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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52화 (152/183)

152화

한명련은 고개를 들어 일행들을 보았다.

그들 역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허나.]

난쟁이 악마가 입을 열었다.

한명련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찌푸린 미간은 무언가 불온전함을 말하고 있었다.

뒤이어 입을 여는 난쟁이 악마는 지도 속 어딘가를 가리켰다.

[가장 중요한 이들이 있는 곳은 여기일세.]

그것은 지도의 중심부에 있는 커다란 성이었다.

『거기는...?』

[...지하감옥의 위치.]

난쟁이 악마는 입 안에서 무거운 솜덩이를 뱉어내듯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어 일행들을 보았다.

[숨어있는 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 반격을 시작한다하여도 이들이 없다면 결국은 패배할 걸세.]

[그렇게까지 중요한 이들이란 말인가?]

데판이 물었다.

[단탈리온 군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럼 구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한창 악마들의 전언을 듣고 있던 서희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녀의 말을 받아친 것은 박율이었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였으면, 말도 안 꺼냈겠죠.”

서희는 찌릿 박율을 보았지만, 그는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고 제 말이 맞냐는 듯 난쟁이 악마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하감옥 앞에 문지기가 하나 있다네.]

“문지기?”

[일명 케로베로스. 백개의 머리를 가진 최악의 마수지.]

“케로베로스? 게다가 세 개가 아니라 백 개의 머리?”

난쟁이 악마의 말에 일행들은 사뭇 놀란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케로베로스라고 한다면 대부분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지옥의 문지기로 알고 있는 전설 속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모자라 머리가 백 개나 있다니.

무섭다기보단 신기하다는 감정이 앞서고 있었다.

뭐 악마들에 천사들까지 나타나는 마당에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럼 몰래 들어가는 건?』

마르가리타는 팔짱을 낀 채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난쟁이 악마는 고개를 저었다.

[백개의 머리를 가진 지옥의 문지기일세. 그 녀석의 눈을 피해 지하감옥을 넘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네. 이미 수많은 실패를 겪었고...]

“죽이면?”

[최강의 마수라 불리는 녀석이다. 혹 죽이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더 많은 마수들이 몰려들겠지.]

그의 말에 대답을 한 것은 데판이었다.

그는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아마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마계에 있는 모든 악마들이 달려들 정도로 소란이 벌어질 터였다.

난색을 표하는 데판의 말을 끝으로 바위산에 정적이 일었다.

당장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지만, 지하 감옥을 뚫을 방법은 전무했다.

그러던 중 박율은 잠시 손을 펼쳐 하얀 불꽃을 피워냈다.

불꽃 속을 들여다보던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었다.

“...혹시 기척을 완전히 숨기는 게 가능하다면?”

박율의 말 한마디에 모든 이들이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는 다시 주먹을 쥐어 하얀 불꽃을 없앴다.

[...불가능은 아닐테지.]

난쟁이 악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율의 신형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그가 사라졌다.

한명련은 인상을 팍 지으며 그를 찾았다.

“...율 씨?”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얘 어디 갔어?”

서희 역시 휘둥그레진 눈으로 박율을 찾고 있었다.

찾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 순간이었다.

분명 일행들과 함께 박율을 찾고 있던 난쟁이 악마까지 사라진 것이었다.

“...!”

“여기.”

뒤에서 들려오는 박율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난쟁이 악마가 있었던 그 자리였다.

물론 난쟁이 악마 역시 함께 있었다.

그러니까, 기척도 없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저기까지 움직였다는 소리였다.

[...!]

그를 보는 일행들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너 뭐야...?”

서희는 손가락을 치켜든 채로 박율을 가리켰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 조금 많은 능력을 얻었거든요. 그중에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잠신’이라는 능력이 정말로 있더라구요.”

박율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마르가리타는 드디어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그를 보는 서희와 한명련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더 이상 그는 자신들이 알던 박율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나타나 강진호를 단숨에 해치운 것으로 모자라 새로운 능력까지 보여주다니.

믿을 수 없는 일들 투성이였다.

서희는 박율에게 겨눈 손가락을 내리지도 못한 채 그를 보고있었다.

무언가 따지려는 것처럼 입을 떼었지만, 그전에 박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하튼 혹시라도 들키면 대상 혹은 공간 자체를 분리시키는 ‘유리’도 있으니 그쪽은 제가 맡을게요.”

박율은 당당하게 말했다.

계획은 이제 정해졌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마르가리타가 바위산의 악마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그 몸뚱아리로 움직이게?』

그녀의 말대로 개중에 정상적인 상태의 악마는 없었다.

대부분 부상을 입었거나, 어디 하나가 사라져 불구가 된 상태였다.

확실한 건 저 몸뚱아리로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그대로 죽겠다 싶은 몰골들이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은 개뿔.』

마르가리타는 손바닥을 탁하고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악마를 치료해본 적은 없지만... 일단 여기 다 붙어. 완전 치유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치료는 해줄 테니까.』

* * *

“시간은 오늘 자정입니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준비를 끝낼 테니까, 제 시간이 맞춰서 와주세요.”

바위산을 빠져나온 박율 일행은 저 멀리 솟아있는 거대한 성을 보았다.

마치 이 마계가 오로지 저 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듯 우뚝 서 있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박율은 고개를 돌려 바위산에서 빠져나온 난쟁이 악마를 보았다.

