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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29화 (129/183)

129화

뿌연 구름 사이로 어두운 하늘에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투두둑.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빗줄기는 점차 소나기마냥 굵어졌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검게 변한 세상에 가득한 먼지를 바닥에 가라앉혔다.

그리고 흑으로 가득한 세계에 고막을 터트릴 듯 굉음이 울렸다.

쾅!!!

소리의 주인은 강진호의 것이었다.

전력을 담은 그의 일격에 박율은 이미 방향을 따라 건물들과 땅을 모조리 박살내며 날아가는 중이었다.

콰과광!!!

“후우...”

강진호는 그에게 일격을 날린 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호흡을 정돈했다.

고작 한 방만을 날렸을 뿐이지만, 그 여파는 대단했다.

온몸의 근육이 쪼그라들고, 치솟는 고통에 눈을 뜨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는 짜릿하게 울리는 고통이 옅어지기도 전에 다시 발을 떼었다.

여전히도 허공을 부유하는 박율을 향해 뛴다.

이정도 일격이라면 그게 누구라한들 형체도 남지 않고 죽어야하지만,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순식간에 달려든 강진호는 바닥에 내리꽂히는 중인 박율의 너머에서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는 내려찍는다.

콰앙!!!

주먹을 따라 박율의 몸뚱이가 커다란 크레이터를 남기며 바닥에 처박힌다.

마치 호숫가에 물이 한 방울 떨어지듯 울리는 파동은 그들이 서 있는 땅을 모조리 박살낸다.

콰앙!!!

콰앙!!!

격렬한 굉음이 울려퍼진다.

허나 누구도 그 굉음을 듣지 못했다.

터져 나오는 소리는 아직 어디에도 가지를 뻗어 나가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수어 차례의 일격이 이어지고, 떨어지는 빗방울이 두 사람의 옷깃에 닿았을 때는 이미 그들이 서 있는 땅은 완파된 이후였다.

그리고 후두둑!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하늘 위 구름에서 형성된 물방울이 땅바닥에 쏟아졌다.

그 위로 뿌연 흙먼지가 그들이 서 있는 땅을 잠식한다.

전력을 소모한 연타가 끝이 나고 강진호는 찌릿하게 울리는 통증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아...”

강진호는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으며 날숨을 뱉었다.

쓸데없이 무리를 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박율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전력을 쏟아낼 필요는 없었지만, 알 수 없는 기시감에 필요 이상으로 힘을 썼다.

강진호는 고개를 떨어뜨려 바닥을 보았다.

뿌옇게 인 흙먼지와 바닥을 뒤덮은 돌무더기로 아래가 보이지는 않았다만, 어차피 그의 형체는 남아있지도 않을 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를 이렇게까지 만든 건 칭찬하지.”

강진호는 온몸에서 터지는 스파크를 해체했다.

전력(電力)이 온몸에서 빠져나가며 온몸에서 차오르던 고통이 조금은 옅어졌다.

“안돼!!!”

두 사람의 전투를 별 수 없이 지켜보던 서희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저런 공격을 받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흔적조차 남지 않을 일격들의 연속이었다.

서희는 절망에 빠져 박율을 향해 뻗은 손을 떨어뜨렸다.

“안돼...!!!”

박율을 지키지 못했다는 절망감과 자괴감이 그녀의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스스로에 대한 환멸과 박율을 죽인 강진호에 대한 혐오감 역시 솟구쳤다.

살의가 짙게 물들었다.

함께 그녀의 온몸을 타고 흑이 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의 무리는 죽음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본능이 느껴졌다.

허나 이러나 저러나 결국은 죽은 목숨이다.

어차피 죽게 될 거라면 후회는 없이 죽겠다.

[쓸데없는 짓이다.]

박율의 위를 짓밟은 강진호에게로 발을 뻗으려던 순간 데판이 말했다.

서희는 야차의 눈으로 그를 보았다.

“뭐?”

[앉아있어라.]

