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작렬하는 불꽃이 강진호를 향해 쏟아진다.
“...!!!”
강진호는 반사적으로 발을 뒤로 뺐다.
[순보]
그의 신형이 사라지며 시야가 아득한 저 멀리에서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고룡의 불꽃은 그때까지도 그를 쫓았다.
화아아!!!
빠른 속도로 불꽃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지만, 불꽃은 그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을 찾지 못한 강진호는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까이 있던 카마이라의 뒤로 몸을 숨겼다.
[카아아아아아!!!!!!!!!!!]
동시에 불꽃이 키마이라를 덮치며 그것을 집어삼킨다.
키마이라는 고통 섞인 괴성을 내뱉으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한들 불꽃은 멎지 않았다.
불꽃은 자비도 없이 키마이라를 녹였다.
검붉은 키마이라의 털이 불에 그을리고, 그 안에 드러나는 살갗이 뚝뚝 떨어졌다.
그 사이로 선연히 드러나는 새하얀 뼛조각마저 형태를 잃고 있었다.
이내 불꽃은 완전히 사그라들고.
자리엔 이제는 반쯤 녹아 뼛조각만 남은 키마이라와 온몸 곳곳이 검게 그을린 강진호가 남아있었다.
키마이라의 몸뚱이로 어떻게든 불꽃의 직격은 막았다지만, 그 열기나 새어나간 불꽃은 막지 못한 듯했다.
“크윽...”
강진호는 반쯤 그을린 채 고통에 신음했다.
불꽃으로 인한 피해가 치명적이지는 않았다만, 박율의 옆으로 이를 드러내는 고룡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또 무슨 짓을...”
“무슨 짓이라기보단 친구를 사귀고 왔거든.”
강진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와 전투를 벌이고 사라진 지 몇 시간 만에 또 저런 기행을 벌였다.
[쿠아아아아아아!!!!!!!!!!!]
고룡이 포효를 지른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근처에 있던 마수들이 죄다 줄행랑을 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강진호 역시 귀를 찢는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물러났다.
“아 그리고 네 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
“네 신념이 뭐든, 변하게 된 계기가 뭐든 내 생각은 안 바뀌어. 넌 그냥 비겁한 배신자일 뿐이야. 죄 없는 이들을 죽이는 살인마고. 이 쓰레기야.”
박율은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망치를 꺼내 들고 달려들었다.
카앙!!!
강진호는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공격을 막지만, 직전 불에 그을려 부상을 당한 탓에 방어가 제대로 되진 않았다.
박율은 틈을 놓치지 않고 더욱 빠르게 치고들었다.
그 역시 부상을 당한 몸이긴하나, 아직은 버틸만 했다.
카앙!!!
쇳소리가 울리며 뼈를 타고 진동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이를 꽉 깨물며 고통을 참았다.
“질리지도 않는 군...!”
“네가 할 소리냐...!”
[격랑]
강진호의 검이 드높은 격에 둘러쌓인다.
카앙!!!
검과 망치가 맞부딪히며 울리는 쇳소리는 더욱 커졌다.
박율은 지지 않고 망치에 힘을 불어넣었다.
“끝까지 가보자...! 그래...!”
“...”
강진호는 입을 꾹 다문 채 검을 다시 잡았다.
[전력]
그의 세 번째 권능.
손끝에서부터 퍼지는 전기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순보.
그의 신형이 사라짐과 동시에 박율의 측면에서 나타났다.
박율의 시선은 그를 온전히 쫓고 있었다.
카앙!!!
이어지는 전투.
찰나의 순간 쏟아지는 쇳소리는 중첩되고 중첩되어 굉음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력차는 압도적이었다.
지하감옥처럼 움직임이 제한되지 않은 곳에서 박율은 이전처럼 쉽사리 당해주진 않았다.
아무리 바알의 마기를 더 받아들였다곤 하나, 그것으로 박율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전세는 이미 박율에게로 기울었다.
콰직!
일순간 박율의 망치가 강진호의 팔을 후려쳤다.
콰과광!!!
