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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19화 (119/183)

119화

두 사람을 가둔 결계에 흑이 번지기 시작하며 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기가 완전히 박율을 꿰차는 순간 결계는 부서졌다.

그리고 박율을 마주한 두 사람.

『...!!!』

“율아...!!!”

결계에서 빠져나온 박율을 본 백봉기와 마르가리타의 첫마디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박율은 여전히 솟구치는 마기에 온몸을 이리저리 꺾으며 고통을 토해내고 있었다.

마치 간질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듯 박율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백봉기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시선은 박율의 뒤, 자그마한 아이에게로 옮겨졌다.

기우가 있었다.

백봉기는 뛰었다.

그리고 아이에게로 몸을 던졌다.

“기우야...!!!”

살아있었다.

죽음을 다짐했던 아이가 옅은 숨을 내뱉고 있었다.

백봉기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아이의 차가운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의 손은 아이의 이마부터 볼까지 아이의 생명을 쓰다듬었다.

“율아... 어떻게...”

백봉기는 박율을 보았다.

그는 떨고 있었다.

그것이 고통이던 슬픔이던 무엇이던, 그는 말이다.

백봉기는 그에게 다가가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턱.

박율은 다가오지 말라는 듯 손을 높이 들었다.

“...오지마.”

“율아...!”

아직은 안 된다.

플라우로스가 그의 몸에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조금만...”

박율은 이를 꽉 깨물며 버텼다.

“하아...”

정신이 혼미했다.

눈을 뜨는 것마저 안간힘을 써야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신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랬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테니 말이다.

박율은 삐걱거리는 팔을 높이 들어 그대로 다리에 망치를 내려찍었다.

콰직!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길고 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다른 방법은 없다.

“뭐하는 짓이야...!!!”

백봉기는 화들짝 놀라며 아이를 내려놓고 박율에게로 뛰었다.

아니, 뛰려 했다.

그의 앞을 막는 여인이 보이기 전까지 말이다.

천사라 불리우는 여인은 자그마한 어깨를 내보이며 그를 막아섰다.

『안돼...』

마르가리타는 입술을 잘근 씹은 채 고개를 저었다.

“크윽!!!”

박율의 비명.

“비켜!!! 율이가 지금...!!!”

『안 된다고...!』

마르가리타는 울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처음 그가 플라우로스와 함께 사라질 때부터 말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그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말릴 수 없었다.

그것은 온전한 그의 의지였다.

그들의 의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제지한다는 것은 여태껏 쌓아온 두터우며 무거운 탑을 부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여 고통스러웠다.

천사라는 이름을 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그저 그의 선택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허나 백봉기는 여전히도 그 슬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계속 그런 선택을 하는 거야...』

그녀의 눈물이 추락했다.

그리고 땅에 스며들었다.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박율은 웃고 있었다.

“두...번이나 약속했거든.”

박율은 연신 비틀리는 고개를 힘겹게 고정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살릴 거라고...”

그제야 백봉기는 그의 말을 그리고 그들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숨이 떨리기 시작했다.

백봉기는 주체할 수 없을만큼 떨리는 팔로 마르가리타를 밀어냈다.

“누가!!!”

백봉기의 울부짖음.

“너더러 이렇게 해달래...?”

“...”

“누가 이렇게 해달라고 했냐고!!!”

백봉기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 울렸다.

『왜 이렇게까지...』

딱히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백봉기는 박율에게 있어 유일한 아버지였다.

천애고아인 그에게 따스한 손길을 건넨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우는 모습을 어찌 그냥 본단 말인가.

그리고 두 번이나 약속했다.

기우를 살리겠다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순간 박율의 오른손에서 마기가 터져버릴 듯 차오르기 시작했다.

박율은 나머지 손으로 오른손을 제압했다.

그리고는 여전히도 웃는 얼굴로 백봉기를 보았다.

플라우로스가 박율의 몸과 융화되는 이 순간.

이제는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었다.

“형.”

“방법이 있는거지...? 있으니까 그런거잖아...!”

“...나 좀 죽여주라.”

정적이 흐른다.

허나 정적은 그들의 슬픔이 땅바닥에 내려앉기 전에, 박율의 움직이는 소리에 짓이겨졌다.

“뭐...?”

차오르는 마기를 따라 박율의 왼쪽 등줄기에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백봉기는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었다.

“늦으면 모든 일...들이 허사가 될 거야.”

“...”

“기우랑...같이 살아야지...”

박율에게서 더욱 짙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히는 마기였다.

“그러...려고 여기까...지 왔잖아.”

“못해...”

“스페인에서처럼...”

“그만!!!”

백봉기는 소리쳤다.

“그때랑은 다르잖아...!!!”

“뭐가 달라...?”

“...!”

대답하지 못했다.

박율은 다시 말을 이었다.

“동생 소원 한 번만 들어주라.”

“너는 씨발...진짜...”

박율의 움직임이 더욱 격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그의 발끝에서부터 검은 마기가 그를 집어삼킬 듯 차오르기 시작했다.

완연한 흑이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늦기 전에 일을 끝내야 했다.

박율은 마르가리타에게로 눈을 돌렸다.

『...!!!』

“나 좀 죽여줄래요...? 이러다 늦으면...다 죽어요. 늦기 전에...”

마르가리타 역시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망치를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은 왜 다 이런 걸까. 정말.』

“닮았나보죠. 뭐.”

『끝까지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내가.』

“충분해요. 누나 없었으면 여기까지도 못 왔어요.”

『미안하다. 아이야...』

마르가리타는 망치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박율에게로 다가가려는 순간, 백봉기가 그녀를 만류했다.

그녀는 흠칫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 공허했다.

“...제가 할게요.”

