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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85화 (85/183)

85화

“저...저게...”

서희가 허공의 악마를 가리켰다.

지금껏 그녀가 봐온 악마들과는 결이 다른 마기였다.

마기를 풀풀 풍기는 게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악마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박율은 당장에라도 달려들면 대응할 수 있게 전투태세를 취했다.

“겁나 쎈 놈이에요.”

“뭐?”

흠칫, 서희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박율을 보았다.

“저도 쟤가 누군지는 정확히는 모르는데 대충 푸르카스 쪽에 겁나 쎈 악마라고 알고 있어요. 웬만해선 저놈 오기 전에 가려고 했는데, 뭐 늦었네요.”

“푸...르카스?”

“마왕이요.”

박율은 하늘의 악마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저 눈을 내리깔고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후...”

[...네놈이 왜 여기 있지?]

“...뭐?”

건물의 외벽을 시야 너머 어딘가로 던진 악마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그의 말에 박율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다시 악마를 보았다.

악마는 여전히 박율을 보고 있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인상을 지었다.

“나? 우리가 구면이던가?”

[오랜만이군.]

“내가 모르는 사이 우리가 친분이 쌓인건가? 아님 내가 마계에서 인기가 좀 생겼나?”

[거기 숨어서 뭘 하는 거지?]

“나 안 숨어있는데? 서희 씨 저 놈 알아요?”

서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뭔데 인사를 해요?”

“인사를 한다니?”

“아, 그쪽은 못 알아듣겠구나. 갑자기 우리한테 인사를 해서.”

“어떻게 알아 듣는...”

“뭐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거기 인간 놈은 닥치지.]

“우리가 아니야? 그럼 누구한테...”

그의 말과 함께 그림자에서 고양이 형태의 데판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박율은 그 자세 그래도 눈동자를 굴려 도도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데판을 보았다.

그들을 보고 있던 서희는 한 번 더 놀란 얼굴을 했다.

[별로 반갑진 않은데 말이지.]

[도대체 그 하찮은 모습은 뭐지?]

[내가 말할 이유라도 있는가?]

[그새 취향이 남달라졌나보군.]

[그 방정맞은 입은 달라지지 않았나보군.]

박율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데판에게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아는 사이에요?”

[그리 썩 알고 싶진 않은 사이지.]

데판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말하면 섭하지.]

데판의 말에 허공의 악마가 말했다.

[한때 한솥밥 먹던 사이였는데 너무 박하군.]

“뭐여? 푸르카스 쪽 악마였어요?”

[인간들은 그런 것을 흑역사라고 하더군.]

[주군을 내치고, 온 곳이 고작 인간계인 것이냐?]

[왜 안 되느냐?]

[불쌍한 것.]

[염병.]

“그래도 전 직장 동료랑 만나는 건데 말이 너무 저급하잖아요. 염병이 뭐에요.”

[지금이라도 그 버러지 같은 인간 놈을 버리고 돌아온다면 내 친히 주군께 이야기는 해보지.]

“저기가 더 입이 더럽네. 나쁘지 않은 단어선택이었어요.”

데판은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들을 보고 있던 허공의 악마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박율과 서희, 그리고 데판이 있는 바닥으로 내려왔다.

[긴말하지 않겠다. 넘겨라.]

“그건 누구한테 하는 말이여? 나 아님 이 양반?”

[옛정을 봐서 물건만 넘기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그쪽인가봐요.”

[싫다면?]

[네놈에게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없을 이유라도 있더냐?]

[허, 건방지기 짝이 없군.]

데판은 날선 대답으로 악마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박율의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나와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마치 작은 파도가 급류를 만나 크게 일어 해일로 변하듯, 데판의 형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윽고 고작 박율의 발치에서 웅크리고 잠을 청하던 데판은 어느새 경매장을 집어삼킬 듯 태산 같은 덩치를 되찾았다.

[누가 건방진 건지는 봐야 알겠지.]

그는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눈을 내리깔고 악마를 보았다.

호리호리한 외형의 악마는 한껏 비소를 머금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데판의 몸뚱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악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우야...”

