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46화 (146/183)

146화

확실하지는 않았다.

허나, 지금 그들이 목격한 현장은 마계대전, 그것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살육이 난무하는 전장.

쇠붙이를 든 악마들은 서로의 목을 탐하고, 수십의 악마들이 피를 내뿜으며 바닥으로 추락한다.

들려오는 것은 악마들의 단말마 뿐이었다.

쏟아지는 마기에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았다.

“다들 숨어요...!”

순간 박율이 소리쳤다.

그는 재빨리 그나마 성한 나무를 찾아 뒤로 몸을 숨겼다.

다른 일행들 역시 그를 따라 은폐물을 찾았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악마들의 대전.

사실상 저 악마들은 박율 일행에게 위해를 가할 만큼 가공할 위력을 가진 이는 없었으나, 그들이 숨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멀리에서 느껴지는 마기 하나.

박율의 기억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 마기의 정체는 바알군의 제7 군단장 바토스의 마기였다.

반대편의 악마들 사이에서도 엇비슷한 마기를 가진 악마가 있었다.

“쉿...”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어깨 너머로 악마들을 보았다.

확실한 건 저 악마들은 박율 일행을 눈치챌 정도의 여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일행의 인기척은 악마들이 내뿜는 살기에 묻혔다.

다행히 전투는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두 거대한 마기가 부딪히고 폭풍이 일었지만, 바토스의 저력은 일방적이었다.

반대편의 악마들이 발버둥을 치고 몸을 부딪혔지만, 결국은 바알의 군 앞에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전투가 완전히 끝난 후.

바토스를 비롯한 악마들은 반대편의 우두머리 악마의 머리를 가지고는 사라졌다.

악마들의 마기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고 난 뒤, 그제서야 일행들이 하나 둘 걸어 나왔다.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나봅니다.”

한명련이 먼저 정적을 깨고 말했다.

뒤를 이어 서희는 혀를 내둘렀다.

“마계도 아주 개판이구나.”

『정말...』

마르가리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과거의 역사, 즉 개변된 역사에서 살아왔던 그녀로써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의 연속일 것이다.

그녀는 차마 말을 내뱉지 못하고 삼켰다.

박율은 그 사이에서 데판을 보았다.

그 역시 박율과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더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살았던 세계가 아니라한들 이곳이 그의 마계인 것은 같을 테니까 말이다.

[...움직이지.]

한참을 멍하니 마계를 둘러보던 데판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단어에서 건조함이 느껴졌다.

쩍쩍 갈라지는 듯한 건조함에 박율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어디로 가려고?”

서희가 물었다.

그녀의 말처럼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땅에서 딱히 갈 곳이 보이진 않았다.

사방이 죄다 폐허 혹은 황무지가 되어 있으니, 어디로 가든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단탈리온의 성으로 갈 거에요.”

대답은 박율의 몫이었다.

“이 지경인데 단탈리온이 살아있을 거라고?”

서희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박율은 따로 답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

어딘가에 단탈리온이 살아남아 마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과 다른 마왕에게 마계를 빼앗긴 것.

그러니 현상황에 무지한 그들이 당장 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탈리온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주군께서 돌아가셨을리는 없다.]

데판은 단호하게 말했다.

흔들림이 없는 한 마디였다.

박율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타 마왕들에 비해 그리 강력한 마왕은 아니었다만, 그 역시 마왕이었다.

게다가 일전에 보았던 단탈리온이 말했다.

자신을 찾아오라고.

그 말인 즉 단탈리온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데판과 박율은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요. 살아있을 거에요. 그 양반이 쉽게 갈 양반은 아니니까.”

그러다 박율은 흘깃 마르가리타를 보았다.

그녀는 멍하니 마계의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뭐해요?”

『어...? 어? 아냐 아무것도.』

“아까 그 마수랑 관련 있는 거에요?”

박율의 질문에 마르가리타는 그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확실히 마계 어딘가에서 마리나의 마기가 느껴졌다.

“무슨 사연이 얽힌 건지는 모르겠는데, 기운 차려요. 누나답지 않으니까.”

『...그래.』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일단 움직입시다. 이곳도 그리 안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명련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사방에서 마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악마들이 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갑시다.”

* * *

터벅.

짙은 마기가 온몸을 짓누른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온몸이 터질 것만 같은 압박감이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강진호는 검게 물든 지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파이몬의 마계, 절명하는 쉼터였다.

쉼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곳엔 모든 마계에서 내노라하는 악마들이 모여드는 투기장 개념의 성이었다.

[누구냐.]

절명하는 쉼터의 문지기였다.

언뜻봐도 강진호의 수십배의 덩치를 가진 문지기는 힐끔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는 그 이상 접근하면 죽이겠다는 듯 살기를 펄펄 풍기며 팔짱을 낀 채 문을 지키고 있었다.

“...바알을 만나러 왔다.”

[허.]

어이가 없다는 듯 내뱉은 콧방귀엔 여러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인간의 몸으로 겁도 없이 찾아온 그에 대한 불쾌함이었다.

“비켜라.”

[내가 왜 비켜야 하지?]

“...”

강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흠칫.

그의 시선에 문지기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

그리고 자신이 놀랐다는 사실에 놀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 뭐하는 놈이냐?]

“알려줘야 할 이유라도 있던가?”

[없으면.]