대략적인 계획은 이러했다.

문지기를 피해 몰래 지하감옥으로 들어가 갇힌 이들을 구출하고, 그들을 치료한다.

그리고 자정에 맞춰 네 방향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악마들과 합세하여 성을 무너뜨린다.

아주 간단하지만 위험한 계획이었다.

[위험할걸세.]

“이 정도쯤은 할만해요.”

[...부디 조심하게나.]

난쟁이 악마는 정중히 고개를 푹 숙이며 답례를 고했다.

그에 맞춰 박율 일행 역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발을 돌렸다.

“갑시다.”

그 뒤를 따라 일행들이 움직였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박율의 뒤를 쫓던 서희는 불평이나 하듯 말했다.

그러자 박율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그러게, 위험할 거라고 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누가 뭐래? 그냥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예이, 예.”

박율은 건성으로 답을 하며 가던 길을 걸었다.

서희 역시 마음에 안든다는 듯 인상을 지었지만, 딱히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바르바토스의 성에 가까이 다다를수록 한층 마기가 짙어졌다.

마치 화생방에 들어온 듯 코를 찌르는 마기에 마르가리타는 표정을 구겼다.

다른 이들 역시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인 듯했다.

이전의 단탈리온의 마계에서는 느끼지 못할 수준의 농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사방에서 느껴지는 마기는 언제든 그들의 목숨을 위협할 듯 날카롭게 흔들렸다.

하지만 적당히 기척을 숨기고 이동하는 덕에 먼저 습격하는 마수는 없었다.

일단은 마수를 피해야하는 입장이니, 그들이 접근하는 것 같으면 몸을 숨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

“거의 다 왔어요.”

박율이 입을 열었을 때, 그들의 눈 앞엔 괴기하고도 웅장한 성이 있었다.

바르바로스의 성.

[...이런 곳에 성을 짓다니.]

데판이 말했다.

본래 단탈리온의 성이 있던 곳은 외곽 쪽이었다.

그리고 마계의 중심에는 마계인들과 악마들이 거주하는 지구가 형성되어 있었다.

허나 바르바토스는 그들의 거처를 부수고 성을 지은 것이다.

데판의 안면이 흠칫 떨렸다.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박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성을 보았다.

커다란 문 앞에는 셋 정도 되는 마수들이 성을 지키는 것이 보였고, 곳곳에 마수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늘에는 날개를 펄럭거리며 성 주위를 감시하는 악마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사각 없이 모든 곳을 감시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것들을 모조리 죽이고 들어가고 싶었다만, 그랬다가는 소란이 벌어질 터.

“이제 모두 서로 어깨 위에 손 얹어요.”

박율이 말했다.

일행들은 군말없이 그의 말을 따라 앞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모두가 준비된 것을 확인하자 박율은 왼손의 성흔 문양을 바꾸었다.

[잠신]

일순간 그들이 기척이 사라졌다.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박율은 권능이 제대로 발휘된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움직인다.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해요.”

숨을 죽이고 한 발자국 씩 성을 향해 나아간다.

성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마기는 무거운 질량을 가진 기체처럼 온몸을 짓눌렀다.

잠시만 방심해도 구역질이 올라올 것같은 마기였다.

“옆에 조심하십쇼...!”

한명련은 박율의 옆으로 지나가는 마수를 보며 나지막이 소리쳤다.

그의 말에 박율은 그대로 자리에 멈춰섰다.

코를 킁킁거리던 마수 하나가 그의 앞을 지나쳤다.

[크르르...]

마수는 흘깃 고개를 돌려 박율 일행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 걸리는 듯 괴상한 표정을 짓는 마수였지만, 그것은 이내 다시 제 갈길을 따라 걸어갔다.

“휴...”

다시 박율은 움직였다.

이내 그들은 성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굳게 닫힌 성문.

때마침 문이 열리고 악마 하나가 걸어나왔다.

일행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문이 벌어진 틈을 타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 내부는 바깥보다 더 고약했다.

사방에 마치 동상을 세워놓은 듯 죽은 악마들의 시체를 진열해놓았고, 바닥엔 죽은 악마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 성을 잠입한 이들의 사체인 듯했다.

“...빨리 갑시다.”

박율은 최대한 그것들에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움직였다.

그들의 목적은 지하감옥.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저기...!』

마르가리타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녀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뿌연 안개처럼 성내를 가득 채운 섬뜩한 마기 사이로 단탈리온의 마기가 옅게 느껴졌다.

아마 저곳이 지하감옥인 듯했다.

“가자...!”

서희의 재촉에 박율은 얼른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일행들.

그 끝에는 역시나 거대한 마수가 서 있었다.

케로베로스.

그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살기를 날카롭게 세운 마수였다.

역시나 구전으로 들었거나 책으로 봤던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마수가 아니었다.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머리가 지하감옥을 샅샅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숙면에 취하는 듯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두 눈을 부릅 뜬 채였다.

“...”

왜 저 마수를 최강의 마수라고 부르는 것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언뜻 봐도 느껴지는 엄청난 마기.

일전에 보았던 고룡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기였다.

“흡...!”

서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놀란 소리가 튀어나왔다.

기다란 목으로 지하감옥을 서성이던 머리 하나가 서희와 눈을 마주친 탓이었다.

서희는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인지 케로베로스의 깨어있던 머리들이 일제히 박율 일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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