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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37화 (137/183)

137화

짙은 살기가 하수구를 가득 메웠다.

그 중심에는 강진호와 악마 하나가 있었다.

게다가 강진호는 악마의 뒤에서 언제든 그를 죽일 수 있게 검을 겨눈 상태였다.

[...]

악마는 공포에 잠식되어 불규칙적으로 숨을 내뱉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 언제든 공격할 준비가 된 듯 느껴지는 인기척.

사실 악마들에게 있어 동료의 죽음이란 떨어지는 낙엽보다 못한 것이었지만, 강진호의 악명을 알고 있는 악마들은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다.

강진호 역시 두 눈을 감은 채 악마들의 마기를 경계하고 있었다.

누구든 다가오면 죽이겠다는 일념이 날이 선 살기였다.

[이...이쪽으로...]

차악!

강진호의 검이 악마의 오른팔을 베었다.

[아아악!!!]

“목소리가 떨렸다. 제대로 된 길을 안내해라.”

[하아...하아...크흑...]

하수구 깊은 곳으로 끌고 가 강진호를 함정에 빠뜨려 죽일 궁리를 하던 악마는 오른팔에서 쏟아지는 피를 막으며 신음했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또 다시 이런 짓을 한다면 가차없이 죽인다.”

강진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악마는 오른팔을 동여맨 채 다시 길을 안내했다.

[저 멍청한 놈.]

하수구 어딘가에서 비소 섞인 비아냥이 들려왔다.

강진호에게 볼모로 잡힌 악마는 이를 빠득 갈며 날숨을 뱉었다.

나름 하수구 내에서 다섯 손가락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위치를 차지한 악마라고 자부할 수 있는 악마였으나 강진호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주군의 신의를 받은 마인을 무슨 수로 이길 수 있겠는가.

악마는 별 수 없이 계속 길을 안내했다.

[...여깁니다.]

한참을 걸어가던 악마는 정적을 깨고 말했다.

두 사람의 앞으로 거대한 문이 있었다.

하지만 악마는 문을 열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여기서 문을 연다는 건 죽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말이다.

“열어라.”

[...]

문 앞에 선 악마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은 죽을 확률이 다분했다.

하지만 나름 사정을 이야기하고 죽이기 위해 데려왔다고하면 믿어주지 않을까?

한참동안 머리를 굴리던 악마는 생각을 굳힌 듯 고개를 들었다.

허나 그것은 이미 죽음이라는 공포에 점철되어 생각이라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악마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끼이익!

[군단장님!!! 이 놈을 죽이기 위해...]

[...누가 허락도 없이 외부인을 들이라고 했지.]

[그...그게...어쩔 수 없이...!]

차악!

문이 열림과 동시에 문을 열던 악마의 목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강진호는 여전히도 침착하게 그것을 무시하곤 문을 넘었다.

[흠...]

걸걸한 여자의 목소리가 하수구를 울렸다.

[우리가 그렇게 달가운 사이는 아닐텐데.]

하수구를 메운 살기보다 짙은 살기가 강진호를 짓눌렀다.

평범한 이들이었다면 이미 온몸이 찢어발겨졌을 무게감이었다.

아나투.

어느 마계에도 속하지 않은 가장 중립적인 악마였다.

그렇기에 어느 마계로도 이동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였다.

강진호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절명하는 쉼터로 향하는 문을 열어라.”

[허.]

끼익!

거대한 무언가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울렸다.

여전히 하수구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강진호는 자신의 앞에 선 존재의 묵직한 존재감은 느낄 수 있었다.

쿵!

다가오는 인기척은 위협적이었다.

허나 강진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건방지게. 감히 인간 따위가 명령을 해?]

강진호는 희미하게 아나투를 볼 수 있었다.

그건 아마 아나투가 강진호의 목전까지 얼굴을 들이댔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 살결 사이로 보이는 검붉은 상처들.

언뜻봐도 엄청난 여전사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칼은 들이밀지 않았지만, 매섭게 살기를 방출하며 언제든 강진호를 죽일 수 있다는 경고를 흘렸다.

[쯧...]

하지만 여전히도 아무 반응 없이 서 있는 강진호를 보며 이내 싱겁다는 듯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역시 넌 재미가 없어.]

“...”

[그래서. 내가 문을 열어주면 넌 뭘 해줄 거지?]

강진호는 조용히 품속에서 두꺼운 나무로 밀봉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대충 아나투의 앞으로 물건을 던졌다.

“밤골나무 이슬.”

밤골나무 이슬.

이름과는 달리 작은 보석으로 눈을 대신하여 시야를 확장시켜주는 성유물이었다.

특히나 두 눈을 잃고 하수구 속 어둠에 적응한 아나투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물건이었다.

아나투의 표정이 달라졌다.

[오호라...]

강진호의 선물을 주운 아나투는 잠시 소리를 죽이고 물건을 살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이러면 수지타산이 맞지. 좋아.]

아나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더리더니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심연을 열어주지.]

쩌적!

땅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스산한 마기가 흩날렸다.

시야가 어두워보이진 않았지만, 측면에서 심연이 열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연이 열린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발을 옮기던 강진호는 흘깃 고개를 돌렸다.

“...바알의 위치를 알고 있나?”

[워낙 바쁘신 양반이라, 뭐 원한다면 찾아주지. 대신 그 대가는 치러야 할 거야.]

“...”

강진호는 대답 없이 심연을 건넜다.

* * *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검붉은 마수들.

저주받은 숲의 진입로에 도착한 박율 일행은 멀커니 숲을 바라보았다.

