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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씨, 너야말로 이상하게 엮지 좀 마. 대체 이 머리통에 뭔 생각이 들어찬 거야? 너 며칠 동안 나갔다 오더니 사상이 이상해졌어.”
질문에 답하지 않는 재윤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는데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뭘 해결하겠다고 기세등등하게 올라가서는 난장판만 만든 재윤의 행동이 어이가 없고 답답했다.
집으로 돌아와 차분히 대화로 풀기 위해 소파에 앉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는 재윤의 고집으로 결국 나란히 앉아 손까지 붙잡힌 채 천장 무늬를 바라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형, 그 새끼 만나지 마.”
와.
단어 선택 하나하나가 끔찍해서 재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하아. 너야말로 사고 좀 치지 마.”
“형만 조심해 주면 나도 사고 안 쳐. 그 새끼가 도발만 안 했어도…….”
“주도준. 도준 형이라고 부르는 건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이름으로 불러.”
아무래도 세 살 터울인 동생이 친구를 두고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건 듣기 거북했다.
“그리고 만나지 말라니. 도준이랑 강의 시간도 다 겹치는데 안 만날 방법이 있냐?”
“학교 가지 마. 어차피 내년이면 다 쓸모없어져.”
“왜? 핵폭탄이라도 터진대?”
“그거보다 더한 게 터질 거야.”
재하는 슬슬 확신이 들었다. 동생이 어디를 갔다 온 건지.
“너, 어디 가서 제사라도 지내고 왔냐? 아니면 미래를 알려 준다는 사기꾼이라도 만난 거야?”
“아냐, 형. 형이 믿지 못할 거 아니까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것뿐이야. 형이 믿을 수 있겠다 싶을 때 필요한 만큼 알려 줄게.”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그걸 순순히 말하기엔 자신의 손을 꼭 잡은 재윤의 손이 지나치게 단단했다.
동생과 이런 식으로 손을 마주 잡는 일은 억지 악수 할 때 정도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재하는 재윤의 손을 잘 알았다. 학교를 오가고 게임을 즐겨 하는 자신과 비슷한, 특별할 것 없는 손. 딱딱하냐 부드럽냐 따지면 부드러운 쪽.
그러나 지금 잡은 동생의 손은 수년을 공사판에서 구르기라도 한 것처럼 굳은살이 박이고 거칠었다. 며칠 만에 이렇게 손이 달라진다는 게 말이 안 됐다. 게다가 조금 전 동생의 머리를 마구 헤집을 때 뒤통수에 큰 상처가 만져졌었다.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상처는 흩어 낼 때마다 한 번씩 그 흔적을 드러냈다. 옆구리의 긴 상처처럼 상당 시간이 흘러 아물고 남은 흉터.
‘내 동생. 맞는데.’
꽉 잡힌 손과 애틋한 시선에 닭살 돋는다고 밀어내지 못하는 건 재하의 머릿속을 채우는 여러 가정 때문이었다.
“형이 당장 꼭 알아야 할 것부터 알려 줄게.”
“뭔데?”
“이영우.”
“이영우? 영우 선배를 네가 어떻게 알아?”
학교에서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미소 천사 선배의 이름이 동생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도 어이없는데 이어진 말은 더 기가 막혔다.
“그 사람을 멀리해. 쓰레기니까.”
내 인간관계를 파탄 내러 온 악마 새끼인가.
잠시나마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말았다.
‘일단 침착하자.’
재하는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아. 절친한텐 이 새끼 저 새끼 하더니…… 이젠 선배까지 멀리하라고? 이유나 들어 보자.”
“말했잖아. 쓰레기라고.”
“넌 만난 적도 없잖아.”
“만났어. 수도 없이.”
“너랑 영우 선배 접점이 없…….”
아, 회귀.
그 전제 조건을 깜박했다. 어제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재윤과의 대화에 기본으로 깔린 전제였다. 재하는 두통이 몰려오는 것 같아 잡히지 않은 손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영우 선배는 그럴 리 없어. 너, 선배 별명 알아?”
“알아.”
“알면서 그런 오해를 해? 선배 별명이 미소 천사…….”
“스마일 사디스트.”
사람은 너무 황당한 말을 들으면 생각이 멈춘다. 재하는 오늘 하루 재윤과 대화하며 몇 번이나 사고가 정지했다.
저런 말은 어디서 튀어나오는 걸까. 궁금했지만, 묻고 싶지 않았다. 재윤에게 물었다가 어떤 답이 나올지 불안했다. 선배인 이영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설득하는 것보다 동생의 머리에 들어찬 이상한 생각들이 어디서 온 건지 걱정스러운 게 먼저였다.
“그리고 형이 꼭 친해져야 하는 사람이 있어.”
재하의 걱정도 모르고 재윤은 더욱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눈을 마주했다. 동생과의 아이 컨택이라니. 이건 무슨 신종 고문인가 싶어 시선을 피하고 싶으면서도 세상 진지한 재윤을 마냥 피할 수도 없었다.
“동생아, 우리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면 어떻겠니?”
“형이 안전해지면 당연히 그럴 거야.”
그놈의 안전. 재하가 진저리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동안에도 재윤은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지금은 형이랑 친하지 않을 거야. 최대한 가까워지는 걸 추천할게.”
“하아. 그래서 누군데?”
“견지호. 이 사람이랑 친해져야 해.”
“……혹시 내가 아는 개호 말하는 거 맞냐?”
만년 발정남. 바람둥이. 카사노바. 개지호. 짐승 새끼. 1학기 시작하자마자 문어 다리를 걸친 놈. 들고 다니는 핸드폰만 대여섯 개였다. 그중 대부분이 선물 받은 커플폰이라는 걸로 보아 학교 밖에도 따로 여친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남자의 절반인 모쏠은 그의 능력을 부러워하고 여친 후보를 빼앗긴 절반은 찢어 죽이고 싶어 하는 인물.
