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박율의 일격에 고룡의 몸뚱이가 크게 기울었다.
그리고 그는 재빨리 땅바닥에 착지했다.
박율의 시선은 고룡 너머를 향했다.
사실상 맞대결로 고룡을 이기는 일은 온몸을 갈아 넣어야 가능할 일이었다.
그리고 겨우 이긴다 하더라도 그때는 아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터.
바르바토스를 저지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도 크게 계획이 뒤틀린다.
최악으로는 계획의 실패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지하감옥의 붕괴로 완전히 바르바토스의 시선을 받게 된 상태.
아마 마르가리타 일행은 반란을 더욱 앞당길 것이었다.
서둘러 이곳을 탈출하고 돌아가야 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기를...”
박율은 고룡이 다시 중심을 되찾기 전에 발을 굴렀다.
[신속]
재빨리 이곳에서 탈출한다.
“흡...!”
박율은 종아리와 허벅지에 응축된 힘을 순식간에 폭발시켰다.
그의 몸뚱이가 공기를 가르며 출구를 향해 나아가던 순간.
“...!!!”
고룡의 기다란 꼬리가 박율을 덮쳤다.
콰과광!!!
신속의 영향으로 주체할 수 없이 빠르게 나아가던 그의 몸뚱이가 고룡의 꼬리에 맞아 그대로 방향을 잃고 벽에 쳐박혔다.
“커헉...!!!”
[쿠아아아아아아!!!!!!!!!!!!]
어느새 중심을 되잧은 고룡이 울부짖는다.
박율은 재빨리 벽에서 빠져나왔다.
“큭...”
박율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신속의 속도와 고룡의 꼬리가 맞부딪힌 결과는 처참했다.
늑골이 부서진 듯 숨을 쉴 때마다 저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보내주지 않겠다는 거냐...”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지하감옥을 부수는 것부터 문제였지만, 고룡을 만난 건 더 큰 문제였다.
어떻게든 조용하게 지나가고 싶어도 고룡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
박율의 눈은 사방으로 움직였다.
협곡 위로 도망칠 수 있는 틈새는 보였지만, 지상에서도 도망치지 못하는 상황에 위쪽으로 도망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돌아가고 싶어도, 뒤는 이미 쏟아진 파편들과 돌무더기로 막힌 상황.
사면초가였다.
“후... 어떡한다...”
정말 여기서 죽을 힘을 다해 싸워야하는가.
“...흡!”
한창 머리를 굴리던 와중에 고룡의 불꽃이 그를 섬멸할 듯 날아들었다.
박율은 재빨리 바닥에 몸을 굴러 불꽃을 피했다.
“큭...”
피하던 와중에 옷에 불이 붙었는지 왼쪽 팔이 타오르고 있었다.
박율은 재빨리 옷을 털어내며 불길을 잠재웠다.
“최악인데...”
불길을 끄는 과정에서 왼팔에 화상을 입은 듯 열기와 심장이 펌프질을 하듯 박동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늑골이 아파왔고, 왼팔은 그을린 듯 이따금 열기가 느껴진다.
박율은 다시 망치에 힘을 불어넣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대로 계속 피하는 것에 급급하다가는 결국은 지쳐 죽거나, 고룡에게 죽는다.
계획의 실행이 중요하다지만,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냐...!”
전력을 쏟아 살아남는다 한들 방법이 있을까.
단탈리온의 군세는 바르바토스에 비해서는 상당히 약세였다.
그 상황에서 큰 주춧돌이 되어야 할 박율이 전쟁에 돌입하기도 전에 쓰러진다?
그건 결국 패배로 귀결될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룡을 상대로 무사히 도망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누나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런 고룡을 앞에 두고 불길을 온몸으로 받은 것으로 모자라 고룡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당시 마르가리타는 그냥 망치를 들고 고룡을 몇 대 때리다가 몇 마디 내뱉더니 고룡이 물러났다.
다시 고룡이 불꽃을 내뿜는다.
[신속]
박율은 또 다시 날아드는 고룡의 불꽃을 피했다.
이러다간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이번에도 그냥 물러나면 안 되겠냐?”
[쿠아아아아아아아아!!!!!!!!!!!!!]
고룡의 꼬리.
박율은 재빨리 발을 굴렀다.
“사람 차별하냐!”
무차별적으로 이어지는 공격들.
박율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힘겹게 공격들을 피했다.
“하아...하아...”
생각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용을 상대로 싸운 적은 전무했지만, 떠올려야 했다.
마르가리타는 어떻게 고룡을 물러나게 했을까.
딱히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가끔 마르가리타가 마수들을 물러나게 하는 방법들이 있었다.
용의 울음.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다만, 박율은 그녀의 힘을 이어받은 존재였다.
그녀의 선택을 받았고, 그녀의 그릇이 되었던 남자였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박율은 숨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고룡을 보았다.
포악하고도 위협적인 눈이 박율을 향했다.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릴 듯한 살기.
“후...”
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뭔들 못하랴.
고룡이 포효를 내지른다.
평범한 이들 같았다면 실금을 하거나 그대로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괴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고 고룡 앞에 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용의 울음.
“아아악!”
[...]
“아악?”
안되네.
젠장.
[쿠아아아아아아아!!!!!!!!!!!!!!!!!]
전보다 강해진 불꽃이 박율을 향해 날아든다.
박율은 옆으로 몸을 던졌다.
고룡이 더욱 거세게 포효를 내질렀다.
자신을 모사한 게 괜히 기분을 상하게 만든 모양이다.
박율은 자신을 쫓아오는 불꽃을 피하며 달렸다.
“난 왜 안 되는 건데!”
어쩌면 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신의 힘을 이양 받았다지만 짐승의 소리도 따라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 하물며 어떻게 용의 울음을 따라하겠는가.
