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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80화 (180/183)

180화

완연히 부서지는 현실과 그 너머에 중첩되어가는 마계.

모두가 공황에 빠져 혼란스러워 하던 차.

혼란한 그 속에서 터지는 백봉기의 목소리에 일순간 박율의 시선이 환기되었다.

“...정신 차려라!!!”

박율은 흠칫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서 백봉기는 뼛날을 높이 든 채 달려드는 악마의 늑골을 베고 있던 참이었다.

그제서야 박율은 악마들이 곳곳에서 범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계를 침범하여 동화되어가는 마계와 그 흔적에서 쏟아지는 악마들.

박석훈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백봉기만이 악마들을 상대하고 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악마들의 핏줄기와 살덩이가 백봉기의 검에 베여 널브러졌다.

그만이 붕괴되는 현실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아마 본래의 역사에서 그는 너무나 일찍 죽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붕괴되는 현실에 영향을 받을 것이 미미한 모양이었다.

“형...!”

“얼른 망치 들어라!”

박율의 뒤로 악마들이 달려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림자 속에서 백봉기의 해골이 무더기로 솟구치며 달려드는 악마를 덮쳤다.

콰앙!!!

그 건너편에서는 거대한 망치가 바닥에 내려찍혔다.

마르가리타였다.

그녀는 사방으로 망치를 휘두르며 악마들을 분쇄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이내 허공을 향했다.

푸른 하늘을 뒤덮은 악마들의 향연.

『이게 도대체...』

상태를 봐선 다행히 그녀도 그리 큰 영향은 받지 않는 듯했다.

박율은 고개를 흔들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혼란스러워할 시간이 없다.

그는 재빨리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던진다.

날아가는 망치는 악마를 동강내는 백봉기의 뒤를 덮치려는 악마의 머리를 터트렸다.

백봉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박율은 재빨리 망치를 회수하고 백봉기의 옆에 붙었다.

그리고 박율은 마르가리타와 백봉기를 흠칫 보며 입을 열었다.

“현실이 붕괴되어 가고 있어요.”

『뭐?』

“그 사람이 말하기를, 너무나 많은 개입이 일어나서 현실이 붕괴되어 가는 거라고 했어요.”

박율은 사뭇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마르가리타는 인상을 지었다.

『현실이 붕괴되어 간다라니...』

말을 내뱉던 그녀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그녀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신이라는 작자가 허공에 투명한 구체를 소환해 신과 그 대리인들의 진정한 역할에 대해 설명을 하던 그 순간을 회상하고 있었다.

‘신’의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를 말이다.

‘선과 악이라 부르는 그 무언가, 그 사이에서 우리는 경계를 담당한다고 할 수 있지.’

신의 그 말.

그리고 뒤이어 떠오르는 부서지는 허공의 구체.

마르가리타는 심각해진 얼굴을 했다.

그 모든 순간들이 현재와 오버랩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백봉기가 물었다.

푹!

그의 뼛날이 바닥에서 땅을 뚫고 올라오는 악마의 두개골을 관통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박율이 답했다.

사실 그가 숱한 일들을 겪었다지만, 그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일단 그가 알고 있는 상황들을 두 사람에게 전했다.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것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지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어 박율이 입을 열었다.

“...하나 확실한 건.”

말을 내뱉던 박율이 고개를 돌려 백봉기와 마르가리타를 보았다.

두 사람을 보는 그의 안광이 흐려지고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얼굴이었다.

“‘신’은 죽었어요.”

마침내 내뱉은 그 말에 두 사람은 일순간 초점을 잃었다.

달려드는 악마들에 대항해 반사적으로 정신을 차리긴 했다만, 두 사람은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들은 대로에요. 제가 환상을 본 게 아니라면, ‘백지의 세계’에서 신은 죽었어요.”

박율은 쏟아지는 현실의 조각을 맞았을 때, 보았던 순간들을 말했다.

한 줌의 먼지로, 그림 속의 검은 먹으로 돌아간 그의 마지막을 내뱉었다.

참혹한 이야기를 들으며 회의감에 잠길 시간도 없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방심을 하면, 사방에서 악마들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채 무의식적으로 망치를 휘두르던 마르가리타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리는 눈동자로 박율을 본다.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거야.』

그녀의 시선은 마계와 동화되어가는 현실의 일부분으로 향했다.

어느새 푸른 땅은 반쯤 검게 물들어 어느 한 면만 본다면 본디 어디가 마계인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네!?”

『...혼돈. ‘신’은 이 상황을 그렇게 불렀어.』

전황을 살피는 마르가리타의 시선은 사뭇 심각했다.

“혼돈...?”

백봉기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보았다.

『두 세계를 지탱하던 경계가 허물어져 충돌이 일어난 거야.』

신의 죽음.

그것이 혼돈의 방아쇠가 된 것이다.

마르가리타의 표정이 더욱 굳어간다.

『그리고 혼돈의 결말은 종말.』

콰앙!!!

마르가리타의 망치가 또 다시 바닥을 내리찍는다.

“그게 무슨...”

백봉기가 얼그러진 미간을 풀지 못한 채 말했다.

『이대로면 세계는 끝이라는 소리야.』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야...!”

백봉기가 답했다.

하지만 대답을 한 것은 박율이었다.

그의 뇌리를 타고 한 순간이 스쳐지나갔다.

