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박석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박율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전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왕이 되었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냥 장난이라고 치부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 분위기로 봐선 장난처럼 내뱉은 말은 아닌 듯했다.
그가 박율을 바라보는 것처럼 서희 역시 같은 눈이었다.
“단탈리온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죠.”
그리고 한명련이 마지막으로 확인사살까지 해줌으로써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박석훈은 그가 마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 아니 불신이라기보단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박율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요?”
박율의 물음에 박석훈은 대답 대신 팔짱을 낀 채 더 눈을 가늘게 떴다.
“크흠...”
박율은 그의 부담스러운 눈길에 목을 긁었다.
“진짜 율 씨 맞아요?”
“아닌 거 같아요?”
“...”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자리였지만, 아 물론 데판은 없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상당한 어색함이 감돌았다.
콧잔등을 씰룩이며 박율을 보던 박석훈이 따지듯 물었다.
“아니 어떻게 볼 때마다 뭐가 하나씩 늘어나요?”
상당히 공격적인 말투였지만, 불만이나 불쾌와 같은 감정이라기보단 신비함 혹은 경외와 같은 쪽에 가까웠다.
박율은 어깨를 들썩였다.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도대체 뭐가 어쩌면 그렇게 되는 건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박석훈의 뒤이은 질문이었다.
그의 말에 박율은 잘 물어봤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까 말했듯, 마계에서는 현재 전란이 벌어졌을 거에요. 그러니까 인간계에 상주하는 악마들이 죄다 사라졌고.”
“그걸 율 씨가 일으킨거고?”
“우리의 목표는 혼란스러운 틈을 타 서울 한복판에 설치된 바알의 성을 파괴하는 거에요. 지금 다른 캠프랑 타국에도 이야기를 전하러 갔으니 조만간 답이 올 거에요.”
“그러고 난 뒤에는...?”
“바알과 전면전이죠.”
박율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박석훈은 표정을 일그러뜨리지만, 이윽고 그리 불가능한 생각은 아닌지 표정을 고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박율은 현재 상당히 강력한 상태였고.
믿기는 어렵다만,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가 바르바토스를 죽인 것으로 모자라 단탈리온의 마계를 되찾고 마왕이 되었다고 했다.
그의 계획이 마냥 불가능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럼 언제...”
쿵쿵쿵!
박석훈의 질문이 끝을 맺기 전 다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비롯한 이들의 시선이 소리를 쫓았다.
시선 끝에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배중탁이 있었다.
“하아...! 하아...!”
그는 가쁘게 숨을 골랐다.
“비상...비상...사람들...사라졌...”
그는 무어라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워낙 숨이 찬 탓에 제대로 된 문장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쟤 좀 진정시켜봐.”
서희였다.
그녀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래?』
“물이라도 좀 드십쇼.”
배중탁은 한명련이 옆에서 건네는 물을 벌컥 들이키고 나서야 진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
“뭐야? 무슨 일이야?”
박율이 물었다.
배중탁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뱉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박율을 보았다.
“사람들이 사라졌어.”
“뭐?”
그때까지도 일행들은 배중탁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사라지다니요?”
한명련과 마르가리타는 무슨 뜬 구름 잡는 소리냐는 듯한 얼굴을 했다.
“말 그대로야. 사람들이 사라졌어.”
“...”
배중탁은 당장에라도 바닥에 꺼질듯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제야 일행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말해봐. 그게 무슨 소리야?”
박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중탁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그랬다.
다른 캠프에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포탈을 타고 이동한 이들 중 일부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마지막은 제 2 공영 주차장이었다.
포탈을 타고 다른 캠프 혹은 타국으로 이동해야 했을 인원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고, 그것이 비단 그들이 있는 곳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배중탁의 이야기를 들은 박율의 얼굴이 사뭇 심각해졌다.
“전혀 소식이 없고?”
“하나도. 포탈이 다른 곳으로 연결됐다면 그에 따른 연락이 오던가 했을 텐데, 아무것도 없어.”
배중탁은 단호하게 말했다.
“망할...”
상황의 전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만에 하나 포탈이 다른 세계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면 이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현 상황을 바알이 눈치를 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 전에 소식통 역할을 하던 사자들을 잡은 것이고, 죽게 되어 소식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왜 지상의 악마들이 사라진 거지?”
의문이 남았다.
하지만 의문을 해결할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알이 정말 그들의 계획을 눈치채고, 사자들을 찾아 죽였다면 왜 악마들이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정말 바알이 눈치를 챘다면 악마들을 숨기는 것보단 더 많은 악마들을 지상에 주둔시키는 게 맞을 터였다.
“...”
결론은 두 가지였다.
함정 혹은 아직 눈치를 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전자일 가능성은 낮았다.
아무리 살아있는 사자들이 눈엣가시라지만, 지상에 주둔하는 악마들을 모조리 빼내고 함정을 만들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위험을 짙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후자였다.
포탈을 타고 다른 곳으로 넘어간 이들이 마침 근처에 있던 악마들을 만나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사자들이 잡히는 일은 드물었다.
