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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05화 (105/183)

105화

시야가 아득해지며, 박율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검은 나방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만지는 안드라스가 보였다.

대략 3분 정도.

박율이 역행한 시간이었다.

[아쉽지만 이제 끝인 듯하군.]

안드라스는 나방을 간지럽히던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함께 손에서 폭발할 듯한 마기가 차올랐다.

[나를 즐겁게 해주었으니, 상으로 고통 없이 보내주마.]

“후...”

쓰러진 채로 있던 박율과 두 사람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에 난 상처 때문에 시큰거리는 게 사라지진 않았지만, 불과 몇 초 전까지 느껴지던 화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아직도 일어날 힘이 있다니. 이리도 나를 즐겁게 해주다니. 마음이다. 네겐 여지껏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힘을 보여주지.]

안드라스의 손가락 위로 허공을 부유하던 마기들이 나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방들은 수십, 수백 마리로 안드라스의 손 위를 장악했다.

박율은 심호흡을 했다.

방향은 모두 기억한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한 치의 오차가 생사를 결정한다.

안드라스의 손 위를 날아다니던 나방들이 천천히 방향을 돌려 박율 일행을 향했다.

“제가 신호할게요.”

나방들의 향연.

시야를 전부 가릴 정도로 나방들은 무수히 많았다.

박율은 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세계수의 잎사귀와 망토를 꺼냈다.

그리고 달린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 내야 한다.

나방들이 그들을 향해 날개짓을 한다.

우선 정면에서 하나.

허리를 비틀어 피하면 대각선에서 날아오는 것들을 피할 수가 없다.

박율은 나방이 그의 몸에 닿기 직전까지 눈을 떼지 않다가, 나방이 가까이 왔을 때 발을 살짝 굴러 나방을 피했다.

그리고 대각선에서 세 마리.

오른쪽에 하나, 왼쪽에 둘.

왼쪽의 두 마리는 움직임의 변주 없이 직선적으로 날아오지만, 오른쪽의 한 마리는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방향을 비튼다.

나방이 달려드는 순간, 박율은 땅을 굴러 사선으로 몸을 늬우며 나방을 피했다.

[호오...]

저멀리에서 안드라스의 탄사가 들려왔다.

허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정면에서 네 마리.

박율은 정면에서 날아드는 네 마리의 나방에 집중했다.

후면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아니에요!”

박율은 소리쳤다.

그러자 뒤에서 들려오던 뜀박질 소리가 멈췄다.

박석훈의 방어가 없다면 저 나방들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피하지 않는다.

박율은 나방이 그를 덮치기 전 재빨리 망토를 온몸에 둘렀다.

화아!

그리고 나방이 그의 몸을 덮치는 순간 칠흑처럼 검은 불꽃이 그를 에워쌌다.

그럼에도 박율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망토에 덮힌 박율의 몸뚱이가 마치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라져 보이지 않았지만, 아른거리는 기시감과 함께 망토 위를 차지한 불꽃 덕에 그의 위치가 드러나고 있었다.

[흐음...]

안드라스는 그런 박율을 보며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그를 보며 치솟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율 씨!!!”

박석훈은 불꽃에 휩쌓여 대지를 주파하는 박율을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박율은 괜찮다며 신호를 보냈다.

데판 역시 눈을 의심하며 그를 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입을 닫았다.

그러는 사이 박율은 달려드는 두 마리의 나방에 허리를 뉘어 나방을 피했다.

“후...”

뒤이어 연속해서 나방들이 날아든다.

이번엔 발이 꼬여 중심을 잃는 일은 없었지만.

“고양이 아저씨!!!”

박율은 소리쳤다.

데판은 흠칫 그의 신호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그의 말 뜻을 이해한 듯 힘껏 땅을 내리쳤다.

쿵!!!

그의 손길에 지진이라도 인 듯 땅이 흔들렸고, 박율은 그 흔들림을 발판 삼아 높이 뛰었다.

그를 향해 날갯짓을 하던 나방들은 사라진 박율에 그대로 길을 잃었다.

착!

무사히 바닥에 안착한 박율을 다시 뛰었다.

망토에 붙은 불이 점점 더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다.

“율 씨!!!”

그의 상태를 본 박석훈이 소리쳤다.

그럴 수 밖에.

그의 눈에 보인 박율은 반쯤 타들어가 조만간 잿덩이가 될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박율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 덕지덕지 붙은 염화가 그의 몸마저 갉아먹기 시작했다.

박율은 그럼에도 발을 내디뎠다.

수십 마리의 나방들.

박율은 하나하나의 방향을 읽어가며 몸을 비틀었다.

아주 작은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그의 모든 기억을 되살려 방향을 읽는다.

여기는 왼쪽으로.

그리고 몸을 숙여서.

이번엔 살짝 발을 구른다.

“후우...”

한 발자국.

나방들이 그를 집어삼킬 듯 날아든다.

박율은 땅을 박차고 허공을 침대 삼아 모로 누워 나방들을 피하고.

땅에 누울 듯 허리를 꺾는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다시 한 발자국.

박율은 오른손의 문양을 바꾸었다.

점점 더 안드라스에게로 다가간다.

안드라스의 입꼬리가 치솟고 있었다.

[와라!!!]

그리고 겨우 그의 앞에 당도했을 때.

안드라스는 양팔을 벌려 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털썩.

안드라스의 눈 앞에서 박율은 쓰러졌다.

새카맣게 타오르는 염화가 그를 탐했다.

염화에 유린당한 박율의 모습은 사라졌다.

염화가 전부 가신 자리에는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이라곤 검게 타버린 재 밖에 없었다.

