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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94화 (94/183)

94화

아주 오래전 하늘이가 제 어미를 찾는다며 홀로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고작 제 어미의 이름 하나만 머릿속에 박아놓고는 말이다.

가본 곳이라곤 제집 말고는 할애비를 따라 가본 시장뿐인 아이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 그 이름을 쫓았다고 했다.

천성이 약한 탓에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지쳐 쓰러졌다만.

소장석은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차가운 길바닥에 쓰러져 제 어미의 이름을 부르고 있던 그 날을.

“하늘아...”

“할아버지... 머리 아파...”

30분 정도 어미를 찾아 떠돌아다닌 것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고작 10살짜리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말이다.

“하늘아...”

아이는 어미를 찾아 거리를 나섰다는 이유로 38도에 가까운 열을 내고, 땀에 흠뻑 젖어 사경을 헤메었고,

온몸을 뒤덮은 반점과 멍울은 아이의 숨통마저 막으려 했다.

소장석은 괴로워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곁에서 기도해주는 것 밖에 없어서,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를 보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이 할애비보다는 오래 살다 가야지...”

소장석은 아이의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못했다.

그는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아이를 지켰다.

아이의 곁을 떠나면, 손을 놓치면 영원히 아이가 눈을 감을 것만 같았다.

소장석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늘이를 그에게서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

그러는 동안 하늘이는 수십 번의 고비를 넘겼다.

가끔 열이 치솟아 아이의 온몸이 붉게 물들기도 했고, 자다 말고 숨이 턱하고 막히며 죽을 뻔하기도 했다.

10살도 채 되지 못한 아이는 어미를 찾았다는 이유로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했었다.

다행히 일주일째 되던 날 증상이 호전되기는 했다만, 그 이후로 소장석은 다짐했다.

하늘이를 지키겠다고.

가혹하고 냉혹할지언정 아이를 세상에서 떨어뜨려 놓겠다고.

“하늘아...!!!”

허나 아주 잠시 하늘이에게서 시선을 돌린 새 아이가 사라졌다.

소장석의 두 눈은 공포와 불안에 질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

콰당탕!

문지방에 발이 걸려 바닥에 턱을 찍었지만, 그 고통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하늘이의 부재를 알아차린 소장석은 숨도 쉬지 않고 대충 옷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하늘아...!”

소장석의 두 눈은 갈 길을 잃은 나그네의 발걸음마냥 정착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 찾아야 했다.

아이에게 또 같은 고통을 줄 수 없다.

아이가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을 또 다시 볼 수 없었다.

“...!!!”

저 멀리 아주 흙바닥에 아이의 발자국이 보였다.

소장석은 헐레벌떡 발자국으로 달려갔다.

“여기...”

발자국은 바깥으로 이어져 있었다.

생각할 시간은 없다.

소장석은 아이의 발자국을 따라 미친 듯이 뛰었다.

“하늘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이는 흙바닥만 골라 걷는 듯했다.

그 덕에 발자국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얼마나 발자국을 쫓아 뛰었을까.

땀에 범벅이 되어 눈두덩이까지 축축하게 젖고 나서야 소장석은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이어지는 발자국 끝에 작은 아이가 두 여자의 곁에서 몸을 웅크린 채 앉아있었다.

“하늘...”

소장석의 입에서 아이의 이름이 채 나오기 전에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품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소장석은 당장에라도 달려가 고양이를 떼어놓아야 했지만, 선뜻 발을 떼지 못했다.

“...”

얼마 만이던가.

하늘이의 환한 웃음을 보았던 게.

고양이의 새카만 털을 쓰다듬는 하늘이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떤 붓으로 그어도 저렇게 아름다운 곡선은 만들 수 없으리라.

하늘이가 저런 웃음을 가지고 있었는지조차 몰랐었다니.

소장석은 저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원망, 그리고 아이에게 저런 웃음을 주지 못했다는 절망이었다.

“...”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둔다면 또 하늘이가 힘들어진다.

소장석은 떨리는 숨을 겨우 참고 하늘이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되게 귀엽죠?”

발을 옮기려는 순간, 옆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한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안쓰럽다는 얼굴로 아이를 보고 있었다.

“저런 웃음을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네요.”

남자는 말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소장석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소장석은 대답 대신 인상을 팍 쓰며 목을 긁었다.

“되게 뻘쭘하네.”

그리곤 그를 지나쳐 아이에게로 걸어갔다.

“지금 데려가려고요? 저렇게 즐거워하는데?”

남자의 말에 소장석은 고개를 돌렸다.

“혹시 자네가 여기까지 애를 데려온건가!?”

“아뇨?”

“그럼 신경 쓰지 말게. 내 아이이니 말일세.”

소장석은 불쾌함을 얼굴에 내비친 채 다시 발을 옮겼다.

“그래서 계속 집 안에 가두고 키우시려고요?”

소장석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불쾌함이 아니었다.

분노, 자조, 살기,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섞인 얼굴이었다.

“...그쪽이 그걸 어떻게 아는 겐가?”

“그냥 뭐 딱 봐도?”

“아무것도 모르면 마음대로 지껄이지말게...!”

소장석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남자를 때려죽이겠다는 살기가 단연했지만, 소장석은 겨우 분을 참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우선이었다.

“도움을 주고...”

소장석은 남자가 하는 말을 무시했다.

터벅터벅.

분에 찬 두 발이 하늘이를 향해 움직였다.

턱.

