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온몸을 짓이기는 고통이 전신에 울려퍼졌다.
겨우 눈을 뜬 강진호는 몸을 뒤집고 터져 나오는 토사물을 내뱉었다.
“커허억...! 커헉...!”
새빨간 핏물이 섞인 토사물이 바닥에 질펀하게 깔렸다.
식도를 역류하여 쏟아지는 핏물과 위액이 목을 뜨겁게 달구었다.
찌릿하는 통증이 목에서 머리까지 여백 없이 채운다.
목구멍이 타오를 듯 속을 전부 게워내고야 강진호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손이 떨린다.
시야가 아득했으며, 숨을 쉬는 것조차 목에 돌덩어리가 들어찬 듯 편하게 쉴 수 없었다.
분신체가 죽은 것뿐이지만, 고통은 고스란히 본체에까지 넘어왔다.
전력을 쓰지 않는 이유도 같은 이유였다.
전력을 쓰는 동안 울려퍼지는 고통이 본체에까지 전달되니까.
“도대체...”
분명 하루 전, 아니 기껏해야 몇 시간 전에 심장을 꿰뚫고 죽였던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아무짝에 쓸모없던 남자가 갑자기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힘을 과시하며 그를 막아섰다.
도저히 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인지.
갑자기 행적도 없이 사라진 신이 다시 나타나 그에게 힘을 주었다한들 그게 몇 시간만에 저렇게 강해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강진호는 썩은 동태같은 눈깔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녕 당신이 벌인 짓입니까?”
아득한 존재에게 묻는다.
허나 애석하게도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강진호는 씁쓸한 고개를 떨어뜨렸다.
사실 신이라는 존재도 처음 힘을 주었을 때를 제외하곤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아니, 마주한 것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니.
그것조차 어떤 목소리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가끔 천사라는 족속들이 나타나 나름의 도움을 주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차피 신이라는 것들은 인간을 버렸다.
“헌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강진호는 뇌까렸다.
터벅.
인기척이 느껴진다.
[이게 누구야. 잡종 새끼아니야?]
강진호는 문득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의 뒤로 몇 구의 악마들이 다가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언제든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살기를 띈 채로 있었다.
“...”
강진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 같은데.]
구역질 나는 말투로 악마들이 말을 한다.
강진호는 썩은 동태같은 눈깔을 그들에게로 돌렸다.
흠칫, 악마들은 놀란 듯 주춤하는 모양이지만, 이내 그의 상태를 깨닫고 다시 위협을 시작했다.
[주군께 힘을 하사받고, 조금 세지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건가?]
“...꺼져라.”
[지금 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닐텐데.]
악마라는 족속들은 그랬다.
힘이라는 것에 열광을 했고, 언제든 호시탐탐 뒤를 노리는 족속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인을 싫어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주군의 힘을 하사받은 인간이기에, 혹은 자기네들 눈에 거들먹거리는 그 모습이 싫었기에,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보기 싫어서.
대부분은 그저 ‘인간’이라는 종족이기에 싫어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눈깔봐라.]
악마 하나가 말한다.
하지만 강진호는 눈을 내리깔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난 평소부터 그 눈깔이 마음에 안 들었어.]
인간인 것으로 모자라 주군에게 힘을 하사받고,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는 강진호는 악마들에게 있어 언제나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악마 하나가 우두둑 하며 마른 뼈소리와 함께 발을 내디뎠다.
응축된 살기는 강진호를 향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 다른 악마들마저 발을 굴렀다.
강진호는 온몸에서 비명을 지르는 고통을 뒤로하고 마기가 응축된 검을 꺼냈다.
그리고.
[순보]
강진호의 신형이 사라지며, 동시에 달려들던 악마들의 머리가 동강 난 채 떨어졌다.
푸슉!
머리가 사라진 목구멍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나온다.
“큭...”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라 달려들었다.
두 다리가 주저앉을 듯 척추를 타고 전두엽까지 그를 덮쳤지만, 그는 심호흡을 하며 겨우 버텼다.
그리고 강진호는 죽은 악마들 뒤로 홀로 남아있는 악마 하나에게로 걸어갔다.
[히...히익...!]
“...”