포탈은 인적이 드물고, 외진 곳 혹은 악마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 설치되다보니 걸릴 확률은 극악이었다.
그럼에도 걸렸다는 건 근처에서 악마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인데.
“도대체 뭐지...?‘
박율은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떤 경우의 수를 생각해도 허점이 존재합니다.“
한명련이었다.
그 역시 박율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박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론이 어떤 방향으로 나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전자의 경우라면 충분히 위험을 감수하고 함정에 뛰어들만 했고, 후자의 경우라면 더 서둘러 계획을 속행해야 했다.
사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다한들 악마들 사이엔 기억을 읽는 존재도 있을 터.
결국은 계획이 새어나갈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일행들을 보았다.
”움직여야 할 것 같네요.“
* * *
이후 일행들은 곧장 전투를 준비했다.
일전의 전투에서 피로감이 남아있긴 했다만, 마르가리타의 치유와 더불어 적당한 휴식을 취한 터라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조금 불편한 정도였다.
”다른 곳에서도 당장 움직여 달라고 전해줘.“
캠프를 떠나기 전, 박율은 배중탁에게 말했다.
장난기도 많고, 진지한 면모가 없던 인물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배중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나름 일에 관해선 책임감을 느끼는 녀석이니, 그에게 맡기고 떠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박율은 일행들을 이끌고 캠프는 나섰다.
그들이 캠프를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새벽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바닥에 짙게 깔려있었다.
그나마 보이는 것이라고는 달빛이 끝이었다만, 이미 이런 환경은 숱하게 겪어온 이들이었다.
그들은 잠시 온 신경을 경계에 집중해 눈이 어둠에 익을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눈이 어둠에 익자 보이는 전경.
역시나 익숙한 폐허의 모습이었지만, 평소와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상당히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악마들과 마수들은 무릇 어두운 밤중에 활동량이 많아지는 것이 상식이다만, 이런 삭막함이 어색할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척후]
권능을 개방하여 주위를 탐색해도 결과는 같았다.
악마들이 보이지 않는다.
박율은 주위에 악마들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일행들을 이끌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서울이었다.
포탈을 통해 서울로 간다면 삽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겠다만,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포탈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희박하지만, 만약 이 모든 것들이 함정이라면 포탈을 타는 즉시 잡히게 된다.
당장 포탈 너머에서 악마들이 없다고 해도, 근처에서 목숨을 노리고 있을 확률이 다분했다.
하여 일행은 포탈보다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쿠앙!]
마르가리타의 품속에 숨어있던 고룡은 박율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마수를 이용한다.
한때 저주받은 숲을 지배하고, 최강의 마수라 불리우던 고룡은 이제 사자들의 편이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마르가리타와 박율의 편이지만.
”도와주겠어?“
박율이 말했다.
그의 말에 고룡은 작달만한 불꽃을 내뱉으며 울음을 토해내더니 이내 마르가리타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쿠앙!]
그는 멍하니 자신을 보는 일행들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박율과 마르가리타 뿐이나 다른 일행들 역시 대강 알아들은 듯했다.
그들은 고룡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더라도 깔리지 않게끔 멀리 떨어졌다.
고룡은 일행들은 어느정도 떨어지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날개를 펼쳤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날개가 파악 하고 펼쳐지며 고룡이 마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윽고 고룡의 덩치가 불어났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온몸을 웅크린 매화 하나가 봄을 맞아 잎사귀를 펼치며 만개하듯.
무릇 씨앗에 불과했던 나무가 세월을 겪으며 점차 성장하듯.
고룡은 온몸을 펼쳤다.
쿠궁!
비대해지는 그의 온몸을 따라 바닥에 내려앉으며 펼쳐지는 날개는 돌풍을 일게 만들었다.
”어어...“
점점 커다랗게 변하는 고룡을 보는 박석훈의 눈동자 역시 커다랗게 변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처음보는 광경일 테니, 그럴만도 했다.
저런 커다란 존재가 마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들고 있으니 말이다.
”괜찮아요.“
그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를 뻔했지만, 박율이 옆에서 그를 툭 치자 그는 다행히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이게...“
”마왕이 됐더니 사은품 같은 거로 얻은 친구에요.“
”예!?“
”뭐 그런 줄 아시고.“
[쿠앙!]
고룡은 산만한 덩치를 되찾았음에도 짧고 얇은 울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온몸을 바닥에 엎드려 몸을 낮추더니 위에 올라타라는 듯 턱을 흔들었다.
”아니 이게 뭔...“
여전히도 박석훈은 놀란 얼굴을 가만두지 못한 채 역동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표정이 무색하게 일행들은 고룡의 위로 올라탔다.
”그렇게 막 올라가도 돼요?“
너무 자연스러워 누가보면 자가용이라도 타는 줄 알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박율 마저 고룡의 위로 올라타고, 혼자 남은 박석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망설였다.
”안 탈 거에요?“
”타...타요!“
박율의 닦달에 박석훈은 결국 두려움을 무릎 쓰고 고룡의 위로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