하늘이의 앞에서 아이에게 손을 뻗으려는 순간, 이번엔 옆에서 또 다른 남자가 그를 막아섰다.

소장석은 이번엔 또 무어냐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자네는.”

일전에 본 적이 있던 사내였다.

집 앞까지 찾아와 몇 시간 가까이 말 한마디 나누려 농성을 부렸던 남자였다.

결국은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갔지만 말이다.

사내은 최대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소장석의 앞을 막아섰다.

소장석은 여전히도 경계심이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뒤에 있던 남자를 상대했을 때보다는 아니었다.

“...자네가 우리 아이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가...?”

“그...아니라고 하기도 뭐하긴 한데...”

“...자네 미친 건가...?”

소장석의 눈에 살기가 내비쳤다.

“우리 애가 어떤 앤 줄 알고 마음대로...!!!”

“아니 그게...”

“오늘 이 일 때문에 하늘이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전부 자네 탓일세!!!”

“그...”

소장석은 사내를 향해 손가락을 깊게 찔렀다.

“자세한 이야기는 경찰에게나 하지! 그래도 사람은 좋게 봤다만...!”

소장석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무거운 한숨을 내뿜더니 사내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도와드릴게요.”

“...”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일전에 찾아왔을 때 인두로 얼굴을 지져버리지 못했던 게 한이 될 정도로 분이 차올랐다.

소장석은 사내의 말을 들은 체도 않고 하늘이에게로 갔다.

“도와드리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자리를 만든 거에요.”

“...”

“하늘이가 평범한 아이처럼 살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뭐?”

평범한 아이.

그 한마디에 소장석의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늘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어떻게?”

“네...?”

“...하늘이를 고치려 국내 모든 병원을 돌아다녔네. 심지어는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병원에까지도 말일세. 하지만 누구도 아이를 고치지 못했네. 그런데 어떻게 자네가 고친다는 말이야?”

차가웠다.

그리고 냉혹했다.

박석훈을 바라보는 소장석의 얼굴은 말이다.

그의 얼굴을 본 박석훈은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가 가진 짐은 타인이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으니까.

“어? 할아버지!”

소란에 고개를 돌린 하늘이가 소장석을 보았다.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품에 안은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인생...]

“귀엽지! 이 언니, 오빠들 애완동물이래!”

하늘이는 들어올린 고양이를 품속에 파묻곤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누가 마음대로 집 밖으로 나오라고 했어?”

소장석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하늘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게 고양이가...”

“할아버지가 누누이 말했지? 마음대로 나오면 안 된다고!”

“그치만...”

“바깥이 얼마나 위험한데!!!”

소장석의 버럭 지르는 소리에 하늘이는 움찔 놀라더니, 이내 입을 달싹거리며 울먹거리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이의 울음에 곁에 있던 서희는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래주었다.

“왜 애를 울리고 그러세요. 괜찮아, 괜찮아.”

소장석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서희의 품에 있던 아이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발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고양이를 쫓아 여기까지 온 듯하니 더이상 추궁은 않겠네만...”

소장석은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그에 상응한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도와드릴게요.”

* * *

박석훈은 말했다.

그것은 박율에 의해서가 아닌 그의 의지로써 말한 것이었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어떻게든 저 남자를 돕고 싶었다.

일전에 봤던 남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남자가 당시 불에 달군 인두를 들이밀면서 그를 경계했던 그 모습 역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이럴 줄은 몰랐어요.”

박석훈의 말이 이어졌다.

“하늘이라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왜 저를 그렇게 경계하셨는지 전부 알겠어요.”

“...”

“그래서 도와드리고 싶어요.”

“도대체 어떻게...?”

소장석이 멈춰섰다.

그리고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건...”

박석훈이 답을 하기전에 박율이 그의 어깨를 짚고 앞으로 나섰다.

박석훈을 데려온 목적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약동.

아주 작은 파동이 소장석이라는 남자에게서 피어났다.

박율은 그 작은 파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요?”

박율은 다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지금 하늘이를 봐요. 어떤 거 같아요?”

“뭐...?”

박율은 턱으로 소장석 뒤에 있는 하늘이를 가리켰다.

그곳엔 한껏 서러움을 입에 가득 물고 소장석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평소 하늘이였으면 벌써 쓰러지지 않았을까요?”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여하튼.”

박율은 아주 천천히 소장석을 향해 걸어갔다.

“지금 하늘이는 어떤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였다.

하늘이는 멀쩡했다.

아니, 몸이 약한 것을 인지하지도 못할만큼 정상적이었다.

소장석이 알던 하늘이였다면 이미 낯선 환경에 쓰러져야 했다.

게다가 하늘이가 좀전까지 안고 있던 고양이 한 마리.

가끔 상태가 좋을 때 집을 나온 적이 있거니와 그럴 수 있다지만, 고양이는 아니었다.

하늘이는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극심한 탓에 고양이를 만지기만 해도 손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는 한에서 아이는 멀쩡했다.

너무나도 말이다.

“지금은 임시방편으로 하늘이 상태가 나빠지지 않게 해놓은 거에요.”

“...”

“저희를 믿어주신다면 하늘이가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소장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확실한 한 가지는 지금껏 어느 의원, 병원을 들려도 하늘이의 상태가 호전되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하늘이는 달랐다.

하늘이를 보던 소장석의 눈이 아주 천천히 박율을 향했다.

“어서오세요. 철혈의 대장장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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