“응, 그렇게 불리기도 하더라.”
“미친, 절대 그림자도 스치기 싫거든.”
견지호는 사귀지 않는 여자에게도 숨 쉬듯 플러팅을 해 댔다. 여자들을 향해 친절과 유혹을 수시로 해 대는 탓에 주변 남자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견지호가 군대에 가기 전까진 누구도 솔로 지옥을 벗어날 수 없으리란 소문이 돌 만큼 그놈의 어장은 넓고 튼튼했다.
재하의 거부감은 당연했다. 그러나 재윤은 질색하며 부들거리는 재하를 설득해 왔다.
“견지호, 그 사람은 믿을 수 있어.”
“개의 충성심을 믿는 게 더 빨라. 차라리 내가 개를 한 마리 키울게.”
“겉보기엔 좀 화려해서 가벼워 보이는 거 알아. 실제로 가벼운 것도 맞지만.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게 익숙해. 기본을 지킬 줄 알거든.”
“기보―온? 기본을 지킨다는 놈이 남의 여친을 뺏냐!”
“뺏은 적은 없을걸.”
화를 내던 재하는 재윤의 단호함에 잠시 견지호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여친을 뺏겼다고 말한 이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은데 명확하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 달랐다.
[내가 사귀고 싶었던 미진이를!]
[알바 끝나면 선물 사서 영미한테 고백하려고 했는데!]
[주희랑 아영이 누구도 고를 수 없어서 망설이는 동안 개호 새끼가 다 채 갔어!]
“……그, 그래도 여기가 일부다처제 국가도 아니고 여친을 한 번에 여덟 명이나 사귀는 게 말이 되냐?”
“능력이 되면 그럴 수 있지.”
재하는 재윤의 사고방식에 혼란스러웠다.
부먹이냐 찍먹이냐로 다툴 때보다 더 믿기지 않았다. 대체 어딜 다녀왔길래 얘가 이렇게 달라졌나 싶어 당황하는 재하에게 재윤은 쐐기를 박았다.
“최대한 친해져야 해. 아, 사귈 수 있다면 사귀는 것도.”
“뭐? 내가 개호랑? 사귀라고?”
“응. 그 사람 자기 애인들한텐 정말 잘하거든.”
애인도 아니고 애인들. 게다가 같은 성별과 사귀라는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동생이 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더는 들어 줄 수가 없어 손을 털고 일어섰다. 일어서는 자신을 따라 그대로 손을 붙잡고 따라붙는 재윤으로 인해 거리를 벌리는 데 실패했다. 바싹 따라붙는 재윤이 예전보다 눈높이가 더 높아진 것 같았다. 미묘한 차이였지만, 이 차이가 재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너 누구야?”
아무리 원수 같은 형제 사이였다 해도 진짜 동생이라면 이럴 리 없었다.
지 형을 게이로 만들려 하다니.
“내 동생 아니지?”
갑자기 생긴 옆구리의 상처나 뒤통수의 흉터도 어찌어찌 넘길 수 있었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사상 자체가 달라진 데다 엉뚱한 소리를 해 대는 재윤을 더는 받아 주기 힘들었다.
재하가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에도 재윤은 태연했다.
아니, 태연한 척 애쓰는 게 재하의 눈에 보였다.
발갛게 달아오르는 눈가와 마른침을 삼키며 인내하는 슬픔은 감추려 해도 완전히 사그라지지 못했다. 그제야 재하는 제 손을 잡은 재윤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손을 빼려 당기니 놓지 않고 그대로 따라오는 재윤의 손은 자신을 아프게 하거나 강제하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으려 붙잡은 손은 절묘하게 힘을 조절하며 재하가 피할 때마다 그만큼 따라왔다.
몇 번이고 뒤로 물러서다 벽에 닿고 나서야 재하는 재윤의 서글픈 고백을 듣게 됐다.
“내가 차라리 형의 동생이 아니길 바랐던 적이 있었어.”
‘나도 네놈 형이 아니길 바랐던 적이 많다.’라고 답하기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같이 살고는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남이었다.
재혼한 부모님은 고작 3년 만에 다시 갈라섰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생이 영영 남이 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건 재하였다.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한 이사를 하며 양측 보호자에게 도움받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재윤은 귀찮다는 식으로 툴툴대긴 했어도 잘 따라왔다. 둘이 살게 된 이후 종종 외박하거나 자주 다투기도 하고 며칠씩 대화를 안 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온전한 가족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재윤이 자신과 형제가 아니길 바랐던 적이 있었다고 할 줄은 몰랐다. 충격적인 고백을 한 재윤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랬으면 더 쉬워졌을 테니까. 형을 포기하고 달라진 세상이 당연한 거라며 살아갈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
재하는 재윤의 말을 막는 대신, 동생의 머릿속에 박힌 생각을 들어 두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형도 변했으니까. 나도 변했고. 모두가 변했어. 형이 친구라던 새끼, 누구보다 형을 함부로 대했어. 그 새끼만 만나면 형은 하루를 꼬박 앓아야 일어났으니까.”
“저기 너 진짜 어쩌다 그런 오해를 하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도준이 걔 덩치만 컸지, 사람 안 친다. 축구 할 때 몸싸움도 안 하는 애야.”
“그 새끼만 문제가 아냐. 형이 믿고 있는 선배, 필요하다면 형을 껍질째로 벗겨 내고도 남을 사디스트야.”
“잠깐, 타임.”
재윤의 상상력이 너무 고어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 재하는 듣기 버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