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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07화 (107/183)

107화

[큭...!]

안드라스를 향해 발을 굴리던 박율은 흠칫 그를 보았다.

당장 그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무릎을 꿇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직 그에게 그렇다 할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지만, 그는 알 수 없는 고통에 떨었다.

그가 세계수의 잎사귀를 먹고 과거로 역행했을 때의 모습과 겹치고 있었다.

박율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성공했구만.”

어찌보면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이었다.

최대한 안드라스와 가까이 다가가 그에게 세계수의 잎사귀를 먹인다.

아무리 그가 강하다한들 세계수의 잎사귀는 절대적이었다.

시간을 역행한다는 것부터 평범할 수는 없었다.

인류 최강이라 불리던 영웅들 중 누구 하나도 세계수의 잎사귀를 먹고 버틴 이가 없었기에 시도해본 도박이었다.

이론적으로만 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효과는 제대로 인듯했다.

속을 게워내며 고통에 떨고 있는 안드라스는 보면 말이다.

박율은 손의 문양을 바꾸었다.

5분 정도 뒤의 그가 목숨을 담보로 얻어낸 찰나의 기회였다.

이젠 끝낼 때가 왔다.

목표는 안드라스의 가슴팍에 있을 심장.

[신속]

땅을 박차고 달린다.

코어를 모로 세워 안드라스의 심장을 향해 날을 뻗는다.

안드라스는 그새 겨우 진정된 듯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박율의 몸뚱이는 그의 목전에 도달한 상태였다.

“이젠 좀 뒤져라...!!!”

첨예한 칼날이 안드라스의 심장을 향해 쇄도한다.

푹!

“...진짜 징글징글하다.”

박율의 검은 안드라스를 꿰뚫었다.

허나 그의 검은 안드라스의 왼쪽 팔뚝을 꿰뚫은 상태였다.

팔뚝을 꿰뚫고 심장까지 검이 뻗기는 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검은 심장에까지 닿지 않았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분노 어린 안드라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뒤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마기를 폭주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의 생명력마저 불태우며 마기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그의 날개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비대해지고, 그의 몸뚱이 역시 팽창하는 근육을 따라 점점 크기를 불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푹!!!

알 수 없는 축축한 소리가 들려왔다.

[커...커헉...]

함께 안드라스의 눈에 휜자위가 침범했다.

그의 입에서 검은 핏물이 터져나왔고, 폭주하던 그의 몸뚱이는 다시 원형을 되찾아갔다.

[무...무슨...]

박율 역시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안드라스가 아닌 익숙한 마기가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는...!!!”

안드라스의 몸이 축 처지며 그의 뒤로 까마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했다.”

그리고 그는 안드라스와 함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 *

칠흑만이 가득한 세계.

안드라스는 죽기 전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형용화되는 순간이었다.

온몸의 마기가 스멀스멀 빠져나가며 손을 드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염화와 새하얀 불꽃이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고통스럽고, 불쾌했다.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가장 적절한 바로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울렁거림이 불쾌하게 온몸을 맴돌았다.

[하...]

주먹을 쥐어본다.

발버둥을 친다.

[...]

죽고 싶지 않다.

죽음의 그 향기는 역겨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숨통을 쥐어비트는 불쾌함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죽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과 살고 싶다는 처절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절로 눈이 감긴다는 몽롱함마저 처음이었다.

“살고 싶은가?”

문득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드라스는 삐걱대는 목을 힘겹게 꺾어 소리를 쫓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야를 차지하는 것은 그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불쾌한 듯 익숙한 마기는 그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무어냐...]

“다시 한 번 묻겠다. 살고 싶은가.”

너무나 선명하다.

다른 감각들이 무뎌지는 만큼 청각은 강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수천 년을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의식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호흡, 고통, 절박함, 처절함, 그리고 생존.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처절하며, 절박하다.

[싶다...]

목숨을 구걸한다.

“내 몸을 주지.”

이젠 눈밖에 남지 않는 안드라스의 시선이 소리를 쫓는다.

칠흑만이 그를 감싸고 있던 공간에서 이질감이 드는 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였다.

그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넌 뭐지...?]

“그게 중요한가?”

[다 죽어가는 통에 그것 정도는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악이다.”

남자는 손을 뻗었다.

안드라스 역시 손을 따라 손을 뻗었다.

염화에 사라진 손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손을 뻗고 있었다.

[허...]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명색의 마왕이라는 놈이 그렇게 혐오하던 인간의 손을 잡게 되다니.

의식이 차츰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식은 남자에게로 흘러들어갔다.

* * *

“까마귀...”

그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히 까마귀였다.

어떻게 그가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박율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분명 그는 죽었다.

다른 이도 아닌 그의 손에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안드라스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것은 그가 죽지 않았었다는 말이었다.

까마귀를 상대하며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이 다시금 뇌리를 스쳤다.

알 수 없는 기시감.

본능적으로 까마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었던걸까.

