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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화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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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생이 회귀했다

세 살 터울 서재하와 서재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형제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재혼 가정이라는 거지만, 요즘 세상에 특별한 것도 없었다.

몇 년을 한 집에서 부대끼며 지낸 덕에 누가 봐도 평범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안부 인사 대신 욕설이 오가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는 평범한 형제.

“새끼, 어디 가서 뒈진 거 아냐?”

5일째 연락도 없이 외박 중인 재윤에게 ‘디졌냐?’라고 톡을 보낼까 고민하던 재하는 괜한 짓인 것 같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늦은 사춘기를 겪는지도 모를 동생은 내버려 두는 게 나았다.

딩동.

딩동.

갑자기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재하는 급히 시간부터 확인했다.

“새벽에 웬 미친놈이야?”

1분 간격으로 울리는 초인종 소리는 무시하기 힘들었다.

재하가 하던 게임을 던지고 나갈 때까지만 해도 어느 집 미친놈인가 얼굴이나 볼 생각이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에 비친 미친놈은 서재윤. 자신의 동생이었다. 게다가 절대 문을 열어 주고 싶지 않을 만큼 푹 젖은 모습이었다.

“너 이 새끼, 술을 얼마나 처먹었길래 비번 까먹고 초인종을 눌러 대?”

“……형.”

가출인지 단순 외박인지 애매한 5일간의 부재중에도 연락 한번 없던 재윤이었다. 뻔뻔하게 기어들어 올 줄 알았던 재윤의 목소리가 어쩐 일인지 잔뜩 가라앉아 쩍쩍 갈라지기까지 했다.

진지하다 못해 울음마저 섞여 든 동생의 목소리에 서재하의 심장이 덜컹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오랜만에 들어 본 ‘형’ 소리에 혹시나 재윤이 술독에 빠졌다 나온 건가 싶어 냄새를 맡아 봤지만, 알코올 냄새는커녕 쇠 냄새가 났다.

재윤의 물에 푹 젖은 꼴을 보고 비웃으며 놀리는 대신 재하는 이리저리 살폈다. 그가 살피는 내내 재윤은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며 빤히 재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답지 않게 왜 이리 무게를 잡나 싶어 재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야, 너 사고 쳤냐?”

“사고는…… 형이 났지.”

뜬금없는 말에 어리둥절하던 재하는 짐작 가는 게 하나 떠올랐다.

“뭔 소리야? 너, 설마 보이스 피싱 당했냐?”

“미안해, 형.”

“아니, 얼마나 사기당했길래 네 입에서 미안하다 소리가 나와?”

“형, 내가 다 보상할게. 보상할 테니까…….”

사기를 당했어도 본인 일인데 어째서 사과하는 걸까?

의아해하던 재하는 화들짝 놀라 손에 든 핸드폰을 확인했다.

“야, 이 미친놈아. 내 통장까지 건드렸냐? 비번은 어떻게 알고?”

다급히 은행 앱으로 통장 잔액을 확인하는데 알량한 예금의 숫자는 변동이 없었다. 작고 소중한 금액이 온전함에 재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푹 젖은 몸이 끌어안아 왔다.

‘이 새끼 이거 술을 궤짝으로 마신 게 아니고서야 이럴 리 없는데.’

치킨 다리를 놓고 박 터지게 싸웠던 날. 부모님의 개입으로 억지 악수를 한 이후 반년 만의 포옹이었다.

어색한 상황인 데다 재윤에게서는 물비린내와 쇠 냄새가 진하게 풍겨 왔다. 민망해진 재하는 재윤을 밀어내고 싶었으나 진지한 분위기에 손끝만 꼼지락거렸다.

문득 재하의 눈에 여전히 문턱을 넘지 않고 선 재윤의 구두가 들어왔다.

