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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42화 (142/183)

142화

해가 져 어스름이 깔릴 즈음이면 새끼용은 창을 타고 들어왔다.

[쿠앙!]

그리고 새끼용의 입에는 언제나 포실포실한 감자가 있었다.

양다리는 족쇄에 묶힌 채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던 마르가리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볕이 떠오르고 다시 자취를 감추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그녀의 입에 반달 모양이 그려졌다.

“...나 먹으라고?”

마르가리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새끼용이 건넨 감자를 받았다.

감자를 받는 그녀의 손에도 역시나 검붉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피딱지 위로 피딱지가 생겨나 아름답기 그지없던 손이 거칠어져 있었다.

마르가리타는 손끝에서부터 울리는 찌릿한 고통보다 새끼용의 호의를 먼저 마음에 품었다.

“고마워.”

그럴때면 새끼용은 작달만한 불꽃을 내뿜으며 날개를 펼쳤다.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기쁨의 표시인 듯했다.

그리고 새끼용은 둥지를 찾아 들어가듯 마르가리타의 품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

감자를 한 입 베어먹고는 마르가리타는 조용히 새끼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갸르릉 거리며 기분 좋은 몸부림을 치는 새끼용을 보며 그녀는 웃었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마르가리타가 물었다.

하지만 새끼용은 온몸을 부비적대며 애정을 표시할 뿐이었다.

그러면 마르가리타는 그저 싱긋 웃으며 새끼용을 쓰다듬었다.

따스함이 느껴졌다.

가끔 뜨겁기도 했지만, 그것은 찰나일 뿐이었다.

그저 서로를 위한 유일한 휴식이었다.

“이름이 없는 거야?”

마르가리타는 품속의 새끼용을 보았다.

“그럼 이제부터 네 이름은 마리나야.”

* *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등천에 떠오른 해가 자취를 감추고, 새벽을 알리는 월광이 내리비춘다.

차가운 바람이 시간에 바래져 미지근한 바람으로 바뀐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채찍 소리가 성내를 울리고, 마르가리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고통은 인내가 되었고, 머리에서 가슴까지 긋는 성호는 유일한 기도였다.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오는 슬픔과 절망은 새끼용이 있기에 바래졌다.

새끼용은 마르가리타의 상처를 핥았다.

그러면 마르가리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괜찮아.”

마르가리타는 이따금 따갑게 부풀어 오르는 상처들을 숨겼다.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작은 아이에게 걱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듬해가 되었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세상은 봄을 맞았다.

땅 속 깊이 숨어있던 꽃들이 혓바닥을 내밀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르가리타는 감옥에 갇혀 남작의 채찍질을 버티고 있었고, 새끼용은 어스름이 깔릴 때가 되면 그녀를 찾아왔다.

그들에게는 봄이 없었다.

그맘때였다.

마을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처음엔 그저 가끔 입방아에 오르는 풍문에 불과했다.

하지만 차츰 흐르는 시간을 따라, 그저 요깃거리에 불과했던 그 소문은 덩치를 부풀려갔다.

누군가는 말했다.

“저 하늘에 태양만한 도마뱀이 날아다녔다니까!”

또 누군가는 말했다.

“엄청 큰 뱀이 나타나서 감자를 훔쳤어!”

소문은 무성하게 퍼져나갔다.

입에서 입으로 옮아가는 소문은 역병보다 빠르게 번졌다.

그저 뜬소문에 불과하던 소문은 어느새 하나의 정설이 되었고, 마을의 공포로 자리 잡았다.

끝끝내 괴물을 사냥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백지에 검은 물감을 떨어뜨리듯 빠르게 번지는 소문은 마침내 마르가리타에게까지 닿았다.

그리고 그녀는 소문의 괴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마리나.”

[쿠앙!]

마리나는 물고있던 감자를 내려놓고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머리를 들이밀며 애정을 과시했다.

“...”

마르가리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마리나를 보았다.

마리나의 가여운 소리가 아릿한 쓰라림을 만들었다.

“왜 그런 거야.”

[쿠앙?]

“감자 가져오지 말라고 했잖아.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그랬잖아.”

마리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마 마르가리타의 표정을 따라했을 것이었다.

마르가리타의 날숨이 떨려왔다.

그 떨림은 여인이 애써 숨긴 감정을 조금씩 내비췄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었다.

더 이상 감자를 가져오지 말라며 닦달을 하기도 했고, 아이가 가져오는 감자를 내팽겨 치기도 했다.

전부 그만두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이는.

“...”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마리나를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여기 있으면 안 돼.”

[쿠앙?]

“사람들이 널 잡으려고 하고 있어.”

불과 며칠 전 마을에서는 괴물을 사냥하기 위한 군대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괴물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공포를 양산하는 존재이니까, 농사를 망치는 존재이니까.

그리고 그저 괴물이니까.

공포심에 결집된 사람들은 무기를 들었다.

“...여기 있으면 다칠 거야.”

마르가리타는 말했다.

허나 마리나는 그녀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 아양을 부렸다.

그것마저 마르가리타에게는 아픔이었다.

그녀는 차마 마리나를 볼 수 없었다.

“안돼...”

마르가리타는 터지려는 울음을 겨우 참았다.

하지만 참지 못했다.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친구이자 위로였다.

허나 아이를 위해 그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 마리나를 바라보았다.

“안 된다고...”

눈물이 떨어졌다.

마리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닦았다.

[쿠앙!]

어느 날부터 창 너머에서 군중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을 죽여야 한다고 말이다.

모두가 무기를 들었다.

그리고 군대를 만들었다.