흐릿한 기억 속 노인의 말이자,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

“...새로운 신의 등장과 새로운 질서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새로운 신의 등장.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동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걸 어떻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과 이야기들의 연속이었지만, 안 믿을 수도 없을 노릇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애초에 ‘신’이라는 것은 존재 조차도 아득하며 멀디 먼 존재였는데, 새로운 신이 필요하다니,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무릇 그들은 그 방법도 모를뿐더러, 무릇 신이라는 존재에 걸맞는 재목조차 찾을 수 없었다.

“...새로운 신.”

박율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찰나의 상념.

길어야 5초도 되지 않을 그 짧은 고뇌 사이, 그는 많은 것을 떠올렸다.

그 중 그가 가장 강력히 떠올린 것은 ‘신’의 마지막 한 마디였다.

마지막을 잘 부탁한다는 그 말.

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착각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실이 더욱 붕괴되어 갈수록 그의 상념은 더더욱 짙은 색깔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것이 정해진 굴레를 타고 움직이는 것만 같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무릇 ‘신’이라는 존재는 아득하고도, 절대적인 것.

허나 그는 박율에게 마지막을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단탈리온 역시 같은 말을 했다.

마지막이 다가온다고 말이다.

모든 것이 그를 겨냥하고 있었다.

본래의 역사 속 ‘신’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박율을 과거로 되돌렸다.

개변 된 역사 속 ‘신’은 죽기 전 박율에게 마지막을 부탁했다.

쩌적!

그리고 낯익은 소리에 박율은 고개를 들었다.

땅이 갈라지고, 마기가 짙게 깔리는 섬짓한 소리였다.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엔 크기를 짐작조차 하기 힘든 커다란 심연이 열리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마기는 온몸이 차갑게 식어갈 정도로 무거운 마기였다.

“바알...!!!”

바알의 마기였다.

허공에 벌어진 심연은 더더욱 크게 벌어졌다.

이윽고 완전히 벌어진 심연 너머에서 나타나는 악마들.

현재 땅 위를 뒤덮은 악마들의 곱절은 될만한 숫자의 악마들이 심연을 넘어 범람했다.

쏟아지는 마기에 공황 상태에 있던 사자들 마저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그제야 보이는 상황에 놀라 각자 무기를 들었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살기 위한 본능.

한순간 살육이 멎었던 전장이 검게 물들어, 이젠 인간계의 흔적을 찾기도 힘들 정도로 변했다.

쿠구궁!!!

“젠장할...”

박율이 나지막이 뇌까렸다.

심연 너머에서 그가 나타나고 있었다.

존재만으로 전장의 모든 이들을 압도하는 격을 지닌 마왕.

바알은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로 심연을 넘어 걸어나왔다.

[무슨 일이지는 모르겠다만.]

전장을 훑던 그의 시선이 이내 박율을 향해 고정되었다.

[...흥미롭군.]

치솟는 입꼬리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바알이 손가락을 치켜세워 지상을 가리킨다.

그러자 범람하는 악마들이 지면을 부술 듯 땅을 굴렀다.

이내 또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

박율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정말 마지막을 위한 싸움이라는 것을 말이다.

바알은 크게 들숨을 마셨다.

그리고 뱉는다.

[느껴지는가?]

바알의 몸이 흠칫 떨린다.

[마침내 신이 죽었군.]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의 시선이 박율에게 고정되어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겠다.]

그리고 그는 주먹을 쥐었다.

그 윤곽을 따라 마기가 솟구친다.

폭발할 듯 솟구치던 마기가 하나의 증기처럼 하늘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하늘이 검게 물든다.

다만 백을 찾기 힘들 정도로 검게 물든 흑이었다.

바알은 주먹을 펼쳤다.

파악!

동시에 하늘에 낀 먹구름 같은 마기들이 날카로운 창의 형태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

박율과 일행들은 반사적으로 방어를 전개했다.

파바박!

떨어지는 마기의 창들이 바닥을 꿰뚫는다.

바알의 공격은 그리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허나.

“...!!!”

박율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모두가 마기의 창에 뚫려 신음을 토해냈고, 고성을 내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자들은 뒤이어 달려드는 악마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살육의 무대였다.

갑작스레 일어난 참혹한 현장에서 박율을 비롯한 일행들은 자리에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기 위해선.]

바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벌레들을 정리해야겠지.]

그는 조소를 머금은 채 박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기를 내뿜는다.

허공에 흩날린 마기가 첨예한 날로 변해 떨어진다.

푹!!!

아득한 속도로 내리꽂힌 마기의 창이 박율의 코앞에서 멈춰섰다.

그의 앞엔 박석훈이 서 있었다.

“정신 차려요...!!!”

그는 고통에 부들부들 떨었다.

그제야 박율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고마워요...”

“이번에는 꼭 이겨야죠.”

박석훈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비장했다.

그는 미래의 기억을 되짚으며 바알에게 패배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박율 역시 그를 보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악마들이 너무 많다.”

백봉기의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 이 땅위 악마들의 숫자는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들 위에 군림하는 바알까지.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

허나 박율은 이를 악 물고 망치를 들었다.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 순간이었다.

또 다시 익숙한 마기가 어디선가 느껴졌다.

심연이 사방에서 벌어지고, 박율과 마르가리타의 눈동자가 확대되었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 잊고 있었던 이의 마기였다.

“데판...!!!”

그의 마기가 심연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열린 심연에서 느껴지는 그 마기의 숫자 역시 가늠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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