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둔탁하고도, 축축하며, 처절한 소리가 울렸다.
“제발 그만해...”
마르가리타의 입에서 흘러나와 허공을 부유하는 그 말은 마리나에게 닿지 못했다.
마리나는 이미 분노에 휩쌓여 더 이상 이성을 되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불을 내뿜었다.
그 불꽃은 너무나 뜨거워 닿는 모든 것들을 재로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마르가리타는 불을 정면에서 받았다.
화아아!!!
불꽃이 그녀를 집어삼켜도 그녀는 굳건하게 버텼다.
속죄라고 생각했다.
마르가리타는 온몸을 태우는 열기를 버티며 마리나에게로 걸어갔다.
숨을 들이마시면 열기에 식도가 익는 것 같았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열기는 거세져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
[쿠아아아아아!!!!!!!!!!]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이대로 가다간 그들의 마을만이 아니라 근방의 모든 마을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듯한 세기였다.
마르가리타는 망설였다.
“마리나!!!”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허나 마리나는 날뛸 뿐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쥐고 있는 망치가 덜덜 떨렸다.
아주 천천히.
마르가리타는 불길 속을 가르며 마리나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마리나에게 손을 가져갔다.
두 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제발 그만해줘.
찰나의 순간이 흘렀다.
[쿠아아아아아!!!!!!!!!!!!!]
터지는 괴성.
마리나는 포효했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다.
마르가리타는 망치를 높이 들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조금만 더 빨리 이런 힘을 얻었더라면.
신이라는 존재가 내게 조금 더 빨리 길을 알려주었더라면.
무언가 바뀌었을까.
허나 그 모든 것들은 이미 떨어진 낙엽처럼 즈려 밝혀 산산이 부서졌다.
마르가리타는 마리나에게서 손을 거뒀다.
그리고 말했다.
곧 따라가겠다고.
마르가리타는 높이 든 망치를 내려찍었다.
이윽고 그 망치는 마리나의 이마를 부순다.
마리나는 더욱 포효했다.
콰직!!!
마르가리타는 또 다시 망치를 내려찍었다.
세 번.
그녀의 망치가 호를 그린 횟수였다.
폭발하던 불꽃이 멎으며 마리나는 쓰러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아이의 눈이 마르가리타를 향했다.
마르가리타는 마리나의 심정을 알지 못했다.
허나 그녀에게 있어 그 눈빛은 원망이었다.
그리고 좌절이었다.
하나뿐인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슬픔이었다.
“...”
마르가리타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검은 피로 얼룩진 마리나를 껴안았다.
“미안해...”
쩌적!
땅이 갈라진다.
그 뒤로 검은 안개가 벌어졌다.
이윽고 그 안개는 마리나를 감쌌다.
“마리나...!!!”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자리에 남은 것은 마르가리타와 그 앞에 떨어져 있는 감자무더기였다.
마리나의 비늘에 붙어있던 것들이었다.
“마녀다!!! 저 괴물을 만든 마녀!!!”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울렸다.
* * *
마르가리타는 고룡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언령에 묶여 있는 이들은 벙찐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위험해요!!!”
박율은 소리쳤다.
자그마치 네 명이 달라붙어있던 마수였다.
마르가리타 혼자서 상대를 한다는 건 죽으려는 것과 다름 없었다.
[마르가리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새하얀 불꽃으로 벼린 망치를 든 그녀는 망설임이 없었다.
[쿠아아아아아아!!!!!!!!!!!!!!]
고룡이 포효를 내질렀다.
푸드덕거리며 숨어있던 새들이 날아가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마수들마저 공포에 짓눌려 도망쳤다.
마르가리타만은 그저 고룡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녀의 망치는 호를 그렸다.
그리고 그 궤적은 만개하는 불꽃을 섬멸했다.
고룡은 다시 불꽃을 내뿜었다.
허나 그 불꽃은 여전히 마르가리타의 망치에 짓눌려 사라졌다.
포효를 내지르던 고룡과 마르가리타의 시선이 교차했다.
서로를 알아보았다.
『...살아있었구나.』
고룡은 더 이상 불을 내뿜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콧김이 바닥에 추락했다.
마르가리타는 높이 든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화해의 의미가 아니었으며, 사죄의 의미가 아니었다.
아이였던 아이에게 내미는 손길, 그저 그뿐이었다.
고룡은 내지르던 포효를 멈췄다.
[크르르...]
사나우면서도 텁텁한 울음이 짙게 깔렸다.
그녀의 손길이 아이에게 닿았을 때.
『...오래 기다렸니?』
마르가리타는 쓴 웃음을 지었다.
고룡은 부르르 떨었다.
마르가리타는 그 떨림마저 거두려고 했지만, 거둘 수 없었다.
대신 입을 열었다.
『늦어서 미안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따라가고 싶었는데... 여의치가 않았네.』
미안해.
마리나의 떨림을 타고 마르가리타의 손이 떨렸다.
차마 더 이상 말을 맺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떼었다.
너무나도 긴 시간이 흘렀다.
감옥에 갇혀있던 한 여인은 하늘에 닿아있었고, 작은 아이는 바닥에 닿아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득히 먼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고룡은 터지지 않는 포효를 내질렀다.