백봉기는 뼛조각을 꺼내들었다.

그는 다문 입을 쉽사리 열지 못했다.

“끝까지 형으로써 못난 모습만 보여줬는데, 소원 하나 정도는 들어줘야 하잖아요...”

그리고 겨우 말을 내뱉었을 때, 마르가리타는 착잡한 얼굴로 조용히 망치를 내렸다.

막을 열었던 이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그녀의 판단이었다.

백봉기는 천천히 박율에게로 걸어갔다.

“형...”

“다른 방법은 없는거지...?”

“밥...얻어 먹어야...하는데...”

백봉기의 뼛조각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높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백봉기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절망적인 시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치킨이나 왕창 먹을 걸...”

“율아...”

“나중에 찾아가면 밥 사줄 거죠...?”

“...언제든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고마워요. 형.”

푹!

백봉기의 뼛조각이 내리꽂힌다.

그리고 그 끝엔 박율이 있다.

그의 심장을 꿰뚫은 뼛조각의 날을 따라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떨어지는 핏방울은 겨울의 낙엽처럼 파스스 부서진다.

“커허억...”

백봉기는 차마 그의 마지막을 볼 수 없었다.

와중에도 괜찮다며 자신을 다독이는 그를 말이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복부를 꿰뚫은 백봉기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고마...워요...형...”

박율의 몸에서 마기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지상에 내려앉은 모든 마기가 그에게로 스며드는 것처럼 그는 울부짖었다.

푸욱!

백봉기는 뼛조각을 더욱 깊숙이 밀어넣었다.

고통에 절은 비명이 추락한다.

그리고 비산한다.

낙엽이었다.

사아아!

폭발하는 마기가 박율의 꿰뚫린 심장을 타고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기는 검은 안개로 그림자가 형상화된 것만 같은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저항했다.

조금만 더 그에게 시간이 쥐어줬다면 아마 지금 저항하는 이는 다른 이들이었을 터였다.

그렇기에 플라우로스는 발버둥쳤다.

그리고 다음 대상을 물색했다.

이미 마기를 상당히 소진한 이상 생명을 소진하면서라도 기생할 곳을 찾아야 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백봉기였다.

그의 힘을 받은 이가 눈 앞에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검은 안개는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허나.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은 그의 어깨 부근을 섬멸했다.

플라우로스는 괴성을 내질렀다.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감...!!!]

하지만 그의 소리는 뒤이어 내려 찍히는 주먹에 그대로 사라졌다.

주먹의 주인은 서희였다.

어느새 사자들의 치료를 받고 돌아온 그녀는 꿀렁이는 피를 쏟아내며 쓰러져 있는 박율을 보았다.

“너 뭐하는 거야...”

그리고는 그에게로 다가간다.

온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야.”

대답은 없다.

“일어나.”

“...”

“네가 원하는 대로 다 이뤄졌잖아. 일어나서 보라고.”

전쟁에서의 승리, 악마들의 섬멸.

그는 성공했다.

“너까지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건데...!!!”

서희는 소리쳤다.

뒤이어 다가온 이들 역시 그녀와 같은 얼굴을 했다.

“율 씨...!!!”

박석훈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는 직감했다.

이번에는 거짓이 아니라고.

수차례 지켜본 그런 거짓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주저앉았다.

“당신이...”

서희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무릎을 꿇은 채 있던 백봉기를 보았다.

“당신이 결국...!!!”

그리고 야차로 변해 그를 날렸다.

콰과광!!!

백봉기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였다.

그녀의 공격도, 허망함도, 고통도.

서희의 분노는 오로지 그를 향했다.

『그만.』

마르가리타의 소리.

허나 누구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분노는 백봉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만!!!』

그녀의 언령이 전장에 내려앉는다.

동시에 모든 이들의 입이 닫혔다.

그리고 백봉기는 기우와 함께 흑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무거운 한숨 뒤로 고개를 높이 들었다.

허공엔 더 이상 심연이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나 오랜만에 하늘을 마주했다.

심장이 저릴 정도로 푸른 하늘이었다.

『...당신은 다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녀가 묻는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묻는다.

『...이 상황도 그 빌어먹을 인과율이라는 거라면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정해져 있던 겁니까?』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려 박율을 보았다.

그의 주변으로 자신을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이곳에 온 이유를...이 모든 일들이 전부...』

이제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분투한 이유를, 그리고 천사가 된 이유를.

마르가리타는 발을 떼었다.

그리고 죽음에 잡아먹히는 남자에게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의 숨은 죽음에 다다른 상태였다.

가녀린 숨이 바람을 타고 사라진다.

터벅.

『하아...』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다.

또 다시 눈 앞에서 사랑하는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박율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지금껏 달려온 이유가 눈 앞에 남자 때문인 양 그녀는 너무나 애정 어린 손으로 박율을 쓰다듬었다.

그의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고생했어. 정말.』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이들을 둘러보았다.

『네가 성격이 개차반이긴 했어도 잘 살긴 했나봐.』

그곳엔 박율이라는 남자가 처음 보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데려온 이들이 한데 모여있다.

마치 한 사람의 죽음을 위로하려는 듯 말이다.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신 못지 않다니까...』

하여 마르가리타는 미소를 지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천천히 솟아오르는 광대를 타고 떨어졌다.

아직 아이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하여 그녀는 낙화를 택했다.

『다들 율이 잘 부탁드려요.』

그녀의 신형이 빛의 입자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 입자들은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며 박율의 심장에 안착했다.

빛의 입자들이 내려앉은 그의 심장에서 꽃이 피어나듯 짙은 빛이 만개한다.

그것은 생화였다.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흩날리는 꽃잎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길고 길었던 전쟁의 종지부가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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