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마을 위를 장악한 용을 보았다.
포효하는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마르가리타의 심장이 아려왔다.
아닐 거야라고 달싹거리는 입은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것은 틀림없이 마리나였다.
덩치가 훨씬 컸고, 포효하는 그 소리도 훨씬 사나웠지만, 저 용은 마리나였다.
“쿨럭...!”
건물 잔해에 깔려있던 마르코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각혈을 토해냈다.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그는 어떻게든 자신을 깔고 있는 잔해더미를 치우려 하지만, 잔해더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이 마르가리타를 향했다.
“마르가리타...?”
“괘...괜찮으세요...?”
그는 잔해에 깔린 채 놀란 눈으로 마르가리타를 살폈다.
피골이 상접한 그녀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
“...”
마르가리타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내저을 뿐이었다.
마르코는 이상의 질문은 던지지 못했다.
그 역시 왜 그녀가 이곳에 있고, 저런 추레한 몰골을 하고 있는 지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도와드릴게요...!”
마르가리타는 일단 그에게로 다가가 그를 짓누르고 있는 잔해를 덜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움직이는 것도 벅차보이는 그녀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잔해를 치워내려 하지만, 움직이는 것이라곤 주먹만한 돌덩이들이 전부였다.
“포기하게. 지금 자네의 몸상태로는...”
“읍...!!!”
마르가리타는 어떻게든 마르코를 구해내려 안간힘을 쓰지만,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그녀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별안간 마르코 옆에 떨어져 있던 망치를 집었다.
그리고 돌에 깔린 몸뚱이 옆으로 망치를 밀어 넣고는 그 아래에 수박 만한 돌덩이를 집어 넣었다.
“하나...둘...!!!”
마르가리타는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망치를 아래로 당겼다.
“읍...!!!”
마르가리타는 뼈밖에 남지 않은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흔들리는 팔을 보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포기하게나...!”
드륵!
몇 차례 망치를 당기자 마르코를 짓누르던 잔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
“조금만 더...!!!”
하나, 둘.
“읍...!!!”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얇은 팔을 따라 잔해 사이 빈틈이 생겼다.
우수수 떨어지는 흙먼지는 더욱 벌어지는 빈틈을 시사했다.
“지금...!!!”
마르가리타의 신호에 맞춰 마르코는 재빨리 잔해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쿵!!!
그가 빠져나오기 무섭게 잔해가 다시 내려앉았다.
“하아...하아...”
“고맙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에게 마르코는 감사를 표했다.
마르가리타는 잠시 호흡을 정돈하더니 고개를 들어 마르코를 보았다.
“...도대체...무슨 일이 일어난 거에요...?”
마르가리타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물었다.
아니길 바랬다.
이미 눈으로 목격한 사실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부디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만이 그녀의 입에 달라붙어 흘러나오지 않았다.
허나 마르코의 시선은 첨탑 밖을 향했다.
매서운 포효를 내지르는 괴물에게로 말이다.
“...마을에 괴물이 나타났네.”
“괴물이라니... 뭔가 오해가 있을 거에요...!”
“확실히 괴물이라네. 육십 평생 저런 괴물은 처음 보네...”
그가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공포가 서린 한숨이었지만, 그는 분노에 떨고 있었다.
“불을 내뿜고, 마을을 박살내는 저 괴물을...”
마르가리타는 어떻게든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싶었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마르코는 바닥을 뒹굴고 있던 망치을 들어 벽을 짚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콰앙 하며 마을 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당장 돌아가봐야겠네! 아직 대피하지 못한 이들이 남아있을 걸세...!”
마르가리타는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커다랗게 생겨난 구멍 앞으로 걸어갔다.
“...다시 한 번 구해주어 고맙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마을을 침공한 용을 잡으러 첨탑 아래로 떨어졌다.
마르가리타는 침음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 같았다.
그녀가 새끼용을 내쫓지 않았다면.
새끼용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없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저 어린 용을 괴물로 만든 이유라는 사실에 마르가리타는 입술을 깨물었다.
또 다시 폭음들이 사방에서 터졌다.
연달아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마리나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마르가리타는 귀를 틀어막았다.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귀를 어지럽히는 굉음들도, 심장에 비수를 박는 마리나의 울음소리도.
하지만 그 소리들은 손가락 틈새를 타고 들어와 그녀를 괴롭혔다.
“제발...”
그때였다.
그녀가 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말이다.
* * *
쿵!!!
마르코는 드높은 첨탑에서 떨어져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괴물.
“후...”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일어났다.
무수히 많은 이들의 단말마가 들려왔고, 절명 직전의 이들은 도움을 청했다.
하여 마르코는 다친 몸을 이끌고 마을로 뛰어갔다.
그리고 다시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미 군은 완전히 궤멸한 이후였고, 마을의 절반은 폐허가 된 상태였다.
그나마 남아있던 이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혹은 연인을 지키기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이웃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도망쳐!!! 빨리!!!”
“아...아빠...”
고작 낫과 쟁기로는 괴물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자신들의 뒤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쿠아아아아아아!!!!!!!!!!!!]