망치에 맞은 강진호의 몸뚱이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처박혔다.
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이미 그의 몸은 만신창이.
그는 거친 숨을 뱉으며 박율을 노려보았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뭐 어쩌라고.”
강진호는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박율과 거기를 벌렸다.
그리고는 잠시 전황을 살피더니 이내 순보를 사용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쿠아아아아아!!!!!!]
고룡은 강진호를 찾는 듯 포효를 질렀다.
“괜찮아. 괜찮아.”
박율은 그런 고룡을 툭툭 치며 달랬다.
어차피 지금 저놈을 쫓으면서 시간 낭비나 할 이유는 없었다.
강진호는 이미 전투와 불꽃을 맞은 탓에 피로가 누적된 상태일 터.
이번엔 분신체를 가져왔다거나 한 느낌은 아니었다.
지금 그의 상태론 딱히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알아서 죽어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이게...”
서희의 목소리였다.
박율은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고룡을 보며 목소리를 떨었다.
“아, 인사해요. 내 친구 쿠앙이.”
박율은 작은 어깨를 떨고 있는 서희에게 능청스레 말했다.
그녀는 벙찐 얼굴로 고룡과 박율을 번갈아 보았다.
“도대체...”
“어쩌다 만났는데, 뭐 어쩌다 친해졌어요.”
서희는 혼란스러운 듯한 얼굴이었다.
살아 돌아온 박율이 반갑기는 하나, 지금 이 상황이 당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율아!!!』
뒤이어 마르가리타 역시 마수들을 헤치우고 박율에게로 달려왔다.
그녀의 눈은 고룡을 향했다.
[쿠앙.]
고룡은 새침하지만 반갑다는 듯 작은 울음을 토해냈다.
마르가리타 역시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얼굴을 했다.
“뭐 어쩌다보니까 오해도 풀고 친해졌어요.”
* * *
박율의 손이 고룡에 닿았다.
하지만 고룡은 그제까지도 박율을 경계하고 있었다.
“괜찮아.”
박율은 망치를 든 손을 들어 좀 더 부드러운 손길을 내밀었다.
“...!!!”
이제야 고룡과 가까워졌다고 생각이 들즈음 고룡의 철퇴같은 꼬리가 날아왔다.
박율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콰과광!!!
꼬리에 맞은 박율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꼬리의 안쪽으로 맞은 덕에 그리 큰 충격을 입진 않았다.
“아니, 씨, 이정도면 됐잖아.”
박율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룡은 물러선 채 위협적인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이전보다는 얌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한 번에 성공할 거라고 생각 안 했어.”
박율은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고룡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도 천천히, 고룡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콰앙!!!
“아...”
벽에 박힌 채 박율은 짧은 신음을 토해냈다.
“한 번만 더.”
온몸이 으스러질 듯 아프지만, 견딜만하다.
콰앙!!!
“젠장.”
세 번째 같은 곳에 박혔다.
그래도 알아낸 것이 있다면 꼬리가 닿는 범위 내로 다가가면 꼬리를 휘두른다는 것이다.
불꽃은 이제 쏘지 않는다.
죽일 생각까진 없다는 소리다.
“...?”
고룡의 눈이 이번엔 박율이 아닌 바닥을 향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떨어뜨리자 이전에 수화에게서 받았던 음식들이 떨어져 있었다.
품에 넣어둔 것이 주머니가 찢어지며 떨어진 듯했다.
감자와 제비고기였다.
박율은 슬쩍 그것들을 집었다.
고룡의 눈이 박율의 손을 쫓는다.
박율은 제비고기를 조금 떼어 고룡에게 던졌다.
그러자 고룡은 덥썩 그것을 먹었다.
“오호라.”
오래 전 용이 제비고기를 좋아한다는 낭설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실제일 줄이야.
박율은 꼬리가 닿지 않는 마지노선까지 천천히 다가갔다.
“이럴 시간도 없는데. 망할.”
모르겠다.
박율은 그대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그 앞으로 감자와 제비고기를 내려놓았다.
“우리 대화나 좀 해보자.”
[쿠아아아아아!!!!!!!!!]
