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모자에 가려 바르바토스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만, 확실한 건 그는 불쾌해 보였다는 것이다.
사방으로 움직이는 그의 시선이 그것을 증명했다.
[...감히 나의 구역에서 반란을 일으키다니.]
마계 전역에 울리는 그의 전언.
서희는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마치 귀에 대고 확성기로 이야기를 하는 세기였다.
하지만 귀를 막는다고 막히는 소리는 아니었다.
“재회의 기쁨은 나중에 나누기로 하고, 일단은 할 일 먼저 합시다.”
박율은 사뭇 진지하게 말을 잇고는 마르가리타에게 팔을 내밀었다.
그의 팔에 검게 그을려있었다.
“치료 좀 부탁해요.”
『혹시...』
“원래 애들은 치고 박고 싸우면서 크는 거잖아요.”
마르가리타는 씁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박율의 팔을 치료했다.
검게 변한 팔이 다시 살구색 피부를 되찾았다.
하지만 군데군데 그을린 상처는 남아있었다.
『급하게 하는 거라 완전 회복되진 않을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해요.”
박율은 치료된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옆에 있던 고룡의 위에 올라탔다.
『조심해...!』
“암요.”
박율이 발로 툭하고 고룡을 치자, 고룡은 날개를 펴고 비상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
돌풍이 이는 듯 날개를 따라 바람이 솟구쳤다.
이내 하늘 높이 날아가는 박율과 고룡.
“우리도 다시 시작합시다.”
한명련이 말했다.
잠시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사이 주변엔 되살아난 마수들이 득실거렸다.
그는 다시 검을 높이 들고 검기를 날리며 전장에 뛰어들었다.
[다시 시작하지.]
데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옆에서 검은 흑을 뒤집어 쓴 서희는 박율이 살아있는 것을 보니 이전보다 한결 후련해진 모양이었다.
그녀는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마지막 남은 마르가리타는 고룡을 타고 바르바토스를 향해 날아가는 박율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미약한 미소가 입가에 서렸다.
저 멀리에서 마바스의 총이 하늘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 끝에는 고룡과 박율이 있었다.
마르가리타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탕!
마바스의 총에서 가느다란 총알이 공기를 꿰뚫고 나선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팅!
날아든 마르가리타의 망치가 총알을 쳐낸다.
고룡을 노린 총알은 바닥에 처박혔다.
[...]
마바스는 불쾌하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감히 내 아이들한테 쏘려고.』
[칫.]
마바스는 콧잔등을 씰룩이며 엽총을 장전했다.
그리고 이번엔 마르가리타를 향해 쏜다.
탕!
마르가리타는 몸을 낮게 숙인 채 달렸다.
총알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마바스가 다음 총알을 장전하기 전 마르가리타는 도약했다.
그리고 거대한 망치를 내려찍는다.
『...!』
쾅!!!
허나 뒤에서 달려든 곰을 닮은 마수가 그녀를 바닥에 쳐냈다.
마르가리타를 노리고 쏜 줄 알았던 총탄이 그녀를 넘어 죽어있던 마수를 맞춘 것이었다.
『흥.』
마르가리타는 어깨에 묻은 흙은 털어내며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양손으로 철퇴 같은 망치를 들었다.
마수가 달려든다.
마르가리타는 다른 기행 없이 가볍게 망치를 휘둘렀다.
콰앙!!!
망치에 맞은 마수가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마수는 일그러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한방에 죽었다.
마바스는 여전히 불쾌한 눈빛으로 마르가리타를 보고 있었다.
『뭘 봐.』
마르가리타는 땅을 박찼다.
마바스는 손가락을 둥글게 입에 물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마수들.
딱봐도 평범한 마수들은 아니었다.
머리 셋 달린 사자부터 스콜피온의 몸에 악마의 머리를 한 마수, 열 개가 넘는 팔을 가진 캥거루까지.
기이하게 생긴 마수들이 마르가리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마르가리타는 멈추지 않았다.
흘깃 본 측면엔 그새 마수들을 처리하고 온 데판과 한명련이 있었다.
콰앙!!!
마수들은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에 바닥에 처박혔다.
데판의 주먹은 사자를 형태도 없이 찢었고, 한명련의 검기는 스콜피온을 머리와 꼬리로 나누었다.
