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1화 (1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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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생이 가출했다

가출을 선언한 재윤은 마수 사냥에 열을 올렸다.

이런 행동이 자신의 각성을 부추긴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던전에 일반인이 들어오면 시간이 흐를수록 중독 증상에 시달려야 했는데 재윤은 편안했다. 각성 전임에도 마나를 사용할 수 없어도 받아들이는 건 무리가 없었다.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재윤은 자유롭게 던전을 누비며 재하에게 증거로 보일 만한 마수를 찾아다녔다.

지구상에서 볼 수 없으면서도 재하에게 위험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집까지 들고 가는 데 이목을 끌지 않을 크기여야 했고. 마지막으로 각성 전인 재윤이 잡을 수 있어야 했다.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마수는 던전 중앙에 있는 숲에 존재했다.

레드 맨티스. 여럿이면 위험하지만, 한 마리라면 미각성 상태의 재윤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려면 주변의 잡몹들을 처리한 후 눈에 띄는 한 마리를 꼬여 내 잡는 게 안전했다.

“생각보다 더 쉬운데.”

며칠 동안의 강행군에 지칠 만도 한데 이상하리만치 힘이 넘쳤다. 미래를 경험한 육체 그대로 회귀한 탓일지도 모른다. 졸음이 오기는커녕 정신이 또렷했다. 그 덕에 재윤은 자잘한 마물을 해치우고 남는 시간에 냉정하게 현 상황을 파악했다.

‘원래 계획은 존재를 감추고 형을 서포트하는 거였지만.’

재윤은 각성하더라도 재하의 그림자가 되어 지킬 계획이었다. 재하가 가이드로 각성하더라도 알리지 않고 주변의 에스퍼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재윤은 재하와 마주한 순간 결심조차 잊을 만큼 감정에 휩쓸렸다. 겁먹거나 상처 입지 않은 어리바리한 재하의 모습은 오래전 기억 속 그대로였다. 그토록 바라 왔던 온전한 형을 만난 재윤은 감정이 앞서 버렸다. 재하를 붙잡고 울먹이며 지켜 주겠노라 맹세했다. 정체를 감추고 형의 그림자가 될 계획 따위는 실행 시작과 동시에 폐기됐다.

‘개새끼들이 가까이 살고 있고.’

재윤은 미래에 에스퍼가 된 주도준, 이영우와 가이드가 된 재하 사이의 끔찍한 관계만 목격했다. 이후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친구였다거나 선후배 사이였다는 건 알았지만, 어디까지나 정보의 영역이었다. 세 사람의 이전 관계가 이토록 친밀하고 온화하다니. 상상 못 했던 다정한 관계에 역겨움마저 느꼈다.

‘그렇게 살랑대던 새끼들이 각성하면 형을 굴리고 고문한다는 걸 믿을 리 없지.’

미래와 동떨어진 현재 상황에서 재윤이 아무리 경고해도 재하는 이해 못 했다. 그렇다고 해서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었다.

돌아와서까지 형에게 끔찍한 기억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에 묻어 두고 싶었다.

‘차라리 빨리 각성해서 협회를 이용해 형을 지키는 편이 낫겠어.’

아직은 괜찮았다. 당장은 미각성인 주도준과 이영우를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일상이 유지되는 동안은 형을 내버려 두는 게 낫다는 걸 알면서도 재하의 주변에 보이는 그들을 향한 분노와 살기를 감출 수 없었다.

재하를 보면 지켜 주고 싶었다.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을 만큼 불안했다.

‘형에게 괜한 반발심만 주느니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 게 나아.’

한 발 떨어지니 조금은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날을 세우기보다 대책을 마련하는 쪽이 맞았다.

이 시기에 이미 각성한 에스퍼를 감추고 던전을 독식하며 누구보다 앞서 있었던 기업과 접촉할 필요도 있었다.

‘자기들 편한 대로 에스퍼를 손에 쥐락펴락하는 개같은 기업이지만 그래서 더 이용 가치가 있어.’

