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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28화 (128/183)

128화

박석훈의 코끝으로 죽음의 향기가 스치던 순간이었다.

그 향기를 뒤덮는 인기척.

무언가 달려오고 있었다.

강진호는 흠칫 다가오는 살기를 느꼈지만, 개의치 않고 검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직!

그리고 그의 검이 바닥을 꿰뚫었을 때, 그곳엔 이미 박석훈이 사라진 뒤였다.

“...하마터면 늦을 뻔했네.”

강진호는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박율이었다.

“...너는?”

저 멀리 나타난 박석훈은 박율과 함께였다.

강진호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일그러지는 얼굴과 좁아지는 미간이 그의 감정을 대신했다.

“진짜 갈 때까지 가는구나. 너는.”

박율은 말했다.

“박율!!!”

저 멀리에서 건물 파편에 깔려있던 서희가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반가움보다는 우려가 더 깊은 소리였다.

“도망쳐!!! 빨리!!!”

그녀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도 하지 않는지 박율에게 얼른 도망치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박율은 움직이지 않았다.

“율...씨...?”

여전히도 떨리는 몸으로 고통을 토해내던 박석훈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 박율을 보며 말했다.

“쉬고 있어요. 오래 안걸릴 테니까.”

“안 돼요... 도망...쳐요...!”

박율은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박석훈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진호를 보았다.

“누나, 석훈 씨 좀 부탁할게요. 그리고 고양이 아저씨는 서희 씨 좀 도와줘요.”

『...그래.』

[그러지.]

그를 쫓아 달려온 두 사람은 조용히 박율의 지시를 따랐다.

넘실대는 살기를 업은 채 서로를 보는 박율과 강진호 사이에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마르가리타는 먼저 등에 짊어진 아이를 안전한 건물 틈에 내려놓고는 박석훈에게로 달려갔다.

박석훈은 여전히도 박율을 보며 벌어지지 않는 입을 힘겹게 열고 있었다.

“빨리 도망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괜찮을 거에요.』

박석훈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마르가리타를 보았다.

“당신은...”

『아이의 친구에요.』

“하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율 씨는 일반인이에요... 얼른...!”

『이젠 괜찮아요. 평범함이랑은 거리가 멀어진 애거든요.』

마르가리타는 박석훈을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가 그의 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여전히도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듯했지만, 빈사 상태의 그를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데는 가능할 듯했다.

『좀 쉬고 있어요.』

“뭐하는 거야!!! 빨리 도망쳐!!!”

저 멀리에서 서희의 악에 받친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곁으로 고양이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너까지 죽으면...!!!”

[걱정할 필요 없다. 인간.]

데판은 도도한 걸음으로 다가가 새침하게 말했다.

그리곤 고양이의 모습으로 꼬리를 길게 펼쳐 서희의 몸을 짓누르던 파편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악마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치우는 편이 편하긴 할테지만, 아까 보았던 그 경멸의 눈빛을 또 받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게다가 지금 이 세계에서 악마라는 존재는 절대악 이상의 악한이니까 말이다.

서희는 자유자재로 꼬리를 움직이는 고양이를 보며 두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아마 악마인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

[...놀랄 필요 없다. 인간들한테 관심은 없으니.]

데판은 가볍게 꼬리를 휘둘러 파편들을 모두 제거하더니 이내 발을 돌려 가까운 턱에 올라앉아 도리를 틀었다.

서희는 여전히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른 강진호를 피해 박율과 박석훈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윽...!”

당장에라도 두 사람을 데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강진호에게 당한 일격에 제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씨...”

[쓸데없이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저놈은 네가 생각하는 만큼 약한 놈은 아니니.]

도리를 튼 데판은 하품을 내뱉으며 휴식을 취했다.

저 멀리에서 강진호가 일그러진 얼굴로 박율을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설명해도 모를 거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 이 개자식아?”

“조용히 보내려 해도 끝끝내 발악을 하는군.”

“조용하게 보내기는. 씨. 너 나한테 악감정 있지? 고통 없이 보낸다면서 나는 존나 아프게 하더만.”

강진호는 대답 대신 발을 떼었다.

이번엔 권능을 쓰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명백하게 박율을 무시하는 움직임이었다.

그저 검을 높게 치켜든 채 적당한 속도로 걸어갔다.

박율은 어이 없는 실소를 터트렸다.

“넌 어제 나를 봤겠지만, 난 아니거든. 방심하면 큰코 다칠 거다.”

“네게도 진정한 안식을 선물해주마.”

“나한테 안식은 네가 죽는 거야.”

강진호는 그의 말을 무시나 하듯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강진호는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신속]

그리고 박율은 날아드는 검이 추락하기도 전에 발을 굴러 강진호의 뒤로 이동했다.

“방심하면 큰코 다친다고 했지?”

“...!”

망치를 내려찍는다.

콰직!

“큭...!”

강진호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비틀어 치명상을 피했다.

그리고는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를 피해 박율에게서 멀어졌다.

“이게 무슨...!”

“놀랍냐?”

강진호의 일그러진 얼굴이 펴질 생각을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만도 한 게 전날에 심장을 꿰뚫고 죽은 사내가 하루 만에 나타나 이런 힘을 보인다는 게 이해할 수 없을 만했다.