캥거루는 가볍게 휘두르는 마르가리타의 망치에 쓸려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날아간 뒤였다.
그리고 마르가리타는 곧장 마바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망치를 내려찍는다.
콰앙!!!
망치가 지반을 뒤흔든다.
[큭...!]
마바스는 온몸으로 망치를 막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군단장이었던 터라 쉽게는 당하지 않았다.
마르가리타는 내려찍은 망치를 다시 들어 옆으로 마바스를 후려쳤다.
콰광쾅!!!
망치에 맞은 마바스는 바닥을 수차례 튀며 떨어졌다.
[크윽...]
마르가리타는 그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곧장 바닥을 차고 달려드는 마르가리타.
마바스는 어떻게든 공격을 하려고 총을 들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녀의 망치는 또 다시 마바스를 후려쳤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마수들은 데판와 한명련이 처리하는 중이었다.
축구공마냥 사방으로 튀는 마바스는 어느새 검은 피에 점철되어 각혈을 토해냈다.
이제는 일어나기도 힘든 상태로 그는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엽총을 자신에게 겨누었다.
탕!
파열음과 함께 마바스는 쓰러졌다.
곧 일어나는 마바스의 온몸은 울퉁불퉁하게 변하고, 이내 괴상한 형태로 변했다.
하지만 그의 변신이 무색하게 달려든 마르가리타의 망치는 그를 형태도 남김없이 내려찍었다.
콰앙!!!
형태를 잃은 마바스는 움직임도 없었다.
꿈틀거리는 반사작용이 끝이었다.
『후...!』
마르가리타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탑을 보았다.
* * *
“가자! 쿠앙아!”
[쿠아아아아아아아!!!!!!!!!!!!!!!!!]
고룡은 포효를 내질렀다.
박율은 반쯤 귀를 막은 채였다.
안 그래도 고막을 터트릴 듯한 괴성을 바로 옆에서 들으려니 진짜 달팽이관이 터질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고룡의 머리 위에서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게 멋이니까.”
박율은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힘을 불어넣는다.
그가 상대하는 존재는 마왕.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기별도 없을 터였다.
한 방 한 방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어차피 한 방에 죽일 상대는 아니지만, 큰 피해는 줄 수 있을 터였다.
박율의 망치가 점점 크기를 불려가며 이내 제 고룡과 맞먹는 수준의 크기까지 커졌다.
하지만 박율은 곧바로 망치를 휘두르지 않았다.
바르바토스는 마왕, 쉽게 당해줄 위인은 아니었다.
고룡은 성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화아아!!!
고룡의 아구에서 불꽃이 새어나왔다.
이윽고 불꽃이 포탄처럼 날아간다.
쾅!!!
불꽃이 탑의 허리에 부딪히며 폭발음이 울렸다.
탑이 잠시 넘어질 듯 흔들리긴 했다만, 아직 탑이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칫...”
탑을 무너뜨릴 요량으로 쏜 불꽃이었지만, 화력이 부족했다.
후속타를 날리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고룡을 길들이다니.]
고룡을 본 바르바토스는 새삼 탄사를 내뱉었다.
마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가지지 못한 마수였다.
강압적으로 길들이려 하던, 회유를 하던 고룡은 자신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렇다고 ‘키마이라’나 ‘케로베로스’처럼 강제로 하기엔 너무나 강력한 마수였다.
바르바토스는 쓴 침을 삼켰다.
그리고 손을 들어 등허리에 짊어 맨 활을 꺼냈다.
화살을 딱히 시위에 걸지 않아도, 그 끝에서부터 흑을 토해내는 화살이 만들어졌다.
퉁!
바르바토스는 곧바로 당긴 시위를 놓았다.
팍!
직선으로 날아간 화살은 눈 깜짝할 새에 고룡의 날개에 박혔다.
[쿠아아아아아!!!!!!!!!!!!!]
고룡은 다리에 검은 화살이 박히자 고통 섞인 울음을 내뱉었다.
바르바토스는 화살 한 발로 끝내지 않았다.
퉁! 퉁! 퉁!
연달아 날아가는 화살이 고룡을 향해 치닫는다.
고룡은 화살을 피하지만, 날아온 화살들은 방향을 꺾었다.
파바박!
