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폐허에서 튀어나온 손은 바닥을 짚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흙먼지 사이로 손을 따라 튀어나오는 바르바토스는 초주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온몸이 뒤틀리고, 검은 피를 머금은 뼈가 튀어나와, 근육은 찢어져 그야말로 징그러운 몰골이었다.
[감히...]
부들부들 떨리는 바르바토스의 목소리는 터져나오는 피에 축축했다.
뿌득! 뿌드득!
이윽고 완전히 올라온 바르바토스는 반대로 접힌 관절을 원래대로 꺾었다.
온몸을 이리저리 꺾는 그의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했다.
지금 바르바토스의 상태는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흘러내리는 검은 피는 평평한 바닥에 웅덩이를 지게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것을 노리고 온 힘을 쥐어짜낸 일격이긴 했으나, 그 위력은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한창 부서진 몸을 수복하고 있던 바르바토스의 반대편 광대 쪽으로 박율의 망치가 날아들었다.
콰직!!!
망치에 얻어맞은 바르바토스는 그대로 날아갔다.
그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박율은 날아간 그의 몸뚱이를 쫓아 발을 떼었다.
[신속]
파앗!
실루엣만 남긴 채 사라진 박율은 아직 추락하지 못하고 허공을 유영하던 바르바토스의 앞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는 곧바로 바르바토스를 내려찍었다.
콰앙!!!
호를 그리며 날아가던 바르바토스는 박율의 일격에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바닥에 튕겨 각혈을 토해내는 바르바토스.
그 위를 선점한 박율은 망치를 높이 든 채였다.
그의 망치가 또 다시 바르바토스를 후려친다.
콰앙!!!
망치에 얻어맞은 바르바토스는 허리가 꺾인 채 반대편 바닥에 추락했다.
그의 몸뚱이가 떨어진 지반에 있던 마수들은 충격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정도였다.
[신속]
파앗!
박율은 또 다시 발을 떼었다.
바르바토스는 본능적으로 날아오는 박율을 향해 활을 들고 시위를 당기지만, 그의 팔은 이미 반대로 꺾인 채였다.
[크윽...!!!]
부상을 수복할 시간이 없던 바르바토스는 활을 다시 잡았다.
반달의 모양을 하고 있던 활은 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를 따라 형태를 달리했다.
뿌드득 소리와 함께 활대가 꺾이며 기다란 검이 만들어졌다.
콰앙!!!
검이 완성되는 순간 내려 찍히는 박율의 망치.
허나 검은 부서진다.
[...!!!]
형태는 검의 모습을 취했다지만, 아직 그 속까지는 완벽하게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크악...!!!]
부서진 검의 아래로 복부를 맞은 바르바토스는 피와 함께 고통 섞인 신음을 토해냈다.
“후...!!!”
박율은 다시 망치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내리찍는다.
바르바토스 위로 내려 찍힌 망치를 따라 바닥에 커다란 금이 벌어졌다.
콰앙!!!
한 번 더 망치를 내려찍자 벌어진 금 사이가 튀어 오르며 땅바닥이 솟아올랐다.
콰앙!!!
또 한 번의 일격은 바닥을 완전히 파괴했다.
하지만 박율은 멈추지 않았다.
피가 튀고, 살점들이 사방에 떨어지며, 악마보다 더한 악마처럼 보일지언정 조금의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일행들과 갈라지기 전 데판은 말했었다.
바르바토스에겐 두 가지의 형태가 있다고.
화살을 든 남자와 엽총을 든 악마의 두 가지 형태.
쉽게 말해 평상시의 형태과 전투를 위한 형태가 나뉘어 있다는 말이었다.
“흡...!!!”
콰앙!!!
지금의 바르바토스는 평상시의 형태였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활을 들었다.
그는 바르바토스, 마왕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그의 마계.
그와의 전투를 길게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박율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무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망치를 내려찍었다.
