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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57화 (157/183)

157화

박율은 강진호의 몸을 발판 삼아 발을 내디뎠다.

그의 발이 강진호의 발에 안착하자.

그 즉시 권능을 개방한다.

[신속]

종아리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힘을 폭발시키며 그대로 뛰어오른다.

쾅!!!

박율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진 강진호는 굉음을 일으키며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다행히 박율은 강진호를 밟은 덕에 떨어지는 충격을 최소화하여 무사히 바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번 일격은 상당히 강한 듯했다.

강진호는 각혈을 토해내며 고통에 신음했다.

그는 그러는 와중에도 박율을 노렸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떨어지는 파편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박율은 일단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하늘을 향했다.

여전히 파편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태.

그는 재빨리 눈을 굴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떨어지는 파편에 깔려 쥐포가 되고 말 터.

일단 몸을 숨길 곳을 찾아야 했다.

허나 그곳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쌓인 협곡 같은 바닥이었다.

딱히 숨길 곳이 보이지 않았다.

[척후]

권능을 개방해 바닥의 지리를 살피는데도 보이는 곳은 없었다.

“...!”

그러다 박율의 눈에 들어온 한 구석.

다른 벽에 비해 벽이 얇고, 벽 너머에 공간이 느껴지는 벽이 이었다.

박율은 떨어지는 파편들을 피해 벽으로 들러붙어 망치를 높이 들었다.

“없으면 만들어야지...!”

쾅!!!

박율이 팔로 호를 그리며 벽을 강하게 내리쳤다.

벽은 흙먼지를 토해내며 작은 반동을 일으켰다.

다시 한 번.

쾅!!!

쾅!!!

세 번을 내리치자 벌어지는 벽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벽을 내리치자 얇은 벽이 부서지며 벽 너머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박율은 재빨리 몸을 굴려 공간으로 들어갔다.

* * *

우수수 떨어지는 파편들 세례가 완전히 끝나자 박율은 그제야 작은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후...”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다.

그가 작은 공간으로 몸을 던지기 무섭게 그가 있었던 곳으로 날카로운 파편 하나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위로는 못 가겠네.”

박율은 천장을 보았다.

생각보다 그리 깊은 곳은 아니었으나 무너진 성의 흔적들이 천장을 가로막고 있는 바람에 쉽게 탈출하는 건 힘들 듯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가 서 있는 협곡의 끝으로 좁은 길이 나 있었다.

“단탈리온 그 양반은 뭐 이런데다 성을 지어놨어.”

이렇게 깊은 협곡이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흠칫.

박율의 눈이 반대편을 향했다.

“저 좀비 새끼...”

강진호가 피를 철철 흘리는 채로 박율을 보고 있었다.

여전히 그에게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피를 흘리는 것과는 무관하게 그는 멀쩡했다.

일전에 본 강진호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위협적이었고 말이다.

“그 상태로 싸우려고?”

“하아...”

강진호는 대답 대신 검을 높이 들어 박율을 겨누었다.

박율은 혀를 끌끌 차며 이마를 짚었다.

안 그래도 한 시가 급한 와중에 저런 놈을 상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죽이지 않고서야 여기서 나가기는 무리일 성 싶었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

“왜 그렇게까지 하냐?”

박율의 물음에 강진호는 역시나 입을 꾹 닫은 채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타악!

캉!!!

쇳소리가 또 다시 울린다.

워낙 좁은 곳이다보니 쇳소리는 벽에 부딪히고 부딪혀 공명했다.

“인류 최강이던 작자가...!”

캉!!!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리던 새끼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냐!”

박율은 날아드는 강진호의 검을 받아치며 소리쳤다.

강진호.

인류 최강의 사자이자, 인류의 유일하고도 마지막 희망.

모든 이들이 그를 믿었고, 모든 악마들이 그를 겁냈었다.

하지만 그는 인류를 배신했다.

“그렇게 강해지고 싶었냐!?”

강진호는 이를 꽉 깨물었다.

볼에서 작은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카앙 거리는 쇳소리에서 울분이 터져나온다.

강진호는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그럴수록 박율 역시 그에 상응하는 힘을 내뱉었다.

검과 검이 서로를 베었다.

큰 파란이 일었고, 돌풍이 불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땅바닥부터 벽면까지 커다란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박율은 못내 짜증이 났다.

미친놈마냥 검을 휘두르고 있는 저 남자한테 말이다.

이유가 궁금했었다.

도대체 얼마나 혹할만한 제안을 받았기에, 얼마나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있었기에, 수백, 수천만의 인류를 버리고 악마의 곁을 택한 것인지 말이다.

검과 검을 맞대면 검에서 그 감정이 흘러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강진호에 검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무함, 공허함, 그리고 분노.

그것이 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박율을 더욱 짜증나게 만든 이유였다.

카앙!!!

박율은 이를 꽉 깨물고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망치에 맞은 강진호는 발을 뒤로 빼 거리를 벌렸다.

“주둥이가 있으면 말이라도 해봐!”

“...”

“네가 배신만 안 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 아니야!!!”

끊임없이 살기를 분출하던 강진호는 검을 쥔 손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이내 떨어뜨렸다.

박율을 보는 그 눈동자에 그 끝을 알 수 없이 새카만 허망함이 일렁거렸다.

“...정말 내가 배신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당연한 거 아니야?”

강진호는 잠시 차가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박율을 보았다.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그의 눈을 지나쳤다.

달싹거리는 그 입은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악마에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본 적 있나?”

“뭐?”