[쿠아아아아아아아!!!!!!!!!!!!!!!!]
연속으로 날아온 화살에 고룡이 몸부림을 치자 박율의 몸이 잠깐 기울었다.
“큽...!”
박율은 겨우 중심을 되찾지만,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것은 탐색전.
바르바토스 역시 자잘한 공격만 할 뿐이었다.
확실한 순간이 오지 않을 때까지 섣부른 공격은 금물이었다.
“조금만 버텨 줘.”
퉁!
또 다시 화살들이 날아온다.
고룡은 날개를 펼치고 위로 활강했다.
고룡을 따라 화살들이 방향을 꺾는다.
“아래로!”
박율은 날아오는 화살들을 보며 소리쳤다.
그의 말을 따라 고룡은 날개를 접고 아래로 내려갔다.
뒤를 따라 쏟아지는 화살들은 곡선을 그렸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당한다.
박율은 고룡의 비늘을 꽉 잡은 채였다.
그 사이 고룡의 불꽃이 준비된 듯했다.
“가자.”
박율이 말했다.
고룡은 쫓아오는 화살들을 피해 활강하며 다음 일격을 준비했다.
파앗!
일순간 고룡의 날개가 활짝 펴진다.
그리고 하늘 높이 비상했다.
검붉은 구름들이 가득한 그 어딘가로 솟았다.
바르바토스는 그를 쫓아 활을 쏘지만, 고룡이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쏘는 것을 멈추었다.
사라진 고룡을 따라 구름들이 빨려 들어가듯 용솟음쳤다.
아주 잠시 공백이 흘렀다.
남은 것이라곤 고룡이 사라진 구름 속을 응시하는 바르바토스의 옅은 숨소리 뿐이었다.
그는 언제든 쏠 수 있게 활을 높이 들고 있었다.
[...]
이윽고 구름을 뚫고 나타나는 고룡과 박율.
[쿠아아아아아아아!!!!!!!!!!!!!!!!!!]
고룡의 날갯짓을 따라 회오리치는 구름들이 쏟아진다.
그 사이로 고룡은 커다란 아구를 벌렸다.
박율은 고룡의 이마에 서서 뛸 준비를 했다.
“간다...!”
화아아!!!
고룡이 불꽃을 터트리고, 그 뒤를 따라 박율이 뛰었다.
바르바토스 역시 시위를 당겼다.
부서질 듯 휜 활에 생겨나는 검은 화살은 마기를 머금었다.
닿는 것은 모조리 검게 불태울 정도로 검은 화살이었다.
퉁!!!
마기를 잔뜩 머금은 화살이 꼬리를 그리며 날아오는 불꽃을 향해 날아간다.
하지만 박율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머리를 향해 쇄도하는 화살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화살과 불꽃이 맞부딪히려는 순간.
[유리]
박율의 왼손에 그려진 문양이 빛을 발한다.
[...!!!]
동시에 박율과 불꽃이 일순간 사라졌다.
화살이 불꽃이 있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가자 다시 나타나는 불꽃.
그 뒤에서 박율은 어깨를 크게 돌린 상태였다.
바르바토스는 다시 공격을 준비하지만, 이미 늦은 채였다.
콰아앙!!!
불꽃이 탑과 맞부딪히며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왔다.
번듯하게 솟아있던 탑은 불꽃과의 충돌로 중심을 잃었다.
바르바토스 역시 아주 찰나의 순간 무너지는 탑을 따라 몸을 기울었고, 박율은 뿌연 흙먼지 사이에서 나타났다.
[...!!!]
“뒤져라...!!!”
박율은 활처럼 휜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망치를 최대한 크게 휘둘렀다.
탑이 무너지며 인 흙먼지를 걷어낼 정도로 파괴적인 박율의 망치는 바르바토스를 내려찍었다.
콰아앙!!!
그나마 뼈대로 버티던 탑은 박율의 망치로 그대로 무너진다.
박율은 그때까지도 망치를 내려찍고 있었다.
쿠구궁!!!
탑이 완전히 내려앉고, 박율은 그 사이에서 거친 숨을 토하며 일어났다.
전장의 중심에 있던 탑은 이제 폐허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너진 탑을 본 반란군들의 환성이 이어졌다.
턱!
폐허에서 손이 하나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