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안드라스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그가 생각지도 못한 압도적인 격이 느껴지는 힘이었다.
그럴만도 한 게 이 능력을 하사한 존재부터가 박율과는 궤를 달리하는 여자였었다.
확실하게는 사자보다 한 층 격이 높은 존재인 천사였다.
군단장의 목숨조차 가볍게 위협하는 힘이었으니 마왕에게도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안드라스는 방어기제를 온몸으로 퍼뜨리며 반응했다.
허나 그 속도는 그의 몸을 방어하기에 충분히 빠르지 않았다.
박율의 망치는 호를 그리며 안드라스의 단전을 향해 쇄도했다.
방어기제가 그의 단전에 닿기도 전에 먼저 망치가 움직인다.
망치가 안드라스의 단전에 닿으려는 순간 반사적으로 뻗어나온 그의 팔이 망치를 막았지만, 망치를 쥔 박율의 몸뚱이는 한낱 허상이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또 다른 박율이 안드라스의 단전을 향해 망치를 휘두른다.
쾅!!!
콰과곽!!!
여지껏 들어보지 못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팔이 뽑혀 나갈 정도의 위력을 응축시켜 안드라스에게 공격했지만, 그것으로도 마왕의 살갗은 뚫리지 않았다.
[큭...!!!]
안드라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약점을 정확히 공략하는 박율을 보며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플라우로스 그 놈이 장난질을 친 모양이군...]
그리고 역으로 안드라스의 마기가 폭발할 듯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턱!
반대편에서 나타난 데판이 안드라스의 뒤를 장악했다.
[죽여라!!!]
망치가 아주 조금씩 안드라스의 단전을 부수며 살갗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박율은 젖먹던 힘까지 짜내 힘을 집중시켰다.
콰과곽!!!
강철같은 피부에 생채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팡!!!
그 사이 안드라스의 뒤를 장악하던 데판이 저멀리 날아갔다.
아직 심장을 터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안드라스는 팔을 높이 들어올려 박율을 내려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꾸나!!!]
안드라스는 제 심장이 터질 위기에 놓여졌음에도 광기 어린 얼굴로 소리쳤다.
“...!!!”
그리고 그의 주먹이 박율의 머리를 향해 쇄도하던 순간이었다.
착!
어디선가 날아온 새하얀 쇠사슬이 안드라스의 팔을 휘감았다.
“율 씨!!!”
들려온 목소리는 박석훈의 것이었다.
그를 본 안드라스의 표정 역시 싸늘하게 굳었다.
염화에 휩쌓여 죽어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번듯하게 철퇴의 쇠사슬로 안드라스의 팔을 휘감은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망치가 안드라스의 단전을 꿰뚫었다.
쾅!!!
망치와 안드라스의 심장이 맞부딪히며 폭발음을 일으켰다.
[크으으윽!!!]
안드라스의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박율은 박석훈의 도움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팔이 빠질 듯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서늘한 바람이 팔을 스치기만 해도 차라리 팔을 잘라줬으면 하는 격통이 울려퍼졌다.
마인 셋을 흡수하여 격의 상승을 이루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다.
그만큼 위협적이고도 강력한 힘이었다.
박율은 이를 꽉 깨물고 버텼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마나 세게 이를 악 물었던 건지 입안에서 비릿한 피냄새가 느껴졌다.
“율 씨!!! 괜찮아요!?”
박석훈은 고통에 신음하는 그를 보며 소리쳤다.
그는 어느새 선홍빛으로 갈무리한 갑주를 입은 채 박율의 곁을 지켰다.
저 모습이 바로 박석훈을 신의 철퇴이자 방패로 불리우게 만든 형태였다.
사용자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피해를 입었을 때에만 비로소 개화되는 형태.
이 모든 것이 박석훈에게 선홍빛 갑주를 건넨 이유였다.
[아아아악!!!]
저 멀리에서 안드라스의 비명이 들려왔다.
