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마르가리타는 검게 작렬하는 태양을 보고 있었다.
벌써 계획했던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박율에게서 온 소식은 없었다.
마르가리타의 곁으로 악마 하나가 걸어왔다.
[...바르바토스의 마수들이 점점 더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수많은 마기들이 바르바토스의 성을 중심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마르가리타는 말했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었다.
최악의 경우엔 박율 없이 계획을 감행해야 하겠지만.
그들은 기다렸다.
* * *
시간은 어느새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순 없었다.
이상의 지체는 위험했다.
부디 시간에 맞춰 박율이 등장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지하감옥이 무너진 직후, 가장 바르바토스의 군세가 어수선할 때였다.
무수히 많은 마수들이 지하감옥을 무너뜨린 이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더 늦었다간 바르바토스 성의 경계가 더 강화되고, 군세는 몰릴 것이었다.
지금이 반란의 적기였다.
마르가리타는 무거운 한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데판을 본다.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고양이 형태의 데판은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갔다.
[준비해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데판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체력을 비축하고 있던 악마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서희와 한명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희는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박율이...!”
[더이상 기다릴 순 없다. 이상의 지체는 패착의 길로 이어질 거다.]
데판은 단호하게 말했다.
서희는 입을 달싹이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도 없었다.
아주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데판을 중심으로 악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불안한 눈으로 서희와 한명련이 따라갔다.
쾅!!!
캠프를 나서자마자 데판의 주먹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반란을 일으킨 세력을 찾아 주변을 서성거리던 마수들이었다.
정면의 마수들을 모조리 터트린 데판은 가슴을 넓게 펼쳤다.
그리고 그는 소리쳤다.
[시작이다!!!]
그의 목소리가 마계 전역에 울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바르바토스의 성을 중심으로 네 방향에서 마기들이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바르바토스의 마수들 역시 괴성을 내질렀다.
허공에서 울리는 두 마기가 격돌했다.
사방에서 굉음과 괴성이 울린다.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소리들이었다.
검은 핏물들이 바닥을 적시고, 온기를 간직한 살점들이 메마른 나무에 걸린다.
바르바토스는 지하감옥이 무너진 순간부터 반란을 대비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완벽하게 반란을 대비하기는 무리였다.
군세는 절대적으로 반란군이 열세였지만, 상황은 반란군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데판이 이끄는 병사들을 중심으로 네 개의 방향에서 쏟아지는 악마들의 진격에 바르바토스의 마수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기세를 몰아 단탈리온의 반란군들은 더욱 빠르게 진격했다.
콰직!
야차로 변한 서희의 주먹이 달려드는 원숭이형 마수의 뇌수를 터트렸다.
검은 핏물과 투명한 액체가 진득하게 떨어지는 와중에도 서희의 눈은 서성였다.
어디에서도 박율이 보이질 않았다.
차악!
그녀의 옆으로 새하얀 검기가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두 동강 난 마수 하나가 떨어졌다.
“조심.”
한명련이었다.
그는 서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뒤에서 달려드는 짐승형 마수를 베어 갈랐다.
“박율이 안 보이는데!?”
서희가 소란스러운 전장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소리를 높였다.
“다른 곳에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한명련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는 흠칫 고개를 돌리더니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의 검은 수십의 마수들을 베어가르고 위험에 빠진 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데판과 마르가리타 역시 전력을 쏟아내며 사방에서 달려드는 마수들을 처리했다.
[진격하라!!!]
데판의 목소리가 또 다시 전장에 울렸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반란군은 더욱 빠르게 진격했다.
반란군의 군세는 어느새 두꺼운 마수들을 뚫고 바르바토스의 성에 다다르고 있었다.
“너무 순조로운 것 같습니다!!!”
어느새 선봉에 선 데판의 옆으로 달려와 검기를 휘두르던 한명련이 소리쳤다.
그의 말대로 상황은 너무나도 순조롭게 흘러갔다.
