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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72화 (172/183)

172화

펄럭.

고룡의 날개가 위아래로 운동을 시작하자 돌풍이 일었다.

동시에 일행을 짊어진 고룡의 몸뚱이가 하늘을 날았다.

“꽉 잡아요.”

하늘을 비상하기 시작하며, 박율은 일행들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이윽고 날아가는 고룡.

“...!!!”

생각보다 빠른, 아니 생각 그 이상을 초월하는 속도였다.

마냥 비늘을 잡고 있던 일행들은 쏟아지는 속도감에 비늘을 놓칠 뻔 했지만, 이내 다시 비늘을 꽉 잡아 버텼다.

고룡은 창공을 꿰뚫으며 날았다.

그 위에 올라탄 박율 일행은 안간힘을 쓰며 고룡의 비늘에 매달려있었다.

워낙 빠른 탓에 조금만 힘을 빼면 바람에 휩쓸려 날아갈 것 같았다.

고개를 들고 싶어도, 쏟아지는 바람이 눈을 때렸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고룡 역시 마수인 터라 지상에 드문드문 보이는 마수들 혹은 날아다니는 마수들이 박율 일행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고룡의 기세에 짓눌려 도망치기 바빴다.

그렇게 창공을 날고 날아, 도착한 바알의 성.

고룡은 성에 다다르자 속도를 늦췄다.

그제야 일행들은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 사이로 바알의 성은 볼 수 있었다.

한때 남산 타워라 불리던 건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검은 마기를 내뿜는 거대한 탑이 하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던 한명련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기가 바알의 성...”

성의 정체는 알고 있으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리고 상공에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멀리서 봤을 땐, 마냥 거대한 성 정도로 치부했었다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았을 땐 상당히 기괴했다.

악마들의 해골처럼 보이는 장식들이 탈출을 갈망하는 듯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뻗은 손이나, 처절한 그 몰골은 당장에라도 도망칠 듯했지만, 이미 죽은 이들은 그저 성의 기괴함을 빛내는 장식일 뿐이었다.

해골들 사이로는 한때 같이 바알에 저항했던 이들의 흔적 역시 남아있었다.

“...”

박율의 손등에 핏줄이 두드러졌다.

살의로 가득 찬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그는 숨을 토해내며 분을 삭혔다.

분노를 내뿜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것보단 당장의 일에 집중해야 했다.

[척후]

박율은 두 눈에 권능을 집중시켜 성 내부를 살폈다.

성 내부 역시 한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악마들의 전혀 없지는 않았다.

조무래기처럼 보이는 악마들부터 군단장 급에 준하는 악마들까지.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의 악마들이 남아 성을 지키는 중이었다.

다행히 아직 박율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고룡이 날아다니는 것까지는 본 것 같다만, 원체 고룡이 이유없이 날뛰는 마수는 아니다보니 딱히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박율은 척후를 해체하고 일행들을 보았다.

“이제 고룡이 불길을 내뿜어 성을 무너뜨릴 거에요. 그리고 성이 무너짐과 동시에 잔류하던 악마들이 모여들거고, 우리는 그놈들을 모조리 죽일 겁니다.”

그의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와서 무를 생각은 없었다.

박율이 망치를 들자, 일행들 역시 각자 무기를 준비했다.

전초전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후...”

서희는 긴장 섞인 날숨을 내뱉었다.

운 좋게 성을 무너뜨리고, 그 안에 있을 악마들까지 모두 죽이는 데 성공하더라도, 주변에 잔류해있을 악마들까지 모여들 터였다.

이미 한차례 커다란 전쟁을 겪었지만,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갑시다.”

박율이 말했다.

그리고 그가 신호를 주자 고룡은 성 근처 악마들의 인적이 적은 수풀 사이에 일행들을 내렸다.

“잘 부탁해.”

박율은 고룡을 향해 말했다.

고룡은 짧은 울음을 토해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위험하면 바로 돌아와.』

마르가리타가 옆에서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지만, 고룡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리고 파앙!

날개를 펼쳐 날아간다.

창공을 뚫으며 고룡은 성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아구 속에서 불씨를 키웠다.

그제야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성 내 악마들이 나타났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악마들이 고룡을 향해 옅은 마기와 살기를 내뿜으려는 순간, 고룡은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황금빛 불꽃을 쏟아낸다.

화아아아!!!!

불꽃이 성과 맞부딪히며 굉음을 토해냈다.

폭발하는 섬광이 성의 중심부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녹였다.

악마들은 어떻게든 고룡의 공격에 저항하려 하지만, 고룡의 불꽃에 대항할 수는 없었다.

결국 고룡의 일격에 성은 점차 일그러지더니 이내 불꽃에 녹은 부분부터 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과광!!!

성이 무너지며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함께 사방에서 마기들이 움직였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얼마 없는 악마들이 방심한 틈을 노린다.

박율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움직입시다.”

그의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달려간다.

이제는 소모전이었다.

바알의 성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 그리고 전세계에서 저항이 거세게 일 것이고, 그것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전초가 될 것이었다.

바알을 몰아낸다는 하나의 명분을 가지고 말이다.

박율 역시 망치를 들고 악마들을 향해 달려들려던 찰나였다.

“박율!”

서희가 말했다.

그녀 역시 박율과 함께 자리에 남아있던 마지막 일행이었다.

“왜 그래요?”

서희는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입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어디 불편해요?”

“야.”

서희의 얼굴이 점차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박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이럴 시간이...”

“다치지 마.”