괴물이 또 다시 구슬플 울음을 터트린다.
“도망치라니까...”
무기를 든 이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다리로 겨우 중심만 잡고 있을 뿐이었다.
괴물이 불길을 내뿜는다.
차악!
불길이 무기를 든 이들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나타난 마르코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무 판자를 들고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콰아아아!!!
불길이 너무판자에 부딪혀 사방으로 비산했다.
뜨거운 열기가 나무판자를 집어삼키는 동안.
“도망치게!!!”
마르코는 소리쳤다.
죽음을 직감하고 있던 이들은 그의 말에 놀라 눈을 뜨더니 재빨리 도망쳤다.
“가...감사합니다...!!!”
그들이 자리를 벗어나고 불길이 잦아들자 마르코는 방패를 버렸다.
툭.
떨어진 방패는 검게 그을려 반파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나무 판자를 방패로 불길을 막고 있던 왼팔과 어깨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참을 수 없는 열기가 느껴졌지만, 그는 그 전에 망치을 높이 들었다.
“네 상대는 나다.”
그의 망치은 괴물을 향했다.
괴물 역시 그에게 괴성을 내질렀다.
두 개의 기세가 맞부딪혀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내 마르코는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쾅!!!
그의 망치가 호를 그리며 괴물을 후려쳤다.
하지만 그것은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그저 발길질 한 번에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콰앙!!!
마르코는 다시 일어났다.
어차피 그의 목표는 괴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은 이들이 완전히 도망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후욱...후욱...”
그는 쇳소리를 내뱉었다.
괴물에게 당하는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서져 폐를 찌른 모양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미칠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무기를 들었다.
그의 시선 끝에 여전히도 도망치는 이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다시 도약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허억... 허억...”
날숨을 뱉으면 폐에서 역류한 피가 흘러나왔고, 들숨을 들이키면 뜨거운 열기가 그의 목을 익혔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괴물은 또 다시 괴성을 내질렀다.
[쿠아아아아아아아!!!!!!!!!!!!!!!]
초주검이 된 상태로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남자에게 내뿜는 울음이었다.
그는 또 다시 망치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려 하지만, 그의 무릎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르코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털썩.
“하아...”
비릿한 피냄새가 코 끝을 타고 진동했다.
아득한 시야 끝에서는 괴물이 그를 향해 포효했고, 그것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마르코는 생각했다.
성공했을까.
모두가 도망쳤을까?
답을 해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고통이 바래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각이라는 것이 그에게서 사라지고 있었다.
죽음이었다.
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함께 그의 몸뚱이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망쳐...!!!”
그의 눈꺼풀이 눈을 덮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에서 아득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콱!
마르코는 손에 쥔 망치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도망치지 못한 이들이 남아있었다.
이제는 눈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일어섰다.
“네 상대는...나다...”
문장을 완전히 내뱉기도 전에 역류한 핏물이 그의 입을 막았다.
그는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빨리...움직여야...”
하는데.
온몸이 무거웠다.
천근짜리 무게추가 온몸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결국 마르코는 다시 쓰러졌다.
온몸의 감각이 바래지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했다.
폐에 피가 차오른 모양이었다.
더 이상은 움직일 수 없었다.
“젠장할...”
그렇게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던 순간이었다.
“수고했어요.”
마지막 남은 가련한 호흡이 그에게서 빠져나가는 때에 익숙한 음성이 귀를 간지럽혔다.
동시에 그는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흐릿한 시야 너머로 겨우 눈을 떴을 때, 그곳엔 마르가리타가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아련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내가 저지른 일은 내가 끝내는 게 맞겠죠...?”
마르가리타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르코의 옆에 떨어져 있던 망치를 들었다.
철퇴라기엔 작고, 망치라기엔 너무나 투박한 그 무기를 들고 마리나 앞에 섰다.
“마리나.”
마르가리타의 말이 마리나에게 닿는다.
마리나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 마르가리타가 있었다.
허나 마리나는 포효했다.
그것은 이미 폭주상태에 들어선 용이었다.
그것의 눈에 마르가리타는 그저 죽여야 할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쿠아아아아아아아!!!!!!!!!!!!!!!!]
“미안해.”
마르가리타는 도약했다.
마리나의 시선이 그녀를 쫓아간다.
마르가리타는 망치를 휘둘렀다.
그 망치는 커다랗게 변해 있었다.
콰앙!!!
망치가 마리나의 후려친다.
너무나도 경쾌하고 슬픈 소리가 마을을 가득 채웠다.
마리나는 휘청거렸다.
허나 이내 다시 중심을 잡고는 불을 내뿜었다.
마르가리타는 또 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찍히는 그 망치는 폭발하는 불꽃을 단숨에 꺼트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뛰었다.
망치가 마리나의 허파를 내려찍는다.
콰직!!!
[쿠아아아아아아!!!!!!!!!!!!!!!!]
마리나는 비명을 질렀다.
고통스러웠다.
그것을 듣고 있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마리가리타 역시 아파왔다.
“미안해...”
마르가리타의 입에서 핏물같은 단어가 흘러나왔다.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