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이제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찾아봅시다.”
박율이 말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다 같이 움직이는 편이 더 낫긴 하겠지만, 그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어차피 강은 양쪽으로 길게 뻗어있고, 어딘지 모를 장소를 찾기 위해선 두 그룹으로 나뉘어 찾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이미 각자 수준급의 레벨에 도달한 이들이기 때문에 걱정은 사치이기도 했다.
“그럼 누나랑 서희 씨가 이쪽으로 갈 테니까, 두 분은 반대로 가서 찾아주세요.”
“두 분...?”
한명련은 흘깃 고양이의 모습인 데판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인형인데...?”
보통 인형사가 만든 인형을 인격으로 칭하진 않기 때문이었다.
“아니, 뭐 그만큼 강하다는 그런 소리에요.”
박율은 아차, 말을 수습했다.
한명련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다시 데판을 보았다.
[꼽느냐?]
“...”
데판은 심드렁한 투로 답했다.
“겉으로는 이상해 보여도 확실한 고양이에요.”
『근데.』
조용히 대화를 듣던 마르가리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찾아?』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정면의 광활한 숲을 향했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숲.
그림으로 본 숲이나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숲이나 별반 차이도 없을뿐더러 딱 봐도 저렇게 넓은 숲에서 무언가를 찾는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별단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였다.
“이질적인 마기가 흘러나오는 지점을 찾아야 해요.”
『이질적인 마기?』
“숲속 어딘가에 숲을 이루는 마기랑은 다른 이질적인 마기가 흘러나오는 지점이 있을 거에요. 그곳을 찾아야 해요.”
마르가리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온갖 마기로 점철되어 있는 숲이었다.
이런 숲에서 특정한 마기를 찾으라는 말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으라는 말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
“뭐 어떡하겠어요. 뺑이 쳐야지.”
박율은 어깨를 들썩이며 무책임하게 말했다.
“그래도 뭐 결국은 찾을 수 있을 거에요. 단탈리온 그 양반이면 그렇게 만들었을 테니까.”
[주군의 뜻이 있을 거다.]
데판이 그의 말을 받아쳤다.
『도대체 그 양반은 뭘 하는 인물이길래 이런 맹목적인 지지를 받는 거니?』
[주군이기 때문이다.]
마르가리타는 반박이라도 하려 입을 열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닫았다.
누가보면 광신도라도 되는 줄 알겠다.
[주군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광신도가 맞나보다.
아무튼.
『아니...』
“이유가 있으니까 우리를 여기로 보낸거고, 자기를 찾으라고 한 거라고 생각해요. 매번 그랬으니까.”
『하... 모르겠다. 그래, 뭐 찾다보면 나오겠지.』
* * *
마르가리타는 박율, 서희와 함께 강을 따라 오른쪽으로 향했고, 한명련과 데판은 반대편으로 향했다.
박율을 포함한 세 사람은 강을 따라 우거진 숲 앞에 멈춰섰다.
『여기가...』
짙은 마기가 내리깔린 깊은 숲의 초입.
언뜻봐도 지금까지 지나온 숲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시선들과 그곳에서 비롯된 살기들.
마치 제 영역을 지키는 맹견의 집 앞으로 걸어들어온 기분이었다.
『...?』
그 속에 느껴지는 익숙하고도 낯선 느낌.
무어라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오묘한 기분이 마르가리타를 사로잡았다.
“뭐해요?”
앞서 움직이던 박율이 혼자 멈춰 숲을 보던 마르가리타를 보았다.
『...아무것도 아냐.』
박율을 따라 스산한 숲으로 들어온 마르가리타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마기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조심해요. 여기서부터는 조금 위험한 놈들이 많을 거에요.”
선봉으로 움직이던 박율이 고개를 흘깃 돌려 두 사람에게 말했다.
뭐 이미 충분히 조심하고 있는 모습이긴 했다.
그러다 문득 본 마르가리타의 표정이 사뭇 굳어있었다.
무언가 불안한 사람의 얼굴이랄까.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
“왜 그래요?”
『어...어? 왜?』
마르가리타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박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 아까부터 표정이 똥 마려운 강아지 같아서요.”
마르가리타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것도.』
박율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정도 되는 사람이 고작 이 정도 마기에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혹시 화장실 가고 싶어요? 숲이라서 몰래 처리하면 될 텐데. 휴지라도 드려요?”
『...거, 말하는 거 참.』
“아니, 뭐. 누나가 여기서 뭘 무서워할 위인도 아니고, 왜 그러나 싶어서.”
마르가리타는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다른 건 아니고, 그냥 뭔가 낯익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여기 와 본 적 있어요?”
『아니, 처음이야.』
“그래요? 근데 워낙 마기들이 얽히고 설킨 곳이라 익숙한 마기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게 아니라...뭔가...설명할 순 없는데 너무 익숙한 느낌이야.』
박율은 어깨를 들썩이며 다시 길을 걸었다.
여전히 마르가리타는 착잡한 얼굴로 숲을 살피고 있었다.
“서희 씨도 여기는 처음이죠?”
“이렇게 깊숙이는.”
서희 역시 한껏 경계를 한 채 답했다.
사방에서 그들을 노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여차하면 달려들겠다는 살기가 엿보였다.
“쳐다보지 마요. 괜히 달려들라.”
“알고 있어.”
서희는 여전히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직도 제가 박율인 게 가짜인 거 같아요?”
“...”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은데.”
“...친해?”
“뭐요?”
“뒤에 저 사람이랑 친하냐고.”
