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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50화 (150/183)

150화

데판은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땐, 그곳은 완전히 초토화가 된 후였다.

황무지가 된 숲속 그나마 성한 나무들은 죄다 뿌리가 꺾여 쓰러져 있었고, 바위들은 산산이 조각나 바닥에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이제는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마수들의 사체가 사방에 떨어져 있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근데?』

마르가리타가 문득 말했다.

이 정도면 바르바토스가 그들의 존재를 인지한 것으로 모자라 도발 정도로 인식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싸울 대상이긴 하다지만, 이렇게까지 도발을 할 생각은 없었다.

“뭐 어쩌겠어요. 저질렀는데.”

박율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일단 움직입시다. 이 정도면 다른 악마들이나 마수들이 몰려들 겁니다.”

한명련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박율은 고개를 돌려 악마를 보았다.

“다른 악마들이 있는 데로 안내 좀.”

[...!]

벙찐 얼굴로 일행을 보던 악마는 그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듯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일행의 저력을 눈 앞에서 마주한 악마는 공포와 경외, 그리고 놀라움이 한데 담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공포를 주체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본능적인 공포였다.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의 눈에서 박율은 악마의 대척점에 서 있을 존재인 인간이었다.

저 망치가 자신을 향해 날아올 수도 있다는 막연한 공포에서 비롯된 움직임이었다.

[사...살려...]

[괜찮다.]

데판이 말했다.

그는 악마를 진정시키며 악마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차분한 손으로 악마의 어깨 위에 손을 얹자 그제야 악마는 떨리는 숨을 고르게 쉬었다.

[길 안내를 부탁한다만.]

[아...아...]

[이곳에 있다간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아서 말이네.]

데판의 말을 들은 다음에야 악마는 떨리는 숨을 진정시켰다.

[아...알겠습니다.]

그리고 악마는 얼른 움직여 바닥에 떨어진 토끼 사체를 챙기고 길을 나서더니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 다시 돌아왔다.

[...?]

악마는 재빨리 죽은 늑대에게로 가더니 늑대의 심장을 챙겨 다시 움직였다.

[이게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일행들이 쫓았다.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데판은 굳은 어깨를 핀 채 선봉으로 움직이고 있는 악마에게 말했다.

딱 봐도 긴장한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 정도면 같은 편인 것은 확실하지 않더냐.]

바알의 편이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을 해치운 이들이었다.

말 그대로 바알을 농락한 것.

마계에 존재하는 악마들조차 선뜻 하지 못하는 행동이었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현재 바알은 마계를 총 망라해 꼭대기에 선 존재.

그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런 존재의 편에 있는 악마를 죽이다니.

[헌데 괜찮으신 겁니까...?]

[무어가 말이냐.]

[이렇게 된다면 바르바토스와 척을 지게 될 것이고, 결국 바알까지 이어질 것이며 그것은 곧 위험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선뜻 죽이지 못했던 건데...]

[말하지 않았더냐.]

데판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그것은 긴장이나 그에 버금가는 감정이 아니었다.

확신이 있기에 내뱉는 말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죽일 거라고.]

데판의 말에 악마는 입을 닫았다.

저 말에 무언가 주석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귀찮아지겠는데...”

뒤에서 박율이 내뱉었다.

그는 한숨을 팍 내쉬었다.

“기왕이면 조용하게 가다가 한 번에 처들어가서 끝내려고 했는데, 이러면 곤란한데.”

혀를 끌끌 차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

저렇게 말은 하지만 어차피 이번 일이 없었더라도 비슷하게 진행되었을 터였다.

그게 박율이라는 남자의 방식이기도 했다.

“몰라, 뭐. 찾아오면 또 죽이면 되겠지.”

뒤이어 내뱉은 박율의 말이었다.

무대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마 이제부터 군단장님을 비롯한 일행분들을 찾는 탐색이 시작될 겁니다. 이전에도 그랬으니까...]

악마는 과거를 회상하며 희미하게 어깨를 떨었다.

무수히 많은 악마들이 죽임을 당한 그 기억을 말이다.

한창 대화를 하던 중 일행은 어느새 폐허로 된 마을 어딘가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악마는 폐허가 된 마을의 외곽, 바위산을 연상케 하는 둥지를 가리켰다.

동시에 살기가 쏟아진다.

어디선가 날붙이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한명련이 한 발자국 걸어가더니 검을 반쯤 꺼냈다.

팅!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한명련의 검에 부딪혀 떨어졌다.

뒤이어 날아오는 수십의 화살들.

한명련은 검을 완전히 꺼내더니 화살들을 모두 튕겨냈다.

“누구십니까.”

한명련은 다시 검을 집어넣고는 정중하게 물었다.

“누구냐고 물으면 답을 해준답디까.”

박율이 말했다.

“해줄 사람이었으면, 아니 해줄 악마였으면 초면에 선빵은 안 치지.”

그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의 말에 한명련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흘깃 고개를 들었다.

사방에서 살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으나 언뜻봐도 수십개의 시선.

하지만 박율 일행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나름의 신뢰를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목소리가 폐허를 울렸다.

그 정체는 보이지 않았다.

[장로님! 단바입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이분들은...!]

선봉에 서 있던 악마는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소리쳤다.

허나 그가 말을 채 끝내기 전에 그를 짓누르는 압박감에 그는 입을 닫았다.

[...우리는 적이 아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데판이 목에 힘을 주고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폐허에 짙게 깔려 사라졌다.

폐허를 내리깔던 중압감이 짙은 살기가 되어 데판에게 쏟아졌다.