박율은 박석훈의 부축을 받아 겨우 다시 일어났다.
아직 두 개의 심장이 남아있다.
하지만 단전의 심장이 사라진 이상, 이전과 같은 위력은 발휘할 수 없을 터였다.
박율은 그간 모아둔 악마의 정수 및 근처에 나뒹굴고 있던 악마들에게서 정수를 모두 추출해 체력을 회복했다.
반 그로기에 가까운 그의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적당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될 순 있었다.
기왕이면 군단장들까지 흡수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제 어떡해요...?”
박석훈이 물었다.
“...어떡하긴요. 밀어붙여야지.”
그리고 박율은 땅을 박차고 달렸다.
심장이 터진 여파로 굉음을 내지르던 안드라스의 시선이 박율을 향해 올라갔다.
그새 충격을 상쇄시키고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역시 마왕은 마왕이었다.
[와라!!!]
파동이 울려 퍼진다.
고막을 틀어막고 싶은 소리였다.
하지만 박율은 고통을 감내하며 달렸다.
쾅!!!
안드라스 역시 땅을 박차고 달려온다.
여전히 그의 움직임을 척후로도 쫓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감에 맡겨야 했다.
측면.
박율은 섬짓하게 다가오는 마기에 허리를 비틀었다.
쾅!!! 박율을 스쳐지나가는 주먹이 허공에 파문을 일으키고 굉음을 터트렸다.
몰아치는 돌풍에 잠시 박율의 몸이 중심을 잃었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안드라스는 그의 복부에 주먹을 휘두른다.
쾅!!!
안드라스의 주먹이 박율의 복부에 치닫는 순간 달려든 박석훈의 몸뚱이가 그의 주먹을 막았다.
콰과광!!!
날아간 박석훈의 몸뚱이가 수차례 바닥을 튕기며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다.
박율은 그가 만들어준 찰나의 시간 속에서 코어를 땅에 박아넣고 중심을 되찾고 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콰직!!!
망치가 안드라스의 어깨를 스치며 축축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기 운용에 필요한 단전의 심장이 사라진 탓에 방어기제가 온전히 발동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안드라스는 불쾌와 즐거움 그 사이 광기어린 얼굴을 했다.
[그래, 그래야지!!!]
그리고는 박율의 머리를 쥐어잡고는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두개골이 깨질 듯 고통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다시 안드라스가 그의 머리를 내려찍으려는 순간, 뒤에서 나타난 데판의 주먹이 안드라스를 덮쳤다.
콰과광!!!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히는 데판의 주먹에 안드라스의 몸뚱이가 땅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땅을 울리는 지진과 함께 지면이 폭발하며 안드라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박율은 시야를 덮은 피를 걷어내고는 안드라스를 보았다.
그는 허공에 떠올라 섬뜩한 표정으로 세 인물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이런 재미는.]
섬뜩한 웃음을 머금은 그의 목소리에 하마터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함께 그의 몸이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등허리에선 날개가 터져나오고, 온몸의 근육이 우락부락하게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엄청난 마기였다.
주변의 산소를 전부 마기로 바꾸었다 해도 믿을 법한 마기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마기는 하나의 염화로 나방과 같은 모습들을 하여 안드라스의 주위를 감쌌다.
우리는 저 모습을 그리 불렀다.
흑아(黑蛾)
안드라스는 손가락 위에 걸쳐 앉은 검은 나방을 하늘 위로 날렸다.
저 모습을 알고 있는 데판과 박율은 침음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박석훈은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
저 모습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만.
안드라스가 제 힘을 개방하기 시작할 때의 모습이었다.
사자들의 입장에서 최악의 형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 모습을 본 이들의 절반 이상이 죽었었다.
박율은 그저 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악몽이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마기를 운용하는 심장이 하나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위협적인 자태를 선보였다.