지킨다는 건 단순히 직접적인 위협만을 막아 내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됐다. 그런 식이라면 또다시 가이드로 발현한 재하가 망가질 테니까.

재윤이 돌아온 이상 흐름을 바꿔야 했다.

“당장 해야 할 것부터 하자.”

형을 설득할 증거를 찾아 온 숲이 가까워질수록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대형 곤충을 상대하기 전 재윤은 상태를 체크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상대한 건 잡몹뿐이라 긁힌 곳 하나 없었다. 무기로 들고 온 쇠 파이프에 묻은 진액을 이파리로 대충 닦아 내는 게 준비의 전부였다.

화르르.

재윤이 막 숲으로 한 걸음 내디디려는데 발 앞에 불길이 치솟았다. 훅 하니 끼치는 열기에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재윤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쇠 파이프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기다렸다.

던전에서 다른 에스퍼와 마주칠 확률은 얼마든지 있었다. 협회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이미 한창 활동 중이었다. 재윤이 그들의 던전에 무단 침입 한 이상 두고 보지만은 않을 터. 협회가 될 대성 측에서 접촉해 온다면 얼마든지 이용해 줄 생각이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었다.

‘불을 쓰는 에스퍼라. 이왕이면 그 사람이면 좋겠는데.’

재윤은 넘실대는 불길 너머에 나타난 그림자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태연한 재윤의 태도에 불길이 훅 가라앉았다. 아직 남은 잔열이 바닥을 자글자글 태웠으나 그뿐이었다.

“인사가 거칠어서 죄송합니다.”

불길이 사라지자 드러난 건 검은 전신 슈트를 입은 남자였다. 대성 그룹에서 초창기 에스퍼에게 지급했던 기본형 방어구라 눈에 익었다.

“놀라지 않는군요.”

방금 불을 내지른 상대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서글서글한 웃음이 자연스러웠다.

재윤의 시선이 목을 감싼 형태의 방어구 위로 보이는 진중한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외모만 보면 영화 촬영장에 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잘생김이었다. 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수려한 외모의 남자는 대성 그룹이 협회를 공식화한 후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던 인물이었다.

권해일. 고등급 에스퍼로, 최종 기대 등급은 S급이었다.

실제로 능력도 출중했기에 고위험 게이트에서도 뛰어난 결과를 내고는 했다. 소위 꿀 빨려는 일부 고등급 에스퍼들과 달리 누구보다 앞장서던 인물이었다. 실제로 마주친 일은 드물었어도 그의 행보만으로 호감이 생길 정도였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에스퍼. 재윤이 가장 바라던 접점이기도 했다. 협회가 싫어도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면 한배를 타야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권해일은 여러모로 놓칠 수 없는 패였다.

“피차 던전에서 마주친 상황에 놀랄 이유가 없죠.”

“서재윤 씨.”

이름이 불렸음에도 무덤덤한 재윤의 반응에 해일은 의아해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던전에도 무척 익숙해 보이고. 아무리 레벨 F 이하의 마물이라 해도…… 손에 든 무기는 일반 쇠 파이프로 보이는데 다루는 게 능숙하시더군요. 아직 각성 전일 텐데.”

“빙빙 돌리지 마시고요. 까놓고 말씀하시죠.”

재윤을 칭찬하던 권해일은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해일이 결심했는지 손목에 차고 있던 교신기를 바닥에 내던지고 불태웠다. 순식간에 녹아내린 교신기를 확인한 후에야 해일은 재윤에게 다가섰다.

“솔직하게 말하지. 내겐 서재윤 씨에 대한 몇 가지 정보가 있어. 미등록 각성자라고 생각해 설득하려고 접근한 건데 미각성자라니, 놀라울 지경이야.”

“그래서요?”