데판은 태평했다.

마치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듯 노곤하기까지 했다.

서희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았다.

그는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듯 꼬리를 살랑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끔 저런 지독한 짓을 하더군. 이유가 있을 거다.]

서희는 다시 고개를 돌려 강진호와 박율을 보았다.

“후...”

강진호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이들을 죽이려 발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덥석!

바닥을 잠식한 돌무더기 사이에서 손이 하나 튀어나와 강진호의 다리를 움켜쥐었다.

“...!!!”

불쑥 튀어나온 손은 그대로 강진호를 잡아당겨 그를 넘어뜨렸다.

“어딜 가, 이 씹새야.”

그리고는 그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퉤!”

박율은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얼굴과 전신에서 피를 조금 흘리고는 있다만,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아파 죽는 줄 알았네.”

“어떻게...!!!”

“누누히 말하지만, 존나게 굴렀다.”

박율은 그 말을 끝으로 허리를 비틀어 움켜쥔 강진호의 다리를 반대편으로 날렸다.

그리고 강진호가 날아간 방향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약한다.

[신속]

더 빠른 속도로.

척!

“...!!!”

“똑같이 해줄게, 내가.”

콰앙!!!

박율의 망치가 강진호의 복부를 내려찍는다.

날아가던 그의 몸뚱이는 충격에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커헉...!”

박율은 그에 그치지 않고 또 다시 망치를 방망이마냥 휘둘러 바닥에 튕겨 올라오는 강진호를 날렸다.

그리고 또 다시.

[신속]

떨어지는 빗방울이 허공에 멈춰있는 듯 보일 정도였다.

박율은 허공에 박혀있는 물줄기들을 꿰뚫으며 강진호에게 일격을 날렸다.

쾅!!!

전력을 해체한 강진호는 미처 반응도 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었다.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 핏물이 비산했고, 떨어지는 바닥에는 흥건하게 피로 젖었다.

콰과광!!!

일대의 폐허들과 지반이 산산조각나고 그 너머로 강진호의 몸뚱이가 떨어졌다.

“커허억...!!!”

강진호는 피를 토하며 고통에 신음했다.

박율은 망치를 잡은 채 그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프냐?”

“...”

“네 손에 죽은 사람들도 그랬을 거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너처럼 악마랑 손은 안 잡았어.”

강진호는 공허한 눈으로 박율을 보았다.

박율은 망치에 힘을 집중시켜 첨예한 검처럼 형태를 바꾸었다.

“...어차피 인간들은 진다.”

“누가 그래? 우리가 진다고?”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희망이 있던없던, 우리는 포기 안 해.”

박율의 말에 강진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비소를 한껏 품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희망이 없더라도, 네가 하는 짓은 정당화가 될 수 없어. 이 사이코 새끼야.”

“...이해할 수 없군.”

“나도 마찬가지야. 긴말 필요없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박율은 길게 뻗은 날을 강진호의 심장을 향해 꽂았다.

푹!

첨예한 날이 그의 몸을 꿰뚫고 땅바닥에 박힌다.

그리고 강진호의 몸은 스파크가 되어 허공에 사라졌다.

“후우...”

박율은 한바탕 소란을 끝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복수는 끝난건가?]

어느새 박율의 곁으로 걸어온 데판이 물었다.

하지만 박율은 고개를 저었다.

“저놈 안 죽었어요.”

[흠...]

“저건 체계적으로 미친놈이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다고 항상 분신체로 다니거든요. 아마 어딘가에서 도망치고 있을 거에요.”

[그렇군.]

“그래도 한동안은 찾아오지 못할 거에요. 그러려고 일부러 저놈이 마지막 권능을 쓸 때까지 맞아줬으니까.”

최강의 권능이라 불리우는 만큼 그 반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 정도로 힘을 소진했다는 건 적어도 한동안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됐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박율은 다시 발을 돌려 다른 이들이 있던 장소로 이동했다.