쿵!!!

문지기의 두 주먹이 부딪히며 바위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꺼져야지.]

문지기는 짜증 가득한 말을 내뱉더니 이내 발을 옮겼다.

쿵!!! 쿵!!! 쿵!!!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때마다 지진이라도 인 듯 땅이 울렸다.

그리고 문지기가 강진호의 목전까지 도달했을 때, 그는 하찮은 벌레를 죽이는 듯 발을 굴렀다.

쿵!!!

검은 땅의 검은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

이내 문지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발바닥 아래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마치 부숴지지 않는 나무 한 그루를 밟고 있는 느낌이랄까.

[순보]

그리고 일순간 그의 발이 미끄러지듯 바닥에 떨어졌다.

쿵!!!

문지기의 시선이 달려드는 살기를 쫓는 순간, 이미 그곳엔 강진호가 검으로 자신의 목을 겨눈 채 어깨 위에 서 있었다.

“비켜라.”

[이 새끼가...!!!]

문지기는 이를 빠득 갈며 팔을 휘둘렀다.

허나 그것 역시 강진호에게 닿지 못했다.

차악!

[큭...!!!]

날카로운 통증이 아킬레스건에서부터 울리며, 문지기는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문지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터벅.

강진호가 다가온다.

문지기는 공포에 잠식되어 흠칫 떨었다.

그리고 강진호가 코앞까지 도달했을 때, 문지기는 꼴사납게 온몸을 움츠리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

강진호는 덩치에 맞지 않게 소리를 지르는 문지기를 뒤로한 채 절명하는 쉼터로 발을 옮겼다.

끼익!

커다란 문이 열리고, 요란하던 쉼터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윽고 살기어린 시선들이 강진호를 향해 쏟아졌다.

[무어냐?]

강진호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끼익!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암전이 찾아왔다.

[문지기는 어디간거야? 저런 마인 새끼까지 들이고.]

[유행하는 자살 방법인 건가?]

사방에서 악마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허나 강진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쉼터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어이.]

쿵!!!

이번엔 강진호의 비슷한 덩치의 악마가 그의 길을 막아섰다.

[뭐하는 짓이지?]

“마침 잘 됐군.”

[뭐?]

“바알은 어디 있나.”

악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주먹을 휘둘렀다.

허나 그의 주먹은 허공에서 궤를 그렸다.

차악!

뒤이어 떨어진 것은 악마의 머리였다.

[어라...?]

쿵.

육중한 악마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때까지도 악마는 자신의 머리가 잘린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긴말하지 않겠다. 바알을 불러와라.”

악마들이 달려든다.

그리고 강진호는 그들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다.

* * *

“...”

황무지가 된 숲을 빠져나온 박율 일행은 그 너머에서 펼쳐진 광경에 침음했다.

숲 너머는 원래 마계인들의 거주지가 펼쳐져 있어야 했다.

허나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폐허였다.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폐허.

그나마 남아있는 것이라곤 이미 온기를 잃은 마계인들의 사체들과 건물의 뼈대처럼 보이는 나무판자들이 전부였다.

모두가 할말을 잃은 채 입을 꾹 닫았다.

특히나 데판은 더더욱 그랬다.

자신의 고향이 황폐화되어 있는 모습을 본 이들의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허나 그는 그저 꿋꿋하게 걸어갈 뿐이었다.

[어차피 이 세계는 나와는 별개다.]

뒤에서 느껴지는 박율의 시선에 데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박율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다시 걷고 걸어 단탈리온의 성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침음했다.

단탈리온의 성이 있어야 할 곳엔 반쯤 무너진 성만이 남아있었다.

『여기가...』

“이미 도망쳤나봅니다.”

한명련이 말했다.

이렇게 마계가 전부 쑥대밭이 될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데판은 여전히도 입을 열지 않은 채 홀로 성이었던 폐허로 들어갔다.

일행들 역시 그를 쫓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성의 안쪽은 더욱 심했다.

마치 성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듯 사방에 죽은 이들의 사체가 가득했다.

허나 그들의 죽음은 실패를 뜻했다.

그 죽음들은 계단까지 이어져 그 끝은 단탈리온의 서재로 향했다.

일행은 성을 샅샅이 뒤지며 단탈리온의 흔적을 찾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단탈리온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박율의 눈은 데판을 향했다.

아닌 척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분노에 젖은 떨림이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다다!

그 작은 인기척은 박율 일행이 뒤를 보는 틈을 타 재빨리 도망쳤다.

박율은 인기척을 쫓으려 발을 떼었지만, 이내 그 자리에 멈춰섰다.

[아악...!!!]

[아직도 살아있는 놈이 있었다니.]

작은 인기척의 머리를 쥔 악마가 문 쪽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

악마가 박율 일행을 보았다.

[하나가 아니었군.]

호리호리한 몸에 날카로운 마기를 내뿜는 악마는 박율 일행을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박율이 먼저 선제 공격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데판은 그의 앞을 막아서며 한 발자국 발을 내디뎠다.

[악마가 인간 놈들과 같이 있다니.]

[내려놓아라.]

데판이 일갈했다.

허나 악마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싫다면...]

악마가 대답을 하는 순간.

그것의 머리가 터졌다.

데판은 눈으로도 쫓기 힘든 속도로 이동하여 아이를 품에 안은 채였다.

[죽어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