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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78화 (78/183)

78화

까마귀의 일본도는 정확히 박율의 눈앞에서 멈췄다.

“셋을 주겠다.”

까마귀는 마치 박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검을 좀 더 깊게 넣었다.

검은 박율의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셋.’

박율은 정면의 까마귀를 응시한 채 두 사람에게 손으로 수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은 긴장감이 역력한 얼굴로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셋.”

까마귀는 높이 잡은 검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정면의 모든 것들을 베어 가를 듯 검을 잡았다.

‘둘.’

박율은 펼친 세 손가락 중 약지를 접었다.

“둘.”

회색빛의 검날이 통로를 밝힌 불에 반사되어 빛난다.

‘하나.“

이번엔 중지를 접었다.

하나를 남겨둔 지금, 두 사람은 목젖을 울렁이며 긴장한 얼굴을 했다.

”하나.“

그리고 까마귀가 모로 잡은 검을 높이 들려는 순간.

”지금!!!“

박율은 소리쳤다.

그가 소리침과 동시에 세 사람을 가리던 망토는 하얗게 불타오르며 사라졌고, 두 사람은 헐레벌떡 입구 쪽을 향해 달렸다.

움직임이 제한된 공간에서 상대가 두 무리로 나뉘고 한 무리는 전투태세를, 그리고 나머지는 도망치는 것을 본다면 본디 도망치는 쪽을 쫓기 마련이다.

까마귀의 시선은 예상대로 박율이 아닌 두 사람을 향했다.

두 사람을 미끼로 쓴다.

까마귀는 박율을 향해 뻗으려던 칼날의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검이 허리춤에서 시작하여 두 사람의 다리를 향해 횡을 그리려 할 때.

[신속]

박율의 권능이 피어올랐다.

까마귀의 검기가 두 사람을 덮치기 직전, 박율은 땅을 박차고 달렸다.

사라진 그의 신형은 까마귀를 지나쳤다.

동시에 그가 다른 손에 지니고 있던 ’우니‘, 즉 손톱을 훔치고, 박율은 사람 모양의 항아리를 지닌 뱀까지 날리고야 멈췄다.

쾅!!!

박율에 의해 날아간 뱀은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오랜만이네, 친구들.“

박율은 땅에 떨어진 항아리를 주우며 손인사를 했다.

”너, 이 개새끼...!!!“

정면에 있던 장화연은 그를 마주치자 일단 주먹부터 휘두르고 말을 뱉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먹이 박율에게 달려가는 순간.

[신속]

또 다시 박율의 신형이 사라졌다.

까마귀는 사라진 박율을 쫓기 앞서 두 사람을 제압하는 것을 택했기에 그의 검은 역시 두 사람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까마귀의 마기가 땅바닥을 타고 두 사람의 정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멈추세요.“

순식간에 두 사람 앞에 도착한 박율은 재빨리 둘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리고 겨우 한 발자국 앞에는 날카로운 칼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보네?“

”끈질기군.“

”사돈남말하시네.“

까마귀는 일본도를 높이 들어 박율을 겨누었다.

”내려놔라.“

그리고는 박율이 훔친 두 성유물을 가리켰다.

까마귀는 박율의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일본도를 내리쳤다.

박율은 재빨리 코어를 장검의 형태로 바꾸었다.

캉!!!

두 검이 부딪히며 작은 불씨가 흩날렸다.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는 거 같은데?“

”...“

캉!!!

이번엔 박율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어차피 안 줄 생각이긴 했어.“

”뺏는 수밖에.“

”뻿어보시든가.“

”허, 나, 이 새끼들이 장난질을 치네?“

뒤에서 장화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떡해요!?“

장화연을 본 하세원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앞뒤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활을 꺼내 당장에라도 쏠 듯 시위를 당겼다.

”쏘지 마요.“

”네!? 그럼 어떻게!?“

”어떡하긴요. 자, 하나씩 집어요.“

박율은 손에 든 성유물을 하늘 높이 던졌다.

그리고.