이상하리만큼 순조롭게 말이다.
보통 계획은 계획한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었다.
쿠구궁!!!
그 순간 지진이라도 인 듯 진동이 일었다.
그 진동은 점점 더 커져 이내 바닥에 금을 가게 만들었다.
이윽고.
쾅!!!
지반이 폭발했다.
“조심...!!!”
한명련은 쏟아지는 돌무더기에 검기를 날렸다.
파사삭하며 돌무더기들이 흩날린다.
“...!!!”
그리고 그 뒤로 괴상한 마수가 바닥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자의 머리를 하고 뱀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괴상한 짐승이었다.
완전히 땅바닥으로 올라온 마수가 괴성을 내질렀다.
사자의 울음소리와 뱀의 가느다란 소리가 합쳐 듣는 것만으로 공포를 엄습하게 만드는 울음소리가 만들어졌다.
[카마이라다...!!!]
마수를 마주한 악마 하나가 손가락을 떨며 소리쳤다.
키마이라는 발을 굴렀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던 악마들을 물어뜯었다.
콰직!!!
검은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축축한 핏물이 바닥에 내리깔린다.
그 위로 상반신만 남은 악마는 부르르 몸을 떨지만, 이내 생기를 잃고 늘어졌다.
[저놈은 내가 맡는다!!!]
데판과 함께 선봉에 있던 거구의 악마가 소리쳤다.
앞으로 걸어나온 거구의 악마는 옆에 보이는 나무를 뿌리채 뽑았다.
그리고 창을 휘두르듯 나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거구의 악마는 키마이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키마이라 역시 달려드는 거구의 악마를 보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쾅!!!
두 거구가 부딪히며 굉음이 울려퍼진다.
거구의 악마는 나무를 휘둘러 키마이라의 허파를 후려쳤다.
쾅!!!
나무에 얻어맞은 키마이라가 방향을 잃고 옆으로 조금 물러났다.
기세를 몰아 거구의 악마는 더욱 힘차게 나무를 휘둘렀다.
쾅!!!
쾅!!!
나무와 키마이라가 부딪힐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다.
쾅!!!
거구의 악마가 내리친 일격에 키마이라가 잠시 주춤 중심을 잃었다.
틈을 놓치지 않고 거구의 악마는 나무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내리찍는다.
[죽어라!!!]
쾅!!!
[크르르르...]
혼신의 힘을 담은 일격이었지만, 치명적이진 않은 듯했다.
키마이라는 불쾌한 통증에 이를 갈았다.
뱀의 꼬리가 움직인다.
쉭쉭 혀를 내밀던 뱀 꼬리가 거구의 악마의 목을 물어뜯었다.
콰직!!!
[큭...!]
뱀에게 목을 물린 거구의 악마는 뱀을 떼어내려 발버둥을 치지만, 뱀의 이빨은 그를 놓지 않았다.
뱀은 거구의 악마를 물은 채로 높이 들었다.
거구의 악마는 허공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커허억...]
새파랗게 변한 그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마치 바람을 빵빵하게 넣은 풍성마냥 점점 크기를 불려갔다.
그리고 더이상 부풀지 못할 때
펑!!!
새파란 핏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리고 날아간 핏물은 주변에 있던 악마들에게까지 번져, 파란 핏물을 맞은 악마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아아...]
악마들은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두 물러서라!!!]
데판이 소리쳤다.
그는 악마들을 등지고 키마이라 앞에 섰다.
[크아아아아아!!!!!!!]
키마이라가 울부짖는다.
그것은 곧바로 자신을 노려보는 데판을 향해 발을 굴렀다.
데판은 한쪽 다리를 뒤로 끌고 팔을 넓게 펼쳤다.
그리고 달려드는 키마이라를 몸으로 받는다.
쾅!!!
데판은 허리를 뒤로 꺾어 그대로 키마이라를 뒤로 넘겼다.
쿵!!!
