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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73화 (173/183)

173화

아득함.

그것을 뛰어넘은 까마득한 격이 피부를 타고 기어오른다.

고작 시선을 내리깔고 쳐다보는 것만으로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최강의 악마라 불리우는 마왕 바알.

그가 한쪽 입가를 비튼 채 불쾌하다는 기색을 내뿜고 있었다.

[...]

그의 시선이 아주 천천히 전장을 훑었다.

죽은 이들과 죽어가는 이들, 그리고 그들을 죽인 이들을 모두 살폈다.

허나 그는 이내 옅은 웃음을 흘겼다.

그 의미를 유추할 수는 없었지만,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웃음이었다.

“함정이었나봅니다...!”

한명련이 말했다.

그는 박율과 등을 기대며 사방에서 몰려드는 악마를 쫓았다.

달빛을 머금은 검날의 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 역시 바알의 마기 앞에서는 그 격에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힘든 듯했다.

그것은 박율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박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나도 상정 외의 상황이었다.

함정일 것이라는 가능성 역시 염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함정에 바알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껏해야 다른 마왕 혹은 군단장 정도 되는 악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마계는 엉망이 되고 있을 터, 그 상황을 주도해야 할 심장이 마계가 아닌 인간계에 있을 것이라곤 상상을 못 했으니 말이다.

“어떡하죠.”

한명련은 당장에라도 바알에게 일격을 날릴 수 있게 시선은 여전히 지상에 둔 채 기민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바알의 격에 압도되면서도 전투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율은 망치를 세게 쥐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바알의 곁에 다른 악마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바알.

그만이 전장을 찾아왔다.

만약 이것이 진정 함정이었다면, 바알 홀로 여기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악마들도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겠지만, 지금 박율의 눈에 보이는 건 바알 뿐이었다.

“...”

다시 말해 함정은 아니다.

‘그럼 왜 바알 혼자 이곳에 나타난 거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찌보면 지금은 유일하게 바알을 죽일 수 있을 기회였다.

다음 기회를 노린다 한들 그때는 절대 바알 홀로 사자들을 상대할 리는 없다.

“...여타 다른 생각할 이유는 없어요. 죽여야 해요.”

박율이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다 한들 어차피 사자들의 목적은 단 하나.

바알의 목숨이다.

박율의 손에서 피어난 하얀 불꽃이 망치를 감싸며 그의 전신을 강화했다.

“뒤를 부탁합니다.”

박율은 일행들에게 말했다.

아직 악마들이 완전히 정리되진 않았지만, 굳이 그가 없더라도 충분하다.

[신속]

* * *

바알은 시선을 내리깐 채 전장을 둘러보았다.

아주 잠깐 악마들이 마계로 이동한 사이 재밌는 일들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원래라면 마계로 이동해 전 마계에서 벌어지는 반란을 막아야 했지만, 그전에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있었다.

바로 마왕의 기운.

타 마계에서 흘러나온 마왕의 기운이 인간계에서 나타났다.

게다가 그 기운은 분명 단탈리온의 것이었지만, 바알은 이미 단탈리온을 죽었다고 규정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마계와 그안에 살아가는 마계인들을 끔찍이 애정하는 그가 마계가 쑥대밭이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죽었다는 것외에는 답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마계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으로 모자라 인간계로 흘러들었다.

바알은 그것이 단탈리온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였다면, 그 사이 다른 꿍꿍이로 살아남아 반란을 일으켰다한들 인간계로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곧 그의 마계를 다시 죽이는 방법일테니.

그러니 바알은 다른 답을 생각했다.

새로운 마왕이 나타났다.

단탈리온의 마계를 지배할 새로운 마왕이 나타나 반란을 일으키고, 뒤이어 인간계에까지 영향력을 끼치려는 것이다.

하여 바알은 그 마왕의 기운을 쫓아 인간계에 나타났다.

[역시...]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인간계에 새로운 마왕이 있었다.

그것도 인간이.

바알은 입가를 비틀었다.

안 그래도 마계대전을 일으키고 수십개의 마계들을 평정한 이후로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가던 차였다.

이 얼마나 즐거운 상황인가.

[나를 즐겁게 해보아라.]

바알은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 말에 저들에게 닿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저들은 지금 검을 빼어들어 살기를 내뿜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지상에 있던 마왕이 발을 떼었다.

그의 신형이 사라지며, 그의 섬짓한 살기가 쾌속으로 달려오고 있다.

바알은 가볍게 손을 뻗어 그를 바닥에 내팽겨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나, 그 순간.

캉!!!

허공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울린 쇳소리는 파동처럼 점점 번지며 결국은 바알에게까지 닿았다.

[흐음...?]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강진호였다.

그는 검은 마기를 뒤집어 쓴 채 달려드는 마왕의 공격을 막았다.

* * *

“...!!!”

박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바알에게 향해야 했던 망치가 허공에서 날을 벼린 검에 부딪혀 쇳소리를 울렸다.

그리고 그는 눈을 의심했다.

“강진호...!!!”

강진호가 또 다시 나타나 그를 방해한 것이다.

캉!!!

강진호의 검이 또 다시 박율을 향해 날아들며, 박율은 망치로 검을 막고는 그것을 발판삼아 뒤로 몸을 던졌다.

쿵!!!

두 사람이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강진호는 마기를 머금은 호흡을 토해내며 박율을 보았다.

마치 마기에 잠식되어 이성을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너...”