박율은 다시 눈 앞을 차지한 악마를 보며 저도 모르게 탄사를 내뱉었다.

뒷짐을 지고 있던 악마는 당연하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박율은 무슨 뜻이냐며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악마는 달랐다.

그는 숨을 턱 틀어막는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 공포에 떨게 만드는 그러한 살기였다.

[거기, 비켜라.]

악마가 발을 떼는 순간, 박율의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박율은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던졌다.

쾅!!!

박율의 몸이 땅에 닿는 순간, 그가 있었던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데판의 주먹이 악마의 턱을 날렸다.

콰과광!!!

날아간 악마의 몸뚱이가 저 멀리 바닥에 처박힌 것으로 모자라 날아간 길을 따라 땅을 파고들었다.

[싸가지 없는 건 여전하군.]

악마를 날린 데판은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마른 뼈소리를 냈다.

[...이 느낌 오랜만이야.]

악마의 말이었다.

그는 처박힌 구덩이에서 걸어나오며 온몸을 풀고 있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고.]

그리고 악마와 함께 데판의 신형은 사라졌다.

작은 바람이 일어 박율의 옷깃을 시침과 동시에.

쾅!!!

그의 정면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다시 두 악마가 나타났을 땐, 박율의 정면에서 마기를 뿜어내며 힘을 겨루고 있었다.

덩치 면에서는 데판이 압도적이었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반대편 악마가 더 강력해 보였다.

게다가 저 악마는 염력이 주된 능력인지 바닥의 떨어진 돌덩어리들은 손도 대지 않고 들어올려 데판에게 쉴새 없이 던졌다.

말 그대로 융단폭격.

저기 있는 게 데판이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면, 벌써 벌집이 됐을 법한 공격이었다.

데판은 날아오는 돌무더기를 파헤쳐 뚫고 주먹을 내뻣지만, 악마는 주먹이 닿기 직전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찰나의 순간, 그러기를 수십 번.

“워메...”

말 그대로 괴물들의 대전이었다.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는 싸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그간 데판과 가까이 지내온 탓에 그가 어떤 악마였는지를 까먹고 있었다만, 새삼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일개 인간놈은 빠질게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들의 싸움에 끼어들 틈은 없었다.

박율은 슬쩍 발을 빼 격돌하는 두 존재에게서 멀어졌다.

“이...이게 대체 무슨...?”

그들과 함께 있던 서희의 물음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두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멍한 얼굴이었다.

박율이야 사선을 넘나들며, 그리고 토머를 죽일 때나, 데판을 만났을 때나 저런 아득한 악마들을 여럿 만났다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이 상황은 도저히 두 눈을 믿을 수 없을 만한 상황이었다.

“괴수대전이요.”

“뭐!?”

서희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딱히 설명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그녀의 시선은 박율보다는 두 괴물의 대전으로 향했으니까.

“그거 보는 것도 좋은데, 일단 이쪽으로 와요.”

박율은 멍하니 악마들의 대전을 보던 서희에게 말했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박율을 따라갔다.

쾅!!!

데판의 주먹과 악마의 염력이 마주치자 폭음이 터져나왔다.

함께 경매장의 땅바닥에 금이 가고 가까이 있던 벽면이 허물어졌다.

수십 미터는 떨어져 있는 박율과 서희에게도 그 충격이 전해질 정도였다.

쿠구궁!!!

“조심...!”

박율은 괴물들이 만든 충격에 서희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무더기를 향해 망치를 던졌다.

쾅!!!

날아간 망치는 돌무더기를 산산조각냈다.

“여기서 우리가 뭐 할 건 없고, 나갑시다. 덩치 큰 놈이 이기면 좋겠지만, 아마 안 될 거 같거든요.”

[뭐라고...?]

두 사람의 뒤에서 데판이 그의 말을 들었는 지 순식간에 발을 굴러 힘을 겨루던 악마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펑!!!

어찌나 주먹이 센지 퍽이 아니라 펑 소리가 났다.

악마 역시 주먹을 맞고 저 멀리 날아간 상태였다.

[다시 말해봐.]

데판은 고개를 돌려 박율을 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모르겠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한눈을 팔다니.]

