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샤락.
바람결에 커튼이 흔들린다.
나풀대는 커튼은 발작이나 하듯 춤을 췄다.
그리고 커튼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그 자리엔 백봉기가 서 있었다.
한 손엔 치킨 봉투를 쥐고서, 나머지 손엔 늑대 가면을 쥐고서.
“치킨 가져왔다. 율아.”
그는 손에 쥔 치킨 봉투를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가까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
백봉기는 한숨을 팍 쉬더니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새하얀 석면 천장이 보인다.
“...뭐하고 있냐.”
그는 끽해야 바로 옆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나지막이 내뱉었다.
곧이어 그의 눈은 박율을 향했다.
하지만 박율은 그를 보지 못했다.
마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지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난 채였다.
허나 여전히 박율은 눈을 뜨지 못했다.
의사 소견상으로는 그리 큰 아무런 문제는 없다지만, 아직 그는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걸까.
“...뭐가 그리 아쉬워서 아직도 누워있냐.”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보던 백봉기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박율을 보았다.
밥을 먹지 못해 삐쩍 마른 그의 몰골은 못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는 여전히도 반달을 그리고 있었다.
“넌 이 상황에도 웃음이 나오냐?”
백봉기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낫지.”
정적이 내려앉는다.
백봉기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머리를 감쌌다.
“...덕분에 속죄하면서 살고 있어. 더러워졌으니까 잘못했으니까 빌면서 살고 있어. 비겁하게 도망치지도 않을 거고, 전부 속죄할 때까지 죽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까...”
그만 일어나. 제발.
백봉기는 떨리는 손으로 박율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다 터벅.
병실 너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자고 일어나. 기다리는 사람들 많으니까.”
백봉기는 무거운 한숨을 내뱉고는 품에 있던 늑대 가면을 꺼내 뒤집어썼다.
철컥.
문이 열리고, 그 너머에서 박석훈이 나타났다.
그가 나타났을 땐 이미 백봉기는 사라진 후 였다.
“...?”
박석훈은 멈칫 문 앞에 멈춰 병실을 살폈다.
샤락.
흩날리는 바람에 커튼이 흔들렸다.
문득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평소와 다른 것은 없다만, 뭐랄까 마치 방금까지 누가 있었던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랄까.
누군가 왔었다면 응당 올라오는 길에 마주쳤어야 했지만, 딱히 오면서 만난 사람은 없었다.
잠시 병실을 둘러보던 박석훈은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며 기우겠거니 하고 병실에 발을 들였다.
귀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누가 창문을 열어놨어. 춥게.”
박석훈은 혀를 끌끌차며 창문을 닫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리자.
“...?”
병상 옆에 놓인 치킨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박석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치킨 봉지를 집어들었다.
“누가 여기다 이런 걸 가져다놨어? 뭐야, 아직 뜨겁네? 이제 막 튀긴 거 같은데?”
혹시 누가 병실에 있나싶어 주위를 살피던 박석훈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치킨 봉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가까이 있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 왜 따뜻하지?”
마치 금방까지 누가 있었다는 듯 의자가 데워져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박석훈은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게 그 엉따라는 건가. 신기하네.”
“병원 의자에 엉뜨가 왜 있냐. 이 멍청아.”
흘깃 박석훈은 고개를 들었다.
소리가 들려온 쪽엔 서희가 문에 몸을 기댄 채 서있었다.
그녀는 흘깃 병실을 살피더니 이내 안쪽으로 들어왔다.
“왔어요?”
“누구 왔다 갔어?”
“몰라요? 올라오면서 딱히 본 사람은 없는데 이게 있더라고요.”
“그게 뭔데?”
그녀의 말에 박석훈은 치킨 봉투를 높이 들었다.
“치킨?”
그러자 서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병실을 둘러보았다.
닫힌 창문의 옆으로 살랑이는 커튼.
서희는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은 먹었냐?”
“아직이요?”
“그럼 그거 먹자.”
“네?”
“어차피 우리 먹으라고 놔둔 거야.”
“누가요?”
“있어.”
“뭐가 있어요?”
“...딴지 걸지마.”
서희는 꼬리를 무는 질문에 으르렁 화를 내더니 그의 옆으로 다가가 치킨 봉지를 뜯었다.
치킨이 담긴 상자를 열자 뜨거운 치킨의 내음이 병실에 가득 퍼졌다.
서희는 배가 고팠는지 박스를 열자마자 다리를 집어 입에 물었다.
바삭!
“아! 나 후라이드 다리 좋아하는데!”
“양념 처먹어.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야.”
“인간적으로 그런 건 물어보고 먹어야죠! 매너가...”
“불만있어? 먹던 거라도 줄까?”
“어우, 됐네요. 근데 그렇게 치킨 먹어도 돼요? 연예인들은 다이어트 같은 거 한다고 정신 없다고 하던데.”
“비수기야. 먹어도 돼.”
“그래요?”
“그리고 인마 너도 나름 유명인이잖아. 한국의 영웅. 신의 방패인지 나발인지.”
“전 그거 싫어요. 안 그래도 길드 문제 때문에 정신없는데, 뭐만하면 영웅이니 뭐니. 피곤해요. 그런 거 보면 서희 씨는 어떻게 그걸 다 버텨요? 어딜가든 시끄러워서 진짜...”
“재밌잖아. 돈도 많이 주고.”
“...돈은 많이 주긴 하죠.”
“돈이 최고야.”