해지고 낡은 구두가 낯익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불편하다고 면접 때 이후로 신지도 않던 제법 비싼 구두였다. 대학도 안 가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동생에게 형 노릇 좀 한다고 술김에 지른 선물이었다. 이후 신발장에 박혀 먼지만 쌓인 터라 두고두고 산 걸 후회했던 물건이기도 했다.

그랬던 새 구두가 몇 년은 신은 것처럼 낡아 있어 재하는 의아했다.

“얀마, 구두 신고 축구라도 했냐?”

“흐읍…….”

“……너 지금 우냐?”

“형이, 건강해서 진짜 다행……. 흑…….”

“미친.”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삼켰다.

내 건강을 왜 네가 걱정하냐며 질펀하게 부모님 안부를 묻고 싶은데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라 재하는 일단 한 번 참았다.

“야, 됐으니까 일단 씻어. 감기 걸려서 나한테 옮기면 죽는다.”

“응. 형은 쉽게 아프니까. 아프게 하면 안 되지.”

훌쩍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려는 시커먼 재윤을 재하가 손을 뻗어 저지했다.

“어딜 물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들어오려고? 바구니에 벗어 놔.”

재하는 이 늦은 시간에 세탁기를 돌릴 수도 없고 바닥 청소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때라면 네가 흘린 물이니 네가 치우라고 하겠지만, 재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적당히 타협하는 중이었다.

찌익.

젖은 옷을 벗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헐크로 변신하는 것처럼 찢어발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디서 힘자랑…… 어?”

자연스럽게 재하의 입에서 튀어 나가던 잔소리는 재윤의 옆구리를 따라 길게 나 있는 상처에 멈췄다. 이후 재하가 바싹 다가가 상처를 확인한 건 무의식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 언제 다쳤어? 저번주까지만 해도 이런 상처 없었잖아?”

재윤의 상처를 본 재하는 무엇보다도 어머니께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아. 흔적이 좀 남았나 봐.”

태연하게 답해 오는 재윤의 태도가 재하는 당황스러웠다.

재윤의 옆구리에 길게 남은 상처는 생긴 지 꽤 시간이 흘러 아물고 흐려지는 단계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상처만큼 낯선 복근이 재하의 눈에 들어왔다.

작심삼일이던 헬스가 단기간에 빛을 봤다기엔 지나치게 선명한 갈라짐이 징그럽기까지 했다.

내 동생이 이럴 리 없다.

오늘따라 재윤의 모든 게 이상했기에 재하는 일단 고개를 흔들며 한 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재윤이 따라붙어 양팔을 붙잡고 얼굴을 들이대는 바람에 재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출 만큼 놀랐다.

“그러지 마, 형.”

진지하다 못해 무섭게 이글대는 재윤의 눈은 크게 상처받은 것처럼 보였다.

“뭐, 뭘?”

“날 피하지 마.”

“뭐래, 미친놈이.”

양팔까지 잡혀 형의 위엄을 위협받는 상황에 발끈한 재하가 팔을 휘두르자 꽉 잡혔던 것에 비해 쉽게 풀어졌다.

역시 밥그릇 숫자는 무시 못 하지.

의기양양해진 재하가 턱을 치켜드는데 재윤의 분위기는 여전히 심상치 않았다.

“형…….”

세상을 다 잃은 얼굴이 저러할까.

창백하게 질린 재윤의 얼굴 위로 굵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아무래도 국내 주류업계가 알코올 냄새가 나지 않는 술을 발명한 게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밤새 게임을 하다 혼절한 자신이 꿈이라도 꾸는 게 아닐까.

“하아, 밤을 작작 새워야겠어.”

두 배 경험치에 목을 맨 죄로 이 꼴이 난 게 분명했다. 어쩌면 수면 중일지도 모른다.

재하가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고개를 흔드는데 이젠 아예 무릎까지 꿇으며 재윤이 매달려 왔다.

“형, 내가 잘못했어. 제발 피하지 마.”

“나도 제발 부탁인데 씻어라.”

“여기 있어. 가지 마.”

“내가 가긴 어딜 간다고 이래? 떨어져, 인마!”