그래도 나름 긍정적인 점을 하나 꼽자면, 저 상태에서의 안드라스는 오로지 공격을 위한 마기를 사용한다.
쉽게 말해 방어력이 최소한으로 떨어진다는 소리였다.
공격이 닿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을 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는 나도 제어가 제대로 안되서 말이야.]
안드라스가 발을 내디딘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중압감이 세상을 짓누른다.
[다시 시작하지.]
안드라스는 조금은 차분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라진다.
다시 마기가 느껴졌을 땐, 이미 그는 박율의 뒤에 서 있었다.
“...!!!”
쾅!!!
살짝 스쳤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박율은 반응도 하지 못하고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응할 수가 없었다.
나방이 날갯짓을 하는 찰나의 순간, 이미 모두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이래서 이 모습을 싫어한다만.]
안드라스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리곤 바닥에 널브러진 박율 일행을 보았다.
[아쉽지만 이제 끝인 듯하군.]
그리고는 손가락 위를 날아다니는 나방을 간지럽히며 말했다.
높이 들어올리는 손에 마기가 폭주할 듯 차올랐다.
[나를 즐겁게 해주었으니, 상으로 고통없이 보내주마.]
안드라스는 말했다.
그리고 박율과 그와 함께 두 인물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꽉 깨물고 일어나 버텼다.
안드라스는 눈썹을 달싹거리며 그를 보았다.
[아직도 일어날 힘이 있다니.]
그리곤 씨익 웃는다.
[이리도 나를 즐겁게 해주다니. 마음이다. 네겐 여지껏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힘을 보여주지.]
그의 손가락 위로 수십 마리의 나방들이 생겨났다.
박율은 숨을 골랐다.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안드라스의 손위에 피어난 나방들이 천천히 그들을 향해 날아간다.
“절대 닿지 마세요.”
저 모습이 흑아라고 불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방들의 향연.
겉으로 평범한 검은 나방처럼 보이는 저것들은 닿는 모든 것들을 염화로 불태워 죽인다.
절대 닿아서는, 결코 스쳐서는 안 된다.
박율은 주머니에서 세계수의 잎사귀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그리고 모든 공격의 활로를 파악하여 빈틈을 노려야 한다.
나방들은 박율 일행을 향해 쇄도한다.
정면에서 하나.
박율은 허리를 비틀어 피한다.
대각선에서 세 마리.
발을 굴러 피하지만, 나방 하나가 그의 몸에 달라붙는다.
타오를 듯한 화기가 그의 몸을 잠식한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또 다시 정면에서 네 마리.
이번엔 피할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
“믿고 있어요...!!!”
허나 그의 앞으로 박석훈의 몸뚱이가 나타난다.
유일하게 염화에 휩쌓여도 불타 죽지 않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세 마리의 나방을 온몸으로 막으며 비명 같은 신음을 흘린다.
그의 방어력도 바닥이 있다.
이제 더 이상의 방어는 그의 목숨이 위험하다.
한 마리는 박석훈의 방해에도 날아와 박율의 어깨에 안착했다.
화르르!
불에 타 죽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했던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차라리 죽여줬으면 하는 고통이 머리 속을 관통했다.
또 다시 나방 두 마리가 달려든다.
박율은 허리를 뒤로 뉘어 피한다.
연속해서 날아드는 나방들.
흠칫 박율의 발이 꼬여 중심을 잃은 순간.
쾅!!!
그의 뒤로 데판의 주먹이 땅을 울린다.
함께 그의 중심이 다시 원형을 되찾는다.
그의 몸에 덕지덕지 붙은 염화가 그의 몸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박율은 그럼에도 발을 내디뎠다.
수십마리의 나방들.
하나하나의 방향을 읽는다.
모든 것은 한번으로 족하다.
그리고 겨우 그가 안드라스의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염화에 온몸이 녹고 있었다.
[시도는 좋았다만.]
“한 번 더...”
박율은 세계수의 잎사귀를 입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