[척후]

척후를 발동하고 보인 찰나의 순간, 뱀은 수십 마리의 뱀을 소환해 세 사람을 향해 날렸고, 장화연은 땅을 박차고 몸을 던졌다.

그리고 동시에 정면의 까마귀가 검을 휘둘렀다.

캉!!!

두 검이 다시 부딪히고 까마귀는 튕겨져 나온 검을 반사적으로 높이 들었다.

하늘 높이 떠오른 성유물들이 최고점을 찍고 다시 내려오는 동안, 두 사람의 검은 수십 차례 합을 나누었다.

그새 꿈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달려온 수십 마리의 뱀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박율의 뒤에 있던 두 사람을 향해 혀를 쉭쉭 내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떨어지는 장화연의 주먹은 검은 자국으로 점철되었다.

캉!!! 캉!!!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두 사람은 검과 검을 나누며 서로의 목을 탐했다.

캉!!! 캉!!!

동굴을 울리는 쇳소리는 그들의 귀에 닿기도 전에 뒤이어 울리는 쇳소리에 겹쳐졌다.

물론 막상막하는 아니었다.

박율은 척후를 사용한 채 검의 궤적을 따라가며 검을 막는 것에만 급급했다.

반면에 까마귀는 여전히도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그를 제압했다.

하지만 박율에게 무기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수십 번의 합이 끝나가는 찰나에 망치를 소환했다.

그리고 올려친다.

콰직!

정정당당한 싸움에 비겁이라는 요소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재료였다.

망치에 맞은 까마귀는 흠칫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떨어지던 성유물을 두 사람이 하나씩 집었을 때, 박율은 양 손에 지닌 무기를 넣어두고는 두 사람에게 손을 얹었다.

”나중에봐.“

[유리]

박율의 권능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하얀 불꽃이 세 사람의 몸을 집어삼켰다.

”이 개새끼가...!!!“

뒤늦게 날아온 장화연의 주먹은 허공을 주파하고 바닥에 처박혔고, 뱀들은 허공에 독을 품은 이빨을 날렸다.

까마귀의 검날 역시 아주 미세한 차이로 허공을 꿰뚫은 상태였다.

”이 새끼들 어디 갔어!?“

자리에 남은 것은 작은 구슬 하나뿐이었다.

이윽고 그 구술에 균열이 벌어지더니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후우...“

박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예상치 못한 복병에 사단이 날 뻔했다.

날아든 총알이 상처를 입힐 줄이야.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워우...“

두 사람 역시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못해도 누구 하나는 죽었을 법한 상황이었다.

”아직 끝난 거 아니에요. 이건 임시방편이에요.“

”...“

박율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권능이 풀리면 또 달려들 겁니다.“

박율은 보석을 하나 꺼내 ‘손톱’을 깨우고는 하세원에게 넘겨주었다.

”이게...?“

”엄지랑 소지에 끼세요.“

하세원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이었지만, 이내 그의 말을 따라 손에 장신구를 끼웠다.

”그걸 활이라고 생각하고 손이 넓게 펼쳐봐요.“

”이...렇게요...?“

하세원은 엉성한 자세로 손을 펼쳤다.

”그리고 손에 화살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팔을 길게 뻗어요.“

박율의 말을 따라 손을 뻗자 그녀의 엄지와 소지를 따라 하얀 불꽃으로 이루어진 활의 골격이 나타났다.

그리고 화살이 있는 것마냥 나머지 팔을 당기고 손을 오므리자 하얀 불꽃을 머금은 화살이 시위에 걸렸다.

”와...“

하세원은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성유물을 보았다.

”이제 제가 권능을 풀 거에요.“

”네...!?“

”도망쳐야죠.“

”그럼 난 뭐해?“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던 최지호는 자신에게도 뭔가를 달라는 얼굴로 물었다.

박율은 알겠다며 가지고 있던 항아리를 그에게 넘겼다.

”이건 뭐하는 건데?“

”잃어버리지 말라고.“

”뭐?“

”짐꾼도 있겠다. 준비 됐어요?“

아직 준비가 된 것 같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박율은 알고 있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짓더니 하세원을 보았다.

