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박율은 달렸다.
고양이가 흐린 동공으로 쓰러진 개구리를 보고 있는 순간을 노렸다.
하지만 아주 살짝 돌아간 그녀의 눈이 박율을 향했다.
동시에 수십 가닥의 실들이 박율을 향해 날아들었다.
실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허공을 주파하며 박율에게 아구를 벌렸다.
챙!!!
박율은 양손의 망치와 코어를 휘두르며 실들을 막으며 고양이를 향해 도약했다.
콰직!
망치가 고양이의 이마를 내려찍지만, 고양이에게 닿지 않았다.
고양이가 박율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음에도 실들은 고양이를 보호한 채였다.
“지금...뭐하는 짓이야...?”
고양이의 고개가 박율을 향해 돌아갔다.
핏기가 가신 두 눈이 박율을 노려보고 있었다.
박율은 서둘러 뒤로 물러서려 하지만, 고양이는 손을 까딱거리며 그의 몸에 실가닥을 박아넣었다.
푸푹!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박율은 피하지 않았다.
다음을 위해서였다.
“큭...!”
전신에 박힌 실가닥이 갈고리처럼 그의 몸을 옭아매었다.
고양이가 터벅 박율에게로 걸어간다.
“뭐하는 짓이야...?”
그녀의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마기와 살기가 넘실거렸다.
“돌려놔...”
실가닥들이 그의 근육을 찢을 듯 아구를 벌렸다.
박율은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돌려놓으라고...”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과 눈이 그녀의 상태를 시사하는 중이었다.
“당장.”
그녀의 뒤로 박율의 일행 세 사람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양이의 손짓 하나에 나가떨어졌다.
손을 흔드는 것만으로 고양이의 주위를 감싼 실조각들이 그들을 날렸다.
“하...”
고양이가 다시 손을 들었다.
함께 실가닥 하나가 올라왔다.
실가닥은 박율의 심장 쪽으로 조금씩 주리를 틀었다.
“살려.”
고양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했다.
박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 표정은 고양이로 하여금 더욱 분노를 짙게 만들었다.
“...그럼 너도 죽어.”
박율의 심장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던 실가닥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챙!
실가닥은 박율의 몸을 뚫지 못하고 머리를 꺾었다.
그의 왼손에서 시작된 빛줄기가 그의 심장을 보호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
박율의 말은 고양이의 심기를 긁었다.
고양이는 더 많은 실가닥들을 들어올려 박율에게 날렸다.
하지만 역시 빛줄기에 막힐 뿐이었다.
고양이의 이마에 선 핏대가 파르르 떨렸다.
동시에 그녀의 몸을 둘러싼 실들이 마치 그녀의 분신을 만들 듯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실뭉치는 마치 고양이의 그림자마냥 그녀의 뒤로 커다란 본체를 형성했다.
박율은 그것을 보곤 씨익 웃었다.
“멍청하긴.”
박율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을 비틀어 온몸에 박힌 실들을 풀어헤쳤다.
온몸의 근육들이 찢어지는 격통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정도 통증 정도야 죽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박율은 뒤이어 날아오는 실들을 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앞엔 어느새 고양이가 실인형을 등지에 둔 채 살기어린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양이가 제 몸에 있는 실들을 모조리 뽑아내는 이 순간.
더 이상 고양이에게 방어기제가 남아있지 않는 순간을 말이다.
박율은 재빨리 망치와 코어를 장검으로 바꿔 들었다.
고양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 실가닥들과 실인형의 주먹을 날렸다.
쾅!!!
박율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던져 공격을 피했다.
그가 있었던 자리는 파쇄기에 분쇄된 듯 먼지만이 남아있었다.
[척후]
박율은 권능을 개방했다.
유리된 공간에 있는 이상 한 번에 하나의 권능만을 써야했다.
최소한의 권능으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야 한다.
또 다시 실인형의 주먹이 날아왔다.
박율은 척후로 주먹의 궤도를 파악하며 아슬하게 몸을 비틀어 주먹을 피했다.
쾅!!!
주먹은 피했다만 주먹이 일으킨 돌풍은 피하지 못했다.
곧바로 반격의 기회를 노리려던 박율은 몰아치는 돌풍에 흠칫 자세가 흔들렸다.
뒤이어 날아오는 실인형의 다른 주먹.
박율은 반사적으로 발을 굴러 높이 뛰었다.
척!
“후...”
아슬아슬하게 공격은 피했다만, 워낙 고양이가 흥분한 탓에 작은 움직임에도 무지막지한 힘이 실렸다.
이 정도면 스쳐도 중상, 아니 사망일 수도 있다.
박율은 놀란 토끼눈을 한 채 조금 떨어져 있는 세 사람에게 눈길을 옮겼다.
세 사람이 끼어들면 더 골치 아파질 것 같았다.
그는 괜찮다며 엄호나 해주라며 눈빛을 보냈다.
세 사람은 대답을 따로 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선뜻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들의 눈으로 본 박율과 고양이의 전투는 찰나에 전부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죽어.”
아주 잠시 박율이 한눈을 판 사이 고양이가 다시 공격을 날렸다.
박율은 흠칫 고개를 돌려 고양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번엔 주먹과 함께 실가닥들이 한꺼번에 날아드는 중이었다.
작정하고 그를 죽이려는 속셈인 듯했다.
박율은 재빨리 먼저 날아드는 실가닥들을 쳐냈다.
워낙 단단한 탓에 쉽게 쳐지진 않았다만,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날아드는 커다란 주먹.
이번엔 피할 수 있는 활로가 보이지 않았다.