한참을 재하가 이 집이 내 집인데 어딜 가냐며 화를 내고 설득한 끝에 재윤이 마지못해 욕실로 들어갔다. 그것도 욕실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집 안이 습기 차는 건 싫지만, 먹지도 않은 술에 취한 동생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이 옷은 그냥 버릴까…….”

반쯤 찢어진 재윤의 옷을 종량제 봉투에 넣던 재하는 아직 열려 있는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닫기 전 별이 빛나는 하늘이 보여 의아했다.

“뭐야? 비 한 방울 안 내렸겠는데?”

하늘이 저렇게 맑은데 동생은 왜 푹 젖어서 온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문을 닫기 전, 재윤이 걸어왔을 복도에 물 자국 하나 없다는 것 역시 보지 못했다.

* * *

“형, 약속 안 지켰어.”

“와, 미치겠네. 징그러우니까 좀 떨어지라고.”

“그럼 또 날 두고 나가려고?”

마지막 라면 한 봉지까지 탈탈 털어먹은 터라 잠깐 편의점에 다녀왔을 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재하가 마주친 건 거실 한가운데에 서서 흉흉한 기운을 풍기던 재윤이었다. 재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언제 살기를 내뿜었냐는 듯 순한 양이 되더니 이내 수도꼭지가 돼 버렸다.

“형, 어디 갈 거면 나랑 같이 가.”

“오냐. 담에 라면 심부름은 꼭 너한테 시키마.”

“농담 아냐. 걱정되어서 그래.”

“넌 제발 병원 좀 가 봐라. 며칠 사이 어디다 머리라도 박고 온 게 아니고서야…….”

재하가 달라붙는 재윤을 구박하며 발로 밀자 딱딱한 근육 덩어리를 가지고도 쉽게 밀려났다. 그러곤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불안하고 서글픈 얼굴로 재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끌어안기 금지. 붙잡는 것도 놉.”

“형…….”

아무리 동생 보기를 원수 보듯 하는 재하였어도 그런 얼굴을 하는데 마냥 밀어낼 수만도 없었다.

“대신 옆에 앉을 테니 얌전히 있어.”

재하의 절충안에도 그렁그렁 고여 있던 재윤의 눈물이 툭 떨어져 내렸다. 이 꼴 안 보려고 굳이 옆에 앉아 준 건데 늦어 버렸다.

어제 이후로 서재윤은 툭하면 울었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반쪽짜리도 안 되는 형제였지만, 충분히 가족처럼 지내 왔다. 재윤이 울면 우냐며 놀리고 옆구리까지 찌른 후 도망치는 게 둘의 관계였다. 형제가 다 그렇지 않은가.

몇 년에 걸쳐 누가 봐도 형제로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족처럼 친하다 못해 원수 같은 사이였다.

하지만 이렇게나 서럽게 울면서 간신히 셔츠 끝자락만 붙잡고 매달리는 동생은 재하에게 낯설면서도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렸다.

누가 내 동생 울렸냐.

때려도 내가 때린다.

밖에서 맞고 온 동생을 보고 눈이 뒤집혀 무작정 야구 배트를 들고 뛰어나가는 것 또한 형제였다.

물론 학생 때의 패기이기도 했지만.

일단 동생의 눈물을 멈추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

어제는 술에 취한 것 같아 일단 재웠지만, 또다시 자신의 침대로 기어들어 와 ‘형이 무사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귀가 썩을 정도로 듣는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야, 서재윤. 진짜 진지하게 제대로 설명해 봐. 대체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어서 이상하게 구는 건지.”

“며칠 동안이 아니야. 그리고 형은…… 믿지 못할 거야. 날 이상하게 보게 될 테고.”

“너 원래 이상해. 이상한 놈 맞아. 그러니까 그냥 말해.”

재하는 이 불편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을 하든 들어 주겠다 다짐했다.

* * *

동생이 회귀했단다.

“너 약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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