마리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방법은 없었다.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다.

하여 그녀는 마리나를 밀쳤다.

마리나는 또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간다.

“오지마!”

마르가리타는 소리쳤다.

갑작스런 고함에 마리나는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쿠앙...?]

“안돼...”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돌아가.”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그녀의 감정을, 마리나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절망보다 강렬했고, 좌절보다 무거웠으며, 슬픔보다 고통스러운 무언가였다.

툭.

눈물이 떨어진다.

차가운 돌바닥에 눈물이 자국을 남기고 틈새로 사라졌다.

“이제... 다시는...”

마르가리타의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마리나를 보았다.

아주 짧은 공백.

마르가리타는 처음으로 마리나에게서 손을 거두었다.

“찾아오지마.”

마르가리타는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옥에서 내보냈다.

하늘을 높이 날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또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제 마르가리타는 창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그녀가 있는 감옥에 어스름은 깔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유일한 온기를 건네던 태양도, 유일한 위로였던 마리나도 더는 그녀를 찾지 못하게 창은 닫힌 상태였다.

그녀는 어둠 속에 있었다.

* * *

마리나는 하늘을 날았다.

태양 아래 하늘을 날았다.

뜨거운 볕이 아이의 날개를 적셨다.

마리나는 매번 그랬듯 해가 질 때면 하늘에 가장 가까운 산으로 날아갔다.

그곳은 아이의 집이었고, 안식처였다.

하지만 더 이상 마리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아이의 생각으로는 마르가리타가 화가 난듯했다.

그녀의 화를 풀기 위해 감자를 가져가야 했다.

감자는 마르가리타가 가장 좋아하는 무언가였으니까.

“저놈이다!!!”

군중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감자밭에서 감자를 서리하는 마리나에게 달려들었다.

[쿠아아아!!!]

마리나는 그들을 뿌리쳤다.

차악!

정면에 있던 한 농부의 낫이 마리나의 날개를 스쳤다.

상처를 따라 검은 피가 맺혔다.

[쿠아아아아아아!!!]

마리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군중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군집되어 또 다시 달려든다.

마리나는 불을 쏘았다.

하지만 그것은 군중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허공에 흩날릴 뿐이었다.

[아무도 해치면 안 돼.]

마르가리타의 말이 떠올랐다.

마리나가 처음으로 이해한 언어였다.

수십 일, 수백 일에 걸쳐 마르가리타가 가르친 문장이었다.

그렇기에 마리나는 누구도 다치지 않게 허공을 불을 내뿜었다.

허나 그것은 군중들에게 도발로 인식되었다.

그 불꽃은 하나의 선전포고였고, 더 많은 무기들이 마리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리나는 도망쳤다.

또 다시 하늘을 날았다.

“저놈 잡아라!!!”

바닥에서는 첨예한 무기들이 자신을 향해 솟구쳤다.

마리나는 바닥으로 내려갈 수 없었다.

턱!

아이가 찾아간 곳은 쇠창살로 마르가리타를 가둔 감옥이었다.

하지만 여전히도 문은 굳건하게 닫혀 있었다.

[쿠아아아아!!!]

아이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고통이 아니었고, 절망이 아니었다.

그저 그리움이었다.

허나 그 울음은 창을 막은 쇠창살에 막혔다.

마리나는 산속 어딘가 깊은 동굴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어디에도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모두가 아이를 미워했다.

마리나는 소리 죽여 울었다.

“마리나?”

그러다 문득 마르가리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나는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동굴의 안쪽, 햇빛조차 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앙?]

“거기 마리나니...?”

[쿠앙!]

마리나는 소리쳤다.

그 소리는 동굴의 벽에 부딪히고 부딪혀 공명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쿠앙!!!]

마리나는 소리를 지르며 마르가리타를 찾았다.

하지만 아이의 눈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도와줘, 마리나.”

또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마리나는 소리를 향해 날개를 펼쳤다.

“마리나...!!!”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진다.

마치 죽음을 목전의 둔 이의 목소리였다.

마리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더욱 빠르게 날아갔다.

“마리나...”

그리고 그 끝에서 마리나는 마르가리타를 보았다.

허나 그녀는 홀로 있지 않았다.

기다란 나무에 몸이 묶인 채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들었다.

횃불을 들었고, 소리를 질렀다.

군중들의 목표는 마르가리타였다.

화아!

횃불의 불꽃이 마르가리타를 속박한 나무의 밑동으로 옮아갔다.

“살려줘... 마리나...”

마르가리타가 말한다.

[쿠아아아아아!!!]

마리나는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겁을 먹어 도망치도록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마리나를 보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마르가리타를 죽이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리나는 또 다시 소리를 질렀다.

허나 이번에도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이는 없었다.

밑동부터 타오르던 불꽃이 점차 영역을 확장해 어느새 불꽃은 마르가리타의 발가락부터 탐하기 시작했다.

[해치면 안 돼.]

마르가리타의 말이 떠올랐다.

마리나는 아주 잠시 망설였다.

그의 움직임은 곧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나 이대로 놔둔다면 마르가리타가 죽는다.

이미 불꽃은 마르가리타의 하반신을 전부 삼킨 상태였다.

“아아악!!!”

고통의 비명이 동굴을 가득 메웠다.

마리나 역시 울부짖었다.

마르가리타의 눈이 마리나를 향했다.

그리고.

“전부 죽여줘.”

황금빛으로 타오르던 불꽃이 마르가리타를 완전히 집어삼키는 순간.

[쿠아아아아아아아!!!!!!!!!!!]

마리나는 불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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