몸이 뒤집어져 무방비가 된 키마이라는 데판이 달려드려하자 꼬리를 먼저 휘둘렀다.
데판은 달려드는 꼬리를 피해 몸을 줄이고 키마이라 위로 높이 뛰었다.
그리고 다시 몸뚱이를 불린다.
쿵!!!
그의 몸이 키마이라 위로 떨어졌다.
[커어엉!!!!!]
키마이라는 고통 섞인 울음을 토해냈다.
꼬리는 여전히도 데판을 죽이려 혀를 쉭쉭 내밀지만, 데판은 키마이라의 몸을 제압한 뒤 꼬리를 움켜쥐었다.
콰직!!!
데판이 키마이라를 제압한 사이 마르가리타의 망치가 키마이라의 머리를 내려찍는다.
찌그러진 캔 마냥 형태를 잃은 키마이라는 움찔거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다시 진격한다.]
데판이 말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반란군은 다시 움직였다.
몰아치는 군세는 다시 바르바토스의 마수들을 제압하고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바르바토스의 성을 눈앞에 두고 모두가 달려들던 때였다.
일순간 데판을 비롯한 일행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바르바토스의 성 입구에서 살을 떨리게 만드는 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난쟁이를 닮은 괴상한 외모에 작은 키, 손에는 작은 엽총을 든 악마였다.
[마바스...]
데판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는 주먹을 들어 자리에 멈춰섰다.
그를 따라 진격하던 군세가 속도를 늦췄다.
마바스.
그는 바르바토스가 바알의 수족으로 들어가기 전 바르바토스군의 제 1 군단장이었던 악마였다.
[...]
기다란 코를 씰룩이던 마바스는 고개를 돌려 전장을 둘러보았다.
시선은 데판 일행 앞에 멈췄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버러지들...]
탕!!!
불꽃을 일으키며 나아간 총알이 반갈죽이 된 키마이라의 시체에 팍 하고 박혔다.
총알에 맞은 키마이라의 몸뚱이가 꿈틀거린다.
그것의 몸뚱이가 울퉁불퉁하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것의 상태가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아니, 이전보다 마기가 더욱 짙어졌다.
[카아아아아아아!!!!!!!!!!!!!]
키마이라의 괴성이 울렸다.
콰과광!!!
그것은 살기를 마구 내뿜으며 날뛰었다.
마바스는 연달아 엽총을 쏘았다.
엽총에 맞은 마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날뛰기 시작한다.
악마들은 달려드는 마수들을 상대했지만, 마바스의 엽총에 맞아 되살아난 마수들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져있었다.
[산개하라!!!]
데판이 소리쳤다.
그의 말에 악마들은 일제히 거리를 벌려 되살아난 마수들을 둘러쌓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상황이었다.
엽총으로 마수들을 좀비마냥 부리는 그의 능력은 익히 들은 터.
그리고 그 마수들을 사냥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되살아난 마수들의 약점은 허파.
허파가 터지지 않으면 죽지 않는 특성 상 다수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데판을 비롯한 반란군들은 다섯 정도씩 짝을 지어 되살아난 마수들을 둘러쌓았다.
“공격!!!”
데판의 소리에 맞춰 사방에서 축축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들려오는 것은 되살아난 마수들의 단말마였다.
[...저 버러지들이 감히...]
마바스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차악!
그러던 중 어디선가 핏물이 흩날리는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들려오는 소리는 마수가 아닌 악마들의 비명이었다.
데판은 들려와선 안될 두 가지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강진호가 나타났다.
그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악마들의 비명과 핏물이 흩날렸다.
[네놈이 어떻게...]
데판 뿐만 아니라 그를 본 일행들의 표정이 일순간 변했다.
표정들은 각기 제각각이었지만, 하나 확실한 건 모두가 절망적인 표정을 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성에 갇혀 떨어졌다.
하지만 박율은 사라졌고, 강진호는 나타났다.
그 말은 결국 하나의 결말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안돼...”
서희는 나지막이 말을 내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