서희는 단칼 같지만, 또한 부드러우며, 차가운 듯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율은 사뭇 벙찐 얼굴을 했다.

서희는 다시 입을 꾹 닫고는 박율을 뚫어져라 보았다.

“절대 죽지도 말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내 서희는 떨리는 숨을 뱉었다.

“기다릴게.”

그녀는 더 이상 많은 말은 뱉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의중은 전달되고 있었다.

망치를 들고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서 있던 박율은 서희에게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 속에 달빛이 담겼다.

서늘한 바람에 실려 흔들리는 검은 머리칼이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욱 뽀얗게 만들었다.

달싹거리던 입이 벌어졌다.

“내가...”

“전부 끝난 뒤에.”

박율은 서희의 말을 가로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상의 말은 상처를 만들 수도 있다.

이곳은 전장, 누군가의 생과 사를 속단할 수 없는 불후의 땅이었다.

“말씀드릴게요.”

“...”

“그러니까.”

죽지 마세요.

두 사람의 시선은 교차했다.

애틋함이 피어나겠지만, 그 사이에 핏거죽이 떨어졌다.

박율은 서희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발을 떼었다.

그리고 달린다.

* * *

콰아앙!!!

박율의 망치가 땅바닥을 내리쳤다.

충격에 갈라지는 바닥과 그 위에 서 있던 악마들과 마수들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명련은 달려들었다.

차악!

그의 검이 악마들을 반신으로 만든다.

아직 죽지 못한 악마들은 뒤이어 달려드는 마르가리타의 망치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박율은 곧장 다시 일어나 무너진 성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전장에서 가장 강력한 마기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박율은 뿌연 흙먼지 속 가린 시야 너머로 달려들었다.

상대가 누구던 공격할 타이밍을 주지 않는다.

박율이 땅을 박차고 망치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하얗게 불타는 그의 망치가 강대한 마기를 내려찍는다.

콰앙!!!

굉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박율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망치로 공격함과 동시에 반대편에서 반격을 시도했다.

빠르게 피한 덕에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만, 한방에 죽이는 것에는 실패했다.

이내 걷히는 흙먼지 안개.

그 너머에 커다란 덩치의 고릴라 같은 마수가 하나 서 있었다.

이제는 죽은 마왕 푸르카스의 직속 부하였던, 군단장이었다.

[감히 주군께서 없는 틈을 타 개짓거리를 하다니...]

고릴라는 포효를 내질렀다.

박율은 찢어지는 포효를 꿰뚫으며 다시 달려들었다.

고릴라는 달려드는 박율을 향해 주먹을 내리찍었다.

허나 낮은 자세로 달려들던 박율은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옆으로 몸을 던졌다.

콰앙!!!

고릴라의 주먹은 바닥을 내리찍고.

박율은 어느새 고릴라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콰앙!!!

그의 망치가 고릴라의 후방을 가격했다.

망치에 얻어맏은 고릴라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바닥에 처박혔다.

『흡...!』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르가리타는 망치를 위로 올려쳐 바닥에 처박혀 튕겨오르던 고릴라를 후려쳤다.

콰앙!!!

[커헉...!]

박율과 마르가리타의 연속되는 공격에 속절없이 당하던 고릴라는 고통 섞인 신음을 토해냈다.

“갑니다...!!!”

뒤이어 발도를 준비하던 한명련이 말했다.

그는 고릴라의 몸뚱이가 최정점을 찍고 내려오려는 순간, 검을 뽑았다.

카가각!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검은 쇳소리를 낸다.

함께 검이 완전히 뽑혀나오며 달빛을 머금은 검강이 날아갔다.

차악!

반달을 닮은 검강이 고릴라의 몸을 꿰뚫었다.

[커허억...]

쿵!!!

순식간에 공격에 당해 복부를 꿰뚫린 고릴라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그의 입에서는 억수같은 핏물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허나 아직은 죽지 않은 채였다.

고릴라는 이를 빠득 갈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몸이 울퉁불퉁하게 변하며 날개가 솟아올랐다.

폭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감히...버러지 같은 것들이...!!!]

고릴라의 몸뚱이가 곱절을 넘어 비대해지려던 순간.

콰앙!!!

뒤에서 내려찍은 야차화한 서희의 주먹이 고릴라를 삼켰다.

서희가 주먹을 들어올리면, 그 자리엔 핏물만 흥건한 고릴라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후...!”

박율은 이마의 땀을 훔쳤다.

마왕과의 대결만 수차례 겪은 터였다.

이제 군단장 정도는 거뜬하게 죽일 수 있었다.

박율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사방에서 악마들과 마수들이 나타났다.

아마 근방에 있던 악마들과 마수들이 전부 모여든 듯했다.

고룡을 타고 날아오던 중에 보았던 이들이었지만, 모여있으니 생각보다 머릿수가 많았다.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박율을 비롯한 일행들은 다시 땅을 박차고 악마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사방에서 핏물과 비명이 낭자하게 터져나왔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악마들과 마수들이 죽임을 당했다.

인간들을 유린하던 악마들이 하나 둘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허나 박율 일행은 가차없이 악마들을 죽였다.

한반도의 주인이 또 다시 바뀌려는 순간이었다.

쿵!!!

그 순간 박율은 고개를 돌렸다.

비단 그뿐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떨었다.

여태껏 마주한 그 어떤 악마들보다 마수들보다 강력한 무언가가 나타난 듯한 마기였다.

그의 존재를 마주한 이들은, 그를 본 적이 있던 그렇지 않던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최강의 마왕, 그는 바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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