악마는 다가오는 강진호를 보며 온몸을 움츠렸다.
평소 같았다면 피도 눈물도 없이 그 악마까지 죽일 남자였으나, 강진호는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힘이 필요했다.
다시 나타난 박율이라는 남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압도적인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힘은 바알에게 있을 터.
강진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떨고 있는 악마를 보았다.
악마는 흠칫 놀란 소리를 내뱉었다.
“...바알은 어디있지?”
강진호가 물었다.
[에...에?]
“두 번 묻지 않는다.”
[아...아... 그... 저...저도 잘...]
강진호의 눈에서 쏟아지는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악마는 그가 움직이기 전에 재빨리 입을 다시 열었다.
[아...아...! 거기...! 절명하는 쉼터에서 본 악마들이 있습니다...!]
절명하는 쉼터.
원래는 마왕 파이몬의 마계였다.
바알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그가 파이몬의 영역을 집어삼킨 후 최근 몇 년 동안 자주 나타난다는 장소였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다시 길을 찾았다.
타다닥!
푹!
그리고 강진호의 검은 뒤를 향했다.
아주 잠시 그가 방심하는 틈을 타 그의 목숨을 노리던 악마의 핏줄기가 비산했다.
털썩.
“...이래서 악마를 싫어하는 건데.”
* * *
숲속의 이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감격의 상봉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류애가 메마른 세상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는 것은 가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보통 저렇게 헤어졌다는 건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하곤 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더욱 그 여운을 즐기기 위해 세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운을 깬 이는 박율이었다.
“...그나저나 아이들도 있고, 부상자도 있으니 일단 다른 캠프로 이동할까요?”
숲속을 닮아 푸름이 넘실거리는 장소에서의 감동도 충분히 여운이 있겠다만, 치료와 보호가 급선무였다.
게다가 괜히 이곳에 더 오래 있었다가 다른 악마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그건 상당히 위험한 일로 번질 수 있었다.
어차피 이 장소는 제2 공영주차장으로 넘어가기 전 지나오는 통로일 뿐이었다.
혹여 이곳까지 찾아올 악마를 대비하기 위해 만든, 포탈을 찾는 나름의 공식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한 마지막의 마지막 대비책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곳을 들킨다면 제2 공영주차장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헤쳐지게 될 수도 있으니 그 전에 포탈을 넘어 제2 공영 주차장을 통해 다음 캠프로 넘어가야했다.
다음 포탈을 넘어가면 랜덤으로 소환된 이 장소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니까 말이다.
박율의 말에 옆에 있던 한명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그 역시 박율과 같은 생각인 듯했다.
한명련는 대답 이후 곧바로 움직였다.
그는 울창한 숲 속의 어느 한 지점으로 걸어가더니 수풀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우거진 수풀이 속살을 드러내고 결계 같은 포탈이 나타났다.
한명련은 다시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보았다.
“감격의 순간도 좋으나,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 먼저 합시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군말없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이런 일이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제2 공영 주차장을 통해 다른 캠프로 이동하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움직입시다.”
한명련의 말을 시작으로 숲속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포탈을 넘어갔다.
포탈이 그리 큰 편은 아닌지라 한 번에 한 사람이 고작이었다.
“누나도 두 사람 데리고 먼저 가요. 저는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요.”
박율은 곁에 남아있던 마르가리타를 보며 말했다.
『확인?』
“네, 잠깐이면 돼요.”
『먼저 가도 되겠어?』
“그럼요. 바로 뒤따라갈게요.”
“너 도망치기만 해봐. 아직 네 이야기 제대로 못 들었으니까 다시 말해줘야 하는 거 알고.”
그녀 옆에서 바위에 몸을 맡긴 채 쉬고 있던 서희가 으르렁거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콧잔등을 씰룩거렸다.
박율은 흠칫 그녀를 보더니 이내 마르가리타를 다시 보았다.
“두 사람 잘 좀 부탁해요.”
『그래, 넘어가서 봐.』
마르가리타는 그리 말을 하곤 서희를 업은 채 포탈을 넘어갔다.
박석훈은 한명련에게 업힌 채였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네, 조금 이따 뵈어요.”