[네놈은...!!!]

폐허를 울리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감히 군단장님을 사칭하다니!!!]

이윽고 그 목소리는 분노에 젖어 검붉게 타올랐다.

목소리 끝에 떨어지는 잿빛 태양이 폐허를 비추고 있었다.

쏟아지는 살기는 이미 박율 일행의 목을 겨누고 있는 상태였다.

허나 여전히 그들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멈추세요! 장로님!]

경계가 극에 달해 살기가 곧 낭자한 핏물로 바뀌려는 순간이었다.

제 스스로를 단바라고 부르던 악마는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떨쳐내고 땅을 박차고 나가 양팔을 넓게 펼쳤다.

그의 등장에 살기가 조금은 멎었다.

[뭐하는 짓이냐!!! 죽고 싶지 않다면 비켜라!!!]

[이분은 바르바토스의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군단장님이시란 말입니다!!!]

[군단장님은 죽으셨다!!!]

[죽지 않으셨습니다!!! 돌아오셨단 말입니다!!!]

두 목소리는 마치 경쟁을 하는 공작새마냥 계속해서 목청을 높였다.

이어지는 언쟁 속에 살기는 데판을 변호하는 단바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네 녀석까지 꼭두각시가 된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비키지 않는다면 배신으로 알고 네 녀석부터 죽이겠다!!!]

[제 목숨을 구하시고 폐허의 늑대를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단바가 꺼내든 것은 늑대의 심장이었다.

숨이 죽어 늘어진 젤리처럼 흐물거리는 심장이 그의 손에 있었다.

당장에라도 그를 죽일 듯 치솟던 살기가 일순간 멎었다.

[...!?]

은은한 마기가 떨어졌다.

응축된 구처럼 떨어지는 마기가 이내 바닥에 부딪혀 허공에서 사라졌다.

악마가 든 심장은 틀림없이 폐허의 늑대의 심장이었다.

겉으로봐선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는 틀림없는 늑대의 것이었다.

그 말인 즉슨 저들이 늑대를 죽였다는 소리였다.

[이럴수가...]

폐허의 목소리가 짙게 깔렸다.

그리고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바위산 사이에서 늙은 난쟁이 악마 하나가 튀어나왔다.

[빨리 들어와라!!! 그 심장을 당장 버리고!!!]

난쟁이 악마는 빨리 들어오라며 손을 휘저었다.

그제야 사방에서 쏟아지던 살기가 사라지며, 데판은 악마에게서 심장을 빼앗아 저 멀리 어딘가로 던졌다.

[들어가지.]

그리고 일행을 이끌고 난쟁이 악마가 이끄는 곳으로 들어갔다.

* * *

바위산 안쪽은 바깥보다 열악했다.

부상을 당한 악마들이 사방에 즐비했고, 그나마 괜찮은 악마들은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바위산으로 들어온 이들을 한껏 경계하는 중이었다.

난쟁이 악마는 일행들이 모두 바위산으로 들어오자 자리에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렸다.

척!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단바의 목에 겨누었다.

[...!]

[아직 너희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난쟁이 악마는 당장에라도 박율 일행을 죽일 수 있다는 듯 살기를 내뿜었다.

[그...그게...]

선봉에 선 악마는 난색을 표하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데판이 한 발자국 걸어나왔다.

[내가 설명하지.]

[네 놈은 어떻게 믿고?]

[굳건한 믿음을 부정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를 주지는 못한다만, 혹 우리가, 자네가 생각하는 악한이었다면 이미 이곳은 쑥대밭이 되었을 거다.]

[...]

난쟁이 악마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지금 이곳의 상황은 상당히 열악했다.

조금의 강자라도 나타났다만 그대로 궤멸될 터.

데판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이제 다시 설명을 해도 되겠나?]

그리고 그는 설명을 시작했다.

어떻게 그들이 이곳에 왔는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 지, 모든 것들을 샅샅이 설명했다.

사실상 모든 것을 밝히는 정도였다.

과거에서 넘어왔다는 것부터 단탈리온의 전언까지.

데판에게서 이야기를 전부 들은 난쟁이 악마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단검을 떨어뜨렸다.

그에 맞춰 그들을 경계하던 악마들의 살기가 사라졌다.

난쟁이 악마는 떡 벌어진 입을 채 닫지 못하고 머리를 쥐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들의 말이 진정 사실이란 말인가...?]

“뭐, 이거면 믿을 수 있을까.”

박율이 양피지 조각을 내밀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단탈리온의 흔적이었다.

난쟁이 악마는 양피지 조각을 집어들더니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역시...주군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던 거야...]

그의 작은 어깨가 떨렸다.

그는 애써 떨림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시작된 떨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난쟁이 악마는 잠시나마 떨리는 숨을 진정시키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얼른 움직여야겠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

난쟁이 악마는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은 없었다.

이미 반란은 시작된 참이었다.

박율 일행의 등장, 그들이 죽인 늑대까지.

이제는 바르바토스 쪽에서도 움직일 터였다.

지금 그가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은 끝의 시작이자 새로운 시작의 도래를 알리는 무언가였다.

그는 잠시 바위산 안쪽으로 들어가 지도 하나를 꺼내 가져왔다.

[숨어있는 다른 이들의 위치일세.]

난쟁이는 네 개로 표시된 지역들을 가리켰다.

“그럼 속도를 높여야 할 것 같군요.”

한명련의 말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바르바토스가 마수의 죽음을 감지했다면 이미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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