콰앙!!!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 속에서 완전히 형태를 잃은 바르바토스가 보였다.
박율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마지막으로 망치를 내려찍었다.
콰앙!!!
“하아...!!! 하아...!!!”
그의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광대를 타고 바닥에 추락했다.
쉭쉭대는 그의 숨소리만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이미 그가 서 있는 땅은 완전히 분쇄되어 있었다.
그만큼 박율은 혼신의 힘을 다한 셈이었다.
꿈틀.
축축한 고깃 덩어리가 된 바르바토스의 잔해가 움직였다.
박율은 망치를 한 번 더 내려찍어 비로소 그 잔해마저 산산히 조각을 냈다.
사방으로 흩어진 잔해는 완전히 고깃덩이가 되었다.
“후...!!! 선빵필승이다! 이 자식아!”
모름지기 싸움이라는 것은 어떻게 싸웠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똥밭을 구르던 꼴사납게 싸우던 결국은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박율은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을 훔쳤다.
워낙 힘을 쓴 탓에 박율 역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아마 바르바토스는 이렇게 처음부터 전력으로 꺵판을 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전투 형태로 바꾸지도 않고 방심을 해 이런 사단이 난 것이고.
박율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마수들과 악마들, 그리고 그의 일행들의 전투가 끝나지는 않았다만, 전장은 이미 반란군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이대로면 결국 이기는 것은 반란군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팍!!!
바닥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흐느적대는 다리가 문어를 연상케하는 촉수였다.
덥썩!
기다란 촉수는 박율의 다리를 잡았다.
“...!!!”
그리고 내팽겨친다.
쿠당탕!
바닥을 구른 박율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척후]
그의 눈에 권능을 개방한다.
사방으로 넓어지는 좁은 시야.
넓디 넓은 전장에 그를 공격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뭐야...!”
팍!!!
눈으로 쫓기도 전에 후방에서 땅을 뚫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율은 반사적으로 땅을 딛고 뛰었다.
그의 발밑으로 기다란 촉수 같은 것이 땅을 뚫고 박율을 노린 채였다.
“저게 뭐...”
그가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똑같이 올라온 촉수 하나가 박율을 내려찍었다.
쾅!!!
“큭...!”
박율은 재빨리 일어나지만, 이번에도 역시 촉수의 정체는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했다.
얇은 구멍이 보였다.
그 사이로 보이는 수십 가닥의 가느다란 무언가.
흙더미 속에 파묻혀 그 정체를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확실한 건 저 마수는 박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팍!
바닥에서 촉수가 또 다시 솟아올랐다.
박율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 망치를 내려찍었다.
콰직!
촉수가 터지며 형태를 잃었다.
터진 촉수는 빠져나온 구멍으로 다시 사라졌다.
반대편에서 다시 튀어나오는 촉수.
박율은 역시 촉수를 쫓아 망치를 휘둘렀다.
“...!!!”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촉수를 쫓아 망치를 휘두르던 중 그의 눈은 잔해더미 속 바르바토스를 향했다.
고깃덩이로 반죽이 된 줄 알았던 바르바토스의 잔해들이 어느새 꿈틀거리며 수복을 시작하고 있었다.
땅을 타고 기어 나오는 수십 가닥의 촉수들.
그것들은 박율의 몸을 휘감았다.
[신속]
박율은 곧바로 잔해들을 향해 발을 디디지만,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수십 가닥의 촉수들이 그를 방해했다.
특히 다리를 붙잡은 촉수 탓에 제대로 발을 디딜 수가 없어 신속의 힘을 내지 못했다.
“칫...!!!”
얼른 촉수들을 처치하고 바르바토스의 수복을 막고 싶었지만, 아무리 척후로 바닥을 살펴도 촉수들의 본체를 찾을 수가 없다.
바르바토스의 잔해들은 어느새 찰흙 마냥 뭉쳐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아우 씨!!!”
