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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48화 (148/183)

148화

너무나도 익숙한 그 이름에 박율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바알이라고...?”

그리고 되물었다.

노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바알.

그 마왕이 인간계를 초토화로 만든 것으로 모자라 마계까지 무법지로 만들고 있다는 소리였다.

마르가리타에게서 마계인의 말을 전해들은 서희와 한명련 역시 박율과 같은 얼굴을 했다.

익숙하고도 불쾌한 그 이름이었다.

“...정말 끝이 없군요.”

검 손잡이에 얹어놓은 한명련의 손은 자연스레 검을 잡았다.

[현재는 바알이 물러나고, 그의 산하로 들어간 전 마왕 바르바토스가 이곳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뒤이어 언제부터 침공이 시작되었고,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단탈리온의 마계는 수년 전부터 끊임없이 침공을 받아왔지만, 여태까지는 어떻게든 침공을 막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단탈리온의 실종.

그것을 시작으로 전세가 순식간에 기울었고, 그 결과 마계는 결국 바알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기간으로 따지면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단탈리온의 마계는 초토화되었고, 무수히도 많은 마계인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상황에 대한 설명을 모두 들은 일행은 잠시 서로를 보았다.

아주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서희였다.

“...어떻게 할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단탈리온도 없고.”

그녀의 질문은 역시나 박율에게로 던져졌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무언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의 시선은 잠시 데판에게로 머무르더니 다시 서희를 향했다.

사실상 선택지는 하나였다.

단탈리온의 마계를 되찾는 것.

단탈리온의 전언, 그가 사라진 타이밍, 그리고 그들이 마계를 찾아온 이유, 이곳까지 오는 여정, 그 모든 것이 결국은 하나의 길로 귀결되고 있었다.

또한 박율을 보며 경의를 표하는 마계인들까지.

너무 노골적인 선택지였다.

하지만 선뜻 답을 하지는 못했다.

그 선택지들은 결국 박율에게 국한된 이야기였다.

그를 지켜보는 저 두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그의 선택이 많은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상대는 마왕이었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생겨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야.”

달싹이는 입을 열지 못하는 박율을 보던 서희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박율은 흠칫 그녀를 보았다.

“언제부터 네가 그런 고민을 하는 캐릭터였냐?”

“에...?”

“그냥 해. 염병 떨지 말고.”

서희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질질 끌었다.

“일단 무대포로 들이박는 게 네 스타일 아니었냐? 언제부터 그렇게 고상하게 생각을 했다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율 씨답지 않아요.”

한명련이 서희의 말을 보조했다.

“...아니, 둘 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생각 없는 놈처럼 보이잖아요.”

“아니야?”

“...크흠.”

서희가 박율의 말을 받아쳤다.

그는 반박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이내 닫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박율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일행을 보았다.

이미 결정을 끝마친 이들의 얼굴이었다.

“어차피 상대가 바알이라면 언젠가는 부딪혀야 할 상대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한명련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박율은 한숨을 팍 내쉬며 이번엔 마르가리타와 데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뭐 다들 알아서 잘하실 거라 믿긴하는데, 다쳐도 책임 못져요. 만에 하나 죽더...”

“됐고, 어떻게 할 거야.”

서희는 손을 휘휘 저으며 답했다.

다른 이들 역시 비슷한 얼굴을 한 채 박율을 보고 있었다.

이미 결정을 끝낸 듯했다.

“...그러면 일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먼저 들어봅시다.”

이어 노인은 현 상황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단탈리온의 마계를 포함하여 전 마계에는 두 부류의 악마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바알의 악마들과 그의 산하에 들어간 수많은 악마들.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악마들로 말이다.

역시 단탈리온의 마계에도 두 종류의 악마들이 잔류하고 있었다.

박율 일행이 마계에 넘어오자마자 보았던 전투가 바로 그것이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마계 곳곳에 패잔병들과 반동세력들이 숨어있고, 그들은 끊임없이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단탈리온 마계의 악마였던 이들은 대부분 지하감옥에 갇혀있었다.

설명을 끝마친 노인은 목이 텁텁한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박율은 이어 서희와 한명련에게 통역을 해주려 했지만, 두 사람은 노인의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노인에게 전언의 능력이 있나보다 싶었다.

박율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그 말인즉슨 악마들을 구출하고 모아서 공격을 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 방법이 가장 이상적일 겁니다.]

노인은 박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큰 명분이 될 것입니다.]

“명분이요?”

노인은 대답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일단 악마들을 구출하는 게 시급하겠군요.”

한명련은 한 손 밖에 남지 않은 팔을 검 손잡이 위에 얹어둔 채 말했다.

그는 팔짱을 끼지 못해 보통 저런 식으로 팔을 들어올리곤 했다.