아주 잠시 데판과 박율이 사담을 나눈 사이 저 멀리 하늘 너머로 날아간 악마가 되돌아왔다.

그는 데판을 땅바닥에 내리꽂더니 가볍게 손을 들어 바닥에 떨어진 철근으로 데판의 몸뚱이를 포박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데판은 철근을 어그러뜨리곤 다시 악마를 향해 뛰었다.

“나가요. 여기 있다간 향냄새 맡겠다.”

박율은 혀를 내두르며 출구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쾅!!!

출구로 나가려는 박율과 서희의 앞으로 커다란 돌덩이가 길을 막았다.

[어딜 가려고.]

“또 질척이네.”

악마는 아주 여유가 넘치는지 데판을 상대하면서도 도망가는 두 사람을 막았다.

“거기 덩치 큰 양반. 잘 좀 해봐요.”

[닥치지... 못할까...!]

데판이 주먹을 휘두른다.

태산을 머금은 커다란 주먹이 악마의 정면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악마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도망칠 곳도 없이 커다랗게 변한 데판의 주먹을 바닥을 꿰뚫어 피했다.

콰과광!!!

대상을 놓친 주먹은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고, 천지를 뒤흔드는 지진을 일게 만들었다.

[내가 알던 놈이 맞는가? 이렇게 약할 리가.]

[닥쳐라.]

데판은 다시 뛰었다.

하지만 여전히 악마에겐 닿지 않았다.

오히려 데판은 악마의 힘에 의해 바닥에 처박혀 움직임을 봉쇄당했다.

악마는 그의 힘에 짓눌려 움직이려 발버둥을 치는 데판을 보며 혀를 끌었다.

[...실망이군.]

“맞아! 실망이다!”

[저 이씨...]

박율이 악마의 말에 가세해 소리치자 데판은 그런 그를 보며 이를 빠득 갈았다.

[그건 사정이...]

“또 심장 핑계댄다. 또! 아주 입만 열면 핑계가 자동으로 나온다!”

박율이 소리쳤다.

그것도 아주 얄밉게.

마음 같아서는 저 머리에 주먹을 한 대 내리찍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분노는 그의 마기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고...]

박율의 도발이 효과가 있었는지 데판은 자신을 짓누르던 힘을 짖어 발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포효를 내지르고는 악마에게 몸을 던졌다.

그를 보던 박율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래도 못 이겨요.”

박율은 흘깃 서희에게 말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양반이 지금 약해져서 말이에요.”

“너를 따라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게 누가 쫓아 오래요? 자기가 직접 찾아 왔으면서.”

서희는 초조한 얼굴로 박율을 노려보았다.

“걱정마쇼.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리고 박율이 꺼내든건 사람 형상을 한 항아리와 망토였다.

“그건 또 뭐야...?”

“전략이죠.”

박율은 손가락을 와작 깨물더니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항아리에 넣었다.

쾅!!!

동시에 저멀리에서 데판의 몸뚱이가 날아들었다.

[큭...]

“거 잘 좀 해봐요. 명색이 단탈리온 제 1 군단장이 모양 빠지게.”

[계속 신경 거슬리게...]

“그거 핑계인거 알죠?”

[제발 그 입 좀 닥쳐라.]

“됐고, 슬 그만하고 돌아올 준비나 하십셔. 더 망신당하기 싫으면.”

박율은 말했다.

데판은 인상을 팍 지으며 무슨 욕이라도 내뱉으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함께 저 멀리에서 내뻗은 악마의 손은 데판의 몸뚱이를 잡았다.

그리고 내던진다.

쾅!!!

날아간 데판의 몸뚱이가 바닥을 굴렀다.

[실망이 크군. 데판. 명색이 총군단장 자리까지 노리던 자가 이렇게까지 남루해지다니.]

[...내 발끝 하나 쫓아오지 못하던 애송이의 입은 여전하군.]

악마는 살기 어린 미소를 짓더니 다시 데판을 잡아 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

악마의 시선이 박율을 향했다.

그새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박율은 출구의 바위를 없애고 탈출하려던 참이었다.

[어딜.]

악마는 그들을 향해 마기가 담긴 폭탄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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