그가 잘못본 게 아니라면 지금 그는 권능을 썼다.

“어떻게...?”

불가능했다.

신은 인간을 버렸고, 신의 목소리를 듣는 이는 누구도 없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박율은 권능을 썼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남자가 말이다.

박율은 그가 다시 달려들기 전, 먼저 발을 굴렀다.

“네 입장에서는 하루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몇 달이었거든...!”

달려드는 살기.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는다.

강진호는 반사적으로 무기를 치켜들고 방어를 준비했다.

[신속]

박율의 신형이 사라졌다.

강진호는 그를 쫓는다.

그리고 느껴지는 살기.

옆이었다.

캉!!!

망치와 검이 부딪히며 쇳소리가 울린다.

“큭...”

망치를 막은 손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파워마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만에 하나 그사이 신의 목소리를 들어 사자가 됐다한들 이것들이 가능할 리가 없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캉!!!

강진호는 속수무책으로 날아드는 망치를 막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공격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예상치 못한 속도와 힘이었다.

뒤로 물러서면, 그만큼 달려들고, 공격을 하려 무기를 들면 그 간극을 찾아 망치가 쇄도한다.

캉!!!

“대충...! 뒤지게 굴렀다...!”

박율은 치가 떨린다는 얼굴로 망치를 내려찍었다.

[순보]

강진호는 망치가 내려찍히고 다음 공격이 날아오려는 순간, 발을 굴러 박율에게서 멀어졌다.

다행히 이번엔 곧바로 쫓아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제야 좀 느껴지냐?”

박율은 여유가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강진호는 숨을 잠시 고르더니 이내 다시 검을 소환시켰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도 제대로 가지.”

그리고 달려든다.

캉!!!

망치와 검의 격돌.

검은 역시나 완류를 타고 흐르듯 부드러운 선율을 선보였다.

강진호는 날아드는 망치를 흘리려 검을 뻗지만, 망치의 충격을 완전히 흘리지 못했다.

“큭...”

그 여파로 자세가 무너지자 박율은 곧바로 망치로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콰직!

“커헉...!”

“일어나. 아직 안 끝났어.”

“이게...”

강진호는 신음을 토해내며 힘겹게 일어나지만, 동시에 날아드는 일격에 옆으로 몸을 굴러 공격을 피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아주 잠깐의 방심도 허용해선 안 된다.

“저게 도대체...”

박율을 보던 서희의 말이었다.

그녀 역시 두 눈을 믿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이틀 전 마지막으로 그를 봤을 때만 해도 그는 아무것도 없는 민간인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남자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저 녀석은 강하다고.]

데판은 이젠 보기도 귀찮다는 듯 반쯤 자면서 말했다.

저 멀리에서 흐릿한 시야 속에서 박율을 보는 박석훈도 그들과 같은 얼굴이었다.

“빨리 덤비지.”

박율은 망치를 들지 않은 손을 까딱거리며 그를 도발했다.

“후우...”

강진호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발을 떼었다.

[순보]

캉!!!

“...!!!”

막았다.

강진호는 두 눈을 믿지 못했다.

“...순보를 이용한 공격을 막았다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순보는 말 그대로 순간이동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가시거리가 닿는 공간 내로 이동하여 순식간에 공격을 한다.

물론 막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대신 막기 위해선 초인적인 반사능력이 동반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그의 눈 앞에 서 있는 남자가 하고 있었다.

운일 수도 있다.

강진호는 다시 발을 땅바닥에 안착시켰다.

[순보]

캉!!!

이번에도 막았다.

“이게 네가 그리 자랑한다는 순보냐?”

박율은 검을 막은 채 조소를 내뱉었다.

연이어 쏟아내는 순보에도 그의 공격은 막혔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 마냥 공격은 허공을 맴돌았다.

“이게 끝이냐?”

“후우...”

[격랑]

쌓인 힘을 쏟아낸다.

수차례 허공을 가르던 검에 쌓인 격을 한 점으로 집중시킨다.

그리고 휘두른다.

카앙!!!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그의 검은 고작 망치에 막혔다.

“...!!!”

망치 너머로 박율은 한껏 비소를 품은 채 강진호를 보고 있었다.

강진호는 순보를 이용해 박율에게서 멀어졌다.

“혼란스럽겠지.”

“...”

“어제 본 놈이 갑자기 미친 듯이 세져서 돌아왔는데.”

박율은 여전히도 비아냥거렸다.

“그런데 이걸 어쩌냐. 지금 나도 봐주고 있는 건데.”

강진호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쓸데없는 감상은 낭비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젠 끝을 봐야한다.

강진호는 무기를 버리고는 두 손을 한데 모아 합장을 취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스파크.

그가 가진 세 번째 권능.

[전력(電力)]

“하아...”

폭발하는 스파크는 이내 그의 전신을 감쌌다.

빨리 끝내야 한다.

아무리 그가 한때 인류최강이라 불리던 사자였을 지라도, 온몸을 전기로 감싸는 전력은 그의 몸에 부하를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고, 강력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강진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빛을 상회했다.

“...!”

박율의 눈을 뒤덮은 눈꺼풀이 다시 열리기도 전에.

강진호는 그의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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