“아무것도 하지 못해 그저 발버둥만 치다가 결국은 늘어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냔 말이다.”

박율은 여전히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잠시 공백이 생겼다.

그 사이 강진호는 다시 자세를 잡고 달려들었다.

캉!!!

“차라리 죽여달라고 호소하는 이들의 눈을 본 적이 있었다...!”

강진호의 검이 더욱 무거워지고 있었다.

망치를 쥔 손이 아려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캉!!!

“울음소리, 곡소리, 신음소리, 차라리 죽여달라고 호소하는 소리들.”

캉!!!

“매 순간, 눈을 뜨고 감는 모든 순간, 나를 괴롭히고 있다.”

“네가 죽인 거잖아...!”

캉!!!

“내가 죽이지 않았다면?”

“뭐?”

캉!!!

“내가 죽여주지 않았다면...!!!”

캉!!!

강진호의 일격에 박율은 저린 팔을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들은 죽지 못했을 거다.”

“당연한 이야기를...”

“아마 악마에게 죽을 때까지 모든 순간을 고통 속에 몸부림 치겠지.”

“...!”

“혀를 깨물고 죽으려고도 하겠고, 근처에 날붙이가 있다면 자살까지도 시도할 거다.”

강진호의 손에 들린 검이 요동쳤다.

“어떻게든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악마에게 매달리기도 할 거다. 그리고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리만 지르다 죽겠지.”

“...”

“난 그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강진호의 검이 바닥에 닿았다.

“내가 악한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편안한 죽음을 건네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눈이, 붉게 달아오른 그의 눈이 박율을 향했다.

“사람들을 죽인거다.”

타악!

다시 달려드는 강진호.

그의 말에 벙찐 탓일까 박율은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차악!

호를 그리는 검이 박율의 허리를 베었다.

검붉은 핏물이 비산했다.

“큭...!”

캉!!!

뒤이어 날아드는 공격은 다행히 막을 수 있었다.

“궤변이야...!”

“...”

박율은 위협적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어쩌면 너무나 투박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도 모르는 공격들이었다.

“네가 배신만 하지 않았어도! 인류가 패배의 기로에 서지만 않았어도 그럴 일은 없었어!”

캉!!!

강진호는 정면으로 날아드는 박율의 망치를 막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했다.

누구도 물러서지 못하는 그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은 팔이 덜덜 떨릴 정도로 서로를 밀어붙였다.

강진호는 검을 높이 휘두르며 박율을 떨쳐냈다.

그리고 잠시 날숨을 뱉었다.

강진호는 박율을 응시했다.

“어차피 끝이 다가온 이상. 너에게만 말해주지.”

“뭐?”

“...인류가 패배한 그 날. 바알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그날의 이야기를 말이다.”

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였던 그날.

강진호는 그날을 떠올렸다.

* * *

“...내일의 계획은 이러하다.”

스산한 바람이 검게 물든 대지를 기어오며 비명을 지르던 날.

박율과 강진호를 비롯한 사자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모두 알겠지? 내일이 바로 결전의 날이다.”

수천 명이 모여있던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사람은 태성그룹의 회장이었던 장대호였다.

그는 비장한 눈빛으로 사자들을 둘러보았다.

길고 길었던 전쟁.

이제는 그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날이 바로 내일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박석훈은 초조한 눈빛으로 장대호를 보았다.

그러자 장대호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할 수 있고 말고가 어디 있어! 해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순 없잖아.”

서희는 팔짱을 낀 채 대화에 끼어들었다.

다른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박율의 곁에 있던 채소연은 두려움이 앞서는 듯 몸을 살짝 떨었다.

“...넌 안 무서워?”

그녀는 박율을 흘깃 보았다.

박율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어차피 매일 겪는 일들인데, 규모만 조금 커지는 거 아니야? 뭐 잘못돼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래. 마지막이니까...”

채소연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내일을 위해 필수인력만 제외하고 쉬자고.”

장대호는 손뼉을 짝 치며 소리쳤다.

그의 말에 모여있던 사자들은 각기 휴식을 위해 자리를 떴다.

그리고 자리에 남은 것은 채소연과 박율, 그리고 강진호였다.

“어디가?”

박율이 채소연을 보았다.

그녀는 어디론가 급하게 가는 중이었다.

“아, 바람을 좀 쐬려고.”

“그래? 그래, 그럼.”

박율의 물음에 채소연은 능청스레 답을 하곤 자리를 떴다.

그의 옆에 있던 강진호 역시 그녀를 보고 있던 참이었다.

“진짜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게...”

박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믿기지가 않는데, 넌 또 어디가?”

“바람.”

그리고 그 역시 채소연을 따라 밖을 향했다.

“쟤네 나 왕따시키나?”

홀로 남은 박율은 입을 쭉 내밀더니 이내 발라당 뒤로 누웠다.

채소연을 따라 밖으로 나온 강진호는 조용히 걸었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말이다.

그녀는 아닌 척 주위를 샅샅이 살피며 숲 쪽을 향해 움직였다.

“...”

강진호가 채소연을 쫓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의 눈에 비친 채소연은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본인을 드러낸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다.

페르소나를 만들어 스스로를 위장하는 여자.

그것이 강진호에게 있어 채소연이라는 자의 이미지였다.

게다가 특히 내일은 결전의 날이었다.

당장의 휴식도 모자란 시기에 갑자기 바람을 쐬러 간다며 숲으로 가다니.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그리고 그녀를 쫓아가던 그 끝에서 강진호는 자리에 멈춰섰다.

아니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섬짓한 마기가 느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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