“대화는 무슨.”
보통 저 정도 마수쯤 되면 완벽한 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사고를 할 줄 알기 마련이었다.
박율은 팔짱을 낀 채 고룡을 보았다.
“뭐가 문제야?”
[...]
“마르가리타 누나랑도 만났고, 뭐가 문젠진 모르겠지만, 사과도 했잖아.”
[쿠아아아아!!!!]
고룡은 이전보다 약한 포효를 내뱉었다.
“뭔가 석연찮은 게 있는 거냐?”
고룡은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콧김을 내뱉었다.
“...?”
그러던 중 그제야 박율의 눈에 보이는 하나.
고룡의 이마에 상처가 있었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망치로 맞은 자국이었다.
박율의 눈은 고룡의 이마에 이어 망치로 갔다.
그리고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망치를 높이 들었다.
[쿠아아아아아아!!!!!!!!!!!!!]
내지르는 포효.
역시나 공포 혹은 무언가에 격앙된 반응이었다.
박율은 조심스레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고룡의 포효가 줄어들었다.
박율은 발로 툭 밀어 망치를 멀리 보냈다.
고룡은 그제야 잠잠해졌다.
“으흠...”
망치를 무서워한다.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누나가 망치로 때려팼나보네.”
이유야 어찌됐든 박율은 망치를 저멀리 던져놓은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고룡에게로 걸어갔다.
물론 한 손엔 제비고기와 감자를 든 채였다.
“후우...”
한 발자국.
다가간다.
고룡은 꼬리가 닿는 범위까지 왔음에도 꼬리를 날리지 않았다.
경계심을 사뭇 푼 듯했다.
박율은 안주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래, 널 해칠 생각이 없다니까.”
그리고 인고의 시간이 지나 박율은 고룡에게 닿을 수 있었다.
“후...”
고룡은 생각보다 얌전하게 박율을 맞았다.
그는 손에 쥔 제비고기와 감자를 건넸다.
고룡은 얌전히 박율이 건넨 것들을 받아 먹었다.
그리고 박율은 아주 조심스런 손길로 고룡을 쓰다듬었다.
마치 거대한 강아지를 다루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래.”
한창 박율이 고룡과 교감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고개를 들었다.
[...]
“말...한 거야?”
그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고룡의 소리를 들었다.
고룡은 그르릉 소리를 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고룡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다는 소리였다.
박율은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에게 집중했다.
고룡은 작은 포효를 내뱉었다.
박율은 고룡에게 손을 얹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마르가리타 누나가...”
* * *
“누나가 얘 망치로 줘 팼다면서요?”
『아니 그건...』
“그래도 그렇지. 어린 애를 그렇게 복날 개 잡듯 패면 어떡해요.”
마르가리타는 짐짓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고룡은 무언가 투정을 부리는 듯 작은 울음을 터트렸다.
마르가리타는 그런 고룡을 보더니 그에게 손을 얹었다.
“대충 어떤 상황이었는 지는 알겠지만, 얘 그거 때문에 삐졌었대요.”
『...내가 미안해. 그럴 생각은 없었어.』
“그래, 인마. 사과하잖아. 이제 받아줘.”
박율은 고룡을 툭툭 치며 말했다.
고룡은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꼬리를 살랑거렸다.
마르가리타는 그것을 보곤 무거운 웃음을 지었다.
“내가 응석받이 다 해줬으니까, 괜찮을 거에요. 이제.”
『고마워.』
“고맙기는 뭘.”
박율이 전장에 늦게 도착한 이유도 같은 이유였다.
그 자리에서 고룡의 응석만 거의 몇 시간을 들어줬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나름 수확은 컸다.
최강의 마수라 불리는 고룡이 박율의 편에 섰다.
“...!”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렸다.
바르바토스의 성 최상부.
그곳에서 엄청난 마기의 무언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내 모습을 드러내는 그 정체.
독수리 장식이 돋보이는 철투구를 쓴 남자였다.
그의 등허리엔 기다란 활이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활잡이 같은 그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르바토스다.]
데판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