숲에 진입하지도 않았지만, 느껴지는 마기들은 이곳이 저주받은 숲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한명련은 우수에 잠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왠지 모르게 사라진 오른팔이 아려오는 기분이었다.

“근데 박석훈 혼자 놔두고 와도 되는 거야?”

서희가 뒤에서 물었다.

끝까지 따라가면 안되냐고 물어보는 박석훈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누구 하나는 캠프를 지켜야죠.”

한명련은 그렇게 답을 하곤 선봉으로 발을 옮겼다.

그를 따라 네 사람 역시 함께 숲으로 진입했다.

[...]

숲으로 진입하자 더욱 짙게 느껴지는 마기.

푸르디 푸른 숲 사이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찬 탓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마수들과 악마들이 마기 때문인 듯했다.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숲으로 들어왔지만, 벌써부터 그들을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행히 아직 탐색 중인지 먼저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 조용한데?”

“숲의 초입에는 그렇게 강한 놈들은 없거든요.”

서희의 질문에 한명련이 답했다.

그의 말처럼 사방에서 시선이 쏟아지기는 하나 그리 위협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흠...”

고개를 주억거리며 숲을 둘러보는 서희.

콰작!

“조심.”

서희가 발을 뻗는 땅바닥에서 날카로운 이가 달린 넝쿨이 아구를 벌렸다.

박율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팔뚝을 잡았다.

하마터면 다리가 절단날 뻔한 상황이었다.

물론 절단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서희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박율을 보았다.

“마기를 머금은 동식물들이 많아서 조심해야 돼요.”

“...고마워.”

“전에 왔을 때보다 마기가 더 강해졌습니다.”

한명련이 말했다.

게다가 숲 깊숙이 들어갈수록 기운이 짙어졌다.

모든 신경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수준이었다.

『...숲이 엄청 단순한데 복잡하네.』

확실히 길을 아는 사람이 없으면 길을 잃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미묘한 차이는 있겠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같은 곳은 걷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행히 한명련은 거침없이 숲속을 나아가는 중이었다.

박율 일행은 조용히 한명련의 뒤를 쫓으며 숲을 감상했다.

세상이 요지경만 아니었더라도 힐링하기에 걸맞은 숲이었다.

조용히 걸으며 새소리가 들려오고, 숲을 걸으면 마른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귀를 청명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죠?』

한참을 조용히 따라가던 중 마르가리타가 입을 열었다.

그럴만도 한 게 방향을 어림짐작할 수도 없었다.

사방이 온통 똑같은 숲이었다.

심지어 박율은 척후까지 써가며 숲을 살피지만, 여전히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한명련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멈춰 섰다.

척!

한명련이 주먹을 들어올리자 그를 뒤따라가던 이들이 일순간에 멈춰섰다.

저 신호는 정면에 무언가 있다는 소리였다.

모두가 숨죽이던 한때.

파사삭하며 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척후]

권능을 개방하며 수풀 사이 마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 살기를 드러내고 있는 마수는 셋.

정면에서 두 마리, 그리고 측면에서 한 마리.

그 뒤에 숨어있는 마수들마저 포함한다면 열 구는 넘을 듯했다.

마음같아서는 그냥 망치로 전부 때려잡고 싶은 박율이었지만, 쓸데없는 소란은 시간만 낭비할 뿐이었다.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해야 했다.

“...온다.”

박율이 말했다.

동시에 정면에서 쥐새끼를 닮은 마수들이 수풀을 헤치고 뛰어들었다.

털에 스쳐 흔들리는 수풀이 제자리를 찾기도 전에 마수의 몸뚱이는 사라졌다.

그 속도는 평범한 이들이라면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물론 평범한 이들이라면 말이다.

박율 일행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전제이기도 했다.

박율이 뱉은 단어가 일행들의 귀를 파고드는 찰나에 마수는 이미 고공을 차지한 상태였고, 일행은 반사적으로 공격을 준비했다.

쉬잉!

쥐새끼를 닮은 마수가 바닥에 착지하기도 전에 한명련의 검이 한칼에 그것들을 동강 내었다.

투둑.

두 동강난 마수의 사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말 그대로 군더더기 없는 한방.

잔잔한 파도를 베어낸 듯 깔끔한 일격이었다.

“...”

부르르 떨리던 마수는 이내 픽하고 온기를 잃었다.

“다행히 별것 아니군요.”

한명련은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다른 마수들 역시 달려들 준비를 하는 듯했지만, 한명련의 전력을 본 이들은 주춤 다시 수풀 사이로 숨었다.

『오오...』

마르가리타의 입장에서 이정도는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인간의 몸으로 이정도의 속도를 반응할 수 있다는 것에 탄사를 내뱉었다.

“다시 움직이시죠.”

한명련은 다시 검을 칼집에 집어넣고는 선봉으로 움직였다.

“...팔을 잃기 전에는 더 빨랐어요.”

박율은 조용히 뒤에서 탄사를 내뱉는 마르가리타에게 주석을 달아주듯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탄사를 내뱉었다.

그 이후로 마수들이 먼저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한명련이 날을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덕인 듯했다.

일행들 역시 언제든 싸울 수 있게 경계를 하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한참을 걷고 또 걸어 숲이 끝나는 지점이 저 멀리에 보였다.

“다 왔습니다.”

한명련이 말했다.

숲을 빠져나오자 보이는 기다란 강 하나.

그 위로 붉은 하늘이 돋보였고, 그 사이로 진녹색의 숲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었다.

『와우...』

그림으로 보았던 장관이었다.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 것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이곳인가?]

“아뇨. 강을 따라서 찾아야 할거에요. 워낙 강이 길어서.”

박율이 답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 멈춰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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