침음하는 소리였다.
그 울음의 의미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공허했으며, 처량했다.
고룡은 날개를 폈다.
그리고 날았다.
마르가리타는 하늘을 높이 비상하는 고룡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날아오르던 고룡은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그것이 숨어있던 숲으로 날아갔다.
『...』
바람이 일었다.
돌풍일지도 모른다.
한순간 겨울날의 매화처럼 만개한 정적은 멈출 줄을 몰랐다.
마르가리타는 바람을 따라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추락하는 햇빛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누나!!!”
그새 언령을 부수고 달려온 박율이었다.
“어떻게 한 거에요!?”
그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마르가리타를 보았다.
그녀는 바닥을 응시한 채 떨리는 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가 강하다한들 저런 세월을 먹고 자란 마수에게까지 언령이 닿을 리는 없었다.
어떻게 그녀가 고룡을 상대한 것인지는 몰라도 탄사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다른 이들 역시 언령이 풀린 듯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명련은 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으며 감사를 표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서희는 고룡을 마주하고도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아무런 위해없이 고룡을 내쫓은 마르가리타를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게다가 언령까지 쓰다니.
평범한 사자들이라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마르가리타는 잠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곤 내뱉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내 아이였거든.』
“뭐?”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허나 누구도 그 말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그나저나.”
박율이 말했다.
“통로 찾은 거 같은데요?”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는 저 멀리 떨어진 숲을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룡이 사라진 숲 속 어딘가였다.
그곳엔 감자밭이 있었다.
그리고 검고 깊은 칠흑이 있었다.
마르가리타는 눈을 감았다.
* * *
“예상치 못한 복병에 위험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안전하게 길을 찾은 거 같네요.”
박율이 말했다.
그는 마기를 펄펄 내뿜는 심연 앞에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위험할 거에요.”
그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이들을 보았다.
이 경계를 넘어가면서부터는 마계였다.
아무리 그들의 목적지가 단탈리온의 마계라한들 인간계와 비교한다면 위험할 수 밖에 없었다.
[...]
데판은 고양이로 돌아가지도 않은 채 본모습을 하고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믿을 수는 없지만, 근방의 모든 마수들이 흘러나오는 진원지가 바로 이곳, 단탈리온의 마계와 연결된 심연이었다.
게다가 흘러나오는 마기의 양으로 봤을 때 적어도 몇 달 동안은 심연이 열려있었을 터.
무언가 문제가 있음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조심해야 할 거다.]
데판이 입을 열었다.
그가 있던 역사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열려있던 심연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인 즉슨 이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그로써는 짐작하기 힘든 일들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박율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보았다.
한명련, 서희, 마르가리타 모두 흔들림이 얼굴이었다.
“그럼 갑시다.”
박율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선봉에 서 심연의 경계로 발을 들였다.
심연을 넘어서자 보이는 검은 세상.
박율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우리도 갑시다.”
한명련이 그 뒤를 따랐다.
마르가리타와 서희 역시 두 사람을 쫓아 안으로 들어갔고, 데판은 홀로 자리에 남아 무거운 한숨을 뱉어내더니 이내 그들을 쫓았다.
* *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연 속을 걷고 걸으며, 어느새 일행은 눈을 떴다.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쳤다.
단탈리온의 마계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
그리고 가장 먼저 마계에 도착한 박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짙은 마기와 황무지가 된 숲길.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만, 폐허가 된 마계를 마주한 박율은 침음했다.
“...”
“왜 그러십니까?”
뒤따라 마계로 진입한 이들은 박율의 시선을 따라 눈을 옮겼다.
그들 역시 황무지가 된 마계에 놀란 채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하늘엔 온통 심연이 가득했다.
달리 말하자면 심연 밖에 보이질 않았다.
“뭐야, 이게...?”
서희가 말했다.
그녀도 단탈리온의 마계는 들른 전적이 여럿 있는 사람이었다.
허나 여태 이곳을 찾아오는 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사방에서 느껴지는 마기.
그녀의 감각이 바래진 것이 아니라면, 너무나도 많은 마기들이 섞여있었다.
도저히 단탈리온의 마계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말이다.
『원래 이런 거야...?』
단탈리온의 마계를 처음 마주하는 마르가리타가 물었다.
“아뇨, 오래되었긴 하나 이전의 이곳이 이렇게 황무지였던 적은 없습니다.”
한명련이 답했다.
[...]
뒤따라 들어온 데판 역시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쾅!!!
하늘 너머에서 굉음이 울렸다.
박율 일행은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재빨리 전투를 준비했다.
“뭐야...?”
박율은 망치를 높이 든 채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 끝에서 악마가 나타났다.
하나가 아니었다.
어림잡아 수십, 많게는 수백까지도 많은 악마들이 하늘을 장악했다.
“다들 조심...”
이윽고 반대편에서도 악마들이 나타났다.
그들을 서로에게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무슨 일이야...!?』
그리고 박율의 머리 속으로 한가지 가능성이 시사되었다.
이전 타 악마에게서 들었던 하나의 이야기.
그것은 마계대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