안드라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

한 발자국.

안드라스는 다가갔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흔적만 남은 자리를 내려다 보았다.

[아쉽군.]

박율에게 크나큰 기대를 걸었던 안드라스이기에 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라면 여태껏 맡아보지 못한 즐거움이라는 쾌락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그를 죽일 것 같던 기세는 염화와 함께 사라졌다.

“율 씨!!!”

[...!!!]

저 멀리에서 충격에 빠진 이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안드라스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안드라스를 향해 발을 내디디지만, 순식간에 시야를 장악한 나방들 아래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율 씨... 이게...”

박석훈은 떨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이럴수가...!]

그의 뒤에서 데판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역시 충격은 비슷한 듯했다.

“아니야... 이대로 끝난 건 아닐 거에요...”

하지만 박석훈은 더 이상 큰 절망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박율이라는 남자라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박석훈은 고개를 들어 안드라스를 보았다.

그는 아쉽다는 얼굴로 박율이 있었던 자리를 보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릇 그러하지. 언제나 즐거움을 줄 것 같다가도 이렇게 아쉬움을 주지.]

안드라스 역시 고개를 들어 데판과 박석훈을 보았다.

[그리하여 내가 인간들을 싫어한다만. 이 녀석은 나쁘지 않았어.]

안드라스는 손을 다시 높이 들었다.

[이제 슬 질리는군. 이만 끝내지.]

그의 손에서 생겨난 나방들이 변태를 시작했다.

갈무리를 끝낸 나방들은 날갯짓을 했고, 그들은 데판과 박석훈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두 사람은 무거운 날숨을 내뱉으며 죽음을 불사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러다 흠칫.

두 사람은 미간을 찌푸렸다.

“...들었어요...?”

[...바퀴벌레마냥 죽지는 않았나보군.]

* * *

“앗! 뜨거...!”

박율은 염화가 붙은 겉옷을 풀어 바닥에 내던졌다.

화르르!

아주 작은 불씨가 붙은 것만으로 옷은 순식간에 잿가루로 변했다.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다.

새하얀 불꽃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박율은 나침반을 내려놓고는 숨을 돌렸다.

조금만이라도 늦었으면 망토에 붙은 염화가 맨몸에까지 들러붙을 뻔했다.

불과 몇 초 전 바닥에 내동댕이친 옷이 잿가루로 변한 것을 보면 말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망토로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그의 상태를 숨기고 망토가 완전히 타들어가기 직전 유리된 공간으로 도망친다.

그렇게 한다면 그가 있었던 자리엔 망토에 붙어 타고 남은 잿가루만이 남을 터였다.

그럼 안드라스는 꼼짝없이 박율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불이 붙은 게 무엇이든 흔적도 없이 태우는 염화이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지금쯤이면 안드라스도 그를 죽은 이로 생각하고 남은 이들까지 죽이려 할 터였다.

“후...”

박율은 망치를 높이 들었다.

한방에 심장을 터트려야 한다.

마치 지옥 급 난이도의 게임을 목숨 하나를 가지고 플레이하는 기분이었다.

실패하면 죽는다.

그리고 늦어도 죽는다.

박율은 오른손 유리의 문양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부디 성공하기를...

“간다...”

유리된 공간에 금이 벌어지고 이윽고 부서진 파편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박율은 무너지는 공간 너머 균열 사이 안드라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 날아드는 나방을 맞닥들인 두 사람이 보인다.

박율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생겨나는 작은 방울 하나.

방울은 박율의 밑창에 깔렸다.

개구리에게서 얻은 권능이었다.

그리고 다시 권능을 바꾼다.

[신속]

펑!!!

밑창을 가득채운 구슬이 터지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박율은 그 폭발을 추진력 삼아 신속과 함께 달렸다.

안드라스가 채 눈치를 채기 전에 끝내야 한다.

샤락.

나방이 날갯짓을 한다.

날개가 떨어졌다가 접혀 올라가는 그 순간에.

한 발자국.

달린다.

그리고 또 한 발자국.

오른손의 문양에서 새하얀 증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뱀을 사냥하고 얻은 두번째 권능.

드디어 쓸 타이밍이 왔다.

손에서 흘러나온 증기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박율은 안드라스의 바로 뒤에까지 달려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달려든 그의 손이 안드라스의 허벅지를 움켜쥐고.

[...!?]

손에서 흘러나온 증기가 닿은 부위를 검게 물들인다.

물 들은 부위는 점차 굳어가며 이내 돌처럼 변했다.

“지금이에요!!!”

박율이 소리친다.

동시에 정면에 나비들이 달려듬에도 망부석마냥 자리에 굳어있던 박석훈은 철퇴를 높이 들어 그대로 던진다.

[장난질을...]

하지만 그 속도는 안드라스보다 빠를 리 없었다.

[간다!!!]

데판이 없다면 말이다.

데판의 주먹이 순식간에 비대해지더니 허공을 부유하는 박석훈의 철퇴를 후려친다.

쾅!!!

데판의 주먹이 일으킨 충격에 철퇴가 가속을 받는다.

“어때? 이래도 재밌냐?”

박율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안드라스의 눈이 그를 향하려는 순간.

콰직!!!

날아든 철퇴가 안드라스의 허벅지를 가격한다.

콰과광!!!

철퇴는 안드라스의 다리를 박살내고는 바닥에 처박혔다.

[크아아악!!!]

안드라스의 비명이 들려온다.

콱!

박율은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워낙 피로가 많이 쌓인 탓에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 앉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볼 리가 없던 안드라스는 심장이 터진 충격에도 박율의 몸을 움켜쥐었다.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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