“율 씨, 사라지거나 하면 안 되는 거 알죠?”
한명련에게 업혀있던 박석훈은 사뭇 걱정어린 눈길로 말했다.
아마 박율이 죽고 겪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른 듯했다.
“그럴 일 없어요. 저도 바로 넘어갈 거에요.”
“네, 그럼 먼저.”
한명련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포탈을 타고 넘어갔다.
“저기...”
아직 포탈을 넘어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수화와 진화였다.
두 아이는 수줍은 얼굴로 손에 있던 감자와 열매 몇 알, 그리고 구운 제비 고기를 건넸다.
아마 이전에 있던 그룹에서 받은 음식들인 듯했다.
박율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 아이를 보았다.
“나 먹으라고?”
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아냐. 괜찮아. 나 배 안 고파. 한창 클 나인데 너희들이 먹어야지.”
박율은 한사코 손을 휘저으며 거부했지만, 아이들은 그럴수록 손을 더 들이밀었다.
“그냥 받아도 돼요.”
아이의 아버지는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던 박율에게 말했다.
매번 볼 때마다 초췌했던 남자의 얼굴에 어느새 생기가 돌고 있었다.
“고맙다는 뜻으로 주고 싶은 거니까. 받아도 돼요.”
“아이, 그래도 애들이 먹을 음식을...”
“애들이 줄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런 거에요. 받으면 좋아할 거에요.”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박율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빠 찾아줘서 감사합니다...”
진화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아이를 보던 박율은 못내 한숨을 내뱉으며 아이들이 건넨 것들을 받았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었다.
“고마워.”
두 아이는 자신들이 건넨 선물을 박율이 받자 그제야 얼굴을 활짝 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감사를 건넸다.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죠. 얼른 넘어가세요. 우리도 뒤따라갈게요.”
“네,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와 아이들의 아버지는 발을 돌려 포탈로 향했다.
“아빠 같이 가.”
“같이 갈 거야. 조심히 가.”
그리고 상봉의 기적을 맛보던 세 사람 마저 포탈을 타고 넘어가자 자리엔 데판과 박율만이 남아있었다.
박율은 흘깃 데판을 보았다.
그의 시선은 어느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뜻하는 바는 박율 역시 알고 있었다.
익숙한 마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뚜렷한 형체가 아닌 마기의 흔적이었다.
데판은 한 마디 말 없이 마기를 향해 걸어갔다.
박율 역시 그 뒤를 쫓았다.
“...”
마기를 쫓아 도착한 곳은 깊은 숲 속 어딘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단탈리온의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단탈리온의 마계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였다.
[...]
데판의 표정은 오묘했다.
희노애락, 그 중 어느 것도 그의 감정을 설명하진 못했다.
한참을 입을 꾹 닫은 채 허공을 보던 데판이 입을 열었다.
[...주군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심연은 이유 없이 열리지 않는다.]
“...”
박율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단탈리온의 마계로 넘어가는 방법은 단 하나.
단탈리온이 만든 심연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심연이 있었군.]
이제는 없지만, 확실하게 느껴졌다.
허공에 맴도는 마기는 단탈리온의 마계로 넘어가는 심연에서 흘러나와 잔류하는 마기였다.
그리고 그 마기는 일전에 데판이 죽였던 악마의 마기와 일치했다.
그 말인 즉슨.
[...이 세계의 주군께 일이 생긴 모양이다.]
데판이 말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의 마계는 아니었다.
그의 마계는 과거에 있던 그곳이니까.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서린 감정은 너무나도 깊었다.
분노, 절망, 좌절, 온갖 감정들이 한데섞여 저도 모르게 흠칫 떨게 만들었다.
그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박율 역시 단탈리온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그리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미래로 돌아오기 전 백지의 세계에서 보았던 단탈리온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돌아가면 나를 찾게나. 또 다시 길을 알려줄테니.]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무언가 또 다른 계략이 있는지, 아니라면 이곳에서 박율이라는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건지.
뭐, 그가 하는 일이면 대개 숨겨진 속뜻이 있기 마련이었다.
데판은 잠시간 마기가 잔류하던 허공을 보더니 이내 발을 돌렸다.
[...일단 우리도 돌아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