“...씨발.”

이 모든 것이 전부 그의 계획이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왜...?

무엇 때문에 제 목숨마저 버려가며 그런 일을 벌인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머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넘실거리는 마기에 박율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에서 그의 마기가, 아니 그들의 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마귀...”

그는 까마귀였다.

하지만 온전히 까마귀는 아니었다.

그에게서 안드라스의 마기가 섬짓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 밑에는 죽은 악사회의 일원들이 있었다.

개구리, 고양이, 그리고 뱀.

그들의 시체는 마치 늪에 빠진 나무인형마냥 삐걱대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그림자에 먹히고 있었다.

그림자가 아구를 벌린다던가 입맛을 다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들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박율은 미간을 찌푸리며 까마귀를 보았다.

그는 온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상충하는 두 마기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가 현재 안드라스인지 까마귀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죽고 싶지 않아.”

까마귀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까마귀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까마귀의 입에서 안드라스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러려고...”

박율의 목소리가 사뭇 떨리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까마귀와 안드라스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말이다.

“저게 뭐에요...!?”

[미친게로군...]

박율의 옆에 있던 두 사람 역시 두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어떻게 해야 돼요...?”

박석훈이 물었다.

딱히 대답할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유일한 대답이라함은.

[완전히 하나가 되기 전에 죽여야 한다.]

데판의 답이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혹여 안드라스와 까마귀가 완전히 하나가 된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상상할 수 없었다.

비록 상충하는 두 마기가 그로기 상태라고한들 말이다.

박율은 코어를 다시 장검의 형태로 바꾸었다.

그를 본 데판과 박석훈은 목젖을 일렁이며 역시나 전투태세를 취했다.

“늦기 전에 끝내야 해요.”

이제 플라우로스가 나타날 시간이었다.

안드라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벅찬 상태였다.

이 상황에 플라우로스까지 나타난다면 그들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거기 하늘에 계신 분. 보고 있으면 좀 도와줘요. 이 이상은 저도 힘드니까.”

[신속]

허벅지에서 피어오른 폭발적인 힘은 흙바닥에 깊숙한 흔적은 남겼다.

사라진 박율은 장검의 날을 깊이, 망치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상충하는 마기에 온몸을 비틀고 있는 까마귀에게로 달렸다.

날을 높이 든 검과 망치의 뭉툭한 부분이 까마귀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차악!!!

콰직!!!

검붉은 핏물이 허공에 흩날리며 망치의 흔적이 까마귀의 심장에 커다랗게 새겨났다.

쾅!!!

박석훈의 철퇴가 까마귀를 내려꽂는다.

뒤이어.

콰앙!!!

데판의 비대해진 주먹 역시 철퇴를 내리찍었다.

뿌옇게 일어난 먼지가 일어나 시야를 어지럽힌다.

까마귀가 있었던 자리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박율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쓸데없는 후환을 없애야 했다.

그는 코어를 활모양으로 바꿔 망치를 걸고는 시위를 길게 당겼다.

그리고 임계점에 다다르는 순간 놓는다.

허공을 주파하는 망치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지르며 나아갔다.

콰직!

망치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박석훈과 데판 역시 각기 연쇄적으로 공격을 하며 까마귀의 흔적마저 없애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마기가 짙게 내려앉은 대지에 뿌연 흙먼지만이 가득했다.

“후우...”

얼마나 공격을 퍼부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뿌연 흙먼지는 그야말로 사막을 연상시킬 정도로 일어나 있었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보이는 검붉은 무언가.

까마귀가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붉은 핏물이 바닥을 뒤덮고 있는 것말고는 말이다.

“잡은건가...!”

박석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박율은 혀를 끌끌차며 답했다.

“플래그 세우면 어떡해요.”

그리고 플래그를 정확히 짚기라도 했다는 듯 마기가 스멀스멀 나타났다.

저 멀리 세 사람의 공격이 닿지 않을 멀리에서 까마귀가 그림자를 타고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그들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의 몸뚱이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흘깃 보인 그는 까마귀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그들이 알고 있던 무언가가 아니었다.

섞일 수 없는 것들이 한데모여 섞인 괴생명체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할 성 싶었다.

“...”

그의 눈빛에 일렁이는 살기는 너무나 강렬했다.

마주치는 것으로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수십갈래의 그림자 파랑.

진짜와 가짜를 가릴 필요도 없이, 모든 그림자들이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수십 갈래의 그림자를 타고 마기가 움직인다.

[조심해라.]

마기가 빠른 속도로 땅을 기어오고 있었다.

박율은 마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가 집중한 것이 무색할 만큼 마기는 빠른 속도로 박율의 뒤를 차지했다.

박율은 반사적으로 검을 뒤쪽으로 내찔렀다.

하지만 검에 닿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옆에서 느껴지는 마기.

박율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는 눈꺼풀이 눈을 뒤덮고 열리는 찰나의 순간을 만끽하기도 전에 그는 땅바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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