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지하감옥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두 강대한 힘이 충돌하며 커다란 파란이 일었다.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로 막강한 폭풍이었다.
“데판...!”
박율이 소리쳤다.
어두운 통로 사이로 흐릿하게 커다란 덩치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손엔 두 쌍을 팔을 가진 악마가 붙들려 있었다.
[어리석은 것.]
데판은 이를 빠득 갈며 악마를 내팽겨쳤다.
[커헉...!]
바닥에 튕겨 널브러진 세르안은 각혈을 토해냈다.
[군단장의 위엄은 어디 엿장수에게 팔아 먹었나보군.]
데판은 하찮은 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세르안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 거 같아...?]
[허.]
[결국은 다 뒤질거야...]
[그래서 스스로를 버리고 백성들마저 버린 것이냐?]
[...]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난 세르안은 다시 검을 집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싶어 입을 달싹거렸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나도 노력했어...]
세르안이 달려든다.
허나 데판은 가볍게 주먹을 휘둘러 그를 다시 내팽개쳤다.
[그것으로 네 행동이 정당화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으아아아!!!]
또 다시 일어나 달려드는 세르안.
역시나 결과는 같았다.
콰당탕!
[넌 나를 이기지 못한다.]
[...]
세르안은 이를 빠득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같잖은 백성 타령만 안 했어도... 우리를 버리고 마을로 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어...!!!]
그리고 울분을 내뱉는다.
허나 데판은 오히려 미소를 흘길 뿐이었다.
[영광스런 죽음을 맞이한 모양이구나.]
그와는 다른 데판.
그는 백성을 위해 죽음을 택한 모양이었다.
허나 이내 그의 눈매는 매서워졌다.
그 눈은 바닥의 세르안을 향했다.
그것은 살기였다.
이제는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높이 올라가는 데판의 주먹.
[난...틀리지 않았어...]
콰앙!!!
그의 주먹이 내려찍히고, 세르안의 형태가 풍선 터지듯 사라졌다.
[...?]
그제야 보이는 무언가.
세르안의 손에 지하감옥을 이루는 벽돌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쿠구궁!!!
동시에 지하감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떨어지는 흙먼지들.
이내 지하감옥의 벽면이 무너진다.
“지하감옥이...!!!”
서희가 소리쳤다.
“아니...”
한명련의 눈은 일행의 반대편을 향했다.
지하감옥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하감옥과 바르바토스의 성을 연결하던 벽면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벽면이 완전히 허물어지자, 보는 것만으로 경기를 일으킬 법한 괴물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박율과 케로베로스의 눈이 마주쳤다.
“함정 한 번 기가 막히게 만들었네.”
그것은 먹잇감을 발견한 듯 곧바로 발을 굴렀다.
『케로베로스...!!!』
마르가리타는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곧장 달려드는 수십개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콰직!
“전부 함정이었나봅니다...!”
한명련 역시 어느새 검을 꺼내든 채 발을 굴렀다.
쉽사리 지하감옥에 들어온 것하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배신자.
그 모든 것들이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한 함정이었다.
차악!
한명련의 검이 케로베스로의 머리 하나를 베어가른다.
후두둑!
검에 잘려 떨어진 머리에서 검은 핏물이 쏟아졌다.
“...!!!”
하지만 사라진 머리는 곧바로 재생을 했고, 이내 다시 똑같은 머리가 생겨났다.
수십 번의 검기, 그리고 수십 번의 재생.
아무리 머리를 잘라내도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어떡합니까! 머리를 베어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명련은 뒤로 물러서며 머리들을 베어냈다.
그의 뒤에서 다른 이들 역시 달려드는 머리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박율은 속사로 망치를 휘두르며 순식간에 수십의 머리들을 깨부셨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한 차례 공격을 끝내자, 공격을 시작하는 케로베로스.
그것은 수십개의 머리들을 뱀처럼 흐느적거리며 일행들에게 달려들었다.
차라리 달려들기만 하면 다행이겠지만, 그것의 아구에서 검붉은 액체가 뿜어져나오며 독기로 가득한 연기가 터졌다.
액체가 닿은 벽면과 바닥은 곧바로 익는 소리가 함께 부식되었다.
독이었다.
“...!”
박율은 달려드는 머리들을 보았다.
통로는 좁았고, 그대로 머리들이 날아든다면 모두가 위험하다.
짧은 시간 판단을 내린 박율은 한 발자국 앞으로 굴러, 망치를 거대하게 만든 후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앙!!!
[철옹]
권능이 개방됨과 동시에 그의 망치는 거대한 방패가 되어 지하감옥의 통로를 막는다.
콰과곽!!!
머리들이 방패와 부딪히며 굉음을 토해냈다.
“큭...!”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능력들을 얻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위험할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케로베로스를 막고 있는 박율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는 것마냥 떨리고 있었다.
뒤에서 그를 도우려 일행들이 움직였지만, 박율은 그들을 멈춰세웠다.
“빨리 갇힌 악마들 먼저 풀어줘요!”
“그러면...!!!”
“어차피 도울 방법도 없어요...! 일단 우리가 여기로 온 목표 먼저 생각해요...!!!”
박율은 뒤에서 머뭇거리는 서희에게 말했다.
그녀는 박율의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보고 있었다.
“빨리...!!!”
박율은 소리쳤다.
그제야 서희는 그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빨리 돌아올게...!”
“팔 부서지기 전에만 돌아와요.”
그리고 일행들은 곧장 지하감옥 안으로 들어가 갇힌 악마들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박율은 더욱 악을 짜내며 케로베로스를 막았다.