“누구도 듣지 않으니 솔직해도 돼. 빌런과 접촉했다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존댓말이 사라진 해일의 말투에도 TV에서 자주 듣던 목소리는 신뢰감을 불러올 만큼 진중했다. 권해일은 외형에서 보이는 이미지 그대로인 사람이었다.

“재밌는 발상이지만, 정말 빌런 조직이 절 키우고 있다면 당신 하나론 부족하지 않을까요?”

“나야 애초에 전력이랄 게 있나. 대신 대성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 써먹으면 돼.”

리더의 기질을 가진 남자가 아직 제 가치를 모른 채 족쇄에 채워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재윤은 각성 후 권해일을 찾아갈 생각이었으나 일찍 마주친 이 상황이 기회임을 깨달았다.

“협회. 아니, 대성이 지금은 당신을 소모품처럼 쓸지 몰라도 조만간 전국에서 균열이 터지고 에스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각성하면 구심점이 될 인물을 내세울 거예요. 그때 당신이 절실해질 거고.”

지금까지 웃음을 잃지 않던 해일의 안색이 바뀌는 걸 보면서도 재윤은 태연했다.

“한강에 게이트 터져서 영상 찍히거든요. 대성은 그걸 놓치지 않고 당신을 보냈고, 대박이었죠.”

“한강 게이트 같은 건 없어.”

“생겨요. 균열도 갑자기 생겨나는데 하물며 허공에 생겨나는 게이트가 새삼스러울까.”

재윤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 막힘이 없었다.

“그때 찍힌 영상 편집본이 굉장하더라고요. 정말 배우가 튀어나와 홍보 영상이라도 찍은 줄 알았다니까요. 이제 보니 실물도 장난 없으시네요.”

“……마치 미래라도 보는 것처럼 말을 하는군.”

“봤으니까요.”

재윤은 이번 기회에 권해일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는 재윤이 빌런과 접촉했을 경우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려고 대성이 알지 못하도록 교신기를 불태운 사람이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해일을 재윤은 제 계획에 끌어들일 셈이었다. 그걸 위해 이쪽의 패를 보여 주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뭐, 대성 처지에선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이가 예상보다 더 능력이 뛰어나니 온갖 게이트며 던전에 당신을 보내죠. 2~3년 뒤엔 잠정적 S급으로 칭송받아요. 그만큼 미디어 노출도 장난 아니고 덕분에 협회의 입지도 견고해지고요.”

“고작 나 하나로?”

해일은 그가 S급 취급을 받는 것보다 그의 존재로 대성의 입지가 달라짐을 놀라워했다.

“네. 대성이 밀어붙인 감이 있긴 하지만, 당신만큼 완전무결한 에스퍼가 없기도 했고요. 다른 에스퍼 새끼들은 다 쓰레기라.”

“쓰레기?”

“일단 전 사냥 좀 할 테니까 제 말을 믿을지 말지 생각해 보세요.”

재윤은 지금까지의 대화를 해일이 곱씹을 동안 목표했던 숲을 향해 움직였다. 그런 재윤을 빠르게 따라붙은 해일은 그를 저지하려 했다.

“서재윤 씨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던전에 들어올 때부터 지켜봐서 알아. 하지만, 이 안은 지금까지와 다른 급수의 마수가 존재해. 강해지길 원해 이러는 거라면 내가 돕겠다.”

“아뇨, 저 안에 있는 게 필요해서요.”

“뭐지? 아티팩트? 던전 부산물인가? 아니, 그런 중요한 사실을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겠지. 조건이 필요하다면 최대한 들어줄 테니 정보 공유가 가능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여기 온 건…….”

키에에.

익숙한 마수의 소리가 숲 안쪽에서 들려왔다. 숲 바깥이라 해도 완전한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입구 주변에 서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으니 가까운 곳에 있던 마수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당연했다.

“제게 필요한 건.”

재윤이 손에 든 쇠 파이프를 바로 잡았다.

“사마귀 대가리거든요.”

“뭐?”

해일이 반응하기도 전, 재윤의 신형이 빠르게 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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