”권능을 해제하면 제가 신호를 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호에 맞춰서 땅바닥에 활을 쏘고 아까 만든 덫이랑 연결해요. 알겠죠?“

”...네.“

박율은 두 사람에게 망토를 넘겨주었다.

”덮고 있어요.“

그리고 박율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양 손에 무기를 소환했다.

”갑니다.“

세 사람을 가두었던 새하얀 결계에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쩌적.

벌어진 균열은 이윽고 결계를 전부 집어삼켰고.

쨍!!!

결계는 무너졌다.

그리고 보이는 동굴 내부.

뿌연 안개가 동굴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화연이라 적고 미친 여자라 불리우는 여자가 박율의 코 앞에 있었다.

”돌아왔네, 이새끼? 이번엔 혼자네?“

”기다리고 있었네? 먼저 가도 되는데.“

”니 새끼 덕분에 교훈을 하나 얻었거든. 개새끼는 패 죽여야 한다고.“

장화연은 곧바로 달려들었다.

[척후]

날아오는 장화연의 몸뚱이, 박율은 허리를 비틀어 그녀를 피했다.

동시에 안개 속에서 달려드는 수십 마리의 뱀들까지, 박율은 코어를 철퇴 형태로 바꾸어 뱀들을 향해 찍어 내렸다.

”야, 거기 뱀 대가리. 이 새낀 내꺼야.“

”그러시던가.“

뿌연 연기 속에서 뱀은 능청스레 답했다.

”대화로 해결합시다. 우리.“

”염병.“

박율을 지나 땅바닥에 처박혔다 일어난 장화연은 곧바로 달려들었다.

박율은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피하려 했지만, 그곳엔 이미 뱀들이 자리를 차지한 뒤였다.

박율은 공격을 피하는 대신 코어를 방패 형태로 만들었다.

쾅!!!

장화연의 주먹과 방패가 맞부딪히며 굉음이 울렸다.

콰직!!!

”너희들 너무 비겁한 거 아니야?“

”비겁? 지랄을.“

쾅!!!

장화연의 주먹은 또 다시 그를 향해 내려찍었다.

”이번엔 안 놓친다. 이 새끼야.“

”입이 참 거치시네.“

장화연의 주먹에 검은 자국이 겹치고 겹쳐 커다란 철퇴가 되어 떨어졌다.

[경화]

콰앙!!!

역시 경화를 써도 저릿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쳇.“

장화연은 연신 주먹을 내리꽂았다.

당장 이 미친 여자 정도를 따돌리는 것 정도야 가능하겠지만, 이미 그의 뒤로는 다른 두 놈들까지 접근하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면 위험하다.

박율은 또 다시 내려찍히는 주먹을 피해 몸을 굴렀다.

그리고 망치를 휘둘러 장화연의 다리 쪽을 노렸다.

캉!!!

망치가 내려 찍힌 자리는 벌써 검은 자국으로 도배 되어 있었다.

어우.

”왜 뭐하게?“

더럽게 빠르네.

[신속]

또 다시 주먹이 내려찍히기 전에 박율은 장화연을 밀쳤다.

쾅!!!

장화연의 몸뚱이는 반대편 바닥에 떨어졌지만, 아픈 기색도 없이 다시 일어났다.

”이 새끼봐라?“

”고양이 아저씨, 일어났으면 좀 도와주쇼. 하루종일 잠만 퍼질러잘 겁니까?“

박율은 고개를 돌렸다.

정면에서는 장화연이 검은 자국으로 가득한 주먹을 맞부딪히며 위협을 했고, 뿌연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 뒤에선 뱀과 까마귀의 실루엣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옆으론 망토를 뒤집어쓴 채 숨을 죽인 두 사람이 있었다.

”고양이 아저씨?“

[...]

”지금 안 일어나면 주군이고 뭐고 다 뒤질 거 같거든요? 알람 울리고 있으니까 일어나서 알람 좀 끌래요?“

[...시끄럽군.]

박율의 계속된 외침에 데판이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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