박율은 그녀의 말에 흘깃 고개를 돌려 마르가리타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서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 적당히 친하죠?”
“...”
“한때 제 팬클럽 회장님이었거든요.”
“뭐?”
“나름 친한 거 같긴해요. 근데 워낙 나랑 다른 존재라.”
“흥...”
서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길로 박율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흠칫.
박율이 손을 뻗어 서희를 세웠다.
“...?”
“잠깐만요.”
정적이 흐른다.
서희는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흠칫 눈을 옮겼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숲에 들어섰을 때 느껴졌던 마기는 여전했고, 일행을 주시하는 시선들 역시 그대로였다.
딱히 특별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서희는 인상을 구기며 박율을 보았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수풀 너머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
“앞에 뭐가 있어요.”
“뭐? 뭐가...”
샤락.
우거진 수풀이 바람의 결을 따라 고개를 흔들었다.
그 사이사이로 언뜻언뜻 느껴지는 인기척.
그제야 인기척을 눈치챈 서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
박율 일행은 숨 죽인 채 수풀 너머에 집중했다.
샤사삭!
움직인다.
박율의 시선은 움직이는 무언가를 쫓았다.
무언가는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였다.
아니, 하나가 아니었다.
무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
무언가를 쫓던 박율의 시선이 방황했다.
그 순간 그것은 산개했다.
민들레가 바람을 타고 씨앗을 퍼뜨리듯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무언가가 흩어졌다.
마치 일행을 포위하듯 사방으로 움직였다.
세 사람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등지고 수풀 너머를 주시했다.
또 다시 정적.
스산한 바람소리와 짙게 깔린 마기만이 공백을 채우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조심...!”
박율은 손끝에서부터 타오르는 새하얀 불꽃을 망치에 벼려 하나의 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검은 달려드는 인기척을 따라 허공에 호를 그렸다.
차악!
“...!!!”
투둑.
서희의 눈앞에서 쥐 형태의 마수가 박율의 검에 양단되어 떨어졌다.
서희는 두 눈을 부라린 채 양단된 쥐를 보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달려드는 쥐 마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차악!
연달아 허공을 가르는 박율의 검.
“더럽게 빠르네.”
박율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다음으로 달려드는 쥐를 베어갈랐다.
서희는 놀란 토끼눈을 한 채 그를 보았다.
미처 반응도 하지 못했다.
아니, 저 마수가 다가온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마수의 존재가 눈 앞까지 달려들 때까지 말이다.
“제 뒤로 숨어요.”
박율은 자연스레 서희를 자신의 뒤로 그녀를 보호했다.
하지만 등을 내어주는 그를 보는 서희의 표정은 그리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
서희는 짜증이라도 나는 듯 인상을 잔뜩 지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필요 없어.”
샤락하고 측면에서 소리가 짧게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가 서희에게 닿기도 전에 발바닥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검은 자국이 그녀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변하는 그녀의 모습.
야차화.
콰작!
그녀의 손은 오른쪽으로 향하며 날아드는 마수를 쥐어 터트렸다.
연달아 달려드는 마수들.
서희는 정면에서 달려드는 마수들을 날리고 터트리며 상대했다.
“오우.”
박율은 서희의 활약에 탄사를 내뱉으며 그녀와 등을 마주했다.
“몸 상태도 아직 안 좋을 텐데.”
콰직!
그의 망치가 내려 찍힌다.
쥐 모습의 마수들은 내려 찍히는 망치를 따라 형태를 잃었다.
서희는 살기를 드러내는 마수들을 처치하며, 시선은 마르가리타를 향했다.
그녀는 누군가의 보조도 없이 혼자서 수십의 마수들을 처치한 뒤였다.
차악!
“한눈 팔 시간이 있어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박율의 망치는 또 다시 허공의 마수를 내려찍으며 서희를 지켜준 뒤였다.
“필요 없다니까.”
서희는 조금은 분한 얼굴로 그를 지나쳐 달려드는 마수를 과격하게 내려찍었다.
쾅!!!
“어우야.”
박율은 조금 놀란 얼굴로 탄사를 뱉었지만,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투.
소리를 듣고 찾아온 마수들까지 합세하여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수를 상대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솔직히 더 빨리 없앨 수도 있었지만, 최대한 도망치지 못하게 조용히 처리하려다보니 시간이 조금 더 걸린 탓도 없지 않았다.
“후.”
마지막으로 도망치는 마수를 죽이고 박율은 날숨을 뱉었다.
“갑자기 달려들어서 놀랬네.”
박율은 사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마수들을 보며 말했다.
“흠...”
이렇게 쥐 마수들이 먼저 달려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워낙 무리로 다니는 마수인데다 외부의 존재를 꺼려하는 마수이다보니 숨어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먼저 달려들었다.
마치 영역을 침범하는 천적을 상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함은 전투가 지속되는 와중 추가로 달려드는 마수들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왜 그렇게 봐요?”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을 때, 서희가 상당히 분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퉁명스럽게 답을 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서희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박율을 뒤로하고 가던 길을 다시 걸었다.
“저 사람 왜 화났어요?”
『나야 모르지.』
서희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도 무시하고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괜히 못내 짜증이 났다.
딱히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뭐랄까.
약하기만 했던 놈이 갑자기 강해진 것도 모자라 이젠 자신을 지켜주기도 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서희에게 있어 박율은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언제나 지켜줘야 하는 그런 거슬리는 존재였다.
그런데.
“...”
서희는 한숨을 팍 내뱉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