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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2화 (1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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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재하는 옷에 배어 버린 견지호의 향을 털어 버리기 위해 곧바로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부터 했다.

“으, 개호 놈 냄새가 배었어.”

음식과 약만 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려던 재하는 문밖을 나서는 순간 바닥으로 쓰러지는 지호를 두고 그냥 올 수 없었다. 술 취한 동생을 몇 번 침대까지 옮겨 본 경험이 있어 지호를 옮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지호가 칭얼대며 재하를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 통에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의식 없던 게 맞는 건지.”

견지호는 재하의 목덜미에 달라붙어 징징대다가 어깨며 등에 머리를 비벼 댔는데 정말이지 개 같았다. 결국, 재하는 도로 집으로 들어가 견지호에게 직접 약을 먹였다.

계속 손을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길래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 충전기까지 꽂아 준 후에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의식이 날아간 건 아닌지 잠시 걱정했지만, 카톡이 날아들자 지호는 언제 잠들었냐는 듯 번쩍 눈을 뜨고 반응했다. 쓰러진 척했던 건가 의심하면서도 안심할 수 있었다.

“안심은 무슨. 이왕이면 종강 때까지 안 봤으면 좋겠네.”

재하는 샤워하고 나왔음에도 지호가 달라붙었을 때의 감각이 지워지지 않아 몸서리쳤다. 목덜미에 훅 하니 와 닿던 지호의 뜨거운 숨이나 느릿해서 더 느끼했던 속삭임이 떠올라 목이 근질거렸다. 소름 끼치는 감각을 잊고자 수건으로 마구 머리를 털어 대던 재하는 문득 억울해졌다.

“어째 카톡 한 번 안 보냐, 나쁜 놈.”

이렇게나 자신이 노력했는데도 여전히 연락 한 번 없는 동생을 원망했다.

이걸 핑계로 재윤에게 연락하자 싶었다.

견지호랑 안면 텄다.

정확히는 얼굴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견지호 쪽에서 이쪽을 모를 줄 알았다. 막상 만나 보니 풀 네임도 제대로 기억하면서 아는 척하는 지호에게 놀라기도 했다.

선입견으로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고 여겼던 지호는 가까이서 봤을 땐 꽤 남자다웠다. 느끼하게 눈웃음을 치는 건 소름 끼쳤지만. 보조개나 눈물도 설정 과다 아닌가 싶을 만큼. 차라리 아이돌을 했으면 합법적 인기남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니지. 아이돌이 됐으면 데뷔와 함께 여친들이 인증하면서 나락 가고도 남지……는 무슨! 왜 자꾸 그놈 생각하고 있냐, 짜증 나게.”

이게 다 아직 남아 있는 견지호의 향수 냄새 때문이었다. 코에 들러붙은 향이 거슬려 창문까지 열어 환기했다. 그 와중에도 재하의 손에선 핸드폰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용한 핸드폰에 재하는 다시금 속이 쓰렸다.

“뭔데?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떨어지지 않겠다더니 너무 방치하는 거 아닌가 하는 섭섭함에 자꾸만 투덜거리게 됐다. 구시렁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려던 재하는 톡 소리에 빠르게 폰을 확인했다.

그럴 필요 없어.

“오, 드디어 봤네. 망할 놈.”

초성만 오가던 카톡이 많이 발전해서 사람다운 대화가 오갔다.

소개해줄 사람 있으니까.

“소개?”

집에 있어.

묻기도 전에 빠르게 올라오는 톡에 재하는 눈을 굴리며 고민에 빠졌다.

누구를 소개해 준다는 건가?

설마 ‘미래의 아내가 될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이러는 건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재하는 초조해졌다.

“재윤이 놈, 이제 스물인데. 아직 결혼하기엔 이르다고.”

요 며칠 동생의 정신 상태가 애매한 건 알고 있지만, 그 탓에 충동적인 사고라도 친 건 아닌지 심장이 덜컹거렸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불안한 마음에 연속으로 톡을 보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으나 또다시 1이 사라지지 않았다. 걱정은 저만 하는 것 같아 짜증이 치솟은 재하는 폰을 집어 던졌다.

“에이 씨, 나도 몰라. 견지호는 괜히 만났네.”

역시 머리가 복잡할 땐 게임이지 싶어 컴을 켜고 자리 잡았다. 막상 접속하니 길마가 없었다. 다른 길원들은 힐 셔틀 취급해서 딱히 함께 사냥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마지막 접속 시간을 보니 이틀 전이었다.

“어? 길마가 이틀이나 자리를 비웠다고?”

여간해선 자리를 비우지 않는 길마의 부재에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길마 형 없인 게임할 맛 안 나는데.”

의자 위에서 빙글빙글 돌던 재하는 재윤의 의미심장한 말과 같이 놀 사람의 부재에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요즘 잠이 안 오고 피곤하지도 않다 보니 심심한 걸 견디기 힘들었다.

“에이, 육포나 만들자. 잘됐네, 잘됐어.”

이왕이면 지원군도 부르자 싶어 폰을 집어 들었다. 곧바로 도준을 부르려다 재윤의 경고가 떠올라 멈칫했으나 그뿐이었다.

“어차피 지도 멋대로 돌아다니는데 뭐.”

곁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던 다짐은 며칠 가지도 않고 재윤은 부재중이었다.

다행히 육포를 맛있게 먹었는지 재하의 호출에 도준은 흔쾌히 응답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육포 공장이나 돌리자 싶어 재하는 팔을 걷어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리 열어 둔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도준이 얼굴을 내밀었다.

“들어가도 돼?”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냐? 들어와, 후딱.”

앞치마까지 야무지게 장착하고 나타난 주도준은 준비된 일꾼이었다.

