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47화 (147/183)

147화

박율은 벙찐 얼굴로 데판을 보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가 손쓸 새도 없이 악마가 죽었다.

저 악마가 그리 약한 편은 아니었다.

솔직히 강한 편에 속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가 내뿜었던 마기의 양으로 대강 알 수 있었다.

“와우...”

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 사이 데판은 품에 안은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의 등이 떨리고 있었다.

날숨을 내뱉을 때마다 자란 파란이 일었다.

분노와 절망이 한데 섞인 무언가였다.

아이의 떨리는 눈이 벌어졌다.

그리고 데판을 본다.

아이의 눈은 이내 놀란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기...기사님...!!!]

아이가 소리쳤다.

아이는 데판을 보며 저도 모르게 놀란 뒷걸음질을 쳤다.

반가움보다는 놀라움 쪽이 더 가까웠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데판이 물었다.

허나 여전히도 아이는 충격에 사로잡힌 채였다.

[...]

[진짜로 돌아오셨어...기사님이...]

아이는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뒤에 서 있는 다른 일행들을 향했다.

[정말이었어...영주님의 말이 정말...]

그리고 감격에 찬 얼굴을 했다.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졌다.

[진정하거라.]

데판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아이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기사님이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정말...]

아이의 눈이 일렁거렸다.

이내 눈물이 맺혀 바닥에 떨어졌다.

아이에게서 느껴져서는 안될 고단함과 애석함이 바닥에 스며들었다.

[알고 있다.]

데판은 아이를 쓰다듬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세계의 데판은 이미 죽은 뒤인 듯했다.

아이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님이 말하셨습니다! 만개한 낙엽이 떨어져 땅의 양분으로 돌아갈 때 기사님이 돌아오실 거라고 말입니다!]

아이는 잔뜩 흥분한 채 소리쳤다.

아마 단탈리온의 전언인 듯했다.

[...혹 혼자 살아남은 것이냐?]

데판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길 바랬다.

이 진절머리나는 세상에 아이가 홀로 살아남지 않기를 바랬다.

아이는 다행히도 고개를 저었다.

떨리던 데판의 숨이 조금은 진정을 되찾았다.

[이리로 오세요! 기사님! 살아남은 이들이 숨어있는 동굴로 안내하겠습니다!]

아이는 데판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지금 이게 무슨일이야?”

박율의 옆에 있던 서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악마들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그녀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처에 살아남은 마계인이 있데요. 따라갑시다.”

박율이 말했다.

그의 말에 서희는 더더욱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넌 그걸 어떻게 아는 거고?”

“...그냥 가요. 따지지 말고.”

설명하기도 귀찮다.

박율은 서둘러 데판을 따라 움직였고, 서희가 그 뒤를 쫓아갔다.

자리에 남은 마르가리타는 얼른 그들을 쫓으려 했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눈길에 흘깃 고개를 돌렸다.

한명련은 너무나 호기심이 넘치는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니, 경외였다.

“어떻게 저런 인형을...”

『...뭐?』

“자아가 있는 걸로 모자라 저런 힘과 속도를 가진 인형이라니... 마르가리타 씨는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신 겁니까!!!”

한명련은 감격스럽다는 듯 소리쳤다.

그를 보는 마르가리타는 부담스러운 그의 눈길에 조심스레 뒤로 물러났다.

『조금 부담스러운데 떨어져줄래...?』

“어떻게 인형을 만드신 겁니까!? 이야기를 좀...”

한명련이 번뜩이는 눈으로 마르가리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재빨리 멀어지는 박율을 보았다.

『야!!! 같이 가!!!』

그리고는 더 귀찮아지기 전에 얼른 박율의 뒤를 쫓았다.

폐허가 된 마을을 넘고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외곽 쪽에 숨겨진 어느 산이었다.

[이곳에 이런 산이 있었던가.]

데판은 인적 드문 산을 둘러보며 말했다.

비록 다른 역사에서 온 데판이긴했지만, 지금까지 본 이곳의 마계는 자신의 세계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런 산을 발견한 적도 없었지만.

데판은 딱히 딴지를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듣지 못한 듯 땀을 뻘뻘 흘리며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흠...]

아이를 따라 산을 조금 더 올라가자 그곳엔 겨우 사람 하나 들어갈 법한 구멍이 보였다.

[여기...여기에요!!!]

숨을 헥헥거리며 뛰어간 아이가 소리쳤다.

그리고 아이는 지치지도 않는 지 쉬지 않고 동굴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이곳에 있다는 말이냐.]

동굴 앞에서 짧은 회의에 빠진 데판은 몸을 작게 변형시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일행들이 하나둘 동굴 앞에 도착했다.

“여기에...”

박율은 동굴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계인들이 숨어있다기엔 너무나도 좁은 동굴 같았다.

과연 얼마나 많은 마계인들이 생존해 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혹시 함정 같은 거 아니야? 들어가도 되는 거 맞아?”

서희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사방으로 튀며 어디선가 노려보고 있을 미지의 존재를 경계하고 있었다.

물론 딱히 시선이 느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단 들어갑시다. 뭐가 어찌됐든 간에.”

여전히도 서희는 가늘게 눈을 뜬 채 사주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였지만.

박율이 아무렇지 않게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함께 들어섰다.