망치를 암만 휘두르고 촉수들을 터트려도, 어디선가 나타나는 촉수들은 계속해서 그를 방해했다.
이대로면 바르바토스가 원래의 몸을 되찾게 된다.
박율은 고개를 들어 고룡을 보았다.
그리고 눈빛으로 말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저 멀리에서 활공하던 고룡이 포효를 내질렀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뜻을 전할 수 있었다.
고룡이 불꽃을 쏘았다.
황금빛 비단을 연상케하는 불꽃은 박율을 향해 쏟아진다.
[유리]
박율은 불꽃이 자신에게 닿기 전 그에게 닿은 촉수들과 함께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사라진 부분이 본체와 분절되어 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특정 부위만 은신을 한 것마냥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불꽃은 바닥에 내려앉았다.
화아아!!!!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바닥을 녹인다.
녹은 바닥, 그 사이로 촉수의 정체가 선연히 드러났다.
마치 문어를 닮은 형태에 개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촉수들이 붙어있었다.
문어를 닮은 마수는 열기에 몸부림을 쳤다.
그것을 덮고 있던 바닥 덕에 그리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만, 그 열기만으로 겉표면이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이내 다시 촉수들과 나타나는 박율.
열기에 몸부림을 치던 촉수들은 박율을 반쯤 놓은 상태였다.
“찾았다...!”
박율은 자신의 밑에 꿈틀거리는 촉수들의 본체를 보았다.
그리고 망치를 높이든다.
그때까지도 문어를 닮은 마수는 사그라들지 않는 열기에 몸부림을 치는 중이었다.
콰직!!!
망치가 문어의 가운데를 터트릴 듯 내려찍는다.
스펀지 마냥 충격을 흡수하는 두꺼운 피부는 한 번에 뚫리지는 않았다만, 박율의 일격에 피부에 커다란 생채기가 생겼다.
박율은 한 번 더 망치를 내려찍었다.
콰직!!!
두 번째 일격에 망치를 따라 피부가 갈라진다.
그리고 마지막.
콰직!!!
피부가 찢어지며 먹물을 닮은 검은 핏물이 솟구쳤다.
열기와 고통에 꿈틀거리던 마수의 움직임이 축 늘어져 이내 멎었다.
검은 피부는 하얗게 변한 채였다.
박율은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바르바토스의 수복을 저지해야 한다.
“...!!!”
허나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바르바토스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정도 구색을 갖춘 악마의 모습을 되찾은 후였다.
그 모습은 눈을 가린 녹색의 모자와 옷, 그리고 회색의 망토가 돋보이는 남자였다.
아직 완전하게 회복하지는 못한 듯 군데군데 제대로 빗어지지 않은 신체들이 돋보였다.
허나 하나 완벽하게 수복을 끝낸 부위가 있다면 그것은 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팔과 하나로 연결된 엽총이었다.
아니, 엽총이라기엔 너무 기괴하고 섬뜩했다.
팔의 윤곽을 따라 손잡이와 그의 손이 연결된 기다란 총신이 있었고, 드러난 엽총의 모든 부분에 눈이 있었다.
수십 개의 눈은 각기 자아를 가진 듯 사방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총을 박율을 향해 든 채였다.
그 끝에 붙은 총알은 날카로운 이를 딱딱 부딪히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녀석이 감히...]
부들부들 떨리는 총을 따라 목소리가 울렁거렸다.
역류하는 피 때문이기도 했다.
수십 개의 눈이 징그럽게 사방으로 움직였다.
일순간 눈이 박율을 향해 모아졌다.
박율은 수십 개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생각할 틈도 없이 발을 굴렀다.
위험하다.
저것을 맞으면 안 된다는 본능이 그의 발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허나 이미 그의 총신은 박율을 향해있었다.
늦었다.
탕!!!
엽총의 끝에서 탄두가 빠져나온다.
회색빛의 탄두는 날카로운 이빨을 부딪히며 박율을 향해 나선으로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