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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39화 (139/183)

139화

박율 일행의 반대편, 강의 왼쪽 길을 따라 데판과 한명련이 걸어가고 있었다.

역시나 사방에서 마기와 살기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데판의 마기 덕분인지 한명련의 경계 덕분인지 먼저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데판은 한숨을 팍 내쉬었다.

[...그만 좀 쳐다봤으면 하는데.]

데판은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시선에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그의 뒤에서 한명련이 그를 뚫어져라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렇게 정교한 인형이라니...”

한명련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뭐, 다 들리게 말하니 혼잣말은 아닌가보다.

[하...]

“자아가 완벽한 것으로 모자라 혼자 사고를 하고, 인형사와 떨어져도 움직일 수 있다니... 와우...”

연신 탄사가 들려왔다.

괜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놀라운 것 알겠다만, 조용히 속으로만 씨부릴 수는 없겠나? 이젠 듣기가 거북할 정도군.]

데판은 한껏 질린다는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마르가리타라고 했었습니까? 아주 굉장한 인형사 인 것 같군요. 정말 대단한 주인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알았으니까, 제발 그만 좀 볼 수는 없겠나?]

“이런 위대한 인형을 앞에 두고 어떻게 눈을 뗄 수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씨부려라.]

데판은 그냥 한명련을 무시하기로 작정했다.

뒤에서 계속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데판은 애써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데판은 반사적으로 청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다다다!

동시에 작은 발을 가진 마수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만 들어서는 최소한 주먹 크기의 마수였다.

대략 10마리.

그리 강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타악!

아주 짧게 땅을 내딛는 소리와 함께 하늘 높이 두더지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아아아!!!]

[...]

하지만 데판은 심드렁했다.

심지어 달려드는 마수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한명련이 반사적으로 검을 꺼내긴 했다만, 그보다 먼저 데판의 꼬리가 움직였다.

콰앙!

대략 열 마리 정도가 달려들었다만, 데판의 비대해진 꼬리는 마수들을 일격에 터트렸다.

마수들이 전멸하고, 데판은 역시나 심드렁한 얼굴로 다시 움직였지만,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한명련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 썅...]

또 쓸데없이 시끄러워지겠다 싶은 데판이었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한명련의 말이 이어졌다.

“완벽한 자아를 가진 인형을 만드는 것으로 모자라 그 위력마저 이렇게 강하다니!“

데판은 앞발을 들어 이마를 감쌌다.

”죄송합니만, 한 번 가까이서 봐도 되겠습니까?“

[그랬다간 네 놈을 죽일...]

한명련은 이내 못 참겠다는 듯 달려와 데판을 들었다.

마치 액체괴물이 줄줄 흘러내리듯 한명련의 손에 들린 데판의 몸이 길게 늘어졌다.

만약 저 남자가 이렇게 이상한 놈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쪽으로 오지도 않았을 거다.

데판은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박율을 원망하며 발톱을 치켜세웠다.

[...놔라.]

”잠시만 구경 좀 하겠습니다.“

데판은 발버둥을 치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한명련은 손에 상처가 자욱하게 남는 와중에도 그를 관찰했다.

[놔라! 인간!]

데판은 날카로운 울음을 터트리며 한명련을 마구 할퀴었다.

”잠시만 가만히 있어보십쇼!“

[네 놈을 죽일테다!]

한창 두 사람의 실랑이가 이어지던 때였다.

두 사람은 흠칫 그대로 자리에 멈춰섰다.

”...!!!“

[...!]

일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한곳을 향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명련은 조용히 데판을 내려놓았다.

데판 역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끔 사뿐히 바닥에 안착했다.

두 사람은 수풀 너머에 집중했다.

저 너머에 무언가 있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는 무언가가.

한명련은 개미가 더듬이를 비비는 소리보다 작게, 그리고 은밀히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데판은 언제든 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마기를 집중시켰다.

스산한 바람이 바닥을 기었다.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응시한 채 바람을 느낄 새도 없이 저편의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느꼈습니까?“

[무언가 있군.]

”이런 기운조차 파악할 수 있는 인형이라니...“

[그만 좀 닥칠 순 없겠나?]

”조심하십쇼.“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자리에 굳어있는 것만으로 식은땀이 등줄기를 적신다.

그야말로 엄청난 마기였다.

평생을 악마로 살아왔던 데판 조차 지레 겁을 먹을 것만 같은 정도였다.

굳이 따지자면 마왕격 악마들과 비슷한 정도라고 해야 할까.

확실한 건 마주하면 죽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주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마수들은 사라진 뒤였다.

”...“

여기서 먼저 움직인다는 것은 자살과 다름 없는 행위였다.

그것을 알기에 두 사람은 찰나의 순간 속에서 억겁 같은 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

”...저 녀석입니다.“

한명련이 말했다.

그의 왼쪽 소매가 펄럭였다.

[뭐?]

”제 팔을 이렇게 만든 녀석이 말입니다.“

이제는 흔적도 남지 않는 왼팔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때보다 마기가 더 짙어졌군요.“

한명련은 아주 천천히 자세를 잡아 발도를 준비했다.