“그 누나는 어떻게 한 건데! 도대체!”
마르가리타도 본래는 인간이었다.
지금은 천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천사라서 되는 건가?”
천사면 용의 울음을 따라할 수 있다고?
“...”
그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긴 했다.
그러면 어떻게 마르가리타가 용의 울음을 따라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용의 울음만을 따라한 건 아니었다.
매번 그녀가 그 소리를 토해낼 때면 그녀의 눈동자가 변했다.
마치 용처럼 말이다.
따라하고 말고의 문제라기보단 하나의 능력이라는 소리였다.
“그럼 나도 가능하겠지.”
박율은 마르가리타의 힘을 흡수했었던 인간.
불가능할리는 없다.
그 방법이 문제라는 소리였다.
“생각하자...”
박율은 날아오는 고룡의 꼬리를 피해 땅을 굴렀다.
당시 마르가리타가 고룡을 상대했던 때.
그녀는 말했다.
늦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람이 용을 낳을 수는 없는 노릇.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그 말인즉슨 마르가리타가 고룡이 새끼였을 때부터 키웠다는 말로 연결된다.
양육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거나 고룡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어 자연으로 방생을 했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늦어서 미안하다느니 말을 한 것이다.
악마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용이라는 존재를 두려워하듯 당시에는 존재 자체가 문제였을 테니 말이다.
여하튼 그렇다는 말은 마르가리타는 고룡을 코앞에서 보았다는 말이었고, 그만큼 고룡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해한다.
그것이 키워드였다.
“흠... 좋아.”
용을 이해한다.
마르가리타의 마음이 되어 용을 이해해본다.
“후...”
박율은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고룡을 보았다.
여전히 포악한 눈빛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박율은 이번엔 좀 더 따스한 눈빛으로 고룡을 보았다.
“우리 대화로 한 번...”
화아아!!!!
날아드는 불꽃.
박율은 또 다시 몸을 굴려 고룡의 불꽃을 피했다.
발에 땀이 차게 쏟아지는 불꽃을 피하고나서 박율은 다시 고룡을 보았다.
“그래, 화난 건 알겠는데, 우리 일단 찬찬히 생각을...”
꼬리가 날아온다.
이번엔 피할 겨를이 없다.
콰과광!!!
박율의 몸뚱이가 꼬리에 맞아 벽에 튕겨 바닥에 고꾸라졌다.
“커헉...”
이러다가는 아파서 죽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박율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나저러나 방법이 없다면 도박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일어난 박율은 양 손을 높이 들며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표명했다.
그럼에도 고룡은 포효를 내질렀다.
위협적인 울음.
“괜찮아.”
박율은 말했다.
그는 마르가리타를 믿었다.
그녀가 키운 아이라면 악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저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모종의 이유로 자신을 버린 마르가리타를 향한 미움을 발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했다면 그 역시 할 수 있다.
박율은 거친 숨을 고르고 한 발자국 고룡을 향해 디뎠다.
“난 널 해칠 생각이 없어.”
그리고 손을 내민다.
하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황금빛 불꽃 폭격이었다.
피하지 않는다.
박율은 재빨리 망치를 불러와 바닥에 내리찍어 방패를 만들었다.
[철옹]
하얀 불꽃으로 점철된 방패가 고룡의 불꽃을 막는다.
양쪽으로 퍼져나가는 불길은 지반을 녹이고 벽을 녹이며 비산했다.
“크윽...!”
박율은 그럼에도 버텼다.
부서진 늑골이 고통을 토해내고 왼팔에 그을린 흔적이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는 꿋꿋하게 버텼다.
방패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망치가 부들부들 떨렸다.
화아아!
불꽃이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소나기가 걷히듯 화력을 잃은 불꽃이 바닥에 내리깔렸다.
박율은 거친 숨을 내쉬며 권능을 해체했다.
왼쪽은 이미 검게 그을린 채였다.
그는 다시 발을 내디뎠다.
고룡에게 조금 더 다가간다.
[쿠아아아아아아아!!!!!!!!!!!!!!]
또 다시 고룡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 속에 품은 위협은 더더욱 짙어졌다.
마치 더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 포효를 내질렀다.
“괜찮아. 난 널 이해할 수 있어.”
여전히 박율은 망치를 내려놓은 채 아주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한 발자국.
고룡에 더 가까워진다.
고룡은 더욱 크게 울부짖었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강아지가 낯선이의 접근에 위협을 하듯.
고룡은 더욱 발버둥을 쳤다.
“해치지 않아.”
박율은 손을 뻗었다.
꼬리가 날아든다.
역시 박율은 피하지 않았다.
콰과광!!! 그의 몸뚱이가 바닥을 굴렀다.
피를 토하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망치를 들지 않았다.
대신 손을 높이 들었다.
멀어지면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간다.
“...위험하지 않아.”
더 가까이.
고룡은 울음을 토해낸다.
더욱 발버둥을 친다.
아이는 두려워했다.
인간을 두려워했다.
자신에게 들이미는 날붙이를 무서워했고, 마르가리타를 해치는 인간들을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더욱 소리를 내질렀다.
그것은 포효라기보단 절규에 가까웠다.
하지만 박율은 끝까지 무기를 들지 않았다.
“위협해서 미안해.”
그리고 사과를 건넨다.
고룡의 발버둥이 거세질수록 아이의 불꽃은 약해졌다.
고룡은 구석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인간의 손이 자신에게 닿지 못하도록 물러섰다.
하지만 인간은 그럴수록 더욱 다가왔다.
끝끝내 박율이 고룡의 앞에 닿았을 때.
“위협하지 않아.”
박율은 고룡의 비늘에 손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