그럴수록 케로베로스는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케로베로스의 괴성.
백 개의 머리가 울부짖는 그 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스테레오 스피커 성능 미쳤네, 진짜...!!!”
귀가 먹먹하다 못해, 달팽이관이 터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귀를 신경 쓸 때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너편에서 밀어내는 힘이 더욱 거세졌다.
몇 톤짜리 불도저가 엑셀을 꾹 밟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을 막는 기분이었다.
대충 이런 함정들이 있고, 케로베로스가 달려들 것을 예상하기는 했다만, 생각 이상의 케로베로스의 전력이 느껴졌다.
박율은 흘깃 뒤를 보았다.
아직 일행들이 악마들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상황이었다.
아직은 아니다.
허나 박율의 발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통로를 막은 방패 역시 독에 부식되어 점차 형태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방패를 해체하고 다른 방법을 취하고 싶지만, 이 좁은 통로에 저 괴물이 내뱉는 독이 들어오기라도 했다간 전부 질식사 혹은 통구이 신세다.
이러다 몸이 먼저 찌그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탈출이 우선이었다.
『조금만 버텨...!』
마르가리타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지하감옥에 갇힌 이들을 구출하며 소리쳤다.
“조금만 빨리 해주세요...! 이러다 내 팔이 먼저 사라지겠는데...!”
그리고 팔에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
“모두 나왔습니다!”
한명련이 말했다.
흘깃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수백구의 악마들이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악마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악마 하나가 소리쳤다.
하지만 박율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탈출해서 회복할 생각 먼저해요...!”
한눈에 봐도 그리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모습들이었다.
괜히 힘을 소모했다가 그대로 탈진이라도 된다면 곤란하다.
일단은 얼른 이곳을 탈출해 기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급선무였다.
[혼자서 어떻게...!]
“어떻게든 할테니까, 탈출에 집중하십쇼...!”
“이제 어떡해!?”
서희의 물음이었다.
탈출구는 하나.
지금 케로베로스가 막고 있는 저 길이었다.
탈출의 완벽한 성공을 위해선 저 괴물을 또 다시 뚫어야 한다.
하지만 이전처럼 잠신으로 몸을 숨긴다거나 하는 꼼수는 먹히지 않는다.
정면돌파 말고는 답이 없었다.
“제가 하나둘셋 하면 뛰어요.”
박율은 정면의 케로베로스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리고 곧장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박율은 점차 밀리던 발을 땅 깊이 박아넣었다.
그리고 남은 발을 앞으로 내딛어 정면을 뚫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 땅을 내디딜 때마다 곱절은 될법한 충격이 쏟아진다.
하지만 박율은 이를 악물고 전진했다.
“둘...!”
세 발자국.
그가 나아간 걸음이었다.
앞으로 한 발자국만 더.
저 문 쪽만 넘어가면 옆으로 여유공간이 생긴다.
박율은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흘깃 뒤를 보았다.
다행히 잘 쫓아오고 있는 상황.
“한명련 씨...! 제가 방패를 열면 곧바로 검강을 날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누나, 제가 신호하면 오랜만에 한 번 보여줘요.”
『뭐...!?』
“킹콩 만났을 때처럼...!”
『...!』
마르가리타가 적당히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자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내뱉는다.
“셋...!!!”
박율은 소리쳤다.
동시에 방패를 옆으로 비튼다.
그러자 봇물이라도 터진 듯 몰아치는 독기들과 케로베로스의 머리들.
뒤따라 한명련은 발을 뒤로 끌어 자세를 잡은 뒤.
곧장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강]
검에서 새어나오는 희끗한 빛줄기가 갈무리를 하더니 이내 반달모양의 검기를 만들어 날아오는 독기들과 머리들을 베어냈다.
후두둑 쏟아지는 독기와 머리들을 뒤로.
“빠져나가요...!”
동시에 박율의 뒤에 있던 이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박율은 케로베로스가 반응하지 못하게 재빨리 땅을 박차고 높이 뛰었다.
[신속]
콰직!
허공에 떠오른 박율의 신형이 아주 잠깐 사라졌다가 탈출하는 악마들을 보던 머리를 터트리며 떨어졌다.
허나 백개의 머리를 전부 상대할 수는 없는 법.
미처 공격하지 못한 수십의 머리들이 도망치는 이들을 향해 쇄도했다.
콰직!!!
머리들이 도망치는 이들을 덮치려는 순간, 날아든 커다란 백색의 망치.
그 뒤로는 마르가리타가 망치를 든 채 서 있었다.
『후...』
그녀는 달려드는 머리들을 모두 터트리고는 눈을 감고 호흡을 정돈했다.
그리고 눈을 뜬다.
일순간 그녀의 눈에 검은 자위가 가득하더니 이내 세로로 길게 뻗은 붉은 동공이 생겨났다.
『크아아아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사람의 입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괴성이 흘러나왔다.
마치 지상에서 범람하는 야수들의 모든 울음소리를 합친 듯한 소리였다.
그것은 용의 울음이었다.
회복을 마치고 다시 달려들 준비를 하던 케로베로스는 마르가리타의 소리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지금이에요!!! 다 나가요!!!”
박율이 소리쳤다. 마르가리타의 소리에 놀라 그녀를 보던 시선들이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재빨리 성 밖으로 향하던 순간이었다.
차악!
선두로 뛰어나가던 악마 하나의 몸이 양단났다.
[아아악!!!]
박율은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낯설지만 익숙한 이가 서 있었다.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