[뭐하는 짓이지?]

”제가 신호하면 도망치십쇼.“

[뭐?]

”마주해야 한다면 누군가는 죽습니다. 비록 죽은 마수의 탈을 쓴 인형이라고는 하나 인격체를 두고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쪽이 또 다시 죽는다면 마르가리타 씨께서 슬퍼하실 겁니다.“

손잡이를 따라 검집을 기어 올라온 검날이 반짝거렸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아뇨. 둘 다 죽을 순 없습니다.“

[누가 그러지? 내가 죽는다고?]

”마주하면 죽습니다.“

[난 죽지 않는다.]

휘잉 부는 바람에 나무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 하나.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다.

아주 천천히 고공을 낙하하는 나뭇잎을 따라 마기가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데판과 한명련은 반사적으로 전투를 준비했다.

한명련은 당장에라도 정면에서 달려들 것을 베기 위해 검을 반쯤 꺼내 발도를 준비했고, 데판은 한 발자국 물러서 마기를 토해냈다.

쿠우우우!!!

숲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나 그것은 지진이 아니었다.

확실히 지진이랑은 결이 다른 무언가였다.

땅이 흔들리는 게 아닌 숲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푸드덕거리며 나무에 둥지를 둔 새들이 날아가고, 나무를 파먹던 벌레들이 신속하게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옵니다.“

흔들리는 숲 사이에서 마기가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숲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에서 나타난 무언가가 하늘 높이 비상했다.

[...!!!]

그것은 도마뱀이라 하기에 너무나 거대했고, 뱀이라 하기엔 너무나 조잡했으며, 짐승이라 하기엔 너무나 거대했다.

그것은 고룡이었다.

전설 속에나 나오는 그런 미지의 괴물.

붉은빛이 맴도는 비늘이 온몸을 감싸고, 거대한 날개는 숲을 집어삼킬 듯 넓게 펼쳐졌다.

[쿠아아아아아!!!!!!!!!]

그것이 비로소 울음을 토해냈다.

* * *

“...!!!”

서희는 갑작스런 울림에 흠칫 놀라 자리에 멈춰섰다.

“지진...!?”

서희는 고개를 돌려 박율을 보았다.

그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지진이 아니야...』

마르가리타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서 있는 곳 반대편에서 그 역치를 추정할 수 없는 마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기라도 한 듯 말이다.

“무슨 일이에요!?”

박율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옆에 있던 나무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역시나 그의 시선은 마르가리타를 따라갔다.

“...!!!”

물씬 풍겨오는 엄청난 마기.

일순간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강대한 마기는 바알 정도 말고는 마주해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현실임을 자각했다.

무언가 깨어났다.

“다들 조심...”

박율이 입을 떼는 순간이었다.

마르가리타가 마기의 진원지를 쫓아 뛰었다.

“누나!!!”

박율의 외침에도 그녀는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잃어버린 누이를 찾는 이의 얼굴로 그녀는 미친 듯이 달려갔다.

“어디가...!?”

서희는 헐레벌떡 뛰어가는 마르가리타를 보며 물었다.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자리에 남은 박율과 서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무슨 일이야...”

박율은 나지막히 내뱉었다.

그리 오랫동안은 아니지만, 나름 마르가리타를 봐온 입장으로써 처음보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산만한 역할이 박율이고, 적당히 감정적인 역할이 데판이라면 그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은 침착함을 도맡은 마르가리타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에게서 침착함이라는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기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뛰어간 것을 보면 말이다.

하나 확실한 건 저 마기의 정체를 알 수 없으나 평범한 마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맞이 하는 마기였다.

여러번 대면했던 마왕들과도 다른 마기.

숲의 움직임이 멎기 시작했다.

이내 숲이 완전히 멈추자 박율은 서희를 보았다.

“일단 저희도 갑시다.”

박율이 말했다.

어차피 저 방향이면 한명련과 데판이 있는 방향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건 일단은 그들을 찾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 * *

『아닐 거야...』

마르가리타는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가 되도록 뛰었다.

허나 쉴 시간은 없었다.

불길하고도 아련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턱!

쿠당탕!

『윽...!』

정신없이 뛰어가던 마르가리타의 발에 돌부리가 걸렸다.

그녀는 땅을 뒹굴면서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는 쪽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

고통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마르가리타는 진흙으로 범벅이 된 옷을 정리할 정신도 없이 곧바로 일어나 뛰었다.

『아닐 거야...』

마리가리타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아니어야 한다.

맞을 수가 없는 경우의 수였다.

만약 지금 이 마기의 정체가 그녀가 생각한 마기가 맞다면, 너무나 위험하다.

위험하다라는 범주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혹여 저 마수를 맞이한 데판과 한명련이 전투라는 스탠스를 취한다면 그들은 필시 죽고 말터였다.

『제발...!!!』

그리고 그게 맞다면.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기다려...』

마르가리타는 뛰었다.

폐가 쪼그라들어 더 이상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할지언정 그녀는 뛰었다.

울퉁불퉁한 숲길을 따라 발바닥에서 아릿한 고통이 소리를 질러도 그녀는 마기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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