙었다. 그걸 상쇄시키고 풀어 주는 행위가 가이딩, 그걸 가능케 하는 자가 가이드라고 했다.

그리고 형은 가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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