“하아...”

강진호는 마기에 침식된 채 다시 자세를 잡았다.

[순보]

다시 달려든다.

박율은 재빨리 망치를 들어 공격을 막았다.

캉!!!

저릿한 울림이 전신으로 퍼진다.

밑도 끝도 없이 달려드는 그의 살기에 박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끝까지...!!!”

박율은 이를 꽉 깨문 채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 허리를 비틀어 발을 뻗었다.

퍼억!

그의 다리가 강진호의 복부를 걷어차며, 뒤이어 박율의 망치는 허리를 굽힌 강진호의 정수리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허나, 강진호는 순식간에 땅을 굴러 하늘을 두어번 구른 뒤 박율의 뒤로 착지했다.

그리고 휘두르는 검날.

박율은 재빨리 망치를 들어 공격을 막으려 하지만, 조금 늦은 탓에 검은 박율의 등허리를 베어낸다.

차악!

“큭...!”

박율은 허리를 휘며 신음을 토해냈다.

“...?”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충분히 치명상으로 들어올 법한 공격이었지만, 너무나 얕게 등허리에 생채기가 벌어졌다.

박율은 흠칫 강진호를 보았다.

“너 뭐하는...”

“잔말 말고 덤벼라.”

[격랑]

강진호의 검에 격이 스며든다.

그리고 동시에 땅을 박차고 박율에게 달려들었다.

캉!!!

그는 검을 휘둘렀다.

허나 그 검날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실려있었다.

박율은 연달아 내리찍히는 강진호의 검을 막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꾹 닫은 강진호의 입에 틈이 벌어졌다.

“...가능하다는 것이냐.”

“뭐!?”

캉!!!

“정녕 바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못 죽일 건 뭔데...!”

“너는 왜 그렇게 발악을 하는 거지?”

강진호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에 맞춰 박율 역시 이를 꽉 깨물고 검을 막았다.

카앙!!!

귀를 찢을 듯 울리는 쇳소리가 바닥마저 파고들어, 하나의 구덩이를 만든다.

두 사람의 망치와 검이 맞닿을 때마다 바닥엔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바람을 가르며 내려찍히는 강진호의 검에 격이 쌓인다.

쌓이고 쌓이는 격은 중첩되며.

카앙!!!

하나의 격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너...!!!”

박율의 시선은 떨리고 있는 강진호의 팔을 향했다.

이미 그가 쌓을 수 있는 격은 충분히 쌓인 상태였다.

그의 권능, 격랑의 한계점.

총 7번의 격이 그의 검에 스며들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카앙!!!

또다시 망치와 검이 맞부딪히며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함께 강진호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며, 두드러진 핏줄이 터져 팔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정말 이길 수 있다는 것이냐.”

카앙!!!

강진호의 콧잔등에 핏물이 고였다.

그의 코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그의 검마저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카앙!!!

박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강진호는 생명력을 소진하며 격랑의 더 고양된 격을 쌓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를 불태우는 횃불처럼 제 몸을 그을렸다.

이대로 가다간 혼자서 자멸하고 말 터였다.

박율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박율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격이 내뿜는 살기가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과연 나는 지금까지 헛된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

강진호가 핏물을 토해내며 말했다.

“너...”

“난 여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서부터 떨어진 액체가 광대를 타고 턱선까지 내려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것은 검붉은 색이었다.

허나 그것이 피인지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처절했으며,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결국은 모두가 죽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죽음을 갈망하게 될 것이라고.

카앙!!!

“허나, 너를 보았다.”

이제는 한계였다.

강진호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박율을 응시했다.

“죽을 줄만 알았던 네가 나를 압도했던 그때를.”

마계에서조차 자신을 압도하였으며, 심지어는 모든 것을 포기하여 그저 죽음만을 갈망하던 마계에 새로운 태양을 드리우게 했던 그때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너를 부정하고 싶었다.”

나의 이상은 틀리지 않았으며, 결국은 죽음만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의 이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껍질을 깨고 있었다.

“허나 박율, 너는 끝까지 시들지 않더군.”

강진호는 더 이상 휘두를 힘이 없는 검을 박율의 망치와 맞댄 채로 말했다.

“하여 나의 마지막을 네게 맡겨보기로 했다.”

“뭐...?”

“그러니 끝까지 살아남아라.”

강진호는 다음 공격을 위해 부들부들 떨리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검에 쌓인 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했다.

그저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 온몸의 실핏줄이 터지고, 시야가 아득해졌다.

한계치는 진작에 뛰어넘었으며, 그 이상을 넘어 실낱같은 목숨까지 검에 담아둔 상태였다.

[전력]

그의 전신으로 전기가 몰아쳤다.

전력은 뱀처럼 그의 몸을 맴돌았으며, 마치 그를 옭아매듯 그를 감쌌다.

“그게 무슨...!”

“이미 난 더럽혀졌다.”

이것으로 속죄가 될 수 없겠지만.

이것은 마지막을 위한 발돋움이 될 것이다.

강진호의 몸을 감싸던 전력이 아구를 벌린다.

그리고 그를 삼켰다.

동시에 강진호는 땅에 발을 디뎠다.

파앗!

그의 신형이 사라짐과 동시에.

푸욱!!!

저 멀리, 바알이 있을 허공 위에서 바알의 복부를 꿰뚫은 채 나타났다.

[...]

“...더 이상 네게 놀아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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