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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15화 (115/183)

115화

“이런 상황에도 웃을 수 있다니.”

플라우로스는 가소롭다는 듯 박율을 보며 어이없는 비소를 흘겼다.

박율은 숨을 고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웃는 상이라 그래.”

“허...”

“그럼 뭐 여기까지 예상을 했다는 거겠지.”

박율은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에 플라우로스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형.”

박율의 말에 백봉기는 쥐고 있던 만화경 청동거울을 던졌다.

척!

만화경 상태의 청동거울.

그 세 번째 능력인 흡수는 말 그대로 대상이 가진 힘을 흡수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 능력이 강하다한들 마왕의 힘을 모조리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마 조금만 더 버티고 있었다면 플라우로스가 죽기 전에 만화경 청동거울이 먼저 부서졌을 터였다.

그렇기에 박율은 그전에 청동거울을 뽑아내야 했다.

쉽게 말해 연극.

플라우로스에게서 마기를 훔쳐내기 위한 연극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만화경 청동거울이 완전히 부서지기 직전에 그에게서 탈취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런 연극을 벌이지 않았다면 제 시간에 청동거울을 뽑아내는 데 실패했겠지.

“...?”

폭발할 듯 치솟던 마기가 어느 순간 제동이 걸렸다.

플라우로스의 미간이 다시 한 번 좁아졌다.

그리고 이내 그의 시선은 박율을 향했다.

그의 행각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넌 도대체 무어냐?”

“나? 박율인데.”

“허. 이런다고 나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왜 이제 좀 쫄리냐?”

그렇다고해서 박율이 플라우로스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의 완전한 폭주를 막은 것에서 그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또 다른 기회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한방으로 끝낼 싸움을 두 방 정도로 늘렸으니, 아주 작게라도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박율은 홀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은 칭찬하지.”

플라우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하였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상황에도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살랑이는 머릿결이 서늘하게 부는 바람에 흩날렸다.

쩌적!

지진이라도 난 듯 땅에 금이 갔고, 근방의 건물들이 갈라졌다.

쨍!!!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시사하는 바는 예상 그대로였다.

“이미 늦은 듯하군.”

플라우로스의 말을 끝남과 동시에 그의 뒤로 수십 개의 심연이 아구를 벌렸다.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악마들.

달빛이 선연한 정원 아래 검은 악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숨을 틀어막을 듯 흘러넘치는 마기에 세상이 검게 물들어가는 듯했다.

일곱 구의 군단장들과 수천구의 악마, 그리고 마수들.

지상에 도래한 악마들이 괴성을 내지르자 세상이 개벽하듯 땅이 울렸다.

『...!!!』

마르가리타는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흡사 마계대전을 보는 것만 같은 병력이었다.

겹겹이 쌓인 악마들의 벽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쏟아지는 악마들 앞에서 백봉기는 침음했다.

그리고 죄책감에 좌절했다.

“나 때문에 이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현상황의 경중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가 악마의 말을 듣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악마의 말을 들었고, 이 모든 사태를 벌였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는 중심을 잃었다.

턱.

하지만 그가 넘어지려는 순간 옆에서 나타난 박율이 그를 붙잡았다.

“형이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어차피 벌어지게 될 일이었어요.”

박율은 말했다.

그의 말은 너무나 단단했다.

자칫 잘못하면 터질 것 같은 백봉기마저 단단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허나 박율도 놀란 것은 사실이었다.

안드라스가 나타났을 때보다 배는 더 많은 악마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놀라지 않는다면 더 이상할 수준이었다.

언제 이렇게까지 준비를 한 건지.

안드라스의 죽음이 영향을 끼친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게 없긴 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군.”

쏟아지는 악마들의 군세 사이에서 플라우로스는 입을 열었다.

그는 사방을 지배하는 마기를 들이마시며 한껏 마기에 취한 얼굴을 했다.

그의 뒤로 심연에서 걸어나온 일곱 군단장은 그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그에게 충성을 보였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 박율을 보았다.

그들이 눈빛으로 흘리는 살기에 실금을 할 것만 같았다.

지독하게 쏟아지는 악마들 앞에서 플라우로스는 다시 박율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놀랐을 뿐 당황하거나 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의 표정에 플라우로스는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무어지? 그 표정은?”

“여기까지 내가 예상을 했다면 그건 내가 미친 예지력이 있다거나 혹은 신 정도는 된다는 소리겠지.”

“...”

“맞아. 나도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어. 이렇게 폭포처럼 악마들이 쏟아질 줄은 말이야.”

박율은 잠시 떨리는 숨을 고르더니 이내 평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대비는 했지.”

“...뭐?”

“너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이 일을 겪었을 때의 사자들은 지금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어.”

10년 전 그 당시, 사자들의 절반 이상이 죽어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남산타워에서부터 시작된 기나긴 여정.

박율은 커다란 역사를 바꾸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 모두가 살아있지.”

“...”

박율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엄청난 군세를 기다리는 장군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나타날 시간이다.”

“...!”

박율은 비장한 얼굴로 플라우로스를 노려보았다.

그는 짐짓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제...”

“...?”

“나타날 시간인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군세에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

“나타날...”

이게 아닌데.