얼마나 피 터지게 싸운 건지 이미 그가 서 있는 근방은 죄다 초토화가 된 이후였다.

한 번만 더 이렇게 싸웠다간 근방이 아니라 인천이 죄다 궤멸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나저나...”

그동안 상당히 강해지긴 한 모양이다.

그래도 나름 인류최강이라 불리던 강진호를 상대로 얼마나 힘을 쓸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다만.

박율은 제 힘의 7할 정도만 쓴 상태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 강진호를 가볍게 제압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박율은 손을 쥐었다 피며 제힘을 실감했다.

[진명 : 박율]

[이명 : --]

[권능 : 성흔/추출, 흡수, 척후, 신속, 경화, 석화...]

오랜만에 펼쳐본 힘은 역시나 상상 그 이상이었다.

권능에 새겨진 성흔 만해도 족히 수백 개는 넘는 듯했다.

게다가 어떻게 된 건지, 그의 이름 아래로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이명?”

생전 처음 보는 무언가였다.

그 옆에는 아직 글자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고 말이다.

“혹시 이명이 뭔지 알아요?”

[이명?]

“뭔가 새로 생긴 거 같아서.”

데판은 대답 대신 꼬리를 흔들었다.

아마 모른다는 어필을 한 모양이다.

“그런 것도 몰라요?”

[내가 무슨 백과...]

“너 뭐야...!!!”

데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 서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율과 데판은 소리를 쫓아 고개를 들었다.

서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당장에라도 싸울 기세로 박율을 노려보고 있었다.

“율이 어디갔어!!!”

“나요?”

“율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게 무슨...? 아...!”

그제야 박율은 상황을 파악했다.

강진호의 입장에서 박율의 힘이 생소한 만큼 그녀의 눈에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박율은 당장 이틀 전만해도 아무것도 없는, 폭탄만 던질 줄 아는 일반인이었으니까 그럴만도 했다.

“내가 설명을...”

“악마 새끼들이었어...”

서희는 살의 넘치는 눈으로 박율과 데판을 보더니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녀는 재빨리 눈을 돌려 마르가리타와 박석훈을 보았다.

그리고는 땅을 박차고 달려가 마르가리타를 쳐내고 박석훈을 감쌌다.

“가까이 오지마...!!!”

“설명을...”

“씨발...”

서희는 쓰러진 박석훈을 등 뒤로 옮기고는 야차화된 손을 높이 들었다.

누구라도 달려들면 죽이겠다는 눈빛이었다.

『진정해요. 그런 거 아니에요.』

“닥쳐!!!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어!!!”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이로군.]

“뭐, 그렇죠.”

박율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양손을 들어올리곤 앞으로 한 걸음 걸어나왔다.

서희는 흠칫 살기를 내비췄다.

“오지마...”

“나 진짜 박율이에요.”

“구라치지마! 박율한테 그런 힘이 있을 리가...!”

“그게 설명하자면 긴데, 여하튼 진짜 나 박율 맞거든요?”

“내가 아는 박율은 힘이라곤 하나도 없고, 바퀴벌레마냥 죽지도 않고 할 줄 아는 거라곤 폭탄 던지기에 주둥이만 움직일 줄 아는 놈이었어...!”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콕콕 집을 필요까지야... 어떻게하면 믿을 거에요?”

“안 믿어...!”

“흠... 박율만 알 수 있을만한 것들을 말해볼까요?”

“그런다고 내가 믿을 거...”

“식량 찾으러 나간다고 해놓고 몰래 혼자 초코바 먹었던 거 기억나요?”

“그것 정도야 누구나...”

“그럼 야차화하는 척 몰래 방귀꼈다가 나한테 들켰던 건?”

“...”

“숲에서 큰일 보다가 넘어졌던 것도 있다.”

“...넌 씨발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

“물인 줄 알고 먹었는데...”

“그만.”

“사실 오...”

“주둥이 셔터 내려.”

“이제 믿어줄거에요?”

“...넌 뒤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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