거기에 도준의 손을 꼭 잡고 나타난 작은 공주님, 주도림 역시 어린이 사이즈 앞치마에 머릿수건까지 꼼꼼하게 착용했다. 머릿수건 밖으로 빼꼼히 나온 양 갈래 머리에 토끼 머리 끈까지 완벽했다.

“도림이 혼자 두기 그래서 데리고 왔는데 괜찮을까?”

“물론이지! 잠깐만, 일단 사진 좀 찍고.”

깜찍한 도림의 모습에 재하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귀엽고 예쁜 걸 보면 찍고 싶은 게 본능이었다.

“도림아, 세 장 아니, 딱 열 장만 찍자.”

“응, 조아.”

어릴 때부터 자주 봐 온 재하였기에 도림은 손가락으로 뺨을 콕 찌르거나 빙그르르 돌며 나름 포즈를 취했다. 그 덕에 재하의 핸드폰 속 도림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귀여워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한바탕 카메라맨에 빙의해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야 세 사람 모두 사이좋게 손을 씻고 식탁 앞에 앉았다.

“도림이는 손이 작으니까 미트볼 만들기 딱이네.”

“미트볼?”

“어. 찰흙 놀이 할 때처럼 동글동글하게 만들면 돼.”

“찰흙 놀이 조아! 많이 많이 만들래.”

“우와, 도림이 덕에 미트볼 많이 만들 수 있겠다. 고마워, 도림아.”

말은 그렇게 해도 어느 정도 만들다 보면 지루해할 걸 알기에 도준이 미리 준비한 어린이용 만화를 틀어 주었다. 도림이 만화에 집중하며 미트볼을 한없이 주물럭거리는 걸 확인한 도준과 재하는 고기를 써는 데 주력했다.

중간중간 이전에 만들어 놓은 육포를 씹으며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에 감탄했다.

“와, 무슨 고기가 진짜 이렇게 맛있냐?”

“응, 정말 맛있더라.”

육포 제조에 합류한 도준도 공감했다. 아무리 맛있는 거라고 해도 며칠을 내리 먹는데도 질리지 않았다.

“미트볼 만들면 도림이 몫으로 많이 가져가.”

“아, 그건 괜찮아.”

“에이, 사양하지 마. 우리가 남이냐. 이웃사촌에 절친 경력 10년이다.”

“사양하는 건 아니고.”

도준이 만화에 푹 빠진 도림을 힐끗 보고는 재하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동생한텐 안 맞나 봐. 먹으면 혀가 따끔따끔하대.”

“어? 도림이 돼지고기 알레르기 있었냐?”

“아니, 다 잘 먹는 앤데 이번 것만 좀 안 맞나 봐.”

“이런, 미안해라. 괜히 가져다줬나 봐.”

어린 도림에게 해를 끼친 건가 싶어 재하가 시무룩해지자 도준이 빠르게 부정했다.

“아니야. 혹시나 탈 날까 봐 못 먹게 하는데 맛있다고 자꾸 몰래 꺼내 먹더라고. 그러면서도 따갑다고 하고.”

한밤중에 불 꺼진 거실에서 김치찌개 냄비를 열어 고기를 건져 먹던 꼬맹이의 모습을 떠올린 도준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거렸다. 재하 역시 상상해 보니 너무 귀여워서 가슴 위를 부여잡았다.

“내가 당장 다른 고기 사다가 끓여 줄게. 아, 엄마 김치 다 떨어졌는데.”

“우리 집에도 묵은지 있어.”

다른 때라면 사양하는 척이라도 했겠지만, 열 살도 넘게 차이 나는 동생을 위해서라면 법 없이도 살 도준이 뻔뻔해지고는 했다. 어쩌면 도준이 바르게 살아가는 이유가 도림 때문이 아닐까. 도준은 언제나 도림 앞에서 좋은 오빠였고, 평소 행실 역시 바르게 유지해 왔다. 그의 모든 생활은 도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 그리고 도림이 피아노 방에 방음 설비 했어. 창문만 닫으면 될 줄 알고 안일했나 봐. 시끄러웠을 텐데 참아 줘서 고마워.”

“어? 아닌데? 전혀 시끄럽지 않았어. 그냥 동생 놈이 예민한 거지.”

그동안 불편한 줄 몰랐다고 사과하는 도준에 재하가 급히 부정했으나 미안해하는 기색은 여전했다.

“그동안 참아 준 거겠지. 그래서 네 동생한테도 정말 고맙고 미안해.”

크, 이거 봐라.

이렇게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거 싫어하는, 법 없이도 살 놈이 주도준이라고.

재하는 이 훈훈한 모습을 재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혹시나 갑자기 돌아온 동생이 도준을 보고 폭주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무엇보다 도림까지 있는데 재윤이 난리를 치면 큰일이었다.

미리 알려 두자 싶어 재윤에게 톡을 보냈다.

네가 가져온 무식하게 큰 돼지 썩힐 수 없어서 지원군 불렀다.

누구?

이럴 때만 또 귀신같이 빠르게 확인하는구나 싶어 잠시 망설이다 도준과 도림을 핸드폰 안에 담았다. 평소에도 순한 도준이지만, 도림과 함께 있을 때는 더없이 상냥하고 무해해 보였다. 그 모습을 찍어 재윤에게 보냈다.

도준이 동생도 와 있으니까 난리 칠 거면 그냥 오지 마.

나름 강수를 뒀다고 생각한 재하가 긴장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예민하게 굴었던 거 같아. 형만 안전하면 괜찮아.

갑자기 이성을 찾은 재윤의 반응에 의아해할 틈도 없이 이어 톡이 날아왔다.

한 시간마다 문자만 보내줘. 그럼 안심할 테니까.

……이미 충분히 예민한데.

한 시간마다 연락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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