“시간인데....조금 늦나봐. 잠시만 기다려줄래?”

박율은 흘깃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역시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플라우로스는 아주 잠시나마 놀랐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조금은 놀랐다만, 이젠 정말 끝인가보군.”

플라우로스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고는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그러자 움직이는 군세들.

악마들이 발을 구르기 시작한다.

그저 뛰어오는 것만으로도 땅이 흔들렸다.

“이게 아닌데.”

박율은 달려오는 악마들 앞에서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는 말했다.

백봉기와 마르가리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릿수만 따져도 3대 수천.

아무리 명장이 온다 하여도 상대가 불가능한 숫자였다.

그럼에도 박율은 무기를 들었다.

“...어떻게 하려고?”

“올 거에요.”

박율은 자신을 보는 두 시선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뒤지기 전에는 오겠죠. 뭐.”

『...그래, 그래야 내가 아는 박율이지.』

마르가리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투를 준비했다.

백봉기 역시 아주 잠시 초조한 숨을 내뱉다가 두 사람을 따라 뼛조각을 높이 들었다.

천둥이 떨어지는 듯 들려오는 발소리.

백봉기의 흑이 사방에 내리깔리며 흑에서 피어난 해골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악마들과 엇비슷한 숫자였다.

굳이 따지자면 악마들보다 많았다.

뼛조각을 높이 든 해골들은 악마들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개미가 굴에 침입한 벌레를 죽이기 위해 수십 마리가 겹쳐 달려드는 것처럼 해골무리는 몸을 던졌다.

해골들은 단지 악마들의 날갯짓 하나에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해골들은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고, 부서져도 일어나는 해골들이었다.

그들은 악마가 제풀에 꺾여 죽을 때까지 뼛조각을 높이 들었다.

허나 해골은 끽해야 해골이었다.

아주 잠시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는.

“...그정도면 충분해.”

단 1분이라도 충분하다.

변화의 초석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 말이다.

『진짜 싸움은 오랜만인데.』

그 사이 마르가리타의 손에서 피어난 빛줄기는 하나의 가닥으로 갈무리를 했다.

이내 형태를 드러내는 빛줄기는 박율의 무기와 비슷한 커다란 망치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망치지만, 정확한 형태는 철퇴에 가까운 크기의 망치였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악마들을 그대로 쓸어버렸다.

콰직!!!

검은 핏물이 사방에 비산한다.

“와우...”

최소 못해도 열은 죽인 듯 보였다.

『후...』

마르가리타는 가뿐하게 정면의 악마들을 터트리고는 눈을 가린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전투의 여제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상쾌하네.』

그리고 달려든다.

수십의 악마들을 박살내며, 마수들을 터트리며 말이다.

이에 질세라 박율 역시 무기를 들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코어를 들어 악마들을 베어가르고, 활을 쏘며, 망치로 그들을 내려찍는다.

악마의 머리가 터지고, 장검이 그들을 일도양단한다.

아주 잠시 세 사람은 생각했다.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그들의 진격은 불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꺾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머릿수였다.

쏟아지는 폭포를 맨몸으로 막아서는 기분이었다.

“큭...”

이내 세 사람은 아무리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악마들에 주춤 뒤로 물러섰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군.]

군단장 하나가 악마들을 헤치고 걸어나왔다.

그는 한껏 지겹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박율은 저 녀석을 알고 있었다.

재해의 마신, 레돈도.

벌써부터 나설 줄이야.

아직 지원군들이 도착하지 않은 시점에서 싸우기엔 불리한 상대였다.

레돈도는 이어지는 말 없이 마기의 구를 만들었다.

그의 손 위에서 부유하는 마기의 구는 반으로 갈라지고, 또 갈라졌다.

일명 재해의 구.

끝도 없이 숫자를 불리고 닿는 모든 상대를 마기에 불태워 죽인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그는 여타 미사여구 없이 수십으로 분열하는 재해의 구를 던졌다.

재해의 구는 날아오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숫자를 불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박율의 귓가에 맴도는 무언가.

그는 흠칫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날아오는 재해의 구를 향해 달렸다.

[신속]

닿으면 죽는다.

하지만 그는 겁 없이 달려들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레돈도가 반응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재해의 구와 박율이 맞닿으려는 순간, 박율과 재해의 구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

위치가 뒤바뀐 재해의 구는 박율의 속도를 이어받아 그대로 레돈도를 향해 날아갔다.

제 아무리 빠르다한들 저 속도를 받기는 무리였다.

펑!!!

동시에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무언가.

그것은 눈으로도 쫓지 못할 속도로 레돈도의 이마를 꿰뚫고 지나갔다.

[커헉...!]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네.”

박율은 저멀리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사자들을 보며 내뱉었다.

그 숫자는 얼마나 많은 지 쏟아지는 악마들 마냥 겹치고 겹쳐 끝이 보이지 않을 수준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박율은 달려왔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율은 다시 고개를 돌려 조금은 거만해진 자세로 플라우로스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뒤로 보이는 수천의 사자들과 겹쳐진 박율의 모습은 마치 백만 대군을 거느린 중세의 장군을 보는 것만 같았다.

박율은 그들을 등지고 망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소리친다.

“제군들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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