박율은 코어를 방패로 만들어 주먹을 막았다.
“큭...!!!”
여태껏 느껴본 충격 중 가장 강력했다.
마치 떨어지는 메테오를 온몸으로 막는 느낌이었다.
고양이는 다음 공격을 피해 주먹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곳엔 박율이 보이지 않았다.
“...?”
흠칫.
그녀의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을 쫓아 고양이가 고개를 돌리자 박율이 보였다.
실인형의 주먹에 달라붙어있는 그를 말이다.
박율은 곧바로 발을 굴렀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향해 황금빛으로 갈무리하는 코어를 휘둘렀다.
차악!
하지만 찰나의 순간,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코어에 끝에서 이물감이 느껴지긴 했다만, 치명적인 공격은 아닌 듯했다.
박율은 땅을 굴러 고개를 들었다.
툭.
고양이의 가면이 절반 정도 잘린 참이었다.
잘린 가면 너머로 광대에서 턱까지 길게 이어진 균열에서 검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
그리고 그것은 고양이의 실낱같이 남은 이성을 터트리기 충분했다.
“조금 아팠나...?”
고양이는 분노를 가득 담아 주먹을 휘두른다.
이제는 척후로도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박율은 본능에 온몸을 맡겼다.
눈으로 쫓기 전에 몸을 먼저 비틀었다.
쾅!!!
박율을 지나간 주먹은 바닥을 산산조각냈다.
실인형의 주먹이 땅에 닿을 때마다 천지를 뒤흔드는 지진이 일 정도였다.
얼른 고양이를 해치워야 했지만, 틈이 보이질 않았다.
“말로 해결하자...!”
박율이 소리쳤다.
하지만 고양이는 어림도 없다는 듯 더욱 빠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이젠 실인형이 고양이인지 그녀가 실인형인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그 순간이었다.
박율이 발이 꼬인 건.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고양이는 박율의 빈틈으로 주먹을 찔러넣었다.
“...!!!”
주먹이 그에게 닿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검기가 고양이를 덮쳤다.
그 덕에 주먹의 궤도가 비틀렸고, 겨우 박율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검기가 날아온 방향엔 박율의 일행들이 있었다.
검기는 세 사람의 권능이 만들어낸 합작이었다.
이명석이 만드는 검격에 차영훈의 강화와 김진목의 무기로 추진력을 얻어 고양이를 위협할 수 있었다.
고양이가 아주 찰나 그들에게 시선을 옮긴 사이, 박율은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이 정도 수준의 전투에서는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방심이 승부를 자웅을 결정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지금 고양이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흘러간 것은 이 승부의 끝을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박율은 자세를 낮게 잡아, 타격점을 좁히고, 뒷발에 힘을 주고 달려갈 준비를 했다.
[신속]
팡! 하고 땅을 박차며 박율이 사라졌다.
차악!!!
박율이 신형이 다시 나타나며 축축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진원지에는 복부를 움켜쥔 고양이가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이 그녀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갈라진 복부 사이에서 덩어리진 핏물이 터져 나왔다.
고양이는 실들을 거두어 상처를 봉합하려 하지만 너무 크게 벌어진 상처는 아구를 닫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후...”
박율은 거친 숨을 고르며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고양이를 보았다.
가면은 이미 바닥을 나뒹굴고, 고양이는 제 얼굴을 보인 채 고통에 신음하는 중이었다.
“아파...”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죽음의 공포와 온몸을 찌르는 듯 울리는 격통에 그녀는 떨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죽음의 향기가 점점 그녀를 덮치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고개를 돌렸다.
원망 혹은 공포가 어린 눈으로 박율을 보았다.
그는 차마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채소연.
가면이 벗겨진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그녀와 닮아있었다.
아주 잠시 죄책감과 절망에 무너질뻔 했지만, 박율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버텼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녀는 고양이였다.
채소연은 아니었다.
“살려줘...”
죽음 직전에 도움을 청한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
그것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요동쳤다.
하지만 박율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가 박율이 익히 아는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한들 그녀는 연민을 가질 이유도 없는 사람이었다.
박율은 그녀의 행각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죽은 이들의 숫자만 수십을 넘는다.
그리고 죽을 이들 역시 수백, 수천을 넘을 터였다.
박율은 발을 돌렸다.
이제 다음 장화연과 곰을 해치울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악사회의 씨를 말린다면 추후에 일어난 모든 사태들을 막을 수 있다.
바알이 인간계를 처들어올 때의 대량학살을 막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악사회는 쉽게 말해 인류의 적이었다.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같은 인간들을 유린하며 악마들의 힘을 쓰는 존재들.
때로는 대의를 위해, 때로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말이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연민은 집어치워야 했다.
박율은 나머지 악사회의 두 인물을 찾았다.
데판은 곰을 상대하는 중이었고, 박석훈은 장화연을 상대하고 있었다.
데판은 압도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박석훈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다.
박율은 다음 타켓으로 장화연을 택했다.
그리고 그가 발을 떼는 순간,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박율은 반사적으로 살기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피에 흠뻑 젖은 고양이가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사방에 널브러진 실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실들은 박율을 향하지 않았다.
반대편에 보이는 세 사람을 향했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고양이는 손을 뻗는다.
그 손을 따라 실들이 허공을 주파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세 사람이 있다.
그들은 막으려는 듯 자세를 잡았지만, 박율은 알 수 있었다.
저 실들을 맨몸으로 막는다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 없었다.
아주 잠시 악사회의 전멸과 일행들의 생존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던 박율은 고개를 돌렸다.
[신속]
[척후]
결계에 금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