박석훈은 그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다시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한참을 먹던 서희는 배가 불렀는 지 먹던 치킨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여전히도 누워있는 박율을 보았다.
“잘도 자네. 해가 중천인데, 언제 일어날 생각인지.”
“솔직히 저는 아직도 눈을 뜨면 율 씨가 일어나 있을 거 같아요.”
“그거 망상이야.”
“좀 감상에 빠지면 안 돼요?”
“됐고, 치킨이나 먹어.”
“사람이 낭만이 없어...”
“낭만이 돈 벌어다주냐?”
“에휴, 그냥 치킨이나 먹읍시다.”
* * *
멀리서 박율의 병실을 지켜보던 백봉기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일상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 달 전 마왕이 한국을 침공했었다는 게 거짓말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은 안정을 되찾았다.
악마들로 인한 피해를 수복하고, 부서진 건물들을 재건했으며 사람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상을 되찾았다.
길거리엔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도로엔 언제나처럼 차들이 즐비했다.
“...성공한 모양이다. 율아.”
평온한 이들을 바라보던 백봉기가 말했다.
비록 평범한 일상과는 멀어져 그림자 속을 살아가는 신세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속죄하며 살라는 그 말.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백봉기는 그 말을 가슴에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에서 은은한 마기가 느껴졌다.
마왕과의 전쟁 이후 심연이 나타나는 빈도는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났다.
전문가들의 말마따나 악마들을 통제하는 수뇌부가 사라지니 그 여파로 악마들이 무분별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백봉기는 마기를 쫓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마기에 다다르자 보이는 심연의 골짜기.
“...중형급 이상이네.”
저 정도 크기면 못해도 7급 하급 악마 혹은 중급 악마가 나타날 가능성이 짙었다.
만약 그렇다함은 지역구까지는 아니더라도 동 하나 정도는 거뜬히 파괴될 수 있을 법한 수준이라는 소리였다.
웬만해선 심연이 나타나면 관할 사자들에게 처리를 맡기는 편이지만, 이렇게 가끔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 백봉기가 먼저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나 벌어진 심연의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쨍!
심연이 더욱 벌어짐과 동시에 유리 깨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윽고 심연에서 두 개의 뿔을 지닌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새카만 피부에 기다란 날개가 인상적인 악마였다.
역시나 악마의 시선은 정면의 초등학교를 향했다.
백봉기는 그가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서둘러 그의 앞에 나타났다.
[무어냐?]
“...”
대답은 사치였다.
백봉기는 그림자를 뒤덮고 있던 흑을 펼쳐 그 속에서 뼛조각을 꺼내들었다.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보군.]
악마는 콧방귀를 터트리더니 손을 높이 들어 마기를 응축시켰다.
정면의 남자를 단번에 죽이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악마는 지체하지 않고 마기구를 던졌다.
“그런 걸 던지면.”
백봉기는 뼛조각을 높이 들었다.
그는 날아오는 마기구에 뼛조각을 뻗어 그의 공격을 땅바닥으로 흘렸다.
땅바닥으로 떨어진 마기구는 백봉기의 흑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
“아이들이 다치잖아.”
그리고는 순식간에 악마에게 달려가 뼛조각을 휘두른다.
호를 그리는 뼛조각을 따라 악마의 머리가 땅바닥을 굴렀다.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는 죽었다.
백봉기는 뼛조각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곤 다시 흑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관할 사자들이 나타날 터였다.
그렇기에 백봉기는 악마의 흔적만을 남겨놓고는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것이 그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였다.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더 이상 아픔이 가지를 뻗지 않기를 원할 뿐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우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 발길을 돌렸다.
* * *
쏴아아!
폭포수가 떨어진다.
그리고 그 옆으로 거적때기를 걸쳐 입은 작은 꼬마 아이가 걸어왔다.
“응?”
아이는 뭍에 떨어진 무언가를 보곤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툭.
아이는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 피를 잔뜩 머금은 무언가를 툭툭 찔렀다.
그러다 꿈틀.
무언가가 움직였다.
아이는 무섭기는커녕 신기하다는 얼굴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본 그것은 사람이었다.
“아저씨?”
“...”
“살아있어요?”
“쿨럭...!”
남자는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는 참아왔던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커허억...!!! 허억...!!!”
“아저씨 아파?”
“하아...”
“이거 먹을래?”
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주머니에 있던 초코바를 건넸다.
초코바는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건지 반쯤 먹다 남은 상태였다.
“쿨럭...!!! 쿨럭...!!!”
남자는 아이가 건넨 초코바를 건네받기도 전에 죽을 듯 기침을 토해냈다.
아이는 그런 남자를 불쌍하게 여긴다는 듯 인상을 팍 짓고는 물었다.
“추워?”
“여긴...”
“이거 줄까?”
아이는 걸치고 있던 거적때기를 가리켰다.
남자는 아이는 안중에도 없는 듯 주변을 살피더니 겨우 정신을 차린 듯 계곡을 빠져나와 근처 바위에 몸을 맡겼다.
“아저씨는 왜 여깄어?”
“시끄럽다...”
“아저씨도 나처럼 버려졌어?”
남자는 흘깃 아이를 보았다.
꾀죄죄한 몰골이 퍽 안쓰러워보였다.
“...”
“그럼 우리 집으로 올래?”
아이가 물었다.
남자는 아이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내리깔아 그의 다리를 보았다.
그의 다리 한쪽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계곡의 급류를 타고 까마귀 형태의 가면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 * *
조용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공백의 세계.
그 사이에서 박율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스르륵.
그의 눈꺼풀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