[허나 경계가 삼엄하여 쉽사리 접근하실 수 없을 겁니다.]

노인은 혀를 끌끌차며 답했다.

그의 말에 데판이 입을 열었다.

[정면으로 뚫는 것은?]

[기사님과 일행의 저력이 출중하다고는 하나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여 정면으로 뚫는다 하여도 그 너머에는 문을 지키는 강력한 마수가 있습니다.]

[흠...]

경계를 하는 악마들을 손 쓸 새도 없이 죽이지 않는 이상 정면 돌파는 무리였다.

게다가 돌파에 성공한다하더라도 문을 지키는 마수를 비롯해 소란을 듣고 몰려들 악마들을 상대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그럼 일단은 흩어진 악마들을 모으는 게 중요하겠네.』

마르가리타가 말했다.

[흩어진 악마들의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노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선뜻 말을 뱉었다.

“...근데.”

이야기가 한창 이어지던 중 서희가 손을 들었다.

작은 동굴의 시선들이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갑작스레 쏟아진 시선에 부담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아니, 뭐 거창한 건 아닌데, 만약 성공한다 쳐. 단탈리온이 없는데 그 이후에는 뭐 어떻게 할 건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한명련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단탈리온이 없다면 결국은 마계를 통솔할 사람이 누구든 필요할 거 아니야? 그 역할을 누가 맡을 거냐고.”

“그렇군요. 그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명련이 답했다.

그와 서희는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박율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중이었다.

“그야 당연히...”

박율은 대답을 함과 동시에 시선을 데판에게로 옮겼다.

마르가리타 역시 그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

그 역시 두 사람과 같은 생각인 듯했지만,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 무거운 얼굴을 한 채였다.

마왕이 없어진 마계에 마왕을 대신할 사람은 데판 말고 없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두 사람에 시선에 한명련은 한껏 인상을 찡그렸다.

“에!? 인형에게 그런 중대한 역할을 맡긴다는 것입니까? 아무리 막강하고 대단한 인형이라지만 마왕의 자리에 앉히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서희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한명련을 보고 있었다.

데판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한명련에게는 어쩔 수 없는 처사이긴 했다.

“...뭐 사실을 말하자면 인형이 아니에요.”

“그럼 소환수라는 겁니까?”

“악마에요.”

“예, 뭐. 악마를 인형으로 만든 것 아닙니까?”

“아뇨. 인형이 아니라 악마라고요. 한명련 씨도 본 적 있을텐데. 단탈리온 제 1 군단장 데판이라고.”

“예?”

한명련은 그의 말에 고개를 쭉 내밀고 데판을 보았다.

그도 이 마계를 여럿 들렀던만큼 데판을 본 적은 있다만, 기억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한명련은 한참을 데판을 보더니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 악마!”

“맞아요. 그 악마가...”

“죽어가는 악마를 되살려 인형으로 만든 것이군요! 게다가 고양이를 동경하고 있다보니 고양이처럼...”

“그냥 말을 맙시다.”

[헌데.]

한참을 입을 닫은 채 있던 데판이 입을 열었다.

박율은 고개를 내저으며 데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왜요?”

[혹 내가 마왕의 자리에 앉는다한들.]

“한들?”

[우리는 이 시간대의 존재가 아니다.]

“...아.”

그제서야 박율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떡 벌렸다.

생각해보면 데판은 과거의 존재였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 본래의 역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곳에서 그는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뭐 아니면 잔류하고 있는 악마들도 남아있으니 그들 중에 가장 강한 녀석한테 자리를 주면 되지 않을까요...?”

박율은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데판은 그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은 또 같은 결말을 맞이할 거다.]

“...”

마계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

지금까지는 단탈리온의 힘으로 마계를 지탱하고 있었다지만, 그가 사라진 지금 데판마저 없다면 마계를 지탱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혹여 데판이 아닌 다른 악마가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면 데판의 말처럼 또 다시 침공을 겪을 것이고, 결과는 참혹할 수 밖에 없었다.

박율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문득 노인이 말했다.

[광명은 그때까지 비추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예? 광명이 비추지 않는다니...”

그제야 안 사실이지만, 작은 동굴 속 박율 일행을 제외한 마계인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왜 그렇게 다들 쳐다봐요?”

[이만 결정이 되신 것 같으니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노인은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동굴을 가로질렀다.

이내 돌아온 그의 손에 있는 것은 양피지 조각이었다.

“이건...”

단탈리온에게서 받았던 양피지와 같은 종이였다.

박율은 놀란 얼굴로 노인을 보았다.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노인은 미소를 지은 채 그의 손에 양피지를 넘겨주었다.

“단탈리온 그 양반이 준 거에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율은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인 즉슨 이 상황까지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박율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참 알면 알수록 알 수가 없는 양반이라니까...”

박율은 양피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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