『오지마! 좀!』

뒤이어 달려오는 마르가리타 역시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갔고.

“어떻게 만든 건지 이야기만 부탁드립니다!”

더럽게 눈치도 없는 한명련까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 * *

어두운 동굴을 따라 걸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앞 사람의 등이 전부였고, 언뜻언뜻 들려오는 물소리만이 동굴을 장악한 듯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 동굴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서자 점점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행히 살기가 느껴진다거나 함정의 기미가 보이진 않았다.

차라리 산 속 짐승의 기색이 더 위협스러울 정도로 가벼운 인기척들이었다.

[여기에요! 기사님!]

아이가 소리쳤다.

아이의 목소리는 동굴의 벽에 부딪히고 부딪혀 공명했다.

데판은 말없이 아이를 지나 통로를 빠져나갔다.

그러자 보이는 동굴의 내부.

기껏해야 두 사람 겨우 들어갈까말까한 동굴의 입구와는 다르게 안쪽은 나름 적당히 커다란 구획이 만들어져있었지만, 그래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마계인들은 수십 명 정도.

그마저도 대부분 몸이 성치 않은 마계인들이거나 노약한 이들이 전부였다.

데판의 뒤로 동굴 내부를 보는 일행들의 표정 역시 차갑게 굳어갔다.

[...?]

투박한 벽에 기대 몸을 늬우고 있던 마계인들이 인기척이 고개를 들었다.

[기사님이 왔어요!]

아이가 소리쳤다.

아이의 말에 마계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기사님...!!!]

[기사님이다!]

[정말로 오셨어...!!!]

데판을 본 마계인들은 감격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는 데판의 주먹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이게 전부인가...?]

데판의 질문에 아이를 비롯한 마계인들은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답이 시사하는 바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주군...주군께서는 어디로 가셨지?]

데판은 파르르 떨리는 입을 애써 참으며 물었다.

[영주님께서는 사라지셨습니다...]

하얗게 샌 머리가 돋보이는 마계인 하나가 답했다.

그는 성치도 못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쪽 발을 절며 데판에게로 걸어왔다.

[어디로...가신 것이냐...?]

노인은 주름진 손을 힘겹게 들어올려 데판의 윤곽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그저 사라지셨습니다. 기사님께서 돌아오실거라는 전언만을 남겨두고...]

울컥 내뱉는 노인의 광대를 타고 눈물이 떨어졌다.

[정말 돌아오셨습니다...기사님께서...]

“그럴수가...”

“무슨 상황인데? 저 사람들 왜 울어?”

박율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희는 무슨 상황이냐는 듯 박율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는 착잡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게 살아남은 전부래요.”

“이게...?”

그의 말에 서희의 표정 역시 일그러졌다.

그녀가 알고 있기로도 단탈리온의 마계에 살아있던 마계인들의 숫자는 상당했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의 눈에 보이는 숫자는 채 100이 넘질 않았다.

“끔찍하군요.”

한명련의 말이었다.

그는 안쓰러운 눈으로 마계인들을 살폈다.

아니, 어쩌면 동질감을 느낀 것일수도 있다.

악마들에게 점령당한 인간계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이니 말이다.

박율은 한숨을 팍 내쉬었다.

“에휴...”

문득 마계인의 시선이 박율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쪽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했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

박율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짐짓 당황한 듯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요?”

[새로운 태양이시여.]

“...새로운 뭐요?”

당황한 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데판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입을 꾹 닫은 채 박율을 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요. 갑자기 왜 이래, 나한테. 빨리 일어나요, 다들!”

박율이 얼른 일어나라며 닦달을 하자 그제야 마계인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중 선봉에 선 노인의 눈은 아주 천천히 일행을 훑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근차근 움직이는 그 시선이 불쾌할 법도 했지만, 그리 불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선에서 신뢰가 느껴졌다.

[일단은 앉으시지요...]

노인은 일행을 더욱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나저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마르가리타가 물었다.

그녀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박율을 거쳐 노인을 향했다.

“그러고보니까.”

생각해보면 그 말인 즉슨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데판과 일행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박율에게 무릎까지 꿇다니.

경외에 찬 얼굴로 박율을 보던 노인이 고개를 돌려 일행을 보았다.

그리고 모두가 딱딱한 찬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 그리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노인은 텁텁한 입을 달싹거렸다.

[그저 영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셨기에, 그리 하라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주군께서 남긴 전언은 그것이 끝이더냐?]

데판이 물었다.

그의 질문에 노인은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만개한 낙엽이 떨어져 땅의 양분으로 돌아갈 때 새로운 태양이 도래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

노인의 말에 데판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거, 말 어렵게 하는거는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네.”

박율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게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단탈리온의 예언은 매번 저런 식이었다.

“못 알아들을 예언을 던질 거면 왜 예언을 하는 거야?”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었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정말 그게 끝인가?』

마르가리타의 물음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주군의 마계를 지배하는 이는 누구더냐? 주군께서 사라졌다면 다른 이가 마계를 책임지고 있어야 할텐데.]

노인의 시선이 데판에게로 돌아가더니 이내 고정되었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같던 그 눈빛이 아주 잠시 굳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분노, 아니라면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내보이는 중이었다.

[평화롭던 이곳을 무법지로 만든 이는...]

노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계대전을 일으킨 마왕, 바알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